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팅만 하다가 이렇게 용기 내어서 글 올립니다. 전 올해 28살에 청년입니다. 현재 중국 광저우에서 스포츠관련 단체복과 의류 용품들을 직접 제작 또는 사입해서 한국의 매장과 다음까페 오픈마켓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전 2남1녀중 장남으로 장흥이라는 조그만한 농촌 시골마을에서 태어 났습니다. 아버진 알콜중독자 셨고 그런 아버지를 대신해서 어머니를 저희 3남매를 식당일을 하시며 우리를 키우셨습니다. 아버지는 날마다 술에 쩔어 사셨고 그럴때 마다 폭력과 집안의 물건들을 부수셨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폭력과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셨던 어머니는 제가 초등학교 3학년때 집을 나가셨습니다. 그때부터 집안일과 동생들을 제가 책임져야 했습니다. 신문배달을 시작 했습니다. 하루에 2시간씩 한달동안 꼬박 일하며 2만원이란 돈이 저의 월급이였습니다. 그 돈은 저희 가족의 한달 생활비였습니다. 반찬도 사고 당연히 아버지 술도 사드려야 했습니다. 시간은 흐르고 세월은 흐르더군요. 몇번이나 자살을 시도 했는지.. 그렇지만 죽을 자신이 없었습니다. 두려웠습니다. 그렇게 다시 마음을 잡고 살았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때부턴 중국집에서 설거지와 배달을 했습니다. 토요일과 일요일엔 하루일당 1만5천원.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때부턴 노가대를 뛰었습니다. 힘든일인 만큼 일당도 많더군요. 하루일당 4만원 그렇게 전 저의 어린시절과 중학교 고등학교 사춘기 시절을 아버지의 술취한 모습과 폭력을 당하며 공부와 노가대를 병행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전 꿈과 비젼이 있었습니다. 체육선생님이 되고 싶었습니다. 체육선생님이 되기 위해선 대학교를 가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전 실업계를 다녔던 탓에 수능에서 제가 원하는 대학을 갈만한 점수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 3학년때 위장취업을 나가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노가다를 뛰었습니다. 그 돈으로 재수학원에 등록을 하고 올 수능시험을 위해서 죽도록 공부 했습니다. 전 당당하게 제가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습니다. 수능도 그리고 실기 모두다 제가 원하는 만큼에 점수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대학에 합격하니 그 다음부터가 문제더군요. 그래서 또 노가다를 뛰었습니다. 그리고 부족한 돈은 학자금 대출을 받아서 대학에 다닐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행복했던 대학생활은 1학기만에 끝나고 말았습니다. 당연히 2학기 등록금을 낼 수 없어서 학교를 포기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곤 정말 많은 일들을 했습니다. 노가다, 충전소, 주유소, 세차장, 공장, 배달, 용역청소, 하우수 등등 그리고 농구가 너무 좋아서 만들었던 까페가 많은 회원들이 가입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 그 까페에서 농구화를 공동구매를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자금은 없었지만 무대포 정신으로 그당신 농구화를 판매하는 인터넷쇼핑몰들의 전화번호를 모두 수집해서 몇일간 전화한 끝에 함께 공동구매를 추진할 업체를 찾았습니다. (그 당시 저희 까페 회원수가 2만5명에서 3만명정도 되는걸로 기억합니다.) 미리 그 업체에서 농구화 리스트를 받고서 그 리스트를 가지고 까페에서 공동구매를 추진 했습니다. 먼저 입금을 받고 일정수량의 주문을 받으면 제가 컬레당 1~2만원의 수수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성공적으로 공동구매는 진행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서는 제가 직접 그 업체에 제품을 수입해서 단독으로 공동구매를 진행 할 수 있었습니다. 전 그렇게 제 인생의 첫 사업을 시작 했습니다. 어린나이에 나름대로 많은 돈을 벌었던거 같습니다. 차도 사고 술집, 피시방, 보쌈족발집을 차례대로 운영했습니다. 그렇지만 너무나 어린나이에 욕심과 의욕만이 앞서서 였던지 모두 망하고 말았습니다. 거기다 친구에게 사기까지 당해서 2천만원 가까이의 빚도 지게 되었습니다. 정말 죽고 싶도록 암울했던 나날들.. 몇달간을 술에 쩌들어 살았습니다. 그렇지만 이대로 포기 할 수 는 없었습니다. 인생의 경험이라 생각하고 인생수업비라고 생각하고 다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작정 도서관에 가서 책만 읽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읽게된 중국관련 무역 서적에서 전 비젼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 2년전에 중국 광저우에 왔습니다. 저희 자체 브랜드를 출시할 목표를 가지고 이곳 중국에 왔습니다. 단돈 2백만원을 가지고 이곳에 왔습니다.(비행기값, 3달치 집값을 주니 얼마 남지 않더군요) 중국어 한마디 하지 못하고 아는 사람 하나 없었지만 전 자신 있었습니다. 모이자란 중국조선족 싸이트에서 알게된 조선족을 직원으로 쓰면서 이곳 중국 생활을 시작 되었습니다. 정말 죽어라 일하고 공부 했습니다. 항상 집안엔 중국어 강의가 컴터에서 흘러 나왔고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일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는 동안에도 저에 귀에 이어폰은 빼지 않고 중국어를 공부 했습니다. 중국 도매시장에 나와있는 축구복과 농구복을 사진으로 찍어서 올렸습니다. 한국에 사무실이 따로 없었기에 단체복 주문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서 전 한달에 500만원 이상의 수익을 올렸습니다. 몇달되지 않아선 순이익이 천만원가까지 벌때도 있었습니다. 모든 빛을 정산하고 한국에 매장겸 사무실을 오픈 했습니다. 촬영과 포토샾이 가능한 직원들도 뽑고 스포츠회사 다운 모양을 갖추려고 노력 했습니다. 그렇게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해서 일했습니다. 작년엔 그동안 너무나 사고 싶었던 아파트와 차를 장만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주식이 많이 떨어졌지만 나름 중국주식에 관련된 공부를 해서 중국만과기업 주식도 2천만원 투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매달 20만원씩 들어가는 펀드와 적금.. 올 저의 목표는 영어공부를 위해서 필리핀에 가는것과 일어공부를 위해서 일본에 가는겁니다. 중국어를 공부하고 나니 정말 커다란 매력이 있더군요. 그 나라의 문화에 대해서 배울 수 있고 많은 중국 사람들을 사귀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의 가장 큰 목표는 저희 고향인 장흥에 멋진바다가옆에 2층 팬션을 짓는겁니다. 저희 어머니는 제가 초등학교 5학년때 돌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28살이 되시기까지 식당일과 수많은 일들을 하시며 저희 3남매를 지켜 주셨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대학교때 돌아 가셨습니다. 나이를 먹고 정말 죽이고 싶도록 미웠던 아버지가 그립습니다. 사람이 나빴던게 아니라 술이 나빳던 겁니다. 지금은 어려서부터 잡초가 될 수 있게해 주셨던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전 아버지 덕분에 죽을만큼 힘들일이 아니며 힘들어하지 않을 수 있는 강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항상 모든일에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긍정의 힘을 배웠습니다. 전 올해 꼭 멋진 바닷가옆에 멋진 2층 팬션을 짓어서 저희 어머님과 그리고 저희의 새가족이 되신 새 아버지가 그곳에서 고기도 잡으시고 농사도 지으시면서 팬션도 관리하시고 돈도 버시면서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살아오면서 수십번 자살 시도를 했고 그 직전까지 갔습니다. 그렇지만 그럴때마다 다시 마음을 새로 잡았습니다. 난 잘할 수 있다. 난 잘해 낼꺼다. 정말 멋진 사람이 되서 평생 우리때문에 고생하신 어머니 호강시켜 드리자. 세상에 나보다 가지지 못한 그들에게 빛과 소금과 같은 존재가 되자. "어떤한 상황과 환경속에서 꿈과 목표를 포기하지 않고 도전해 간다면 분명 우린 상황과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두려워 하지 마십시요. 그리고 행동하십시요. 그리고 죽도록 노력하십시요." 저도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해서 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전 나이는 올해 28살, 중국과 한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청년입니다.^^ 매일 눈도장만 찍다가 이렇게 오랜만에 짬을 내서 글을 남깁니다. 예전에 이곳에 내가 살아왔던 나의삶, 죽지 못해서 살았었다. http://pann.nate.com/b3690538 란 글을 써서 톡이 되었는데.. 그때 많은 분들의 격려과 충고가 저의 삶에 많은 용기와 힘이 되었습니다. 전 지금 중국광저우에 저희 사무실에 컴터 앞에 앉아서 이렇게 컴터 자판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아파트를 세내서 사무실 겸 집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어나면 바로 씻고 컴터 앞에 앉아서 일을 할 수 가 있습니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출근할 이유가 없어서 시간적으로 체력적으로 낭비를 줄일 수 있는거 같습니다. 설 연휴전에 한국에 들어갔습니다. 한국에 들어가서 했던 일은 매장과 사무실을 현재 사용하고 있는 지하로 이전을 했습니다. 건물 주인과 지하를 사용하는 조건으로 보증금도 절반 돌려 받고 월세도 현재의 절반만 부담하기로 했습니다. 지하실을 처음 가봤더니 엄청 나더군요. 악취와 그리고 온갖 쓰레기 벽에는 곰팡이가 껴있고 예전에 빠로 사용했던 곳 같은데 몇년동안 그대로 방치 된거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현재 사용하고 있는 일층 매장보다 3배는 크더군요. 그래서 과감히 오케이 했습니다. 그날부터 지하사무실을 청소하기 시작했습니다. 쓰레기를 모두 버리고 쓸고 닦고 그리고 물청소를 하고 페이트칠까지.. 그렇게 몇일을 청소 했더니 사무실이 쓸만해 졌더군요. 매장의 모든 제품들과 책상과 집기들을 옮기고 정리 했더니 예전 매장보다 훨씬 넓고 멋진 매장이 되었더군요. 그리고 현수막을 크게 제작해서 눈에 잘 띨 수 있도록 붙였습니다. 저희 회사는 오픈라인보다 온라인판매가 절대적이여서 매장을 지하로 옮겨도 그렇게 문제 될게 없었습니다. 전 그렇게 보증금 50% 돌려받고 월세 역시 이전 월세의 50%만 내면 되기에 매달 고정적으로 나가는 고정 지출을 줄일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 보니 한국경제 정말 장난이 아니더군요. 모든 뉴스와 신문들 많은 대기업기업들이 도산상태에 몰리고 그로 인해서 자연스럽게 하정기업들이 도산하고 그리고 인해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고 길거리로 내몰리는 상황들.. 환율 역시 2배로 올라서 중국에서 제품 제작과 사입 그리고 사무실월세 직원월급들 심지어 식비까지 모든게 2배로 오른 상태가 되었습니다. 갑자기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러다간 저 역시 망하는게 아닐지. 생각하고 고민했습니다. 이 상황을 잘 헤쳐 나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방법은 매달 지출되는 고정비용을 취소화하고, 현재 판매하고 있는 제품들 이외의 다른 아이템을 판매하고, 현재 판매하고 있는 제품들을 한국시장만 아닌 중국오픈마켓과 일본, 미국, 호주 등등 오픈마켓을 공략하자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시간날때 틈틈히 공부했던 일본어와 영어를 본격적으로 공부해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중국어,일본어,영어를 함께 가르치는 학원이 있더군요. 학원을 등록하고 일본어와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서점과 헌책방에 가서 읽을 만한 책들을 구입 했습니다. "존맥스웰의 생각의법칙", "리치처럼 승부하라", "시골의사의 부자경제학",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 "한국산업과 지역의 생촌전략 클러스터", "CEO처럼 행동하라", "마이크로트렌드", "불인차이나", "20대, 공부에 미쳐라", "리더여, 사자의 심장을 가져라", "경영 역사에서 길을 찾다," "앵무새죽이기", "하늘의 언어", 등등 30권에 가까운 책들을 몇일간 서점과 헌책방을 다니며 구입 했던거 같습니다. 그리고 많은 시간을 책을 읽었습니다. 한권 한권의 책을 읽어가면서 정말 많은 생각들을 저의 부족함들을 느끼게 해주더군요. 리더로써의 부족한 부분들, 사장으로써의 부족한 부분들, 자식으로써의 부족한 부분들, 친구도써의 부족한 부분들.... 책은 저의 스승입니다. 제가 책을 사랑하고 책을 사는 돈을 아까워 하지 않았던 계기가 저의 절친한 친구의 말 한마디 때문이였습니다. "책 사는 돈은 절대로 아까워 하지마라, 책 한권은 그 값의 100배 1000배의 가치가 있다." 저의 생활반경 어디에든 책이 있습니다. 방, 거실, 화장실, 차, 사무실, 가방 .. 언제 어디서든 책을 읽을 수 있도록..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티비나 컴터가 아닌 책을 읽게 됩니다. " 티비보는 시간에 컴터 하고 놀 시간에 책을 읽으면 난 그만큼 성장할꺼야!!" 그리고 새로운 아이템을 찾기 위해서 한국 오픈마켓과 중국의 오픈마켓에 가격을 비교하며 블루오션을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몇주간을 조사하고 검색하다 보니 블루오션 제품들이 보이더군요. 즉시 싸이월드 게시판에 그 제품의 이름을 딴 게시판을 만들었습니다. 그곳에 한국에 기존에 판매자들의 상품이미지와 가격정보들 등등을 올리며 현재 판매하고 있는 판매자들과 경쟁할 수 있는 전략들과 자료들을 수집하였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준비해야 할 부분입니다. 그렇게 한국에서의 시간들을 보내고 중국에 돌아 왔습니다. 3월달 매출을 재작년과 작년을 비교해 보니 20% 감소한 40000만원정도 되더군요.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주위분들과 아시는분들을 보니 매출이 50%~80% 감소 했다고 하던데 전 그나마 20%정도 감소하여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전 중국에 와서 한국에서 찾고 찾았던 새로운 아이템들을 직접 도매시장에 나가서 가격을 조사하고 퀄리트를 확인하고 제품을 사입 했습니다. 제품을 촬영하고 웹디자이너 직원이 상품이미지를 제작하고 한국의 직원이 제품을 올리며 판매를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배낭가방, 가방, 여성구두, 트레이닝복, 남성의류등을 새로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자동차용품,웨딩드레스,아동의류,수영복,스키복 등등을 조사하고 준비해서 판매할 계획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런 생각을 하실껍니다. 너무나 많은 분야를 하는게 아니냐? 한우물만 파야 하는게 아니냐? 저의 생각이 잘못 되었는지 모르지만 전 이 모든 아이템들이 같은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구성되어 있는 시장조사-제품사입-촬영-상품이미지작업-판매-문의상담-입금확인-배송-배송확인,고객만족확인의 이 시스템안에 새로운 아이템만 넣게 된다면 문제 될게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동안 너무나 이루고 싶었던 NBA스타일의 저희 로고가 들어간 자체 농구유니폼을 제작에 들어갔습니다. 먼저 샘플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샘플이 나온후에 바로 제작에 들어갈꺼 같습니다. 여기 제작비만 2천만원정도가 드는데 많이 고민하고 망설였습니다. 2천만원 들여서 제작한 제품들이 판매가 되지 않으면 어쩌나? 제 싸이에 이런 일기를 썼더군요 이곳에선 6시가 되면 눈이 떠진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나서 새벽교회에 가지 못하는게 아쉬울 따름이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기대감들, 새로운 시작에 대한 불안감들 두려움들, 그렇지만 난 안다. 그 모든 기대감들, 불안감들,두려움들 노력이란 단어가 꼭 필요하다는거. 많은 시간을 많은 노력을 이 일에 투자하고 쏟아 붙는다면 분명 좋은결과가 있을꺼라 생각한다. 비록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면 그거면 됐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동안 난 발전했으니.. 그냥 다시 시작하면 되는거다. 실패 할지라도 그 과정속에서 발전하면 되는거라 생각했습니다. 지금껏 그래 왔으니 또 한번 그런다고 달라질건 없을테니까요. 가장 중요한건 그동안 꿈꿔 왔던 목표했던 일들을 이룬다는게 가장 중요한거라 생각합니다. 올해 저의 목표는 저의 고향인 장흥에 멋진 바닷가옆에 멋진 2층팬션을 짓는겁니다. 수영장과 농구코트 간이 축구골대가 설치된 팬션. 그리고 그 팬션엔 평생 저희 3남매를 위해서 일만하신 어머님과 그리고 새 가족이 되신 새아버지가 그곳에 사시며 농사도 지으시고 고기도 잡으시고 팬션을 운영하며 그 수익으로 편하게 사시는게 저의 올해 목표입니다. 돈을 많이 벌든 적게 벌든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인간은 꿈을 목표를 먹고 사는거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정한 꿈과 목표를 위해서 하루 하루 살아가는 삶, 그 삶이 진정 멋진 삶이라 생각합니다. 전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목표가 무엇인지 모른다며 말하는 사람들이 가장 답답합니다. 커다란 꿈이 목표가 아닌 지금 당장 작은 꿈과 목표라도 만들고 실행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의 꿈도 목표가 커져 있는걸 발견하고 그 꿈과 목표를 위해서 공부하고 일하며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겁니다. 경제가 아무리 어렵다고 하지만 취업하기가 너무나 어렵다고 하지만 정말 자신이 죽도록 노력 한다면 그 모든걸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도 그 노력이 가장 필요한 시점이구요. 우리 모두 힘냅시다.^^ 1
내가살아왔던나의삶,죽지못해서살았었다.그이후..
눈팅만 하다가 이렇게 용기 내어서 글 올립니다.
전 올해 28살에 청년입니다.
현재 중국 광저우에서 스포츠관련 단체복과 의류 용품들을 직접 제작 또는 사입해서
한국의 매장과 다음까페 오픈마켓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전 2남1녀중 장남으로 장흥이라는 조그만한 농촌 시골마을에서 태어 났습니다.
아버진 알콜중독자 셨고 그런 아버지를 대신해서 어머니를 저희 3남매를 식당일을 하시며 우리를 키우셨습니다.
아버지는 날마다 술에 쩔어 사셨고 그럴때 마다 폭력과 집안의 물건들을 부수셨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폭력과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셨던 어머니는 제가 초등학교 3학년때 집을 나가셨습니다.
그때부터 집안일과 동생들을 제가 책임져야 했습니다.
신문배달을 시작 했습니다.
하루에 2시간씩 한달동안 꼬박 일하며 2만원이란 돈이 저의 월급이였습니다.
그 돈은 저희 가족의 한달 생활비였습니다.
반찬도 사고 당연히 아버지 술도 사드려야 했습니다.
시간은 흐르고 세월은 흐르더군요.
몇번이나 자살을 시도 했는지..
그렇지만 죽을 자신이 없었습니다. 두려웠습니다.
그렇게 다시 마음을 잡고 살았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때부턴 중국집에서 설거지와 배달을 했습니다.
토요일과 일요일엔 하루일당 1만5천원.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때부턴 노가대를 뛰었습니다.
힘든일인 만큼 일당도 많더군요. 하루일당 4만원
그렇게 전 저의 어린시절과 중학교 고등학교 사춘기 시절을
아버지의 술취한 모습과 폭력을 당하며 공부와 노가대를 병행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전 꿈과 비젼이 있었습니다.
체육선생님이 되고 싶었습니다.
체육선생님이 되기 위해선 대학교를 가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전 실업계를 다녔던 탓에 수능에서 제가 원하는 대학을 갈만한
점수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 3학년때 위장취업을 나가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노가다를 뛰었습니다.
그 돈으로 재수학원에 등록을 하고 올 수능시험을 위해서 죽도록 공부 했습니다.
전 당당하게 제가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습니다.
수능도 그리고 실기 모두다 제가 원하는 만큼에 점수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대학에 합격하니 그 다음부터가 문제더군요.
그래서 또 노가다를 뛰었습니다.
그리고 부족한 돈은 학자금 대출을 받아서 대학에 다닐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행복했던 대학생활은 1학기만에 끝나고 말았습니다.
당연히 2학기 등록금을 낼 수 없어서 학교를 포기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곤 정말 많은 일들을 했습니다.
노가다, 충전소, 주유소, 세차장, 공장, 배달, 용역청소, 하우수 등등
그리고 농구가 너무 좋아서 만들었던 까페가 많은 회원들이 가입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 그 까페에서 농구화를 공동구매를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자금은 없었지만 무대포 정신으로 그당신 농구화를 판매하는 인터넷쇼핑몰들의 전화번호를 모두 수집해서 몇일간 전화한 끝에 함께 공동구매를 추진할 업체를 찾았습니다.
(그 당시 저희 까페 회원수가 2만5명에서 3만명정도 되는걸로 기억합니다.)
미리 그 업체에서 농구화 리스트를 받고서 그 리스트를 가지고 까페에서 공동구매를
추진 했습니다.
먼저 입금을 받고 일정수량의 주문을 받으면 제가 컬레당 1~2만원의 수수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성공적으로 공동구매는 진행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서는 제가 직접 그 업체에 제품을 수입해서 단독으로 공동구매를 진행 할 수 있었습니다.
전 그렇게 제 인생의 첫 사업을 시작 했습니다.
어린나이에 나름대로 많은 돈을 벌었던거 같습니다.
차도 사고 술집, 피시방, 보쌈족발집을 차례대로 운영했습니다.
그렇지만 너무나 어린나이에 욕심과 의욕만이 앞서서 였던지 모두 망하고 말았습니다.
거기다 친구에게 사기까지 당해서 2천만원 가까이의 빚도 지게 되었습니다.
정말 죽고 싶도록 암울했던 나날들..
몇달간을 술에 쩌들어 살았습니다.
그렇지만 이대로 포기 할 수 는 없었습니다.
인생의 경험이라 생각하고 인생수업비라고 생각하고 다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작정 도서관에 가서 책만 읽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읽게된 중국관련 무역 서적에서 전 비젼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 2년전에 중국 광저우에 왔습니다.
저희 자체 브랜드를 출시할 목표를 가지고 이곳 중국에 왔습니다.
단돈 2백만원을 가지고 이곳에 왔습니다.(비행기값, 3달치 집값을 주니 얼마 남지 않더군요)
중국어 한마디 하지 못하고 아는 사람 하나 없었지만 전 자신 있었습니다.
모이자란 중국조선족 싸이트에서 알게된 조선족을 직원으로 쓰면서 이곳 중국 생활을 시작 되었습니다.
정말 죽어라 일하고 공부 했습니다.
항상 집안엔 중국어 강의가 컴터에서 흘러 나왔고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일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는 동안에도 저에 귀에 이어폰은 빼지 않고 중국어를 공부 했습니다.
중국 도매시장에 나와있는 축구복과 농구복을 사진으로 찍어서 올렸습니다.
한국에 사무실이 따로 없었기에 단체복 주문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서 전 한달에 500만원 이상의 수익을 올렸습니다.
몇달되지 않아선 순이익이 천만원가까지 벌때도 있었습니다.
모든 빛을 정산하고 한국에 매장겸 사무실을 오픈 했습니다.
촬영과 포토샾이 가능한 직원들도 뽑고 스포츠회사 다운 모양을 갖추려고 노력 했습니다.
그렇게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해서 일했습니다.
작년엔 그동안 너무나 사고 싶었던 아파트와 차를 장만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주식이 많이 떨어졌지만 나름 중국주식에 관련된 공부를 해서
중국만과기업 주식도 2천만원 투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매달 20만원씩 들어가는 펀드와 적금..
올 저의 목표는 영어공부를 위해서 필리핀에 가는것과 일어공부를 위해서 일본에 가는겁니다. 중국어를 공부하고 나니 정말 커다란 매력이 있더군요.
그 나라의 문화에 대해서 배울 수 있고 많은 중국 사람들을 사귀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의 가장 큰 목표는 저희 고향인 장흥에 멋진바다가옆에 2층 팬션을 짓는겁니다.
저희 어머니는 제가 초등학교 5학년때 돌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28살이 되시기까지 식당일과 수많은 일들을 하시며 저희 3남매를 지켜 주셨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대학교때 돌아 가셨습니다.
나이를 먹고 정말 죽이고 싶도록 미웠던 아버지가 그립습니다.
사람이 나빴던게 아니라 술이 나빳던 겁니다.
지금은 어려서부터 잡초가 될 수 있게해 주셨던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전 아버지 덕분에 죽을만큼 힘들일이 아니며 힘들어하지 않을 수 있는 강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항상 모든일에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긍정의 힘을 배웠습니다.
전 올해 꼭 멋진 바닷가옆에 멋진 2층 팬션을 짓어서 저희 어머님과 그리고 저희의 새가족이 되신 새 아버지가 그곳에서 고기도 잡으시고 농사도 지으시면서 팬션도 관리하시고 돈도 버시면서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살아오면서 수십번 자살 시도를 했고 그 직전까지 갔습니다.
그렇지만 그럴때마다 다시 마음을 새로 잡았습니다.
난 잘할 수 있다. 난 잘해 낼꺼다.
정말 멋진 사람이 되서 평생 우리때문에 고생하신 어머니 호강시켜 드리자.
세상에 나보다 가지지 못한 그들에게 빛과 소금과 같은 존재가 되자.
"어떤한 상황과 환경속에서 꿈과 목표를 포기하지 않고 도전해 간다면
분명 우린 상황과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두려워 하지 마십시요. 그리고 행동하십시요. 그리고 죽도록 노력하십시요."
저도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해서 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전 나이는 올해 28살, 중국과 한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청년입니다.^^
매일 눈도장만 찍다가 이렇게 오랜만에 짬을 내서 글을 남깁니다.
예전에 이곳에 내가 살아왔던 나의삶, 죽지 못해서 살았었다. http://pann.nate.com/b3690538 란 글을 써서 톡이 되었는데..
그때 많은 분들의 격려과 충고가 저의 삶에 많은 용기와 힘이 되었습니다.
전 지금 중국광저우에 저희 사무실에 컴터 앞에 앉아서 이렇게 컴터 자판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아파트를 세내서 사무실 겸 집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어나면 바로 씻고 컴터 앞에 앉아서 일을 할 수 가 있습니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출근할 이유가 없어서 시간적으로 체력적으로 낭비를 줄일 수 있는거 같습니다.
설 연휴전에 한국에 들어갔습니다.
한국에 들어가서 했던 일은 매장과 사무실을 현재 사용하고 있는 지하로 이전을 했습니다.
건물 주인과 지하를 사용하는 조건으로 보증금도 절반 돌려 받고 월세도 현재의 절반만 부담하기로 했습니다.
지하실을 처음 가봤더니 엄청 나더군요.
악취와 그리고 온갖 쓰레기 벽에는 곰팡이가 껴있고 예전에 빠로 사용했던 곳 같은데 몇년동안 그대로 방치 된거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현재 사용하고 있는 일층 매장보다 3배는 크더군요.
그래서 과감히 오케이 했습니다.
그날부터 지하사무실을 청소하기 시작했습니다.
쓰레기를 모두 버리고 쓸고 닦고 그리고 물청소를 하고 페이트칠까지..
그렇게 몇일을 청소 했더니 사무실이 쓸만해 졌더군요.
매장의 모든 제품들과 책상과 집기들을 옮기고 정리 했더니 예전 매장보다 훨씬 넓고 멋진 매장이 되었더군요.
그리고 현수막을 크게 제작해서 눈에 잘 띨 수 있도록 붙였습니다.
저희 회사는 오픈라인보다 온라인판매가 절대적이여서 매장을 지하로 옮겨도 그렇게 문제 될게 없었습니다.
전 그렇게 보증금 50% 돌려받고 월세 역시 이전 월세의 50%만 내면 되기에 매달 고정적으로 나가는 고정 지출을 줄일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 보니 한국경제 정말 장난이 아니더군요.
모든 뉴스와 신문들 많은 대기업기업들이 도산상태에 몰리고 그로 인해서 자연스럽게 하정기업들이 도산하고 그리고 인해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고 길거리로 내몰리는 상황들..
환율 역시 2배로 올라서 중국에서 제품 제작과 사입 그리고 사무실월세 직원월급들 심지어 식비까지 모든게 2배로 오른 상태가 되었습니다.
갑자기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러다간 저 역시 망하는게 아닐지.
생각하고 고민했습니다.
이 상황을 잘 헤쳐 나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방법은 매달 지출되는 고정비용을 취소화하고, 현재 판매하고 있는 제품들 이외의 다른 아이템을 판매하고, 현재 판매하고 있는 제품들을 한국시장만 아닌 중국오픈마켓과 일본, 미국, 호주 등등 오픈마켓을 공략하자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시간날때 틈틈히 공부했던 일본어와 영어를 본격적으로 공부해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중국어,일본어,영어를 함께 가르치는 학원이 있더군요.
학원을 등록하고 일본어와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서점과 헌책방에 가서 읽을 만한 책들을 구입 했습니다.
"존맥스웰의 생각의법칙", "리치처럼 승부하라", "시골의사의 부자경제학",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 "한국산업과 지역의 생촌전략 클러스터", "CEO처럼 행동하라", "마이크로트렌드", "불인차이나", "20대, 공부에 미쳐라", "리더여, 사자의 심장을 가져라", "경영 역사에서 길을 찾다," "앵무새죽이기", "하늘의 언어", 등등 30권에 가까운 책들을 몇일간 서점과 헌책방을 다니며 구입 했던거 같습니다.
그리고 많은 시간을 책을 읽었습니다.
한권 한권의 책을 읽어가면서 정말 많은 생각들을 저의 부족함들을 느끼게 해주더군요.
리더로써의 부족한 부분들, 사장으로써의 부족한 부분들, 자식으로써의 부족한 부분들, 친구도써의 부족한 부분들....
책은 저의 스승입니다.
제가 책을 사랑하고 책을 사는 돈을 아까워 하지 않았던 계기가
저의 절친한 친구의 말 한마디 때문이였습니다.
"책 사는 돈은 절대로 아까워 하지마라, 책 한권은 그 값의 100배 1000배의 가치가 있다."
저의 생활반경 어디에든 책이 있습니다.
방, 거실, 화장실, 차, 사무실, 가방 .. 언제 어디서든 책을 읽을 수 있도록..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티비나 컴터가 아닌 책을 읽게 됩니다.
" 티비보는 시간에 컴터 하고 놀 시간에 책을 읽으면 난 그만큼 성장할꺼야!!"
그리고 새로운 아이템을 찾기 위해서 한국 오픈마켓과 중국의 오픈마켓에 가격을 비교하며 블루오션을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몇주간을 조사하고 검색하다 보니 블루오션 제품들이 보이더군요.
즉시 싸이월드 게시판에 그 제품의 이름을 딴 게시판을 만들었습니다.
그곳에 한국에 기존에 판매자들의 상품이미지와 가격정보들 등등을 올리며 현재 판매하고 있는 판매자들과 경쟁할 수 있는 전략들과 자료들을 수집하였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준비해야 할 부분입니다.
그렇게 한국에서의 시간들을 보내고 중국에 돌아 왔습니다.
3월달 매출을 재작년과 작년을 비교해 보니 20% 감소한 40000만원정도 되더군요.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주위분들과 아시는분들을 보니 매출이 50%~80% 감소 했다고 하던데 전 그나마 20%정도 감소하여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전 중국에 와서 한국에서 찾고 찾았던 새로운 아이템들을 직접 도매시장에 나가서 가격을 조사하고 퀄리트를 확인하고 제품을 사입 했습니다.
제품을 촬영하고 웹디자이너 직원이 상품이미지를 제작하고 한국의 직원이 제품을 올리며 판매를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배낭가방, 가방, 여성구두, 트레이닝복, 남성의류등을 새로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자동차용품,웨딩드레스,아동의류,수영복,스키복 등등을 조사하고 준비해서 판매할 계획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런 생각을 하실껍니다.
너무나 많은 분야를 하는게 아니냐? 한우물만 파야 하는게 아니냐?
저의 생각이 잘못 되었는지 모르지만 전 이 모든 아이템들이 같은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구성되어 있는 시장조사-제품사입-촬영-상품이미지작업-판매-문의상담-입금확인-배송-배송확인,고객만족확인의 이 시스템안에 새로운 아이템만 넣게 된다면 문제 될게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동안 너무나 이루고 싶었던 NBA스타일의 저희 로고가 들어간 자체 농구유니폼을 제작에 들어갔습니다. 먼저 샘플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샘플이 나온후에 바로 제작에 들어갈꺼 같습니다.
여기 제작비만 2천만원정도가 드는데 많이 고민하고 망설였습니다.
2천만원 들여서 제작한 제품들이 판매가 되지 않으면 어쩌나?
제 싸이에 이런 일기를 썼더군요
이곳에선 6시가 되면 눈이 떠진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나서 새벽교회에 가지 못하는게 아쉬울 따름이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기대감들,
새로운 시작에 대한 불안감들 두려움들,
그렇지만 난 안다.
그 모든 기대감들, 불안감들,두려움들
노력이란 단어가 꼭 필요하다는거.
많은 시간을 많은 노력을 이 일에 투자하고 쏟아 붙는다면
분명 좋은결과가 있을꺼라 생각한다.
비록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면 그거면 됐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동안 난 발전했으니..
그냥 다시 시작하면 되는거다.
실패 할지라도 그 과정속에서 발전하면 되는거라 생각했습니다.
지금껏 그래 왔으니 또 한번 그런다고 달라질건 없을테니까요.
가장 중요한건 그동안 꿈꿔 왔던 목표했던 일들을 이룬다는게 가장 중요한거라
생각합니다.
올해 저의 목표는 저의 고향인 장흥에 멋진 바닷가옆에 멋진 2층팬션을 짓는겁니다.
수영장과 농구코트 간이 축구골대가 설치된 팬션.
그리고 그 팬션엔 평생 저희 3남매를 위해서 일만하신 어머님과 그리고 새 가족이 되신 새아버지가 그곳에 사시며 농사도 지으시고 고기도 잡으시고 팬션을 운영하며 그 수익으로 편하게 사시는게 저의 올해 목표입니다.
돈을 많이 벌든 적게 벌든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인간은 꿈을 목표를 먹고 사는거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정한 꿈과 목표를 위해서 하루 하루 살아가는 삶,
그 삶이 진정 멋진 삶이라 생각합니다.
전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목표가 무엇인지 모른다며 말하는 사람들이 가장 답답합니다.
커다란 꿈이 목표가 아닌 지금 당장 작은 꿈과 목표라도 만들고 실행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의 꿈도 목표가 커져 있는걸 발견하고 그 꿈과 목표를 위해서 공부하고 일하며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겁니다.
경제가 아무리 어렵다고 하지만 취업하기가 너무나 어렵다고 하지만
정말 자신이 죽도록 노력 한다면 그 모든걸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도 그 노력이 가장 필요한 시점이구요.
우리 모두 힘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