마지막 회 강회장의 차를 타고 있는 아현은 아까부터 강회장의 눈치만 살피고 있다. 수지는 내내 불안하기만 하고.... -저쯤에서 차 세워. 강회장의 말에 기사가 한쪽으로 차를 세운다. -당신 먼저 들어가, 아현인 내려라. 강회장이 차에서 내리고 아현이 뒤를 돌아본다. 수지가 눈으로 어서 내리라고 하자 아현이 차에서 내려 수지에게 인사를 꾸벅한다. -좀 걷자. 강회장이 조용히 말하고 앞서 걸으면 머뭇거리다 아현이 강회장 옆에 바짝 붙어 걷는다. 한동안 말없이 걷기만 하던 강회장이 먼저 입을 연다. -니가...인하를 통해서 본 게 뭐냐? 뜬금없는 강회장의 질문에 아현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강회장을 보며 걷는다.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면....뭘 봤을 게 아니냐. -어느 드라마에서 그런 대사가 있었어요...사랑하는 사람한테 그 사람이 말해요.. 당신을 보면 선인장 같다고...세상을 향해서 가시를 돋고 있지만...그 안을 열어보면 언제든 울 준비가 되어 있는 것처럼 물이 많대요...선인장을 정말 잘라보면 그 안은 질퍽거릴 만큼 물이 많아요...그게 눈물일거에요....적의를 품고 날카로운 송곳니를 먼저 드러내 보이지만...실상 사랑 받고 싶은 거에요...인하씬...그런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데에 서툰 사람이지...사랑이 없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인하씨 보면서....선인장 같단 생각을 했어요...그래서 그 몸에 박힌 가시들을 내가 하나하나 빼주고 싶단 생각을 했어요... 아현의 말에 강회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말이다...그래도 널 반대한다면 어쩔거냐? -거기까진...아직 생각 못했습니다. 왜냐면...허락하실 걸로 믿었으니까요...제가 잘나서, 이뻐서도 아닙니다....인하씨 때문에 아버님께서 허락하실거라 생각했습니다...별장에서 아버님, 아주버님, 그리고 인하씨 세 분이 서 있던 그림이 정말 가슴 따뜻하게 느껴졌거든요...그때 아버님도 저와 같은 마음이셨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니가 내 속을 다 뚫어 봤다...그거냐? -아버님...아버님께서도 인하씨가 가족에게 마음을 열게 된 것이 가장 행복한 일이었잖습니까, 어렵게....정말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거...아버님께서도 싫으시죠? 아현의 말에 강회장은 아무 말도 못한다. 한참을 그렇게 걷다가 아현이 강회장의 팔을 잡아 끈다. -아버님...걷다 보니까 출출한데...우리 저거 먹을까요? 떡볶기와 오뎅을 팔고 있는 노상을 가리키며 아현이 강회장을 끌고 오다시피 한다. -어서오세요... 아주머니가 강회장과 아현을 보고 시원하게 인사를 한다. 아현이 요지로 떡볶기를 찍어 강회장에게 억지로 먹이면 마지 못해 강회장이 받아 먹는다. -맛있죠 아버님? 아현이 아이처럼 떡볶기를 먹고 오뎅국물을 퍼서 강회장에게 내민다. -아유, 부녀지간인가봐요...어쩜 보기도 좋은지...요새 젊은 애들이 늙은 사람들하고 잘 어울려야 말이죠...우리 집에도 아들 녀석이 둘이나 있는데..생전 지 엄마 데리고 나가 외식 한 번 안해줍디다, 아들은 키워봐야 소용없어요...그래도 딸자식이 부모 마음 더 잘알지...아저씨 딸은 효녀네요. 아주머니의 말에 강회장이 흐뭇해지고 아현이 기분이 좋다. 엄마....이거 엄마가 저 도와주신 거 맞죠?...꿈에서 엄마가 입은 하얀 웨딩드레스...내가 입게 되는 거 맞죠? 아현이 기분 좋게 강회장을 본다. 강회장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이제 제 손으로 오뎅을 불며 맛있게 먹는다. *** 안여사는 화원을 꾸미느라 정신없는 하루를 보낸다. 긴 겨울의 추위도 이제 한 풀 꺽인 듯 바람이 차갑지가 않다. 곧 여기저기 새싹이 돋아날 것이다. -미강아...저기 화분 이쪽에다 갖다놔라, 아무래도 여기가 낫겠다. -네, 사장님. -너는 그 사장이란 소리 좀 하지 말라고 해도 그게 안되니? -자꾸 습관이 돼 놔서... 미강이 씨익 웃으며 화분을 옮기는데 인하와 아현이 들어온다. -엄마. 아현의 소리에 안여사가 돌아본다. 손에 묻은 물기를 앞치마에 닦아 내며 환하게 웃는다. -어쩐 일이야 여기까지...들어와 앉어. -저도 왔습니다. -그래, 들어와...점심은? -아버지한테 가는 길이에요, 잠시 들렀어요. -그래, 잘했다....미강아, 음료수 좀 내와라...회장님은 잘 계시고? -네, 그렇지 않아도 저희 결혼 때문에 한 번 자리를 만드시자고 하세요. -그래, 그래야지...언제가 좋을까, 오늘 아버지한테 가면 여쭤봐. 안여사가 아현의 머리칼을 쓸어 넘겨 주며 다정하게 말한다. -늬 아버지 좋아하시겠다, 니 걱정 제일 많이 하셨잖니. -오픈은 언제에요? -어...다음 주쯤에 할까해...아직 정리도 제대로 안되고....내가 좀 바쁘다. 안여사가 아현과 인하를 보고 흐뭇해 한다. *** -야, 일루 와....여기서 너 또 개기지? 채영이 선우의 귀를 잡아 당기며 끌어낸다. 게임방에 있던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하는 눈으로 쳐다본다. -아, 아....이거 좀 놓구 가, 아이씨....쪽팔리게.. 채영은 들은체 만체 하며 밖으로 끌고 나와서야 놓아준다. 그리고는 대뜸 정강이부터 걷어 찬다. 선우가 나 죽네하며 다리를 잡고 쩔쩔 맨다. -개학한지가 언젠데, 너 아직 이러고 있어? 언제 철 들래, 증말. -오전 수업 없단 말야 씨이... -죽을래?..어디서 이게 거짓말까지 하냐...내가 다 알아봤어, 너 오늘 수업 몇시부터 있는지 내가 줄줄 대봐?...내가 너땜에 일이 안된다, 안돼. 채영이 손을 올리자 선우가 슬쩍 방어를 하며 버럭 소리를 지른다. -니가 내 마누라라도 되냐, 기집애가 어디서 감히 남자를 때리냐? -어쭈...나 정채영은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이거야, 너 인간 만들어서 제발 인간답게 살게 하라는 사명을 받았다구 임마. 채영이 선우의 머리통을 한대 쥐어 박는다. -너, 자꾸 이렇게 개기면 니네 집에다 확 꼬발린다...어서 학교 안가? -아이씨...도대체 내가 너랑 전생에 무슨 웬수가 졌다구 이러고 사냐...아우, 내 팔자야... 선우가 울상을 하고 앞장 서서 걷고 채영이 뒤따라 걷는다. *** 이원장이 텃밭에 상추를 심기 시작했다. 이제 곧 볕이 들고 비가 오면 그것들은 어린 자식들처럼 쑥쑥 자라서 어느새 몰라보게 커 있을 것이다. 허리를 펴고 하늘을 올려다 보면 낯익은 자동차가 시야에 들어온다. 차가 집 앞에 멈춰서고 아현과 인하가 차에서 내린다. -아버지.. 아현이 뛰어와 이원장을 껴 안는다. -우리 아버지..이제 농사꾼 다 되셨네. -안녕하셨습니까 아버님. -어, 그래...왔어?...들어가자. 셋이 함께 방으로 들어가 앉는다. -허락하셨단 얘긴 들었다, 회장님께서 전화를 주셨더구나...딸 하나 잘 키웠다고 칭찬까지 하시고.... 이원장이 모처럼 기분 좋게 아현을 본다. -인하야.. 이원장이 인하를 보고 다정하게 부른다. -네, 아버님. -우리 아현이...잘 부탁한다, 많이 사랑해주고...아껴줘라. -네... 이원장의 말에 아현이 눈물을 글썽이며 괜히 웃음을 지어 보인다. -아버진..내가 당장 결혼하는 것도 아닌데... -늬 엄마한테도 다녀와야지.. -네...다음 주에 가서 뵐거에요. 아현이 이원장의 손을 살며시 잡는다. -아버지...낳아주셔서...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해요...알죠? 아현의 말에 이원장이 고개를 끄덕이고 인하는 그런 아현을 이쁘게 본다. -참, 엄마 화원이 다음주에 오픈한대요, 오실거죠? -벌써 그렇게 됐냐?...가야지 그럼. -일에 푹 빠지셨어요...얼마나 보기 좋은지 몰라요. -다행이다...시현인 어때? -아기 잘 크고 있대요, 형부가 요즘 집안 살림 다 하잖아요. 아현이 웃고 옆에서 인하가 웃는다. *** -지민아, 나 다리 좀.... 시현이 지민을 부르며 쇼파에 누워 있다. -왜 또 저려? -그러게..이상하네, 아직 배도 많이 안 부른데...다리가 자꾸 저려. 지민이 주방에서 나와 시현의 다리를 주물러 준다. -시원해? -어...니가 주물러 주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어... -아빠 되는 게...참 힘들다, 그치? -엄마 되는 것도 힘들어. 시현이 웃으며 눈을 감자 지민이 정성껏 다리를 주물러 준다. 그때 전화벨이 울린다. 지민이 수화기를 든다. -어, 그래 아현이니? -네 형부..우리 오늘 아버지 집에서 하룻 밤 자고 갈거에요. -그래, 그렇게 해...근데 분명히 하자, 너 아버지랑 자야된다, 인하는 절대 안돼. -형부도 참...걱정하지 말아요..형부보다 질투 더 심한 우리 아버지 계시잖아요. -그래...내일 일찍 올거야? -그래야죠...출근인데, 나중에 올라가서 봐요. -그래.. 지민이 수화기를 내려 놓자 시현이 눈을 뜬다. -아현이? -어...자고 온대. -아현이가 인하랑 자든 말든...그걸 왜 자기가 신경 써?...이상하네 이 남자. -우리처럼 속도위반이라도 했음 좋겠냐 그럼? -수상한데...아저씨, 뭐가 구리죠? 시현이 벌떡 일어나 흘겨보며 장난처럼 말한다. -구리긴 뭐가 구리다구 그래... -말해봐, 뭐가 있지?...말 안해? 시현이 지민을 향해 덮치려 하자 지민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쏜살같이 도망간다. *** 인생은 그랬다...가진 게 없는 자나, 많은 자나....험한 먼 길 끝에는 항상 우리가 기대하지 못했던 행복이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거친 파도가 잠잠해질 때 우리는 그것이 행복인지 모르고 지나치곤 했다. 하지만 행복은 그리 멀지 않은 우리들 가슴 속에 있다는 걸....우리들은 이제야 안다. -봄이 가고 그렇게 긴 여름이 지나간 가을의 문턱...어느 날, 오후- 아현은 인하와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로 향한다. 늦장을 부린 탓에 약속시간에서 삼십분이 지났다. 아현의 마음은 바쁘다. 막힌 도로가 좀체 열리지 않아 아현은 차에서 내려 뛰기 시작한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구두가 성가신지 뛰다 멈춰 서서 구두를 벗어 들고 다시 뛴다. 횡당보도의 불이 파란색이다. 아현은 속도를 내고 뛰기 시작한다. 순간 끼익 하고 차가 급브레이크를 밟고 아현 앞에 멈춰 서고 아현은 모든 것이 끝났구나 하는 마음이 든다. 질끔 감은 눈을 살며시 뜨고 보면 차에서 낯선 남자가 내린다. -너, 뭐야?...죽고 싶어 환장했냐?...너 색맹이야?...파란 불이 깜박일 때는 건너지 말라고 안 배웠어?....죽을려면 혼자 죽어...아이씨...재수 없어... 횡단보도 반대 편에 인하가 서 있다. 인하는 그런 아현을 아슬아슬하게 보고 서 있고...그것 봐라 하며 눈을 흘긴다. 아현은 처음 인하를 만났을 때를 기억한다. -죄송합니다....정말 죄송합니다.. 차가 빠지기 시작하면서 아현은 도로 중앙선에 홀로 서 있다. 인하가 안절부절 못하고 아현을 보고 서 있다. 아현은 이제야 실감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저기....얼마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나는 이제 그에게로 간다... ***그동안 제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항상 부족한 글을 칭찬해주시고 격려해주신 님들....너무너무 고맙습니다. 글을 올리는 동안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해피엔딩은 역시 기분 좋습니다... 혹시 당신의 사랑이 당신이 미처 보지 못한 곳에 있는 건 아닌지, 그리고 지금의 사랑이 조금 힘들다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아닌지...절대 포기 하지 마시구여, 죽을 때까지 사랑하고 삽시다. 주말 잘 보내시구여...다음에 더 재미있는 글로 다시 만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일일이 호명 안해도 님들 제 마음 다 아시죠? 마음 같아선 한 분 한 분께 인사를 드리고 싶은데 지금 퇴근 시간이라 여기서 인사할게요 다음에 다시 만나요^^
아름다운 날들-마지막회-
마지막 회
강회장의 차를 타고 있는 아현은 아까부터 강회장의 눈치만 살피고 있다. 수지는 내내
불안하기만 하고....
-저쯤에서 차 세워.
강회장의 말에 기사가 한쪽으로 차를 세운다.
-당신 먼저 들어가, 아현인 내려라.
강회장이 차에서 내리고 아현이 뒤를 돌아본다. 수지가 눈으로 어서 내리라고 하자
아현이 차에서 내려 수지에게 인사를 꾸벅한다.
-좀 걷자.
강회장이 조용히 말하고 앞서 걸으면 머뭇거리다 아현이 강회장 옆에 바짝 붙어 걷는다.
한동안 말없이 걷기만 하던 강회장이 먼저 입을 연다.
-니가...인하를 통해서 본 게 뭐냐?
뜬금없는 강회장의 질문에 아현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강회장을 보며 걷는다.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면....뭘 봤을 게 아니냐.
-어느 드라마에서 그런 대사가 있었어요...사랑하는 사람한테 그 사람이 말해요..
당신을 보면 선인장 같다고...세상을 향해서 가시를 돋고 있지만...그 안을 열어보면
언제든 울 준비가 되어 있는 것처럼 물이 많대요...선인장을 정말 잘라보면
그 안은 질퍽거릴 만큼 물이 많아요...그게 눈물일거에요....적의를 품고 날카로운
송곳니를 먼저 드러내 보이지만...실상 사랑 받고 싶은 거에요...인하씬...그런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데에 서툰 사람이지...사랑이 없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인하씨 보면서....선인장 같단 생각을 했어요...그래서 그 몸에 박힌 가시들을
내가 하나하나 빼주고 싶단 생각을 했어요...
아현의 말에 강회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말이다...그래도 널 반대한다면 어쩔거냐?
-거기까진...아직 생각 못했습니다. 왜냐면...허락하실 걸로 믿었으니까요...제가
잘나서, 이뻐서도 아닙니다....인하씨 때문에 아버님께서 허락하실거라
생각했습니다...별장에서 아버님, 아주버님, 그리고 인하씨 세 분이 서 있던
그림이 정말 가슴 따뜻하게 느껴졌거든요...그때 아버님도 저와 같은 마음이셨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니가 내 속을 다 뚫어 봤다...그거냐?
-아버님...아버님께서도 인하씨가 가족에게 마음을 열게 된 것이 가장 행복한
일이었잖습니까, 어렵게....정말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거...아버님께서도 싫으시죠?
아현의 말에 강회장은 아무 말도 못한다. 한참을 그렇게 걷다가 아현이 강회장의
팔을 잡아 끈다.
-아버님...걷다 보니까 출출한데...우리 저거 먹을까요?
떡볶기와 오뎅을 팔고 있는 노상을 가리키며 아현이 강회장을 끌고 오다시피 한다.
-어서오세요...
아주머니가 강회장과 아현을 보고 시원하게 인사를 한다. 아현이 요지로 떡볶기를
찍어 강회장에게 억지로 먹이면 마지 못해 강회장이 받아 먹는다.
-맛있죠 아버님?
아현이 아이처럼 떡볶기를 먹고 오뎅국물을 퍼서 강회장에게 내민다.
-아유, 부녀지간인가봐요...어쩜 보기도 좋은지...요새 젊은 애들이 늙은 사람들하고
잘 어울려야 말이죠...우리 집에도 아들 녀석이 둘이나 있는데..생전 지 엄마 데리고
나가 외식 한 번 안해줍디다, 아들은 키워봐야 소용없어요...그래도 딸자식이
부모 마음 더 잘알지...아저씨 딸은 효녀네요.
아주머니의 말에 강회장이 흐뭇해지고 아현이 기분이 좋다. 엄마....이거 엄마가
저 도와주신 거 맞죠?...꿈에서 엄마가 입은 하얀 웨딩드레스...내가 입게 되는 거 맞죠?
아현이 기분 좋게 강회장을 본다. 강회장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이제 제 손으로
오뎅을 불며 맛있게 먹는다.
***
안여사는 화원을 꾸미느라 정신없는 하루를 보낸다. 긴 겨울의 추위도 이제 한 풀 꺽인 듯
바람이 차갑지가 않다. 곧 여기저기 새싹이 돋아날 것이다.
-미강아...저기 화분 이쪽에다 갖다놔라, 아무래도 여기가 낫겠다.
-네, 사장님.
-너는 그 사장이란 소리 좀 하지 말라고 해도 그게 안되니?
-자꾸 습관이 돼 놔서...
미강이 씨익 웃으며 화분을 옮기는데 인하와 아현이 들어온다.
-엄마.
아현의 소리에 안여사가 돌아본다. 손에 묻은 물기를 앞치마에 닦아 내며 환하게 웃는다.
-어쩐 일이야 여기까지...들어와 앉어.
-저도 왔습니다.
-그래, 들어와...점심은?
-아버지한테 가는 길이에요, 잠시 들렀어요.
-그래, 잘했다....미강아, 음료수 좀 내와라...회장님은 잘 계시고?
-네, 그렇지 않아도 저희 결혼 때문에 한 번 자리를 만드시자고 하세요.
-그래, 그래야지...언제가 좋을까, 오늘 아버지한테 가면 여쭤봐.
안여사가 아현의 머리칼을 쓸어 넘겨 주며 다정하게 말한다.
-늬 아버지 좋아하시겠다, 니 걱정 제일 많이 하셨잖니.
-오픈은 언제에요?
-어...다음 주쯤에 할까해...아직 정리도 제대로 안되고....내가 좀 바쁘다.
안여사가 아현과 인하를 보고 흐뭇해 한다.
***
-야, 일루 와....여기서 너 또 개기지?
채영이 선우의 귀를 잡아 당기며 끌어낸다. 게임방에 있던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하는 눈으로 쳐다본다.
-아, 아....이거 좀 놓구 가, 아이씨....쪽팔리게..
채영은 들은체 만체 하며 밖으로 끌고 나와서야 놓아준다. 그리고는 대뜸 정강이부터
걷어 찬다. 선우가 나 죽네하며 다리를 잡고 쩔쩔 맨다.
-개학한지가 언젠데, 너 아직 이러고 있어? 언제 철 들래, 증말.
-오전 수업 없단 말야 씨이...
-죽을래?..어디서 이게 거짓말까지 하냐...내가 다 알아봤어, 너 오늘 수업 몇시부터
있는지 내가 줄줄 대봐?...내가 너땜에 일이 안된다, 안돼.
채영이 손을 올리자 선우가 슬쩍 방어를 하며 버럭 소리를 지른다.
-니가 내 마누라라도 되냐, 기집애가 어디서 감히 남자를 때리냐?
-어쭈...나 정채영은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이거야, 너 인간 만들어서
제발 인간답게 살게 하라는 사명을 받았다구 임마.
채영이 선우의 머리통을 한대 쥐어 박는다.
-너, 자꾸 이렇게 개기면 니네 집에다 확 꼬발린다...어서 학교 안가?
-아이씨...도대체 내가 너랑 전생에 무슨 웬수가 졌다구 이러고 사냐...아우,
내 팔자야...
선우가 울상을 하고 앞장 서서 걷고 채영이 뒤따라 걷는다.
***
이원장이 텃밭에 상추를 심기 시작했다. 이제 곧 볕이 들고 비가 오면 그것들은
어린 자식들처럼 쑥쑥 자라서 어느새 몰라보게 커 있을 것이다.
허리를 펴고 하늘을 올려다 보면 낯익은 자동차가 시야에 들어온다.
차가 집 앞에 멈춰서고 아현과 인하가 차에서 내린다.
-아버지..
아현이 뛰어와 이원장을 껴 안는다.
-우리 아버지..이제 농사꾼 다 되셨네.
-안녕하셨습니까 아버님.
-어, 그래...왔어?...들어가자.
셋이 함께 방으로 들어가 앉는다.
-허락하셨단 얘긴 들었다, 회장님께서 전화를 주셨더구나...딸 하나 잘 키웠다고 칭찬까지
하시고....
이원장이 모처럼 기분 좋게 아현을 본다.
-인하야..
이원장이 인하를 보고 다정하게 부른다.
-네, 아버님.
-우리 아현이...잘 부탁한다, 많이 사랑해주고...아껴줘라.
-네...
이원장의 말에 아현이 눈물을 글썽이며 괜히 웃음을 지어 보인다.
-아버진..내가 당장 결혼하는 것도 아닌데...
-늬 엄마한테도 다녀와야지..
-네...다음 주에 가서 뵐거에요.
아현이 이원장의 손을 살며시 잡는다.
-아버지...낳아주셔서...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해요...알죠?
아현의 말에 이원장이 고개를 끄덕이고 인하는 그런 아현을 이쁘게 본다.
-참, 엄마 화원이 다음주에 오픈한대요, 오실거죠?
-벌써 그렇게 됐냐?...가야지 그럼.
-일에 푹 빠지셨어요...얼마나 보기 좋은지 몰라요.
-다행이다...시현인 어때?
-아기 잘 크고 있대요, 형부가 요즘 집안 살림 다 하잖아요.
아현이 웃고 옆에서 인하가 웃는다.
***
-지민아, 나 다리 좀....
시현이 지민을 부르며 쇼파에 누워 있다.
-왜 또 저려?
-그러게..이상하네, 아직 배도 많이 안 부른데...다리가 자꾸 저려.
지민이 주방에서 나와 시현의 다리를 주물러 준다.
-시원해?
-어...니가 주물러 주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어...
-아빠 되는 게...참 힘들다, 그치?
-엄마 되는 것도 힘들어.
시현이 웃으며 눈을 감자 지민이 정성껏 다리를 주물러 준다. 그때 전화벨이 울린다.
지민이 수화기를 든다.
-어, 그래 아현이니?
-네 형부..우리 오늘 아버지 집에서 하룻 밤 자고 갈거에요.
-그래, 그렇게 해...근데 분명히 하자, 너 아버지랑 자야된다, 인하는 절대 안돼.
-형부도 참...걱정하지 말아요..형부보다 질투 더 심한 우리 아버지 계시잖아요.
-그래...내일 일찍 올거야?
-그래야죠...출근인데, 나중에 올라가서 봐요.
-그래..
지민이 수화기를 내려 놓자 시현이 눈을 뜬다.
-아현이?
-어...자고 온대.
-아현이가 인하랑 자든 말든...그걸 왜 자기가 신경 써?...이상하네 이 남자.
-우리처럼 속도위반이라도 했음 좋겠냐 그럼?
-수상한데...아저씨, 뭐가 구리죠?
시현이 벌떡 일어나 흘겨보며 장난처럼 말한다.
-구리긴 뭐가 구리다구 그래...
-말해봐, 뭐가 있지?...말 안해?
시현이 지민을 향해 덮치려 하자 지민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쏜살같이
도망간다.
***
인생은 그랬다...가진 게 없는 자나, 많은 자나....험한 먼 길 끝에는 항상 우리가 기대하지
못했던 행복이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거친 파도가 잠잠해질 때 우리는 그것이
행복인지 모르고 지나치곤 했다. 하지만 행복은 그리 멀지 않은 우리들 가슴 속에
있다는 걸....우리들은 이제야 안다.
-봄이 가고 그렇게 긴 여름이 지나간 가을의 문턱...어느 날, 오후-
아현은 인하와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로 향한다. 늦장을 부린 탓에 약속시간에서
삼십분이 지났다. 아현의 마음은 바쁘다. 막힌 도로가 좀체 열리지 않아 아현은
차에서 내려 뛰기 시작한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구두가 성가신지 뛰다 멈춰 서서
구두를 벗어 들고 다시 뛴다.
횡당보도의 불이 파란색이다. 아현은 속도를 내고 뛰기 시작한다.
순간 끼익 하고 차가 급브레이크를 밟고 아현 앞에 멈춰 서고 아현은 모든 것이
끝났구나 하는 마음이 든다. 질끔 감은 눈을 살며시 뜨고 보면 차에서
낯선 남자가 내린다.
-너, 뭐야?...죽고 싶어 환장했냐?...너 색맹이야?...파란 불이 깜박일 때는
건너지 말라고 안 배웠어?....죽을려면 혼자 죽어...아이씨...재수 없어...
횡단보도 반대 편에 인하가 서 있다. 인하는 그런 아현을 아슬아슬하게 보고
서 있고...그것 봐라 하며 눈을 흘긴다. 아현은 처음 인하를 만났을 때를
기억한다.
-죄송합니다....정말 죄송합니다..
차가 빠지기 시작하면서 아현은 도로 중앙선에 홀로 서 있다. 인하가 안절부절
못하고 아현을 보고 서 있다. 아현은 이제야 실감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저기....얼마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나는 이제 그에게로
간다...
***그동안 제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항상 부족한 글을 칭찬해주시고
격려해주신 님들....너무너무 고맙습니다.
글을 올리는 동안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해피엔딩은 역시 기분 좋습니다...
혹시 당신의 사랑이 당신이 미처 보지 못한
곳에 있는 건 아닌지, 그리고 지금의 사랑이
조금 힘들다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아닌지...절대 포기 하지 마시구여,
죽을 때까지 사랑하고 삽시다.
주말 잘 보내시구여...다음에 더 재미있는 글로
다시 만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일일이 호명 안해도 님들 제 마음 다 아시죠?
마음 같아선 한 분 한 분께 인사를 드리고 싶은데
지금 퇴근 시간이라 여기서 인사할게요
다음에 다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