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1월 22일의 편지...☆ 죄송합니다. 성함도 잊었습니다. 미안합니다. 봉직하신 학교도 잊었습니다. 고맙습니다. 20년이 지난 지금에야 한 단어 한 단어 절감합니다. 살아 계신가요? 무수한 언어 다 어쩌시고 인간과 교감할 수 없는 정서 어쩌시고 ... 그대는 생애 처음으로 만난 貴人이셨습니다. 이제야 그대의 외로움을 이해합니다. 이제야 그대의 언어를 용서합니다. 이제야 그대의 절규를 흉내 냅니다. 그대를 만남은 정녕 행운이었습니다. 그대와의 뜨거운 밤은 축복이었습니다. 간 밤 담장 뒤에서 까치발로 힘겹게 넘겨다보며 서럽게 서럽게 울던 아이를 꿈꾸었습니다. 모질게 낙태시킨 아이인 줄 알았습니다. 고집스럽게 고집스럽게 나의 아들로의 환생을 기다리는 아이인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그 아이생각에 뭘 했는지, 뭘 잊었는지도 모른 체 지냈습니다. 아마도 그대였나 봅니다. 이제 돌려 드릴 길 없는 그대의 편지를 동봉합니다. 나의 때 늦은 성찰을 용서하십시오, 나의 무딘 감성을 이해하십시요, 살았거나, 혹은 이승을 떠났거나, 열반에 드셨기를 '맘의 문'을 열며 부푼 꿈을 안겨 주는 방학, 시간의 거미줄을 타고 설악의 '흔들바위' 위에서 눈송이 꿈을 펴 청학처럼 날고 싶은 맘은 '한계령'고개를 쉬어 넘다 만상석순 얼킨 사연 속에 미개한 초롱 빛 아람으로 돌아와 어느새 임진강 나루터에 머문 자리 뱃사공 사연은 분단의 아픔을 달래 주는 강물도 잠재워 말없이 흐르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섶에 흙을 문 보릿 잎사귀 눈자위 걸음 위에 통일로 달리고 싶은 철마의 멍든 상처 가슴 속에 얼이 되어 잔가지 부는 바람 속살로 타 내려 치 밀친 한을 언덕 위로 나는 새 편에서 마이크를 잡은 나는 용솟음치는 감정의 강은 세차게 흘러 내렸나보다. 日常의 길목에서 부딪힌 물 구비 청석 타 내린 준파는 찰나의 부딪힘에 고요로 잠재운 空의 세계 주운 잔돌에 비벼대는 소리 낙서로 던진 돌파문이옵데, 울림의 情은 深泉玉水로 받아 들였다면 더 없는 영광이요, 홍안의 볼 붉힌 맘이로소이다. 보내준 글은 너무 깊어 재볼 수도 기댈 수도 없디. 없지만 九泉의 연속에 만난 知己가 강물로 이어져 청송 빛 타내려 옵니다. 거울 속에 자아를 찾고 달을 보며 사색하는 고고한 맘은 산등을 끌고 온 청노루 풀 맛에 잠긴 청순한 향기가 이곳까지 스며 옵니다. 미안한 점은 여행을 하고 출장을 갔다 와 보니 감명 깊은 서신이 몇 편 와 있었는데, 그 중에도 눈에 띄게 같은 공감대 속에 느낌을 주는 편지 있어 몇 번이고 읽다가 늦게 답서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무딘 펜은 질서를 잡지 못하고 있나 봅니다. 석죽유류(石竹儒流) 외세선풍(外勢仙風)을 부르짖다 망가지 갓을 쓰고 틀 맞지 않는 망건은 길섶에서 사람 찾다가 빛살 받고 웃는 얼굴 동그랗게 떠올라 웃고 있나 봅니다. 바윗돌을 뚫는 강인한 의지 뿌리를 뻗고 자란 억새풀 장한 모습은 땀 흘리며 배움 찾는 '淸淨心'에 고개가 숙여 집니다. '백장스님'의 '일일백작'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心問이 열리는 곳에 통함의 기쁨을 함께하고 쉬어가는 언덕 위에도 바람도 불고 있으니 새봄의 향기가 느껴지는 香心이 모락모락 피어납니다. '너 앉은 돌이 옥돌이고, 너 앉은 곳이 玉座임을 알면, 만물일체는 긍지의 찬미 속에 꽃이 피고 열기로 입맞춤 푸는 대지의 맺음의 풍요로움이 안겨 방편 설에 보이는 色은 겉모양에 취해 있나 봅니다. '山은 山이요, 물은 물이로다" 선각자 말은 심곡 폭포수 물줄기 무지갯빛으로 나리건만 세인은 영문도 모르고 지나쳐 버리나 봅니다. 궤변의 칡넝쿨은 용틀임 치다가 새순자락속에 맺힘의 결을 보듯이, 우리의 가는 길도 많고 많지만 결국 하나로 찾아 드는 품속 자락은 *六道의 윤회를 벗어나지 못 하나 봅니다. 아무쪼록, 청정심을 버리지 마시옵고 네발우마차를 끌망정 본심의 자비는 향불을 타고서 어둠길을 밝혀 보는 촛불 인 것 입니다. 하시는 일에 더욱 정진하시며, 둥근 달 모양 밝게 하소서, 배울 것이 너무 많아서 고행의 길목에서 헤매다가 금강경 속에서 비친 맘의 거울은 동해바다 숫돌위에, 먹을 갈아 낙서로 위안하기도 합니다. '통일의 열쇠'의 '망종' 마산합포문학 '유한독백'기다림' 鄕草' 이 향초는 합천 고향길 터덜댐은 낭만으로 생각했더니 이제 길을 닦고 있더군요, 결국 '파문의 진리'속에 아직 미로의 초롱불은 반딧불로 밝힙니다. 1월 26일 저녁 5시~6시경 합포국교 정문 앞 자유서점에서 책 몇 권 구하러 갈 것입니다. 시간 있으시면 나오시면 커피 한 잔 드리겠습니다. 회사 일에 시간이 없을 줄 압니다. 제가 쓴 부족한 글에 감명을 받았다는 점 감사하게 생각하며 두서없이 난필로 멎자 적었습니다. 금년 갑자년 새해에는 더욱 알찬 시간이 함께 하기를 빕니다. 짬나는 대로 서로를 미래를 여는 맘으로 보내 주는 글 있으면 더욱 좋겠습니다. 회사에 근무하는 얘기도 들려 주어도 좋겠습니다. 그럼, 이만 줄입니다. 1984,1,22,사무실 난로 가에서 안 "高高山 頂立 深深海底行" 글/ 이희숙 <배경음악: 산은 산, 물은 물>
☆...1984년 1월 22일의 편지...☆
☆...1984년 1월 22일의 편지...☆
죄송합니다.
성함도 잊었습니다.
미안합니다.
봉직하신 학교도 잊었습니다.
고맙습니다.
20년이 지난 지금에야 한 단어 한 단어 절감합니다.
살아 계신가요?
무수한 언어 다 어쩌시고
인간과 교감할 수 없는 정서 어쩌시고 ...
그대는 생애 처음으로 만난 貴人이셨습니다.
이제야 그대의 외로움을 이해합니다.
이제야 그대의 언어를 용서합니다.
이제야 그대의 절규를 흉내 냅니다.
그대를 만남은 정녕 행운이었습니다.
그대와의 뜨거운 밤은 축복이었습니다.
간 밤 담장 뒤에서 까치발로 힘겹게 넘겨다보며 서럽게 서럽게 울던 아이를
꿈꾸었습니다.
모질게 낙태시킨 아이인 줄 알았습니다.
고집스럽게 고집스럽게 나의 아들로의 환생을 기다리는 아이인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그 아이생각에 뭘 했는지, 뭘 잊었는지도 모른 체 지냈습니다.
아마도 그대였나 봅니다.
이제 돌려 드릴 길 없는 그대의 편지를 동봉합니다.
나의 때 늦은 성찰을 용서하십시오,
나의 무딘 감성을 이해하십시요,
살았거나,
혹은
이승을 떠났거나,
열반에 드셨기를
'맘의 문'을 열며
부푼 꿈을 안겨 주는 방학,
시간의 거미줄을 타고 설악의 '흔들바위' 위에서 눈송이 꿈을 펴 청학처럼 날고 싶은 맘은
'한계령'고개를 쉬어 넘다 만상석순 얼킨 사연 속에 미개한 초롱 빛 아람으로 돌아와
어느새 임진강 나루터에 머문 자리 뱃사공 사연은 분단의 아픔을 달래 주는 강물도 잠재워
말없이 흐르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섶에 흙을 문 보릿 잎사귀 눈자위 걸음 위에
통일로 달리고 싶은 철마의 멍든 상처 가슴 속에 얼이 되어
잔가지 부는 바람 속살로 타 내려 치 밀친 한을 언덕 위로 나는 새 편에서
마이크를 잡은 나는 용솟음치는 감정의 강은 세차게 흘러 내렸나보다.
日常의 길목에서 부딪힌 물 구비 청석 타 내린 준파는 찰나의 부딪힘에 고요로
잠재운 空의 세계 주운 잔돌에 비벼대는 소리
낙서로 던진 돌파문이옵데,
울림의 情은 深泉玉水로 받아 들였다면 더 없는 영광이요, 홍안의 볼 붉힌 맘이로소이다.
보내준 글은 너무 깊어 재볼 수도 기댈 수도 없디. 없지만 九泉의 연속에 만난 知己가
강물로 이어져 청송 빛 타내려 옵니다.
거울 속에 자아를 찾고 달을 보며 사색하는 고고한 맘은 산등을 끌고 온 청노루 풀 맛에
잠긴 청순한 향기가 이곳까지 스며 옵니다.
미안한 점은 여행을 하고 출장을 갔다 와 보니 감명 깊은 서신이 몇 편 와 있었는데,
그 중에도 눈에 띄게 같은 공감대 속에 느낌을 주는 편지 있어 몇 번이고 읽다가
늦게 답서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무딘 펜은 질서를 잡지 못하고 있나 봅니다.
석죽유류(石竹儒流) 외세선풍(外勢仙風)을 부르짖다 망가지 갓을 쓰고 틀 맞지 않는
망건은 길섶에서 사람 찾다가 빛살 받고 웃는 얼굴 동그랗게 떠올라 웃고 있나 봅니다.
바윗돌을 뚫는 강인한 의지 뿌리를 뻗고 자란 억새풀 장한 모습은 땀 흘리며 배움 찾는
'淸淨心'에 고개가 숙여 집니다.
'백장스님'의 '일일백작'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心問이 열리는 곳에 통함의 기쁨을 함께하고 쉬어가는
언덕 위에도 바람도 불고 있으니 새봄의 향기가 느껴지는 香心이 모락모락 피어납니다.
'너 앉은 돌이 옥돌이고, 너 앉은 곳이 玉座임을 알면, 만물일체는 긍지의 찬미 속에
꽃이 피고 열기로 입맞춤 푸는 대지의 맺음의 풍요로움이 안겨 방편 설에 보이는
色은 겉모양에 취해 있나 봅니다.
'山은 山이요, 물은 물이로다"
선각자 말은 심곡 폭포수 물줄기 무지갯빛으로 나리건만 세인은 영문도 모르고
지나쳐 버리나 봅니다.
궤변의 칡넝쿨은 용틀임 치다가 새순자락속에 맺힘의 결을 보듯이,
우리의 가는 길도 많고 많지만 결국 하나로 찾아 드는 품속 자락은 *六道의 윤회를
벗어나지 못 하나 봅니다.
아무쪼록, 청정심을 버리지 마시옵고 네발우마차를 끌망정 본심의 자비는 향불을
타고서 어둠길을 밝혀 보는 촛불 인 것 입니다.
하시는 일에 더욱 정진하시며, 둥근 달 모양 밝게 하소서,
배울 것이 너무 많아서 고행의 길목에서 헤매다가 금강경 속에서 비친 맘의 거울은 동해바다
숫돌위에, 먹을 갈아 낙서로 위안하기도 합니다.
'통일의 열쇠'의 '망종' 마산합포문학 '유한독백'기다림' 鄕草' 이 향초는 합천 고향길 터덜댐은
낭만으로 생각했더니 이제 길을 닦고 있더군요,
결국 '파문의 진리'속에 아직 미로의 초롱불은 반딧불로 밝힙니다.
1월 26일 저녁 5시~6시경 합포국교 정문 앞 자유서점에서 책 몇 권 구하러 갈 것입니다.
시간 있으시면 나오시면 커피 한 잔 드리겠습니다.
회사 일에 시간이 없을 줄 압니다.
제가 쓴 부족한 글에 감명을 받았다는 점 감사하게 생각하며 두서없이 난필로 멎자 적었습니다.
금년 갑자년 새해에는 더욱 알찬 시간이 함께 하기를 빕니다.
짬나는 대로 서로를 미래를 여는 맘으로 보내 주는 글 있으면 더욱 좋겠습니다.
회사에 근무하는 얘기도 들려 주어도 좋겠습니다.
그럼, 이만 줄입니다.
1984,1,22,사무실 난로 가에서 안
"高高山 頂立 深深海底行"
글/ 이희숙
<배경음악: 산은 산, 물은 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