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행복을 꿈꾼다.2

행복찾기2004.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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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아앙-

사방을 지워버리는 환한 불빛과 찢어질듯한 경적음. 불과 십여 센티의 거리를 두고 가까스로 충돌을 피할 수 있었다. 다행이 뒤따르는 차가 없었기에 망정이지 안그랬다면.. 휴~하는 안도의 한숨이 절로 새어나온다.

고가 중턱, 차를 한 쪽에 세우며 비상등을 켰다. 딸깍딸깍 소리를 내며 깜빡이는 등.. 스폰지가 물기를 머금듯 내 몸이 흠뻑젖어버렸나보다. 속살에 닿는 팬티며 런닝의 습기가 짜증스럽다. 고가도로 저 끝에서 한 순간에 다가선 밤바람, 4월 밤기운이 이리도 시리게 느껴질수 있다는게 놀라울따름이다.

심한 갈증도 느껴지지만, 그보다 담배 한 모금이 간절하다. 양복 윗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담배가.... 라이터만 잡힌다.
[해피엔드]
두어 시간 전, 들렀던 단란주점에서 줏어온 것이다. 작년에 납품업체 영업담당하는 놈이 접대한다길래 들린 이후 처음이다. 길어봐야 두, 세시간 밖에 안되는 시간동안 퍼마셔대는 술값이며 봉사료가 내 한달 월급의 반이상을 차지하니 내 주머니를 털어 간다는 건 꿈도 못꿀일이다. 오늘도 수억짜리 오더를 받아온 턱을 낸다며 부장이 마련한 자리였으니 가능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불과 몇 시간전인데..그곳에서 뭘 했더라.....


일진이 좋은 날임에 분명하다. 지난해에 왔을때 마담은 40을 훌쩍넘긴 쭈글쭈글한 여자였는데, 그새 바뀌었는지 지적이며 훨씬 젊어보이는..아니, 오히려 어려보이기까지한 마담으로 바뀌어있다. 테이블에 올려진 양주도 이름만 들었지 한 모금 마셔본적도 없는 고급품이다. 맥주 따위는 거들떠보고 싶지도 않다. 오로지 저 비싼 양주로 내 목을 축이고 축이고 축이리라 마음먹었다. 당연히 두명의 여자를 불렀는데.. 오늘이 내 생일은 아닐까 의심할만한 기분이다. 죽여주는 마담과 고가의 양주, 더불어 곁에서 은근히 달라붙으며 술을 따르는 아가씨의 빵빵한 몸매.. 마시는 척하며 테이블 밑에 숨겨둔 쓰레기통에 몰래 버리는 양주가 아깝다는 생각마저 들지 않을 정도로 내 기분은 꽤나 업그레이드 되어있다.

삐리리리...삐리리리....

소파 한쪽에 벗어둔 양복주머니에서 핸드폰 벨이 울렸다.
" 어머... 이게 뭐야...아직도 무전기 들고 다니는 천연기념물이 있네...
양복 주머니에서 내 핸드폰을 꺼내주던 아가씨의 표정이 약간 짜증스럽다.
" 에이 씨... 어떤 xx가 분위기 망치게 전화질이야....
억지로라도 호기를 부리고 싶은 기분이다. 술이나 따르는 계집에게 쪽팔림을 당했다는 것보다 그런 원인을 제공한 대상에 불만이 더 크다.
" 여보세요...
" 아... 아빠.....어떡해...흑흑..
딸이다. 우는건가....젠장... 짜증이 울컥 밀려온다. 생일이라해도 믿을것같은 날인데 평소에는 말 한마디 붙이기도 힘들게 쌀쌀맞더니, 가뜩이나 좋은 기분 완전히 잡치게 만들어버린다.
" 뭐야... 무슨 일인데...
" 엄...엄마가... 흑흑...
엄마, 젠장...정말 젠장이다. 도대체가 도움이라곤 전혀 안되는 여편네다. 결혼 전만해도, 아니 딸년을 낳기 전만해도 어느누구 부럽지않게 잘빠진 몸매에 지적이던 여자였건만 지금은 보기만해도 속이 뒤틀릴 정도까지 변해있다. 무식하고 구질구질하고.. 오죽했으면 양복 색깔에 맞춰 양말 하나도 제대로 못 챙겨줄까...
" 호호호.. 오빠, 오늘 초상나는 거 아냐...
부장 옆에 앉은 계집이 비꼬듯이 말을 뱉는다.
" 엄마가 왜... 어디 떨어져 죽기라도 했어?
" 아아앙....
딸년은 대꾸도 없이 울기만 한다. 뭐라 말하든 들어주고 싶은 기분도 아니다. 휴대폰을 꺼버리고 밧데리마저 뽑아버렸다.
[ 그 애미에 그 딸년 아니랄까봐 기분잡치게 하는 꼬락서니하곤....]

한 밤중이라 그런지, 고가주변에 차량 불빛은 눈에 띄질 않는다. 오로지 리듬감마저 갖춘 비상등 불빛만 깜빡거릴뿐... 그래도 혹시나 싶어 좌우를 한번 살피곤, 사고가 날 뻔했던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중앙선 위에 프라스틱 말뚝이 박혀있어야 할 자리엔 밑둥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하나...둘.... 휴.. 11개나 된다. 저것들이 다 깨져나갈때까지도 못알아챘다니 간담이 서늘하다. 고급술이라 좋다며 너무 많이 마셨기 때문인지, 어깨에 닿았던 아가씨의 탄력적인 촉감의 여운탓인지.. 아니, 바닥에 사진만 떨어지지 않았어도.. 투명한 프라스틱곽에 박혀있는 여편네와 딸년의 다정한 모습을 찍힌 사진을 줍기위해 몸을 구부리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따위는 일어나지 않았을텐데....

결혼 따위를 왜 하는지 모르겠다. 독신일때는 지금보다 적은 월급으로도 먹고 사는것 뿐만 아니라, 적어도 두세달에 한번 정도는 맘 편하게 여행도 다닐 수 있었는데, 지금은 월급날 외식한번하기도 버겁다. 외식따위를 하면 또 뭣하겠나.. 기껏 뱃속에 기름때라도 벗기게해주면 맛있게나 먹을것이지, 고기가 질기네 어쩌네하는 투정에 이돈이면 일주일 반찬값이 되고도 남니마니... 그럴때마다 정말 밥맛 떨어진다. 전에는..몇 년전만해도 그렇지 않았는데 요즘은 정말 싫다. 구질구질한 꼬락서니....

딸년은 또 어떠한가. 학생이면 공부나 할것이지 이 배우가 어쩌니 저 가수가 어쩌니하는 소리나 지껄이고, 내가 그 나이때엔 그러지 않았는데.. 지 애미를 닮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 멍청한 생각만 머리에 박힐수 있단 말인가...

돈벼락이라도 떨어졌으면 좋겠다. 10억만 뚝 떨어지면 미련없이 반 뚝 떼어주며 당장에 이혼해버리고 싶다. 내 하고 싶은대로 마음 편하게 놀러도 다니고, 책도 읽고.. 지적인 여자만나 차도 마시며 여유를 즐기고 싶다. 아.... 결혼 따위를 왜 했을까....담배.. 근데 담배는 어딨는거야.... 아까 차 시동걸면서 조수석에 던져 두었던가....


끄아악....

엉? 뭐...뭐야.. 이 불빛은....




치이익....하는 소리가 차 앞쪽, 본넷트에서 들려온다. 눈 앞이 조금 흐리고, 이마에서 뭔가 끈적한 게 흘러내린다. 핸들을 잡고 있는 내 손은 의지와 상관없이 심하게 떨린다.
한 남자가... 반대편 길가에 나뒹굴고 있다. 다리가 부러졌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자세로 꼬여있다. 더불어 내 차 왼쪽 라이트도 깨져버렸는지 불빛을 발하지 않는다. 젠장.... 왜 하필 나일까.. 왜 하필 오늘일까....

지금쯤 아내는 아이를 낳았을까. 몹시 힘들텐데.. 손이라도 잡아줘야하는데.... 피붙이 하나 없이 분만실에 누워있으면 정말 무서울텐데... 아... 눈물은 왜 흐르는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