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야기의 이야기는 중반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제 슬슬 터트려야 할때가 됐습니다. 잔잔하기만 해서.... 요즘같은 날씨에 더더욱 졸립니다 -,.- **
CHAPTER 5. 이보다 더 나쁠 순 없다.
더 늦기 전에 모든 것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늦어버렸는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더 이상은 안 된다.
야기는 Tv를 보면서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장난처럼 시작된 거짓말이 이제는 야기의 인생 전체를 뒤흔들고 있었다.
위기감이 밀려온다.
잘못하면 남아 있는 것들마저 망가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야기를 혼란스럽게 했다.
야기는 옆에 앉은 준원의 얼굴을 보았다가 시선을 돌렸다.
준원에겐 어떻게 할까.
처음부터 목적했던 것은 단 하나, 준원과 같이 있고 싶다는 단순한 욕심이었다.
털어놓으면 어떻게 될까. 준원은… 자신을 이해해 줄 것인가.
무섭다. 준원의 저 다정한 얼굴이 차갑게 변하는 것도 무섭고 신뢰를 배반한 자신에게 내려질 판결도 무서웠다. 하지만 이대로 계속하기는 너무 힘들었다.
모든 것을 다 잃고 매달려서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다면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거짓말로 시작한 관계가 진실이 밝혀졌을 때 유지될 것인가?
야기에게 남은 것은 단 하나, 준원의 존재뿐이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물거품처럼 사라지겠지.
흔적도 남지 않고 처음부터 꿈이었던 것처럼 그렇게 없어질지도 모른다.
그때 과연 자신은 어떻게 될까.
-처음부터 다 거짓이었잖아.
-말하려고 했어. 믿어줘. 정말 말하려고 했어…
-언제? 내가 너한테 청혼한 다음에?
-제발… 한번만 내 말을 믿어줘. 처음부터 이러려고 했던 건 아니었어.
그냥… 그냥 너한테 내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게 싫었어. 그래서 그런거야.
너를 너무 좋아해서, 너한테 미움받고 싶지 않아서.
-뭐라고 해도 넌 나한테 거짓말을 했어.
무려 일년 동안이나 날 속여왔으면서 이제와서 무슨 얼굴로 믿어달란 이야기를 할 수가 있어.
-제발… 내 말을 좀 들어봐. 내가 다 설명할게.
처음부터 다 설명할 수 있어.
-그만 둬!
우리 관계는 처음부터 모래 위에 세워진 성이었어.
그리고 이제 파도가 밀어닥친거야. 우리는 이미… 끝났어.
다 부서져서 하나도 남지 않았다고!
-그러지 마. 널 잃기 싫어서 그랬던 거야. 널 속이려던 게 아니었어.
제발 끝이라는 이야기만 하지 말아줘… 제발.
내가 뭐든지 할게. 뭐든지, 네가 원하는 대로 할 테니까…
-이제 그만해. 사랑에서 신뢰를 빼면 뭐가 남는줄 알아? 배신감뿐이야.
내가 너한테 느끼는 유일한 감정은 이제 그것뿐이야.
그게 증오가 되기 전에 제발 내 앞에서 사라져.
내가 사랑한 여자는 가짜였어. 환상이었어.
더 이상은 날 아프게 하지 마. 그게 네가 나한테 줄 수 있는 단 하나의 배려야.
붙잡는 여자를 뿌리치고 냉정하게 뒤돌아선 남자의 얼굴로 한 줄기 눈물이 흘렀다. 무너져서 남자의 이름을 부르는 여자를 외면하고 남자는 천천히 화면 밖으로 사라져간다.
“아, 정말… 너무 화나, 이런 얘기.”
준원이 잔뜩 미간을 모으고 쿠션을 꼭 끌어안았다.
“일부러 그런건 아니잖아.”
“그래도 거짓말했잖아. 결국은 이렇게 되는거야.”
“난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정말? 난 이해 못해. 처음부터 속이려고 작정한 거야. 사랑해서라고 아무리 말해도 설득력이 없지.”
무심한 준원의 말에 야기는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tv 드라마 속 여자가 자신인 것만 같아서 야기는 필사적으로 그녀를 옹호했다.
“그냥 그 남자곁에 있고 싶어서였어. 사랑해주길 바란 것도 아니었고, 그저 옆에만 있겠다고 했잖아. 남자의 구애도 거절했고. 안 된다는 걸 기어이 좋아한다고 쫓아 다닌 건 남자였어. 무슨 일이 있어도 사랑할 거라고, 다 이해할 수 있다고 해놓고… 저건 좀 비겁하잖아.”
“그러니까 사람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신뢰야. 생각해봐. 너 같으면 믿을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겠어? 저거야 드라마니까 좀 극단적인 경우지만 처음부터 거짓말을 하고 만났다면 난 절대 용서 못할 것 같아.”
“고의가 아니었어도?”
“응. 처음에는 그랬을지 모르지만 몇 번이나 말할 기회가 있었잖아. 일년 동안 숨겼다는 건 이미 고의가 개입되었다고 봐야지. 난 관계에 있어서 사소한 거라도 거짓말하는 건 이미 틀렸다고 생각하는데.”
드라마의 배경음악이 흐르면서 다음 회 예고화면이 스쳤다.
울부짖는 여자, 어디론가 떠나는 남자, 그리고 불같이 화를 내는 남자의 어머니…
야기는 차마 더 볼 수가 없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커피를 따르는 손이 덜덜 떨렸다.
“난 거짓말하는 사람이 너무 싫어. 왜 거짓말을 할까. 이해 받으려고 노력하고 진심으로 설득해야 할 일을 거짓말로 모면해봤자 결국 진실은 밝혀지게 돼있는데. 그래서 진실을 알게 된 상대는 얼마나 상처 받겠어. 거짓말하는 사람들은 결국 자기가 아프지 않으려고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거야.”
“그 사람들도 아플 거야.”
“자초한 거니까 동정 안 해. 당한 사람이 불쌍할 뿐이지.”
단호한 준원의 판결. 그래, 준원의 말이 구구절절 맞다.
‘하지만 준원아, 사람은 늘 그렇게 명확하지 않아. 때로는 방황하고 때로는 실수도 하고… 때로는 말이지, 순간의 욕심에 눈이 멀기도 해. 그래서… 거짓말도 해. 나처럼.’
하고 싶은 말이 입안에서 맴돌았지만 야기는 잠자코 커피를 마셨다.
마주해야 할 진실처럼 쓰디쓴 커피에 야기는 몰래 울었다.
몇번이나 준원에게 사실을 털어놓는 상상을 했지만 늘 준원의 냉랭한 얼굴로 끝이 났다.
더 이상 준원의 곁에 있을 수 없게 된다.
준원의 다정한 웃음도, 따뜻한 눈빛도 모두 사라질 터였다.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
그냥 이대로 모른 척 준원의 곁에 있고 싶었다.
주위의 무든 것이 다 붕괴되더라도 준원의 곁에서 그 한 자락의 인연이라도 붙들고 늘어지고 싶었다.
그러나 그게 옳은 방법이 아니라는 사실을 야기는 이제야 확연히 깨달을 수 있었다.
왜 거짓말을 했을까.
어째서 처음부터 사실대로 털어놓지 못했을까.
이제와 후회해봐도 소용없는 일을 야기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잘못 끼운 단추는 과감하게 풀어야 한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막상 준원에게 사실대로 털어놓을 용기가 없었다.
거짓말을 가장 경멸한다고 말하는 준원은 늘 차고 맑고 정확하다.
좋다 싫다가 분명하고 선을 그으면 절대 그 선을 넘지 않는다.
같이 살면서 야기는 준원의 그런 성격을 너무나도 잘 알았다.
준원은 절대로 거짓말로 자신을 속인 야기를 용서해주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있을 수도 없는 일. 이대로라면 결국 야기에게 남는 것은 준원을 속였다는 자책감과 준원에게서 언제 버림받을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초라한 모습뿐이다.
그리고 영원히 준원의 마음을 얻지 못하겠지.
좋은 친구로, 절친한 사이로 준원이 다른 사람을 만나고 떠나가는 등만을 쓸쓸하게 지킬 뿐이다.
그때가 되면, 야기에게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야기는 상상이 아니라 실제의 그 상황을 소름끼치게 실감했다.
“어디가?”
“나, 약속 있었는데 깜빡 했어. 늦을 거니까 먼저 자.”
“그래? 이 밤에 무슨 약속이야?”
“그냥… 친구들도 오래 못 봤고… 가까운데 사니까 요 앞에서 만나기로 했어.”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말고.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이니까 즐겁게 놀다와.”
한치 의심도 없이 배웅하는 준원에게서 비애를 느낀다.
야기는 다시 한번 준원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너무 많이 봐서 익숙 할거라 생각했는데 오늘 못 보던 점을 하나 찾았다. 눈썹 사이 조그맣게 자리잡은 새까만 점 하나.
얼굴을 맞대고 산지 반년인데 새로운 것을 발견하다니…
앞으로 못 보게 되면 준원의 얼굴을 언제까지 기억할 수 있을까.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응… 너, 눈썹에 점 있었구나. 몰랐네.”
“앗, 그거 봤어? 눈썹 속이라서 뗄 수도 없고… 그래도 남들은 모르던데.”
“임마, 내가 너랑 산지 벌써 얼마냐.”
“그렇네. 그러고 보니 벌써 반년이 지났어. 나, 정말 너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사람들하고 잘 못 어울려서… 나 학교 다닐땐 왕따 였다. 안 믿기지?”
“응, 안 믿긴다.”
“진짜야.”
‘거짓말, 넌 왕따가 아니었어. 네가 모두를 왕따 시켰잖아.’
웃는 준원의 얼굴이 흐려졌다.
야기는 주책맞게 흐르려는 눈물을 억지로 참고 문을 열었다.
“잘 놀고 와.”
“응.”
문을 닫고 등을 기댔다.
차가운 철문에서 올라오는 냉기가 더운 여름밤의 후끈한 열기를 식혀 주었다. 야기는 어두운 복도에서 한참 그렇게 서 있었다.
준원과 조금이라도 더 오래 같이 있고 싶다는 듯이.
“어디로 가지? 오랜만에 술이나 마실까.”
떼어지지 않는 걸음을 억지로 떼며 야기는 중얼거렸다.
가슴 한 구석이 뻥 뚫린 것처럼 아프다.
너무 아파서 약이 필요했다.
야기는 약 대신 술을 마시기로 결정했다.
머리가 마비될 정도로 마시고나면 이 아픔도 잊혀질까.
이렇게 혼란스러운 머리도 조금 진정이 될까.
얼마나 마셨는지도 모르겠다.
그다지 술이 세지 않은데도 유난히 취하지 않는 밤이었다.
야기는 적당히 냉기가 흐르는 실내에서 혼자 술을 마셨다.
아무리 마셔도 머리가 말똥말똥해서 나중에는 아예 글라스에 부어놓고 마셨다.
그러고나니 조금 취기가 올라오는 것도 같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 정도가 되니 기분도 나아졌다.
야기는 히죽히죽 웃으며 전화기를 꺼냈다.
“누구한테 전화하지? 혼자 마시려니까 영 외롭네. 어디 보자…”
저장된 번호를 하나하나 살피다가 야기는 인상을 구겼다. 고등학교 때 친했던 몇 명과 직장 사람들, 그리고 식구들 전화번호를 제외하고 나니 동호회 사람들밖에 안 남는다.
“아, 진짜 사람없네. 이야기, 너 대체 뭐하고 산 거냐? 어떻게 이럴 때 부를 사람이 하나도 없냐 그래. 새끼, 인생 헛 살았어.”
전화기에 저장된 번호들을 하나하나 지워가면서 야기는 계속 히죽거렸다.
외롭고 아프지만 술기운이 스며들어 아픈 줄도 모르겠다. 그냥 웃음만 나왔다.
자신의 상황이 참 우스웠다.
되지도 않는 연애하겠다고 거짓말을 하고 친구들은 떠나고 직장에선 왕따 당하고 학교에까지 소문이 퍼져 복학도 못 하겠고…
거짓말 때문에 만난 사람들한테 계속 거짓말이나 하고 있고…
“너 정말 최악의 남자야, 새꺄. 아니, 최악의 인간이야.”
혼잣말을 하며 히죽거리는 야기를 힐끔대는 시선도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손도 안 댄 안주접시를 밀어놓고 야기는 탁자에 엎드려 계속 전화기의 번호를 지웠다.
꽤 많은 번호들이 다 지워지고 이제 남은 것은 식구들과 준원, 그리고 효윤의 번호뿐이었다.
“에? 효윤이?”
01*-9981-882* 변신마녀
“효윤이가 있었구나… 효윤이랑 더 마셔야지.”
웃으며 통화를 누른다.
지금이 몇시인지 효윤이 사정은 어떤지 고려할 이성 따윈 남아있지도 않았다.
효윤이가 못 올거라는 생각도 없었다. 지금 야기에게는 절실하게 동행이 필요했다.
위로 같은 건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누군가가 옆에 있어주었으면 좋겠다.
그것만이라도… 그저 앉아만 있어도 같이 있어줄 존재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에? 효윤이? 뭐하냐아~?”
-형, 술마셨어?
“응, 기분이 엿 같아서 좀 마셨지. 헤헤.”
-얼마나 마신거야?
“몰라. 하나, 둘, 셋… 응, 이제 네 개째네.”
-미쳤어? 술도 못 마시면서… 이제 그만해.
“효윤아, 오빠랑 술 마시자. 나와라.”
-지금이 몇신줄 알아?
“응… 어디 보자… 두시네, 헤헷.”
-…… 거기 어디야?
“어디냐면 말이야~, 에, 여기가 어디지? 어디더라…”
-옆에 누구 없어?
“나 혼잔데…”
-혼자 술마셨단 말야?
“응, 내 옆엔 아무도 없어. 친구놈들도 다 내가 호모새끼라고 싫다고 하고… 다들 나 싫어하잖아. 효윤아, 너는 알지? 나, 호모 아니야. 나, 그냥 준원이랑 살고 싶어서… 그래서 거짓말한건데… 왜 이렇게 됐을까? 응?”
-거기 종업원이라도 바꿔봐.
“종업원?”
야기는 취한 눈으로 휘적휘적 주위를 둘러보았다.
새벽시간이어도 상당히 붐비는 가운데 저쪽에서 야기를 보고 달려오는 사람이 있었다.
“헤헤, 찾았다. 종업원.”
“부르셨습니까, 손님?”
“저기요, 이거 받아보세요.”
“네?”
막무가내로 전화기를 쥐어주고 야기는 다시 엎드렸다. 효윤이 나와준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져서 멋대로 작사 작곡한 엉터리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다들 피하고 싫어하지만 효윤인 안 그래. 효윤인 날 싫어하지 않아. 효윤이는 착하지, 야기도 착한데… 왜 아무도 모를까… 준원이도 모르고, 그 새끼들도 몰라… 야기도 알고보면 착한데…”
옆에서 전화를 건네받은 청년이 가게 위치를 가르쳐 주는 것 같았다.
통화를 끝내고 내려놓는 전화기를 보다가 야기는 툭 내뱉었다.
“그거 가져요.”
“네?”
어안이 벙벙한 얼굴의 종업원이 되묻자 야기는 조금 짜증을 냈다.
“가지라고요. 그거, 이제 나한텐 필요 없으니까 가져요.”
술 마시고 주정을 부리는 손님이 하나 둘이 아닌지라 종업원은 전화기를 야기의 눈이 보이지 않는 안주 접시 뒤로 밀어놓고 자리를 떴다. 야기는 효윤이 올때까지 노래 부르면서 기다리기로 하고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굴려 가사를 만들었다.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내용은 불러도 불러도 끝이 없었다.
“형, 자는 거야?”
효윤이다. 야기는 주인을 만난 강아지처럼 눈을 빛냈다.
밤중에 얼마나 급하게 왔던지 효윤은 대충 입은 옷차림에 모자를 눌러쓰고 있었다.
아마도 상당히 취한 것 같은 야기가 걱정되어서 전화를 끊자마자 달려왔으리라.
왠지 콧날이 시큰했다.
“자, 술마시자, 우리. 내가 너 오기 기다리느라 술도 안 마시고 있었다.”
“형 너무 많이 마셨어. 이제 그만 해.”
“무슨 소리야. 오늘 같은 날 마시는 거지, 또 언제 마셔. 자자, 우리 오늘 먹고 죽자고.”
“형 무슨 일 있어?”
“그럼 나한테 무슨 일이 없냐? 날마다 사는게 지옥인데 더 이상 무슨 일이 있겠어?”
“……한잔 따라봐.”
“그래, 효윤아, 너 오늘 나랑 계속 같이 술마셔야 돼? 나 진짜 아프거든. 여기, 여기 가슴이 뻥 뚫려서 너무 아프다. 그러니까 안 아플 때까지 마실거야. 마시고 다 잊어버리게… 죽어라고 마실 거다.”
“알았어, 나 착해. 그러니까 우리 술마시자. 형도 속에만 담아놓지 말고 하고 싶은 이야기 다 해. 다 들어줄게. 난 형이 왜 그랬는지도 알고 아니라는 것도 아니까… 뭐든 다 이야기해도 돼.”
“그렇지? 효윤인 알지? 나, 나 말이야. 진짜로 너무너무너무 준원이 좋아하거든. 그래서 그런거야. 나 나쁜 놈 아니지? 사람이 그럴 수 있는 거지?”
“그럼. 사람이 늘 바르고 착하기만 한가 뭐. 때로는 나쁜 짓도 하고 또 때로는 거짓말도 하고 그러는 거지.”
“그치? 그치? 이야, 역시 효윤인 내 맘을 안다니까. 근데 우리 준원인… 몰라. 이해도 못 해. 있잖아, 준원인 세상에서 거짓말하는 사람이 제일로 싫대. 내가 제일… 싫대…”
“그 사람이 안 거야? 형이 거짓말했다는 거?”
“아니이~, 나 무서워서 아직 말 못 했어. 해야 된다고 머리는 아는데 가슴이 말하지 말라고 말려. 그러면 준원인 날 떠날 거라고… 무서워. 효윤아, 어떡하지? 나 너무 무서워… 준원이가 가버리면 난 어떻게 해. 무서워서… 말을 못 하겠어. 해야 되는데… 지금 안 하면 안 되는데… 못 하겠어, 정말.”
- 아임게이(i'm gay) - #5
** 이야기의 이야기는 중반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제 슬슬 터트려야 할때가 됐습니다. 잔잔하기만 해서.... 요즘같은 날씨에 더더욱 졸립니다 -,.- **
CHAPTER 5. 이보다 더 나쁠 순 없다.
더 늦기 전에 모든 것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늦어버렸는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더 이상은 안 된다.
야기는 Tv를 보면서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장난처럼 시작된 거짓말이 이제는 야기의 인생 전체를 뒤흔들고 있었다.
위기감이 밀려온다.
잘못하면 남아 있는 것들마저 망가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야기를 혼란스럽게 했다.
야기는 옆에 앉은 준원의 얼굴을 보았다가 시선을 돌렸다.
준원에겐 어떻게 할까.
처음부터 목적했던 것은 단 하나, 준원과 같이 있고 싶다는 단순한 욕심이었다.
털어놓으면 어떻게 될까. 준원은… 자신을 이해해 줄 것인가.
무섭다. 준원의 저 다정한 얼굴이 차갑게 변하는 것도 무섭고 신뢰를 배반한 자신에게 내려질 판결도 무서웠다. 하지만 이대로 계속하기는 너무 힘들었다.
모든 것을 다 잃고 매달려서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다면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거짓말로 시작한 관계가 진실이 밝혀졌을 때 유지될 것인가?
야기에게 남은 것은 단 하나, 준원의 존재뿐이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물거품처럼 사라지겠지.
흔적도 남지 않고 처음부터 꿈이었던 것처럼 그렇게 없어질지도 모른다.
그때 과연 자신은 어떻게 될까.
-처음부터 다 거짓이었잖아.
-말하려고 했어. 믿어줘. 정말 말하려고 했어…
-언제? 내가 너한테 청혼한 다음에?
-제발… 한번만 내 말을 믿어줘. 처음부터 이러려고 했던 건 아니었어.
그냥… 그냥 너한테 내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게 싫었어. 그래서 그런거야.
너를 너무 좋아해서, 너한테 미움받고 싶지 않아서.
-뭐라고 해도 넌 나한테 거짓말을 했어.
무려 일년 동안이나 날 속여왔으면서 이제와서 무슨 얼굴로 믿어달란 이야기를 할 수가 있어.
-제발… 내 말을 좀 들어봐. 내가 다 설명할게.
처음부터 다 설명할 수 있어.
-그만 둬!
우리 관계는 처음부터 모래 위에 세워진 성이었어.
그리고 이제 파도가 밀어닥친거야. 우리는 이미… 끝났어.
다 부서져서 하나도 남지 않았다고!
-그러지 마. 널 잃기 싫어서 그랬던 거야. 널 속이려던 게 아니었어.
제발 끝이라는 이야기만 하지 말아줘… 제발.
내가 뭐든지 할게. 뭐든지, 네가 원하는 대로 할 테니까…
-이제 그만해. 사랑에서 신뢰를 빼면 뭐가 남는줄 알아? 배신감뿐이야.
내가 너한테 느끼는 유일한 감정은 이제 그것뿐이야.
그게 증오가 되기 전에 제발 내 앞에서 사라져.
내가 사랑한 여자는 가짜였어. 환상이었어.
더 이상은 날 아프게 하지 마. 그게 네가 나한테 줄 수 있는 단 하나의 배려야.
붙잡는 여자를 뿌리치고 냉정하게 뒤돌아선 남자의 얼굴로 한 줄기 눈물이 흘렀다. 무너져서 남자의 이름을 부르는 여자를 외면하고 남자는 천천히 화면 밖으로 사라져간다.
“아, 정말… 너무 화나, 이런 얘기.”
준원이 잔뜩 미간을 모으고 쿠션을 꼭 끌어안았다.
“일부러 그런건 아니잖아.”
“그래도 거짓말했잖아. 결국은 이렇게 되는거야.”
“난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정말? 난 이해 못해. 처음부터 속이려고 작정한 거야. 사랑해서라고 아무리 말해도 설득력이 없지.”
무심한 준원의 말에 야기는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tv 드라마 속 여자가 자신인 것만 같아서 야기는 필사적으로 그녀를 옹호했다.
“그냥 그 남자곁에 있고 싶어서였어. 사랑해주길 바란 것도 아니었고, 그저 옆에만 있겠다고 했잖아. 남자의 구애도 거절했고. 안 된다는 걸 기어이 좋아한다고 쫓아 다닌 건 남자였어. 무슨 일이 있어도 사랑할 거라고, 다 이해할 수 있다고 해놓고… 저건 좀 비겁하잖아.”
“그러니까 사람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신뢰야. 생각해봐. 너 같으면 믿을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겠어? 저거야 드라마니까 좀 극단적인 경우지만 처음부터 거짓말을 하고 만났다면 난 절대 용서 못할 것 같아.”
“고의가 아니었어도?”
“응. 처음에는 그랬을지 모르지만 몇 번이나 말할 기회가 있었잖아. 일년 동안 숨겼다는 건 이미 고의가 개입되었다고 봐야지. 난 관계에 있어서 사소한 거라도 거짓말하는 건 이미 틀렸다고 생각하는데.”
드라마의 배경음악이 흐르면서 다음 회 예고화면이 스쳤다.
울부짖는 여자, 어디론가 떠나는 남자, 그리고 불같이 화를 내는 남자의 어머니…
야기는 차마 더 볼 수가 없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커피를 따르는 손이 덜덜 떨렸다.
“난 거짓말하는 사람이 너무 싫어. 왜 거짓말을 할까. 이해 받으려고 노력하고 진심으로 설득해야 할 일을 거짓말로 모면해봤자 결국 진실은 밝혀지게 돼있는데. 그래서 진실을 알게 된 상대는 얼마나 상처 받겠어. 거짓말하는 사람들은 결국 자기가 아프지 않으려고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거야.”
“그 사람들도 아플 거야.”
“자초한 거니까 동정 안 해. 당한 사람이 불쌍할 뿐이지.”
단호한 준원의 판결. 그래, 준원의 말이 구구절절 맞다.
‘하지만 준원아, 사람은 늘 그렇게 명확하지 않아. 때로는 방황하고 때로는 실수도 하고… 때로는 말이지, 순간의 욕심에 눈이 멀기도 해. 그래서… 거짓말도 해. 나처럼.’
하고 싶은 말이 입안에서 맴돌았지만 야기는 잠자코 커피를 마셨다.
마주해야 할 진실처럼 쓰디쓴 커피에 야기는 몰래 울었다.
몇번이나 준원에게 사실을 털어놓는 상상을 했지만 늘 준원의 냉랭한 얼굴로 끝이 났다.
더 이상 준원의 곁에 있을 수 없게 된다.
준원의 다정한 웃음도, 따뜻한 눈빛도 모두 사라질 터였다.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
그냥 이대로 모른 척 준원의 곁에 있고 싶었다.
주위의 무든 것이 다 붕괴되더라도 준원의 곁에서 그 한 자락의 인연이라도 붙들고 늘어지고 싶었다.
그러나 그게 옳은 방법이 아니라는 사실을 야기는 이제야 확연히 깨달을 수 있었다.
왜 거짓말을 했을까.
어째서 처음부터 사실대로 털어놓지 못했을까.
이제와 후회해봐도 소용없는 일을 야기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잘못 끼운 단추는 과감하게 풀어야 한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막상 준원에게 사실대로 털어놓을 용기가 없었다.
거짓말을 가장 경멸한다고 말하는 준원은 늘 차고 맑고 정확하다.
좋다 싫다가 분명하고 선을 그으면 절대 그 선을 넘지 않는다.
같이 살면서 야기는 준원의 그런 성격을 너무나도 잘 알았다.
준원은 절대로 거짓말로 자신을 속인 야기를 용서해주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있을 수도 없는 일. 이대로라면 결국 야기에게 남는 것은 준원을 속였다는 자책감과 준원에게서 언제 버림받을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초라한 모습뿐이다.
그리고 영원히 준원의 마음을 얻지 못하겠지.
좋은 친구로, 절친한 사이로 준원이 다른 사람을 만나고 떠나가는 등만을 쓸쓸하게 지킬 뿐이다.
그때가 되면, 야기에게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야기는 상상이 아니라 실제의 그 상황을 소름끼치게 실감했다.
“어디가?”
“나, 약속 있었는데 깜빡 했어. 늦을 거니까 먼저 자.”
“그래? 이 밤에 무슨 약속이야?”
“그냥… 친구들도 오래 못 봤고… 가까운데 사니까 요 앞에서 만나기로 했어.”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말고.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이니까 즐겁게 놀다와.”
한치 의심도 없이 배웅하는 준원에게서 비애를 느낀다.
야기는 다시 한번 준원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너무 많이 봐서 익숙 할거라 생각했는데 오늘 못 보던 점을 하나 찾았다. 눈썹 사이 조그맣게 자리잡은 새까만 점 하나.
얼굴을 맞대고 산지 반년인데 새로운 것을 발견하다니…
앞으로 못 보게 되면 준원의 얼굴을 언제까지 기억할 수 있을까.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응… 너, 눈썹에 점 있었구나. 몰랐네.”
“앗, 그거 봤어? 눈썹 속이라서 뗄 수도 없고… 그래도 남들은 모르던데.”
“임마, 내가 너랑 산지 벌써 얼마냐.”
“그렇네. 그러고 보니 벌써 반년이 지났어. 나, 정말 너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사람들하고 잘 못 어울려서… 나 학교 다닐땐 왕따 였다. 안 믿기지?”
“응, 안 믿긴다.”
“진짜야.”
‘거짓말, 넌 왕따가 아니었어. 네가 모두를 왕따 시켰잖아.’
웃는 준원의 얼굴이 흐려졌다.
야기는 주책맞게 흐르려는 눈물을 억지로 참고 문을 열었다.
“잘 놀고 와.”
“응.”
문을 닫고 등을 기댔다.
차가운 철문에서 올라오는 냉기가 더운 여름밤의 후끈한 열기를 식혀 주었다. 야기는 어두운 복도에서 한참 그렇게 서 있었다.
준원과 조금이라도 더 오래 같이 있고 싶다는 듯이.
“어디로 가지? 오랜만에 술이나 마실까.”
떼어지지 않는 걸음을 억지로 떼며 야기는 중얼거렸다.
가슴 한 구석이 뻥 뚫린 것처럼 아프다.
너무 아파서 약이 필요했다.
야기는 약 대신 술을 마시기로 결정했다.
머리가 마비될 정도로 마시고나면 이 아픔도 잊혀질까.
이렇게 혼란스러운 머리도 조금 진정이 될까.
얼마나 마셨는지도 모르겠다.
그다지 술이 세지 않은데도 유난히 취하지 않는 밤이었다.
야기는 적당히 냉기가 흐르는 실내에서 혼자 술을 마셨다.
아무리 마셔도 머리가 말똥말똥해서 나중에는 아예 글라스에 부어놓고 마셨다.
그러고나니 조금 취기가 올라오는 것도 같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 정도가 되니 기분도 나아졌다.
야기는 히죽히죽 웃으며 전화기를 꺼냈다.
“누구한테 전화하지? 혼자 마시려니까 영 외롭네. 어디 보자…”
저장된 번호를 하나하나 살피다가 야기는 인상을 구겼다. 고등학교 때 친했던 몇 명과 직장 사람들, 그리고 식구들 전화번호를 제외하고 나니 동호회 사람들밖에 안 남는다.
“아, 진짜 사람없네. 이야기, 너 대체 뭐하고 산 거냐? 어떻게 이럴 때 부를 사람이 하나도 없냐 그래. 새끼, 인생 헛 살았어.”
전화기에 저장된 번호들을 하나하나 지워가면서 야기는 계속 히죽거렸다.
외롭고 아프지만 술기운이 스며들어 아픈 줄도 모르겠다. 그냥 웃음만 나왔다.
자신의 상황이 참 우스웠다.
되지도 않는 연애하겠다고 거짓말을 하고 친구들은 떠나고 직장에선 왕따 당하고 학교에까지 소문이 퍼져 복학도 못 하겠고…
거짓말 때문에 만난 사람들한테 계속 거짓말이나 하고 있고…
“너 정말 최악의 남자야, 새꺄. 아니, 최악의 인간이야.”
혼잣말을 하며 히죽거리는 야기를 힐끔대는 시선도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손도 안 댄 안주접시를 밀어놓고 야기는 탁자에 엎드려 계속 전화기의 번호를 지웠다.
꽤 많은 번호들이 다 지워지고 이제 남은 것은 식구들과 준원, 그리고 효윤의 번호뿐이었다.
“에? 효윤이?”
01*-9981-882* 변신마녀
“효윤이가 있었구나… 효윤이랑 더 마셔야지.”
웃으며 통화를 누른다.
지금이 몇시인지 효윤이 사정은 어떤지 고려할 이성 따윈 남아있지도 않았다.
효윤이가 못 올거라는 생각도 없었다. 지금 야기에게는 절실하게 동행이 필요했다.
위로 같은 건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누군가가 옆에 있어주었으면 좋겠다.
그것만이라도… 그저 앉아만 있어도 같이 있어줄 존재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에? 효윤이? 뭐하냐아~?”
-형, 술마셨어?
“응, 기분이 엿 같아서 좀 마셨지. 헤헤.”
-얼마나 마신거야?
“몰라. 하나, 둘, 셋… 응, 이제 네 개째네.”
-미쳤어? 술도 못 마시면서… 이제 그만해.
“효윤아, 오빠랑 술 마시자. 나와라.”
-지금이 몇신줄 알아?
“응… 어디 보자… 두시네, 헤헷.”
-…… 거기 어디야?
“어디냐면 말이야~, 에, 여기가 어디지? 어디더라…”
-옆에 누구 없어?
“나 혼잔데…”
-혼자 술마셨단 말야?
“응, 내 옆엔 아무도 없어. 친구놈들도 다 내가 호모새끼라고 싫다고 하고… 다들 나 싫어하잖아. 효윤아, 너는 알지? 나, 호모 아니야. 나, 그냥 준원이랑 살고 싶어서… 그래서 거짓말한건데… 왜 이렇게 됐을까? 응?”
-거기 종업원이라도 바꿔봐.
“종업원?”
야기는 취한 눈으로 휘적휘적 주위를 둘러보았다.
새벽시간이어도 상당히 붐비는 가운데 저쪽에서 야기를 보고 달려오는 사람이 있었다.
“헤헤, 찾았다. 종업원.”
“부르셨습니까, 손님?”
“저기요, 이거 받아보세요.”
“네?”
막무가내로 전화기를 쥐어주고 야기는 다시 엎드렸다. 효윤이 나와준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져서 멋대로 작사 작곡한 엉터리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다들 피하고 싫어하지만 효윤인 안 그래. 효윤인 날 싫어하지 않아. 효윤이는 착하지, 야기도 착한데… 왜 아무도 모를까… 준원이도 모르고, 그 새끼들도 몰라… 야기도 알고보면 착한데…”
옆에서 전화를 건네받은 청년이 가게 위치를 가르쳐 주는 것 같았다.
통화를 끝내고 내려놓는 전화기를 보다가 야기는 툭 내뱉었다.
“그거 가져요.”
“네?”
어안이 벙벙한 얼굴의 종업원이 되묻자 야기는 조금 짜증을 냈다.
“가지라고요. 그거, 이제 나한텐 필요 없으니까 가져요.”
술 마시고 주정을 부리는 손님이 하나 둘이 아닌지라 종업원은 전화기를 야기의 눈이 보이지 않는 안주 접시 뒤로 밀어놓고 자리를 떴다. 야기는 효윤이 올때까지 노래 부르면서 기다리기로 하고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굴려 가사를 만들었다.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내용은 불러도 불러도 끝이 없었다.
“형, 자는 거야?”
효윤이다. 야기는 주인을 만난 강아지처럼 눈을 빛냈다.
밤중에 얼마나 급하게 왔던지 효윤은 대충 입은 옷차림에 모자를 눌러쓰고 있었다.
아마도 상당히 취한 것 같은 야기가 걱정되어서 전화를 끊자마자 달려왔으리라.
왠지 콧날이 시큰했다.
“자, 술마시자, 우리. 내가 너 오기 기다리느라 술도 안 마시고 있었다.”
“형 너무 많이 마셨어. 이제 그만 해.”
“무슨 소리야. 오늘 같은 날 마시는 거지, 또 언제 마셔. 자자, 우리 오늘 먹고 죽자고.”
“형 무슨 일 있어?”
“그럼 나한테 무슨 일이 없냐? 날마다 사는게 지옥인데 더 이상 무슨 일이 있겠어?”
“……한잔 따라봐.”
“그래, 효윤아, 너 오늘 나랑 계속 같이 술마셔야 돼? 나 진짜 아프거든. 여기, 여기 가슴이 뻥 뚫려서 너무 아프다. 그러니까 안 아플 때까지 마실거야. 마시고 다 잊어버리게… 죽어라고 마실 거다.”
“알았어. 마셔. 마셔서 잊혀진다면 얼마든지 마셔. 같이 있어줄 테니까 걱정말고 마시고 싶은만큼 마셔.”
“고마워어. 역시 우리 효윤인 착해.”
“나 안 착해, 형.”
“아냐, 효윤인 착해.”
“알았어, 나 착해. 그러니까 우리 술마시자. 형도 속에만 담아놓지 말고 하고 싶은 이야기 다 해. 다 들어줄게. 난 형이 왜 그랬는지도 알고 아니라는 것도 아니까… 뭐든 다 이야기해도 돼.”
“그렇지? 효윤인 알지? 나, 나 말이야. 진짜로 너무너무너무 준원이 좋아하거든. 그래서 그런거야. 나 나쁜 놈 아니지? 사람이 그럴 수 있는 거지?”
“그럼. 사람이 늘 바르고 착하기만 한가 뭐. 때로는 나쁜 짓도 하고 또 때로는 거짓말도 하고 그러는 거지.”
“그치? 그치? 이야, 역시 효윤인 내 맘을 안다니까. 근데 우리 준원인… 몰라. 이해도 못 해. 있잖아, 준원인 세상에서 거짓말하는 사람이 제일로 싫대. 내가 제일… 싫대…”
“그 사람이 안 거야? 형이 거짓말했다는 거?”
“아니이~, 나 무서워서 아직 말 못 했어. 해야 된다고 머리는 아는데 가슴이 말하지 말라고 말려. 그러면 준원인 날 떠날 거라고… 무서워. 효윤아, 어떡하지? 나 너무 무서워… 준원이가 가버리면 난 어떻게 해. 무서워서… 말을 못 하겠어. 해야 되는데… 지금 안 하면 안 되는데… 못 하겠어, 정말.”
“괜찮아, 형. 괜찮아…”
효윤이의 품은 따스했고 뭔지 모를 냄새가 났다. 그
냄새가 너무 포근해서 야기는 마음놓고 안겨서 눈물을 흘렸다.
준원의 앞에서 못 울었던 만큼...
사람들의 배척에 입술을 깨물고 참았던 만큼...
아니 설움을 합쳐서 그 배만큼 울었다.
계속 됩니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