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내줘! 나의 20대~^^(나의 인생이야기)

하느2009.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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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2학년 내 나이 14살..그때 내 삶은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아빠 엄마는 늘 싸웠다. 엄마는 자주 술을 마셨고 그런후엔 꼭 나에게 화풀이를 했고 ..아빤 내게 정이 없는 사람처럼 그랬다. 매일 아빠 엄만 서로에게 성난 사람처럼 굴었고  그때 내인생은 언제나 살얼음판위처럼 아슬아슬하고 아빠 엄마의 눈치를 보느라 난 늘 주눅들어 있었다.

그시절 난  아파트옥상을 올려다 보며 저기서 뛰어내릴까를 고민했고 손목을 칼을 대어 긎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했었다.

 

그날도 아빠 엄마는 어김없이 싸웠고 아빠 엄마의 싸움은 더욱 격했고  그칠줄 몰랐다. 나는 동생을 데리고 욕실위에 나있는 좁은 창고에 사다리를 대고 올라가 거기서 잠을 잤다. 얼마나 잤을까 동네 아주머니가 요란법썩을 떨며 나를 깨웠다.

집에 엄마 아빠는 없었다.동네사람들 몇몇이 몰려와 나를 때리듯 쓰다듬으며 '어이구 어이구 우짜노 우짜노' 그랬던 기억이 난다.

멍.. 정말 멍 한 기분이었다.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겠고.. 방엔 핏자국.. '그래도 내가 생각하는 그 일은 설마 설마 그런건 아닐꺼야..' 그러나 그날 이후로 나는 엄마도 아빠도 볼 수 없었다. 엄마는 뇌출혈로 세상을 떠나셨고 아무도 나에게 직접 말하진 않았지만 나는 아빠는 교도소에 갔다는걸 알고 있었다.뉴스에 났기때문이다. 집엔 이제 나 와 세살어린 남동생과 간경화를 앓고 있던 할머니뿐이었다.

그치만 할머니는 그 일이후 병이 갑자기 더 악화되시면서 그날로 부터 일주일쯤 후에 돌아가셨다.

동네 사람들은 말했다..엄마가 할머니를 데려가신거라고.. 우리를 위해서.. '도데체 뭐 어떤게 우리를 위해서란 말인지..'

 

동생과 나는 원래는 참 많이 싸우던 사이였는데 그날이후 우리는 서로밖에 의지할곳이 없다는걸 알아서 였을까 우리는 싸우지도 않았고  서로를 위로하는 말을 하기도 했다. 한번씩 작은 아빠와 작은 엄마가 오셔서 우리를 돌봐주시는 날엔 더욱 그랬다.

나는 가끔 동생과 나를 돌봐주로 와선 우리에게 더 큰 스트레스를 안겨주고 가는 작은 엄마를 미워했다.

아마 그땐 내가 너무 어려서 우리를 돌보는게 작은 엄마에겐 얼마나 곤욕인지는 모른채 우리를 구박하는 듯한 작은 엄마가 마냥 미웠던것 같다. 그래도 나는 그 상황을  나름 잘 견뎌 내고 있었다. 아빠가 돌아오기 전까진 말이다.

 

6개월쯤 뒤 아빠가 돌아왔다. 동네사람들이 탄원서를 내고 판사가 우리를 가엽게 여겨서 형이 많이 줄어서 일찍 돌아올 수 있었다. 근데 아빠만 돌아온게 아니라 나의 친엄마라는 사람도 같이 나타났다.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아~ 나를 키워주신 돌아가신 엄마가 친엄마가 아니였구나! 그래서 그랬었구나..'

정말 충격이었다. 친엄마가 따로 있었다니.. 갑자기 우리 동생이 너무 가여웠다.. 그리고 너무 미안했다.동생에게..

 

아빠와 친엄마가 돌아온후 내 인생은 더욱 꼬여갔다.. 이제껏 나는 한번도 말썽을 부린적도 없었고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이었는데 나는 바뀌기 시작했다. 집에서의 나는 신경질적이였고 아빠말엔 모든게 못마땅했다..나는 친엄마란 사람을 엄마라고 불러야했지만 사실 엄마같은 정을 느낄수가 없어 그냥 말만 엄마인 사람이나 마찮가지였다. 엄마는 가끔 한번씩 우리집을 들렸다. 엄마는 이미 다른 사람과 재혼을 했기 때문이였다. 그래서  집안일을  내가 해야만 했다. 밥도 차려야 했고 설거지도 해야했고 빨래도 해야했고 청소도 해야했고 학교도 다녀야 했다..나는 내 삶이 정말 못마땅했다.. 아니 견디기 힘든 지경이었다.

힘들어서라기 보다 그런 내 신세가 정말 미쳐버릴것 같았다. 그래서 아빠가 나에게 집안일로 잔소리를 할때면 나는 거의 죽을 만큼 슬퍼져서 엉엉 울면서 악다구니를 했던것 같다. 그럼 나는 어김없이 아빠에게 얻어 맞곤 했다..

 

아빠와 친엄마는 얼마안가 헤어졌다.. 서로 잘 안맞았나보다. 그렇게 친엄마는 다시 한번 나를 떠났다.

그렇게 친엄마가 떠나고 아빠는 또다른 여자 한명을 데리고 왔다. 그녀는 나를 대신해 밥도해주고 청소도 해주긴 했지만 내가 엄마라고부른게 무색할정도로 빠르게 우리를 떠났다.

인생 참 ..엿같은... 그래도 나는 어디 한군데 내 마음을 말할곳도 없었고 아빠와는 점점 감정의 골이 깊어갔다.

 

그렇게 나는 지옥같은 사춘기시절을 보내고 있었고 내 감수성은 떨어지는 낙엽만 보아도 눈물이 날 정도로 슬픔으로 차오르고 있었다.

언젠지 모르겠다.중학교 3학년땐가 .. 또 다시 한명의 엄마가 나타났다. 이번엔 나랑 열살차이 나는 어린 꼬마를 데리고 우리집으로 들어왔다.

내가 살림을 안해도 된다는 해방감!.. 오랫만에 나타나준 또다른 새엄마 덕분에 그때 내가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 기쁨도 얼마안가 슬픔으로 다시 변해갔다.엄마는 어린 동생을 돌보느라 나와 동생은 뒷전인듯 했다. 과자를 옷장에 감춰두며 막내동생을 먹였고 피자나 햄버거도 나와 둘째동생은 빼고 막내동생과 엄마만 먹으로 갔다. 그래도 뭐 ..좀 짜증났지만 그런건 견딜만 했다.. 그래도 새엄마는 나에게 미우면서도 한편으론 고마운 존재였다.

그치만 아빠는 언제나 나에게 증오의 대상이었다. 한날 고등학교 1학년 첫 내 생일날을 맞던날 나는 아빠에게 대들다 또 밥그릇으로 머리를 엊어맞고 머리살이 조금 찢어져 피가 흘렀다...

 

그 사건이후 나는 가출을 했다.. 사실 그것 때문에 집을 나갔던건 아닌데 공교롭게 그 일이후 집을 나가게 되어 집에서 그것때문에 가출한걸로 알고 있는것 같았다.. 근데 가출에 이유는 가족이 여행을 간사이 친구랑 놀다가 외박을 하게 되어서 그렇게 그게 가출이 되어 버렸다. 그날 이후 나는 3년동안 집을 들어가지 않았다.

1년쯤인가 2년쯤 지났을때쯤부터 가끔 집으로 연락을 하긴했었지만 3년까지는 집을 가지않았다..

 

나는 나이는 어렸지만 조금 조숙하게 생겨서 이래저래 일자리를 구할수 있었다. 그치만 내 인생은 계속해서 더욱 하류로 흘러갔다. 나는 술도 전혀 마실줄 몰랐지만 술집에서 5만원 차지를 받으며 아가씨로 일하기도 했고  백화점 판매직 일을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와서 다시 생각해봐도 그때 가출한것에 대해선 한번도 후회한적이 없다. 오히려 내가 참 잘한일이라고 생각한다.

집에서 벗어나면서 나는 조금씩 바뀌어갔다..

정서가 많이 안정되는 것을 느꼈다. 아빠를 안보니 매일같이하던 죽고싶단 생각도 안들었고 텔레비전을 부서버리는 상상 집을 불태우는 상상을 더이상 할 필요도 스트레스 받는 일도 없었다..

나와살면서 돈에 찌들리고 이런저런 못겪을 일도 겪었지만 그래도 집에서 있는것보다 살만했다.

다만 학교를 중퇴하게 된것은 내게 너무 안타까운 일이었다..학교에선 늘 잠만 잤던 나였지만 그래도 고등학교졸업만큼은 꼭 하길원했었다. 가출하기 전엔 그래도 반에서 2.3등 상위권이였는데..

 

어쨌든 나는 그 모질었던 삶속에서  한 남자를 만났다. 지금은 헤어졌지만 나는 그 친구를 아마 평생 못잊을것 같다.나의 첫사랑이었고  내 인생의 반환점을 만들어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친구는 참 모자란것없는 사람이었다. 그때 내가 보기엔 ..

아버지가 사업을 하셔서 집도 부자였고 대학생이였고 항상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나는 술도 못마시고 숙기가 없어 친한사람이 아니면 만나지 않았다. 그리고 더욱이 내 나이또래 남자는 내 학력이나 내 인생이나 여러 흠이 부끄러워 만날생각도 못했었다. 그런데 그런 내가 그 사람을 만나건 바로 호스트바에서 였다.. 지금 생각해도 참..어찌 그런곳에서 우리가 만났을까싶다..ㅎ

그때 당시 나는 술집에서 일을 했었고 같이 일하는 언니에게 끌려가다시피 해서 호스트바란 곳을 가게되었다.

그때 당시 그 친구는 그곳에서 일하는 흔히 말하는 선수였다. 그렇게 우리는 그곳에서 만났고 그날 이후 그 친구는 끊임없이 나에게 연락을 해왔다. 그때 내 나이 19살이었고 ..(참고로 나는 빠른 83년생) 나는 무서웠다. 언니들이 말하길 선수들은 여자를 만나서 선물을 요구하고 돈도 빼먹는다 해서 한동안은 연락을 피했는데 그러면서도 그사람에 대한 궁금증과 관심이 생겨 결국 그 사람을 밖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 사람은 자기는 서울에 살다 아버지 사업때문에 부산으로 이사를 왔고 예전엔 어떤영화 류시원의 아역탤런트로출연한적도 있고 그거아니라도 이런저런 영화에 출연했었고 지금은 대학교를 다니는데 아버지가 차를 안사줘서 차사려구 그곳에서 알바를 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때 난 그 말이 모두 거짓말일거라 생각했다.그때당시 나는  대학생을 한번도 만나본적도 없었고 대학생이면 엄청 대단한줄 알았었다.그리고 사업을 하는 아버지면 엄청 부자일텐데 이 사람은 분명 나에게 거짓말을 하는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주눅들기 싫어 나도 거짓말을 했다. 우리집은 큰 식당을 하고 나도 대학생이라고 ...

그런데 결국 나의 거짓말은 얼마안가 들통이 났지만 그 사람의 말은 모든것이 사실이었다.

그사람은 해운대의 좋은 아파트에 살고있었고 아빠는 양산에서 중소기업을 하시는 분이셨고 아역탤런트출신이었다.

거짓말이 들통나며 나의 신용은 별로 안좋아졌지만 어쨌든 우리는 사귀게 되었고 그 사람의 권유로 술집일을 그만두고 집으로 들어갔고 검정고시학원을 다녔다. 그리고 3개월을 바짝 공부해서 검정고시를 합격하게 되었고 그 이후로는 삼성전자서비스센터 접수파트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많은 것을 보고 느낄수 있었고 무엇이든 기술을 익혀야겠단 생각에 낮엔 삼성서비스센터에서 일하면서 저녁엔 피부미용 야간대학교를 다녔다. 집엔 손벌리지 않았다.

어쨌든 우린 평범하지 않은 시작을 했었지만 평범한 이들처럼 함께 하며 5년이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우리는 헤어졌다. 그후 그 친구는 미국으로 떠났고 나는 호주로 떠났다.

 

그리고 호주에 머문지 1년남짓 되던때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났다. 지금의 남자친구는 우습게도 소잡는 공장에서 만났다.

사실 호주에서 생활을 해본 친구들이라면 그게 그닷 우습진 않을텐데..

그 공장은 하루에 900마리 가까이되는 소를 죽이고 살을 부위별로 나누고 포장하는 소고기공장였다.

나는 돈이 필요해 그곳에서 두세달 일할려고 그곳에서 이력서를 넣었었고 그곳에 교육을 받으러 간 첫날 지금의 남친을 만났다.

큰키에 호리호리하고 군더더기없는 외모에 조용한 말투가 첫눈에 호감이 갔다. 운명인지 아닌진 모르겠지만 그친구와 나는 같은 파트에서 일하게 되었고 집도 나의 바로 앞집이라 우리집 베란다에서 그 친구의 방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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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적고 싶은데 너무 잠이 와요,, 지금은 새벽 2시..

이글을 보는 분이나 있을진 모르겠지만..

죄송해요 ... 제 이야기 다 적고싶고 적을 말도 많은데 팔도 아프고 잠도 와요..

판이라는 싸이트 알고있었지만 이런 글적는것도 여기에 들어와본것도 오늘이 첨이예요..

나중에 보고 이거 글 완성해서 새로 한번더 올릴께요.

어쨌든 오늘은 여기까지! ^^

근데 이거 어케 올리는거징? 왜 글올리기가 없는거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