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사랑할 만한 것에 선을 긋지 않는다. (1)

느티나무2004.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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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재회


토요일이다. 이제 앞으로 열흘하고도 일주일만 지나면

 

국민의 4대 의무 앞에 유일하게 신성한 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는 의무를 마치게 된다.

 

 

그러나 나는 그런 수식어를 한번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일을 마치게 될 것만 같다.


 

말년 병장의 생활이란 것이 그렇다. 시간은 더디 가고,

 

2년 4개월 동안 국가에 피끓는 젊음과 자유를 반납한 채 사회와 격리되어 살아온 자신을 돌아보면서,

 

사람에 따라 최소한 20년 이상 몸 담아온 곳으로 돌아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내온 시간에 비하면 채 10분 1도 안 되는 시간이지만,


이 곳에서의 생활은 너무나 많은 것을 변해버리게 한다.


그래서 휴가를 나갈 때마다 변해 있는 그 세상이 너무나도 낯설게만 느껴질 때문인지, 

 

두려움이라고 말할 것까지는 없지만, 이젠 완전한 복귀, 앞으로 일에 대한 걱정이 앞서기 마련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이제 난 무엇을 해야하는 걸까? 그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소대에서 유일한 동기 놈은 아까부터 열심히 옷을 데리고 있었다.


 

" 야. 너 누구 오냐? "



" 응. 영미 "



녀석이 한숨을 내쉬었다.



" 미친놈, 난데없는 한숨은. 왜, 아직도 결정 안 냈어?  "



" 어............ "



녀석은 말끝을 흐려 버린 채, 답답한지 담배를 가지고 나가 버렸다.



부대에서 좀 멀리 떨어져 있는 읍내 다방의 미스 윤을 만나기 위해

 

녀석은 열심히 옷을 다리고 있었던 거였다. 

 

이제서야 결정을 낸 모양이었다.

 

몇 일 동안을 밤새 지갑 속에 넣어 둔 그녀의 사진을 보며 고민하던 녀석의 모습이 떠올랐다.

 

상병을 달구 난 후로부터 줄곧 면회를 오던 여자와의 마지막 만남을 결정한 것이란 걸 난 알 수가 있었다.


녀석이 다시 들어왔다.



" 김 병장, 내가 있다 빼 줄께. 제대하면 어떻게 될지도 모르잖아 우리 한번 오늘 맛이 가도록 퍼보자 "



" 알았다. 기다리마. "



녀석의 얼굴에는 아직도 수심이 가득했다.

 

스피커에선 얼마간의 간격을 두고 계속해서 면회 온 사람들의 명단을 부르고 있었다.

 

오늘따라 더 따분해져만 갔다.

 

토요일이면 얼마 전에 들어온 우리 분대 막내를 데리고 PX에 데리고 가서 녀석의 애인 자랑을 듣는 게

 

나의 일과 중 하나였는데, 오늘은 그 애인이 드디어 면회를 오는 날. 녀석을 데리고 시간을 떼울 수 도 없었다.

 

마침 1분대 막내 녀석이 헤어진 군복바지를 꿰매고 있었다.



" 막내 "



" 이병~ 김 성환 "



" 이병~ 한 수완 "



언제 들어도 이병의 목소리는 군기의 결정체다.



" 어 우리막내는 가서 애인 맞을 준비하고,  이 병장 ”



오늘도 여전히 바둑 책에 빠져있는 1 분대 분대장을 불렀다.



“ 니 막내 좀 오늘 하루 내가 빌리자. 도저히 심심해서 안되겠다. "



" 김 병장님 공짜로는 안됩니다. "



" 알았다. 만두 한 봉지면 되겠냐? "



" 좀만 더 쓰시죠, 고기순대 추가에 콜라 추가 "



녀석의 넉살은 여전했다.



" 알았다. 있다 올 때, 가지고 올께 "



1분대 막내를 데리고 PX로 갔다.

 

1분대 막내에게 만원 짜리 한 장을 주고, 나는 담배를 피기 위해 밖으로 자리를 잡으러 나갔다.

 

한 개피를 다 피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우리 막내가 성급히 달려오고 있었다.



" 김수완 왜? 애인 면회 안 왔어? "


면회장에 있어야 할 수완이는 급히 뛰어 왔는지, 숨을 헉떨이며 말했다.



" 그게 아니라, 지금 분대장님 면회 왔다고 행정반으로 오시랍니다. "



" 어 알았다 "



동기 놈이 가라로 빼낸 것이 분명했다.



" 그런데 너는? "



" 예, 저도 왔습니다. "



" 그래, 어서 먼저 가봐라. 아참, PX 가서 수완 이한테 산거 내무반가지고 가서 분대장이랑 놀라고 그래"



" 네, 알겠습니다. "



행정반으로 향했다. 



" 전진, 병장 김인혁 행정반에 용무 있어 왔습니다. "



" 어 김 병장, 외출증이다. 신고하고 나가라 "



신고를 마친 뒤, 면회장소로 향했다. 그런데 동기 녀석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리 저리 살피며 면회장소를 뒤지고 있을 때, 뒤에서 어디선가 낮 익은 목소리가 들여 왔다.


" 인혁 씨 "


고개를 돌렸다. 심장이 멈출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