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23살의 신체건장한 청년입니다 야심한 밤에 하도 가슴이 답답해서 어디다가 푸념도 하기도 뭐하고 해서 이렇게 글이라도 남겨봅니다.. 제가 중3때 저희 부모님들이 이혼을 하셨습니다. 그때당시엔 이혼이라는 것 자체가 나쁘지도 않고 어른들의 일이니깐 나는 상관 안해도 될거 같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지내고 있었지요.. 저희 어머니께서는 아버지에게 욕설을 들으면서 구타도 많이 당하셨습니다. 어릴적엔 저희 남매에겐 아버지가 무서운 호랑이셨죠.. 하지만 저와 제 여동생은 너무나도 무서워서 조용히 방에서만 있어야 했습니다. 안방에선 어머니의 흐느끼시는 울음소리와 아버지의 육두문자들을 남발하시는 모습을 보며 자라온 저희 남매는 절대로 여자는 때려서도 욕을 해서도 안된다. 무조건 아껴줘야 한다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깊이 각인이 된 상태였죠.. 제가 태어날때부터 저희 부모님께서는 세공이라는것을 하셨습니다.. 귀금속을 가공해서 매장에 납품을 하는 자영업을 하신거죠.. 금과 은을 어릴적부터 보고 자라온 저희 남매는 그저 돌덩이일뿐이다.. 하지만 비싼 돌이라서 함부로 건드리면 안된다라는 것을 배우며 지내왔었죠.. 하루는 저희 어머니께서 저를 조용히 부르시며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들아 엄마랑 아빠랑 이혼을 해도 괜찮겠니?" "더이상은 이렇게 맞고 살다가는 죽을거 같아 아들.." 저는 어머니의 말씀에 찬성을 했죠. 어머니가 맞고 사는 모습을 보는게 너무나도 가슴이 아파서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어머니께서 그때당시 걱정을 하신게 있으셨다고 저에게 말씀을 해주시더군요.. 저희 남매의 부양입니다..이혼을 하시면 재산을 두분이 나눠서 가져야 하는데 금..이게 제일 중요한거였죠.. 그때당시 제가 알기론 순금 3관인가 4관인가 있엇다고 하셨습니다.. 그때당시엔 순금 한돈에 7,8만원정도 했지만 지금 시세로 따지면 한돈에 20만원 하려나요.. 저희 아버지께선 절대 이혼 못한다고 할거면 차라리 어느정도 포기하고 나가라고 이렇게 말씀을 하셨더랩니다.. 지 자식 핏덩이인데 어쩜 저렇게 행동을 할까요.. 저희 남매를 고아원에 보낸다는둥 자기는 같이 못산다는둥.. 정말로 자식이지만 정말로 할 수만 있었으면 후레자식도 되어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호랑이 아버지라는게 머릿속에 박혀있어서 실행은 못해봤지만요.. 이래저래 해서 저희 어머니가 이혼을 하자고 서류까지 다 가져와서 법원에 다녀오시고 재산문제도 해결을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나중에 알기론 저희 어머니가 상당량의 금과 장사에 필요하신 것들을 거의 넘겨주신거죠.. 중3 겨울방학때 저희 부모님은 이혼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집을 하나 얻어서 어머니와 저희남매 이렇게 세식구가 살게 되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를 올라가서도 저희 어머니께서는 힘든 나날을 보내셨습니다.. 이혼을 하셨지만 같은장소에서 같은일을 하시고 계셨죠.. 왜냐고 물어봤습니다.. 금도 조금밖에 없고 , 가게를 얻으면 관리비에 월세에 이것저것 많이 나가서 같이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였다고.. 그래서 저희 어머니께서는 같이 일을 하신거죠.. 하지 말라고 나도 알바할테니깐 그사람이랑 같이 하지말라고.. 하지만 어머니는 저희에게만큼은 헌신적이셨습니다.. 자신이 조금 힘들테니 너희들은 공부나 열심히 해라 하시면서.. 서로 다른 상호를 가지고 시작을 하게 되며 저희 아버지에게 한달에 얼마정도를 내고 같이 장사를 하시게 된것 입니다.. 고1 여름방학.. 어머니가 일을 끝마치시고 집에 오실땐 저를 항상 부르십니다. 야밤에 중년의 여성이 순금을 들고 돌아다니는거..상상을 해보시겠습니까? 무척이나 위험한 상황인거죠.. 그래서 아들인 제가 어머니의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어머니를 모시러 갑니다.. 여기서 사건이 터진거죠..어머니와 저랑 같이 길을 걸어 가고 있는데 갑자기 퍽 소리와 함께 저희 어머니가 쓰러지신거죠 쓰러지신 저희 어머니를 보호함과 동시에 가방을 지키려고 뒤를 돌아보는 순간, 저희 아버지가 계셨던 겁니다..이혼을 하시고 한번도 안봐왔던 사람인데 그 사람이 저희 어머니를..제가 보는 앞에서 구타를 하시고 욕설을 하신겁니다.. 네....울컥도 그런 울컥이 없습니다..눈이 뒤집히는 상황이라는게 바로 그 때를 말하는거 같더군요.. 어머니가 맞고 쓰러지시고 그 뒤엔 아버지라는 작자가 욕설을 하며 구타를 하고 있는데 어느 누구가 그걸 가만히 지켜 보고만 있겠습니까? 어머니가 쓰러진 순간 이성을 잃고말았습니다.. 한때 아버지였던 사람과 주먹다짐을 하게 된 것이죠.. 욕 하실분은 하셔도 됩니다. 하지만 그 상황을 겪어보고도 저를 욕하실분은 하셔도 됩니다.. 그 일이 있고나서 저도 모르고 지냈었던 어른들의 세계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이 술집여자와 눈이 맞아 조용히 계획을 하며 저희 어머니와 이혼을 하고 그 여자와 같이 살려고 하신거였습니다.. 치를 갈았죠..어떻게 인간으로 한 사람의 가장으로서 그딴 결심을 하게 되었는지 두개골을 열어 그 사람이 뭔 생각을 한거였는지 보고 싶었습니다.. 웃긴 사실은 그 여자도 가정이 있었고 자식이 있었는데도 그 여자와 같이 살고 있었더랩니다..저희 어머니와 이혼을 한 뒤로부터.. 그 사람과 육체와의 대화를 한 뒤 경찰서에 가서 조서쓰고 이래저래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뼈가 부러진거 같다고 병원가서 진단서 끊어봐야 겠다고 입원부터 한다고 쌩 난리 x랄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냥 웃음만 나왔죠 경찰관님들도 그 상황이 참으로 어이없으셨나 봅니다.. 호적상 아들과 아버지와 의 싸움질이라니..조서를 쓰고 훈방조취로 나와서 너무나도 울분이 터져서 하염없이 눈물만 나오더군요.. 한때 아버지였지만.. 어떻게 저희 가족을 그런식으로 매도를 할 수 있었는지.. 이해가 안됬습니다.. 그 뒤로 질풍노도의 시기가 찾아왔습니다..학교도 잘 안나가고 질않좋은 친구들덕분에 술과 담배 그리고 여자를 알게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정도 시간이 흘러 정신을 차리고 고3때 이런저런 자격증도 따고 비록 지방대지만 대학교라는 곳을 가게 되었습니다.. 해외 어학연수도 다녀와서 직장을 잡아 일하며 지내고 있는 도중에 몇달전에 그 사람이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을 했다고 저희 어머니께서 말씀해주시더군요.. 고1때 구타사건이 있던 뒤로부터 제 나이 23살될때까지 한번도 얼굴을 안본 그 사람이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어머니께서 한번 병원에 찾아가보라고..그 사람 움직이지도 못한다고.. 혼자서는 화장실도 못가신다고 하시더군요.. 저는 매몰차게 어머니에게 대답을 했습니다 "자기자식 버려놓고 술집년이랑 눈 맞아서 도망간 놈을 뭐가 이쁘다고 찾아가냐고 몸뚱아리가 x신되니깐 그제서야 지 잘못알고 가족소중한지 안거냐고 움직이질 못하니까 이제와서 핏줄찾고 병원에 있어보니깐 남들은 자기 가족이 찾아와 병문안 오는데 혼자 있으니깐 쪽팔리고 그제서야 사람이 그리워진거냐고 우리 힘들때 그 사람이 거들떠 보기라도 했냐고 엄마 힘들때 그자식이 어떻게 했냐고 억울 하지도 않냐고 나한테 그렇게 말을 하는 이유가 뭐냐고.. 이제서야 힘들어지니깐 핏줄찾고 자식 찾냐고 그 사람이 엄마한테 나 보고 병문안 오라고 한거냐고..난 절대로 때려죽여도 그사람 안볼꺼니깐 그렇게 알라고.." 전 이렇게 매정하게 어머니에게 말해버렸습니다.. 어머니가 잘못하신게 아닌데 말이죠..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정말로 아버지라는 존재 자체가 그리웠습니다.. 어릴적 목욕탕 함께 갔었던게 왜 그렇게도 그리운걸까요.. 부모님이 이혼을 하신 뒤로 목욕탕에 절대로 가질 않았습니다.. 집에서 혼자 목욕을 하고 아버지가 없는 빈자리를 제가 대신했습니다.. 너무나도 힘들더군요 .. 그때문일까요..하염없이 조용히 눈물만 흘리게 되더군요.. 지금까지도 병원에 있다는 어머니의 말씀을 듣곤 합니다.. 찾아갈까도 많이 생각을 해보고 어디병원 몇호실에 있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발걸음을 떼기가 참 힘이 들더군요.. 찾아가서도 무슨 말을 해야할지 어떻게 대해야 할지 걱정만 앞서가지만 찾아가긴 싫기도 합니다.. 이렇게 긴글 읽어주신거 감사드립니다.. 야심한 시간에 한없이 주절거려보았습니다..
사는게 힘듭니다..
안녕하세요 23살의 신체건장한 청년입니다
야심한 밤에 하도 가슴이 답답해서 어디다가 푸념도 하기도 뭐하고 해서
이렇게 글이라도 남겨봅니다..
제가 중3때 저희 부모님들이 이혼을 하셨습니다.
그때당시엔 이혼이라는 것 자체가 나쁘지도 않고 어른들의 일이니깐 나는 상관 안해도 될거 같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지내고 있었지요..
저희 어머니께서는 아버지에게 욕설을 들으면서 구타도 많이 당하셨습니다.
어릴적엔 저희 남매에겐 아버지가 무서운 호랑이셨죠..
하지만 저와 제 여동생은 너무나도 무서워서 조용히 방에서만 있어야 했습니다.
안방에선 어머니의 흐느끼시는 울음소리와 아버지의 육두문자들을 남발하시는 모습을 보며 자라온 저희 남매는 절대로 여자는 때려서도 욕을 해서도 안된다.
무조건 아껴줘야 한다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깊이 각인이 된 상태였죠..
제가 태어날때부터 저희 부모님께서는 세공이라는것을 하셨습니다..
귀금속을 가공해서 매장에 납품을 하는 자영업을 하신거죠..
금과 은을 어릴적부터 보고 자라온 저희 남매는 그저 돌덩이일뿐이다..
하지만 비싼 돌이라서 함부로 건드리면 안된다라는 것을 배우며 지내왔었죠..
하루는 저희 어머니께서 저를 조용히 부르시며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들아 엄마랑 아빠랑 이혼을 해도 괜찮겠니?"
"더이상은 이렇게 맞고 살다가는 죽을거 같아 아들.."
저는 어머니의 말씀에 찬성을 했죠. 어머니가 맞고 사는 모습을 보는게 너무나도 가슴이 아파서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어머니께서 그때당시 걱정을 하신게 있으셨다고 저에게 말씀을 해주시더군요..
저희 남매의 부양입니다..이혼을 하시면 재산을 두분이 나눠서 가져야 하는데
금..이게 제일 중요한거였죠..
그때당시 제가 알기론 순금 3관인가 4관인가 있엇다고 하셨습니다..
그때당시엔 순금 한돈에 7,8만원정도 했지만 지금 시세로 따지면 한돈에 20만원 하려나요..
저희 아버지께선 절대 이혼 못한다고 할거면 차라리 어느정도 포기하고 나가라고
이렇게 말씀을 하셨더랩니다..
지 자식 핏덩이인데 어쩜 저렇게 행동을 할까요..
저희 남매를 고아원에 보낸다는둥 자기는 같이 못산다는둥..
정말로 자식이지만 정말로 할 수만 있었으면 후레자식도 되어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호랑이 아버지라는게 머릿속에 박혀있어서 실행은 못해봤지만요..
이래저래 해서 저희 어머니가 이혼을 하자고 서류까지 다 가져와서
법원에 다녀오시고 재산문제도 해결을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나중에 알기론 저희 어머니가 상당량의 금과 장사에 필요하신 것들을 거의 넘겨주신거죠..
중3 겨울방학때 저희 부모님은 이혼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집을 하나 얻어서 어머니와 저희남매 이렇게 세식구가 살게 되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를 올라가서도 저희 어머니께서는 힘든 나날을 보내셨습니다..
이혼을 하셨지만 같은장소에서 같은일을 하시고 계셨죠..
왜냐고 물어봤습니다..
금도 조금밖에 없고 , 가게를 얻으면 관리비에 월세에 이것저것 많이 나가서
같이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였다고..
그래서 저희 어머니께서는 같이 일을 하신거죠..
하지 말라고 나도 알바할테니깐 그사람이랑 같이 하지말라고..
하지만 어머니는 저희에게만큼은 헌신적이셨습니다..
자신이 조금 힘들테니 너희들은 공부나 열심히 해라 하시면서..
서로 다른 상호를 가지고 시작을 하게 되며 저희 아버지에게 한달에 얼마정도를 내고 같이 장사를 하시게 된것 입니다..
고1 여름방학..
어머니가 일을 끝마치시고 집에 오실땐 저를 항상 부르십니다.
야밤에 중년의 여성이 순금을 들고 돌아다니는거..상상을 해보시겠습니까?
무척이나 위험한 상황인거죠..
그래서 아들인 제가 어머니의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어머니를 모시러 갑니다..
여기서 사건이 터진거죠..어머니와 저랑 같이 길을 걸어 가고 있는데
갑자기 퍽 소리와 함께 저희 어머니가 쓰러지신거죠
쓰러지신 저희 어머니를 보호함과 동시에 가방을 지키려고 뒤를 돌아보는 순간,
저희 아버지가 계셨던 겁니다..이혼을 하시고 한번도 안봐왔던 사람인데
그 사람이 저희 어머니를..제가 보는 앞에서 구타를 하시고 욕설을 하신겁니다..
네....울컥도 그런 울컥이 없습니다..눈이 뒤집히는 상황이라는게 바로 그 때를 말하는거 같더군요..
어머니가 맞고 쓰러지시고 그 뒤엔 아버지라는 작자가 욕설을 하며 구타를 하고 있는데
어느 누구가 그걸 가만히 지켜 보고만 있겠습니까?
어머니가 쓰러진 순간 이성을 잃고말았습니다..
한때 아버지였던 사람과 주먹다짐을 하게 된 것이죠..
욕 하실분은 하셔도 됩니다.
하지만 그 상황을 겪어보고도 저를 욕하실분은 하셔도 됩니다..
그 일이 있고나서 저도 모르고 지냈었던 어른들의 세계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이 술집여자와 눈이 맞아 조용히 계획을 하며 저희 어머니와 이혼을 하고
그 여자와 같이 살려고 하신거였습니다..
치를 갈았죠..어떻게 인간으로 한 사람의 가장으로서 그딴 결심을 하게 되었는지
두개골을 열어 그 사람이 뭔 생각을 한거였는지 보고 싶었습니다..
웃긴 사실은 그 여자도 가정이 있었고 자식이 있었는데도
그 여자와 같이 살고 있었더랩니다..저희 어머니와 이혼을 한 뒤로부터..
그 사람과 육체와의 대화를 한 뒤 경찰서에 가서 조서쓰고 이래저래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뼈가 부러진거 같다고 병원가서 진단서 끊어봐야 겠다고 입원부터 한다고 쌩 난리 x랄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냥 웃음만 나왔죠 경찰관님들도 그 상황이 참으로 어이없으셨나 봅니다..
호적상 아들과 아버지와 의 싸움질이라니..조서를 쓰고 훈방조취로 나와서
너무나도 울분이 터져서 하염없이 눈물만 나오더군요..
한때 아버지였지만..
어떻게 저희 가족을 그런식으로 매도를 할 수 있었는지..
이해가 안됬습니다..
그 뒤로 질풍노도의 시기가 찾아왔습니다..학교도 잘 안나가고 질않좋은 친구들덕분에
술과 담배 그리고 여자를 알게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정도 시간이 흘러 정신을 차리고 고3때 이런저런 자격증도 따고
비록 지방대지만 대학교라는 곳을 가게 되었습니다..
해외 어학연수도 다녀와서 직장을 잡아 일하며 지내고 있는 도중에
몇달전에 그 사람이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을 했다고 저희 어머니께서
말씀해주시더군요..
고1때 구타사건이 있던 뒤로부터 제 나이 23살될때까지 한번도 얼굴을 안본 그 사람이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어머니께서 한번 병원에 찾아가보라고..그 사람 움직이지도 못한다고..
혼자서는 화장실도 못가신다고 하시더군요..
저는 매몰차게 어머니에게 대답을 했습니다
"자기자식 버려놓고 술집년이랑 눈 맞아서 도망간 놈을 뭐가 이쁘다고 찾아가냐고
몸뚱아리가 x신되니깐 그제서야 지 잘못알고 가족소중한지 안거냐고
움직이질 못하니까 이제와서 핏줄찾고 병원에 있어보니깐 남들은 자기 가족이 찾아와
병문안 오는데 혼자 있으니깐 쪽팔리고 그제서야 사람이 그리워진거냐고
우리 힘들때 그 사람이 거들떠 보기라도 했냐고 엄마 힘들때 그자식이 어떻게 했냐고
억울 하지도 않냐고 나한테 그렇게 말을 하는 이유가 뭐냐고..
이제서야 힘들어지니깐 핏줄찾고 자식 찾냐고 그 사람이 엄마한테 나 보고 병문안 오라고 한거냐고..난 절대로 때려죽여도 그사람 안볼꺼니깐 그렇게 알라고.."
전 이렇게 매정하게 어머니에게 말해버렸습니다..
어머니가 잘못하신게 아닌데 말이죠..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정말로 아버지라는 존재 자체가 그리웠습니다..
어릴적 목욕탕 함께 갔었던게 왜 그렇게도 그리운걸까요..
부모님이 이혼을 하신 뒤로 목욕탕에 절대로 가질 않았습니다..
집에서 혼자 목욕을 하고 아버지가 없는 빈자리를 제가 대신했습니다..
너무나도 힘들더군요 ..
그때문일까요..하염없이 조용히 눈물만 흘리게 되더군요..
지금까지도 병원에 있다는 어머니의 말씀을 듣곤 합니다..
찾아갈까도 많이 생각을 해보고 어디병원 몇호실에 있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발걸음을 떼기가 참 힘이 들더군요..
찾아가서도 무슨 말을 해야할지 어떻게 대해야 할지 걱정만 앞서가지만
찾아가긴 싫기도 합니다..
이렇게 긴글 읽어주신거 감사드립니다..
야심한 시간에 한없이 주절거려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