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말산책 21 - 식욕

바른손2009.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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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욕

 

초인종을 누르니

아내의 반응 속도

갑절이나 빠르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귀 세우고 기다렸는지

통통 빠른 발걸음 소리

열린 문틈으로

화안한 술래의 얼굴

 

이런 땐

배가 고프다.

 

 

최기종 시집 <<나무 위의 여자>> 중에서

 

 

군말

 

아파트 초인종을 누를 때마다 귀를 기울인다. 물론 누구나 안쪽의 반응을 기다리지만 내 경우는 단순히 개문만을 바라지 않는다. 문이 열리면서 드러날 술레의 얼굴 표정을 예측하는 것이다.

우리집에서 초인종을 누르면 언제나 아내가 반응한다. 빈 집일 때는 당연히 반응이 없다. 물론 그런 경우는 아주 드믈다. 나는 초인종을 누를 때마다 아내의 발걸음 소리를 측량한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백이란 숫자를 세면서 아내의 마음 상태를 헤아린다.

통통 빠르게 달려오는 날은 아내에겐 구름 한 점 끼어 있지 않다. 보통 걸음일 때는 의무감만 남아 있는 날이다. 실내화 찍찍 끌리는 소리가 날 때는 무언가 불만스런 날이고 깨금발로 발소리 없이 다가올 때는 장난기가 발동한 날이다. 어쩌다 아내가 감감 반응이 느린 때도 있다. 그때는 아주 피곤하거나 먹구름이 가득한 날이다.

대부분 아내는 통통거리는 발걸음으로 반응 속도가 빠르다. 귀 세우고 기다렸는지 초인종 소리가 나자마자 달려 온다. 열린 문틈으로 화안한 술레의 얼굴! 달덩이처럼 둥글고 야릇하다. 그런 때는 나도 빛나는 햇님이 된다. 그런 날은 왜 이리 사랑이 고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