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영화 이야기

메로빈지언2004.04.18
조회6,342

요즘도 그 말이 돌아다니는지 모르겠지만, 6개월 방위는 장군의 아들, 면제는 신의 아들, 현역병은 어둠의 자식이라는 말을 자조적으로 주고받던 시절이 있었죠., 저도 어둠의 자식이었던 탓에 군복무를 험악하게 했었는데, 병으로 복무를 하면서도 육사 출신 소대장과 호형호제하고 지내게 되어서 그분의 도움으로 전술학 공부도 조금하게 되고, 근무하던 부대 또한 단순 보병이 아니고 특수전이 주요 임무 였기때문에, 군복무 마친 후, 전쟁 영화에 눈이 많이 가게 되더군요.

 

물론, 탄성이 저절로 나오는 걸작이 있는가 하면, 멜로물보다도 짜증 나게 만드는 것들도 있지요.

총알이 총구에서 나가는지 개머리판에서 나가는지 헷갈리게 만드는 졸작들이 버젓이 전쟁 영화의 걸작 운운하는 것을 보고 어처구니가 없기도 했고요.

 

"태극기 휘날리며"가 양키 영화를 뭉개고 대박을 터뜨린 김에

군 경험이 빈약하거나, 그에 대해 거의 문외한인 여자분들도 전쟁 영화의 이해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노가리를 풀겠습니다.

단, 각자 개인적 감상을 침해하지 않기 위해, 저 역시 세세한 부분에 대한 잔소리는 삼가하겠습니다.

 

 

1. 최악의 전쟁 영화 두 편

 

1> 라이언 일병 구하기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상상력의 귀재 스필버그에게는 전쟁도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것 같다.

미국식 영웅주의에 대한 향수에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했다고 해서 영화 자체의 내용물이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평론가 넘들은 이구동성으로 영화 시작 후 20 분 가량의 상륙 작전의 전투신을 전쟁영화사에 길이 남을 압권이니 어쩌고 하지만, 전투의 기본 수칙조차 외면한 전투장면을 어떻게 명장면이라고들 하는지 어이가 없다.

독일군들이 단단한 콘크리트 벙커를 구축한 채 강렬하게 방어하고 있는 가운데, 수십척의 상륙정들이 해안가를 향한다. 그렇게 맹렬하고 탄탄하게 저항을 하는 가운데 상륙을 하기 위해서는, 상륙정을 우현 또는 좌현으로 돌려서 상륙정 자체를 엄폐물로 삼아 교전을 벌이면서 상륙을 해야 지극히 정상이다.
그런데, 중대장(톰 행크스)이 우현으로 돌리라는 명령을 분명히 내렸음에도 - 물론, 총성에 가려 명령 전달이 대단히 어렵다 - ,  수십척의 상륙정들 중에서,우현 또는 좌현으로 뱃머리를 돌려서 독일군 벙커를 향해 응사하는 상륙정은 단 한 척도 없다. 심지어 중대장이 타고 있는 상륙정 포함 전 상륙정들이 하나같이 "날 죽여 주쇼."하고 뱃머리를 정면으로 열고 상륙을 한다.

 

아무리 오합지졸이라고 해도 살기 위해서라도 뱃머리를 좌우현으로 돌려서 응사를 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나, 그렇게 한 상륙정은 단 한 척도 없다. 이 때문에 난 그들이 완전 핫바지 오합지졸들인 줄로 알았는데, 상륙 후에 보니, 2차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부터 기습 및 유격 작전으로 혁혁한 전과를 올리며 맹위를 떨쳤던, (미 공수단과 더불어)미육군 최정예 부대인 RANGERS 였다. - 이럴수가!
결국, 스필버그는 낯짝 두껍게도, 상륙 직후 해안가의 처참하도록 치열한 전투신을 연출하기 위해,
상륙작전의 기본 수칙조차도 외면하는 상륙작전을 만들어 낸 것이다.
수십척의 상륙정 중에서 두어 척이라도 좌현 또는 우현으로 뱃머리를 돌린 배가 있었다면 이런 말을 할 필요가 없지만, 그런 상륙정은 전무했다는 것이다. 너무 심했다.

 

폐허가 된 시가지에서 마지막 전투를 벌일때 -
통역병 에헵은 왜 실탄을 들고 바쁘게 뛰어 다녀야 하는가? 그럴 이유가 전혀 없다.
탄약 창고라던가 탄약보급 부대가 따로 있는 상황도 아니고 말이다.
전투병들은 너무도 당연히 자기가 쓸 탄약을 스스로 지참한 채 자기 위치에서 전투를 해야 한다.
에헵이 탄약들고 발바닥에 불이나도록 뛰어 다녀야 될 이유를 눈을 씻고 또 씻어도 찾을 수 없다.

결국, 전투병 하나는 실탄이 떨어져서 에헵의 이름을 애타게 외치다가 죽고만다. - 나참 기가 막혀서. -

또, 굉장히 사격을 잘하던 저격병(톰 행크스와 같은 영화에 종종 나오는 배우), 저격병은 은폐 엄폐가 기본이다. 한 발 쏘면 자기 위치가 노출되므로 그런 매복 형태의 전투에서는 너무나도 기본적인 저격병의 전투수칙이다. 그런데, 독일군에게는 소형 장갑차까지 있는 상황인데도, 끝까지 현재의 위치만을 고수하다가 위치가 노출되어 탱크의 포에 맞아 죽는다.
단 한번이라도 위치 이동을 하고서 엄폐물을 찾지 못해 그리되었다면 이해하겠지만,
전투 위치를 엄폐할 다른 건물들이 전혀 없는 상황이 아니었다.

 

지극히 기본적인 전술 상식도 갖추지 못한 감독이 만든 영화가 결코 훌륭한 전쟁 영화가 될 수 없다.
미국식 영웅 만들기에는 성공했을런지 몰라도, 전쟁 영화로서는 낙제점 이하의 영화이다.

 

 

2> 풀 메탈 자켓

 

안보신 분들을 위해 짤막한 줄거리를 말씀드리면,
베트남전 당시 미해병들의 훈련소에서부터 그들이 전투에 참가하여 죽고 다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지옥의 묵시록이나, 씬 레드 라인처럼 묵직한 철학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지는 않다.
위 둘보다는, 병사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려 내고자 한 점에서 플래툰과 닮아 있다.
그러나, 역시 전쟁도 군인도 본인의 직접적인 체험과는 거리가 먼 큐브릭에게 전쟁영화는 스필버그에게만큼이나 상상력의 공간이다.


영화는 크게 훈련소 장면과 월남에서의 전투 장면 두 가지 파트로 나뉘어지는데,

 

훈련소 - 웬 넘의 교관이 그리 말이 많나?
시키는대로 하고 못하면 기압받는 것이 훈련소인 것은 세계 어느나라 군대건 공통이다.
영화의 절반 가까이 할애되는 훈련소 장면의 분위기를 거의 교관 말발로 다 때운다.
'저 교관이, 힘들어서 스트레스 받는 고문관에게 총알 맞고 죽겠구나.' 하는 예측이 충분히 가능할 정도로 지저귀는데, 결국 그리된다.
훈련병들 중에 고문관(무능한 병사의 속칭)이 있으면 훈련병들 사이에서도 갈등이 심각하다.
모두들 처음 겪는 고된 육체적 훈련으로 인해 신경들이 날카로와져서 소소한 일에도 쉽게 다툰다.
그런데, 그런 훈련병들 사이의 갈등은 고문관에 대한 코드레드(집단 린치) 한 번으로 끝내면서
코드 레드가 가해지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훈련병들 사이의 갈등도 설득력이 없다.
거의 모든 것을 교관 말발로 다 때우고 있으니 말이다.
교관의 말발 하나가 훈련병들의 고뇌와 그들간의 갈등 전부를 대변해 줄 수는 없다.
정작 묘사되어야 할 훈련병들은, 입소 때와 퇴소 때가 그 모습이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빈약하기 이를 데 없다.

 

베트남에서 -
훈련소 장면에서 일차로 입맛이 날라가 버려서 후반부 역시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역시 그랬다.
베트남 소년은 미군의 오토바이를 훔쳐가고,
- 미군이 하는말, "우리는 베트남을 위해 싸워주러 왔는데, 베트남사람들은 어쩌고 저쩌고..."
<누가 싸워 달라고 그랬나, 지들이 고무나무 도적질하러 들어 간거지. >
베트남 처녀는 군대 막사에까지 들어가서 흥정을 하면서 몸을 판다.
현지의 베트남인들에 대한 묘사는 그게 전부이다. 남자는 좀도둑, 여자는 창녀.
<큐브릭이 6.25동란 때 한국을 어떻게 묘사했을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코폴라가 지옥의 묵시록에서 보여주는 베트남인들의 민족적 자긍심과 베트콩 전사들의 투지에 대한 존경심과는 천양지차이다.>
기껏 나오는 이야기라고는,

창녀와 노는 데에도 백인 먼저 흑인 다음. 전시에서 인종차별 묘사할 소재가 그리도 없었나?

오입순서도 인종차별이라... 추접스럽기는.

 

폐허가 된 숲속의 외딴 민가에서 베트콩 저격수의 기습을 받아 몇 명이 사상당하는 고전 끝에
병력을 분산 유인하여 저격병에게 중상을 입혀 생포한다.
베트콩 여자 저격수 단 한 명. 허리에 총을 맞아 선혈이 낭자한 채 몸을 가누지 못하고 누워서 "Shoot me."만을 애원하듯 중얼거린다.
- 너저분한 대사는 옮길 것도 없고- 총을 쏴서 숨을 일찍 끊어 주는 것이 인도적인 상황이다.
결국 주인공 매튜 모딘이 권총으로 끝을 내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양키는 인도주의적이라는 건가?

한 가지 덧붙인다면, 피투성이가 된 베트콩 여전사를 내려다 보면서

"얘 하고는 한번 못하겠는데..."라고 말하는 병사는 흑인이라는 것. 아 진짜, 큐브릭 재섭다.

 

훈련소에서 교관을 사살하고 자살하는 고문관이라는 진부한 충격이 잠시 있을 뿐,
제대로 묘사하고 있는 것도, 고발하고 있는 것도 없다.
후반부 병사들의 파괴된 인성 역시도 훈련소에서처럼 어설픈 대사들로만 묘사될 뿐이다. 그 이상은 나가지 못하고 있다.
대사나 스토리 전개를 입증하며 영화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바이런의 시를 읊조리며 잘린 목을 손에 들고 내던지는 지옥의 묵시록의 커스대령이나, 살기 위해 죽인다.라는 플래툰의 반즈 류의 행동 묘사라는 것은 이 영화에 존재하지 않는다.


큐브릭에게도 전쟁은 상상 속에만 있을 뿐이니, 전쟁에 대해 할 수 있는 묘사 거리가 별로 없을 것이다.
낙제점짜리 전쟁 영화라는 것 하나는 분명히 하고 있다.

 

 

 

2. 추천 전쟁 영화

 

1> 지옥의 묵시록

 

"뭐야? 이거!"

87년도에 국내 개봉되었을 때, 몇년전 리덕스판이 비디오로 나왔을 때,영화가 끝나고서 본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내뱉은 첫 일성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충분히 그런 소리할 만한 영화이다.

 

원래 이 영화는 코폴라가 대부를 촬영하기 전에 구상하고서 제작자를 찾아 투자를 의뢰했으나, 여의치가 못하자, 이 영화를 위한 습작으로 하나 맡겨 보라고 졸라서 만들게 된 것이 그 유명한 "대부"였다.

마이클 치미노가 대부의 감독으로 코폴라를 결정하자 투자자들이 펄쩍 뛰었다.

"그 넘은 미친 넘이야. 우린 망하는 거야."

이에 치미노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장 이탈리아적인 영화로 만들기 위해 이탈리아 감독의 손으로 만들고자 한다고 투자자들을 설득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코폴라는 "난 예술 영화(지옥의 묵시록)를 만들려고 했는데 이런 쓰레기나 만들어야 한다니!"하며 궁시렁거렸다고 한다.

이렇게 투자자, 제작자, 감독의 의도가 확실히 어긋난 감독의 습작 영화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갱 영화의 바이블이 되었으니, 코폴라의 천재적 광기는 소름돋을 정도이다.

 

지옥의 묵시록도 촬영 중에 문제가 굉장히 많았다고 한다.

필리핀 습지에서 촬영을 했는데, 미군에서 전혀 지원을 해주지 않았던(당연한 일이었다.) 데다가, 촬영 중 태풍을 만나 촬영 장비가 유실되고, 배우들은 말을 안듣고 스태프들과도 심각한 갈등이 발생했다.  

코폴라는 " 이 영화는 영화 감독의 내 인생을 끝장 내고 말거야!"라고 절규하면서 소품용 권총에 실탄 장전하고서 자살한다고 협박하여 겨우겨우 촬영을 마쳤다고 한다.

흥행 감독으로서의 감독 인생을 끝장 내고, 소위 거장의 반열에 오르게 되는 순간이었다.

 

다시 보아도 "이 영화가 왜...?"하는 물음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데, 영화 자체만 가지고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국내 평론가들도 영화 외적인 요소가 이 영화를 전쟁 영화의 기념비적인 걸작으로 올려 놓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양반들이 많다. 조셒 콘래드의 소설이 원작이라는 것은 그저 시시콜콜한 사족에 불과하다.

 

코폴라가 이 영화를 구상한 것은 월남전이 절정이었던 60년대 말이었다. 그 구상이 빛을 본 것은 거의 10년 후의 일이지만, 당시의 세계는 미소 양극의 이데올로기가 극한 대립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또한, 미소 양극의 주변국가들에게는 도미노 이론 - 한나라가 공산화(또는 자유화)되면 그 이웃 나라도 함께 공산화(자유화)된다는 - 의 경계가 확산되어 있었고, 소련의 체코 프라하 침공, 쿠바 혁명 성공 후 미국의 남미 군부 독재 적극 지원 등은 이 도미노 이론에 의한 위기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월남전 개입의 명분도 같은 맥락이었고.

그리고, 정작 영화가 촬영되고 개봉된 시점은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의 공산화로, 도미노 이론의 위기감이 동아시아 전체에 고조되어 있던 시기였다. 

 

그런데, 코폴라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수호자이자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을 향해

"나를 죽일 수는 있어도 나를 심판할 수는 없다."고 정면으로 비판의 독화살을 날린다.

전쟁의 명분은 이데올로기 수호임에도, 지옥의 묵시록에서 이는 일절 언급되지 않는다.

오히려 커쓰와 윌라드의 입을 빌려서 베트남인들의 민족 투쟁에 대해 존경심을 드러 낸다.

리덕스판에서는 더욱 노골적이다. 프랑스가 해먹다가 이젠 양키들이 해먹는거라고 까발긴다.

결국, 양키들의 신성한 이데올로기 수호 전쟁을,

민족주의에 대한 제국주의 침략 전쟁, 자본주의 수탈 전쟁으로 난도질을 해버린 것이다.

말이 조셒 콘래드이지, 레닌의 제국주의 이론이 영화 전면에 떠올라 있다.

- 최초 개봉판에 프랑스인들이 등장할 수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

그런 가운데 철두철미한 전사이던 커쓰는 모두 팽개쳐 버리고 개인의 왕국에 칩거해 버린다.

이 또한 집단의 절대자에게 용서될 수 없는 행위이다. 결국 죽어야 한다. 사라져야 하는 것이다.

 

이 영화를 기점으로 전쟁 영화는 변하게 된다.

전쟁 영웅 영화에서, 인간들의 전쟁 이야기로.

반전 영화가 쏟아져 나오게 된 분기점도 지옥의 묵시록이다.

 

한편, 양키들에게 딴죽 걸기 좋아하는 프랑스에서 깐느 영화제 그랑프리를 주고도 남을 일이었다.

 

지옥의 묵시록을 보고 난 후 코폴라에 대한 나의 생각은

"진짜 진짜, 확실히 미친넘이다."

한 인간으로서 그의 양심에 존경심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2> 플래툰

 

전투 상황에서 벌어지는 세부적인 묘사가 너무나도 생생해서, 영화를 보면서 "감독이 참전 용사 촐신인가...?" 하는 물음이 계속 일었는데, 올리버 스톤은 종군 기자 출신이었다. 참전 용사들처럼 혹독한 전쟁 후유증을 겪으며 알콜 중독과 약물 중독에까지 빠졌던.

 

내가 근무하던 80년대초 당시, 물론 전쟁 상황은 아니었지만 북한군과의 총격전 경험도 있었고, 대인 지뢰 폭발로 동료들이 죽거나 피투성이가 되어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는 것도 목격했었고, 나 또한

제대 5개월을 남기고서 대인 지뢰 폭발로 중상을 입고 통합 병원에서 폐품되어 군복무를 마쳤던 터라, 이 영화가 개봉되던 85년 무렵까지 가끔 꿈 속에서 폭발 사고의 악몽이 되살아 나고는 했는데, 이 영화를 보고 나서는 거의 한달 가까이 매일밤 악몽에 시달리며 잠을 설쳐야 했다.

 

우선, 이 영화는 사실적 묘사가 너무나도 리얼하다. 아주 생생하다.

총을 들고 전투에 임하는 병사들의 긴장과, 살기 어린 분위기, 그리고 그 동작들 하나하나가 배우라기보다는 거의 그대로 군인들의 모습이었다.

 

정말 놀랬던 장면은 폭발이나 총상으로 중상을 입은 부상병들의 모습이었다.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거나, 복부 관통상으로 창자가 튀어 나오는 등의 중상을 입은 병사들의 비명은 고통으로 내지르는 것이 아니다. 육체적 고통이 요구하는 비명은 충분히 참을 수 있다.

(난 폭발 사고로 내 몸에서 주먹 하나 만큼의 뼈와 살이 쓸려 나가고서, 동료들 4명이 폭발사고지점에서 들쳐 업고 나온 후 비명을 그치고, 물 마시고 나서 담배부터 물었다. 아픈 것은 참을 수 있었다.)

그런 중상을 입으면 극도의 공포에 사로 잡히게 되고, 그 공포는 흐느끼는 듯한 장탄식같은 절규를 처절하게 내지른다. 마치 유치원도 못들어 간 어린 아이가 악몽을 꾸면서 내지르는 "흐~~~!" 하는 비명같은 신음 소리가 더욱 크고 처절하게 울려 터진다고 상상하면 된다.

올리버 스톤이 플래툰에서 그려낸 것이 바로 그 모습 그대로였다. 폭발음에서부터 비명 및 공포에 사로잡히는 병사의 모습까지, 시간의 경과까지도 아주 리얼하게 그려 내고 있었다.

- 내겐 악몽 그 자체였다. -

 

한편으로,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전사 옐리야스는

"옳고 그름도 없이 떠 있는 저하늘의 별들"이라는 그의 대사처럼 요원한 것이다.

 

 

3> 씬 레드 라인

 

플래툰이 있는 그대로의 전투 현실을 묘사하려고 했다면,

씬 레드 라인은 전쟁터에서, 그 전쟁을 놓고, 그 전쟁 속에서, 전쟁으로 변해 가는

인간의 가변성을 아주 잔인한 대비를 통해 참으로 선명하게 묘사하고 있었다.

 

감독인 테렌스 말릭은 동서양 철학에 대해 깊은 통찰력을 가진 철학 교수답게, 힌두 혹은 도가 철학의 유일자 사상을 밑바탕에 깔고 있었는데,

플래툰에서 옐리야스의 대사를 통해 등장하는 무차별 논리라던가,

씬 레드 라인에 등장하는 유일자 사상 등은,

인간의 상대적 대립에 대한 해결책은 역시 동양 사상의 조화와 통일이라는 의미로 귀결되는 것 같다.

- S/F물인 매트릭스에서 인간과 기계들과의 대립을 종식시킨 것도 불교적인 메세지였죠.

   여기 "볼만한 영화&비디오"게시판 에서 아뒤 doggy2u (한경희)로 조회하시면 제가 이멜로 그 분께

   드린 매트릭스 시리즈에 대한 간략한 불교 인식론적 설명이 올려져 있을 겁니다. - 

선과 악이 대립하고, 반드시 선이 악을 응징하고서 평화를 구축해야한다는 기독교적인 사고 방식으로서는 인간들끼리의 대립과 투쟁의 해결에 별 도움이 못된다.

 

사족으로,

영화 한편 보는데 철학책이 무슨 필요 있나?라고 하실 분들도 계시겠지만,

영화를 만든 감독들이 이미 철학자들이고, 그들의 동양 철학에 대한 이해가 결코 상식에 그치는 수준이 아닌 이상, 인도 철학이나 중국 철학에 대한 이해를 돕는 서적들 몇권쯤은 내 자신의 상식의 깊이를 확대하기 위해서라도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넘 길어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여기까지 읽어 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m(__)m

 

 

 

☞ 클릭, 오늘의 톡! [노래방]뽀리댁님이 부르는 '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