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행복을 꿈꾼다 3

행복찾기2004.04.23
조회122

" 동이엄마... 동이엄마...
봄날의 따사로운 햇살을 뭉개며 내 뒤를 쫓아오는 목소리에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걸을때마
다 이리 저리 출렁대는 가슴과 늘어진 뱃살을 어찌 저리도 잘 추스리며 뛰어올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나흘 전, 1톤 트럭도 마저 못채운 단촐한 살림살이로 이사를 온 한살 아래의 지하방살이 동지이다. 첫
인상이 썩 마음에들지 않아 그냥 모른척 지내려했는데, 꽤나 수다떨기 좋아하는 이 여자 탓에 불과 몇
시간 지나지않아 말을 터놓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내가 한 살 더많다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 시장갔다 오는거야, 안보이던데...
" 허... 숨차 죽는줄 알았네.... 무슨 생각한거야, 골백번도 넘게 불렀는데..
" 그냥 뭐...
솔직히 뚱뚱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다만  어울리지 않게 비대한 가슴과 늘어진 엉덩이가 거추
장스러워 보일뿐...
오늘 밤 집들이를 한다더니 까맣고 하얀 봉지가 한 가득 손에 들려있다. 그 중에 제일 무거워보이는
것 두개를 받아들었다.
" 살뺀다고 안했어? 훌라후프 산다고 난리더니..
" 흐... 내 팔자에 살은 무슨.. 그냥 푸짐한 게 복이겠거니 하기로 했어... 201호 아줌마도 살빼는 거 그만
 포기하래...히히....
" 근데 원래 이름이 뭐야...
" 원래 이름....? 내 이름.....? 왜....?
이상한 일이다. 왜 결혼한 여자들은 자기 이름을 가르쳐주는 것을 꺼려하는 걸까...
끼익...
잔뜩 녹이 슨 철문을 밀며, 기둥 한쪽에 나란히 박힌 문패를 대신한 아크릴판을 쳐다보았다.
R-01.....R-02....
지하방엔 왜 R이라는 이니셜을 쓰는걸까...R... REMEMBER는 절대 아니겠지....
저녁상에 올릴 구수한 청국장을 끓이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 여보세요....네, 누구요...?
거실에서 아홉시 뉴스를 보던 남편이 전화를 받았는데, 낯선 사람인가보다.
" 아뇨.. 그런 사람없는데요....
잘못 걸려온 전화인가.. 몇마디를 주고 받는가 싶더니 수화기를 내려놓고는, 소파 깊숙히 몸을 묻어버
리는 남편
보글보글 소리를 내며 끓는 청국장, 넓직하게 잘라넣은 두부에 간이 배이고, 뜨거운 국물을 피하려는
지 콩 하나가 이리 저리 헤엄치고 있다.
" 누구 찾는 전화예요?
" 몰라... 장.. 누구라는데... 잘못 걸려온거야..
" 장...?
청국장을 내가 손수 끓이리란 생각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사실 결혼 전에는 청국장이란게 있다는
 것도 모르면서 살았다. 결혼 후. 남편도 청국장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었는데, 언젠가 점심때 회사 동
료들과 한 번 먹게된 이후엔 한달에 두 번정도는 꼭 찾는다. 질퍽한 국물이며, 몇 달을 닦지 않지 않아
 곪아버릴 지경인 발냄새라도 이보다 더하진 않을것 같건만...
장..... 청국장... 장소팔..팔자.. 자신..신체.. 체질... 질서.. 서랍장... 장현주...
" 여보... 전화말에요... 혹시, 장현주 바꿔달라고 안해요?
".....
잠시 남편의 움직임이 멈추는 듯하다. 고개를 돌려 날 바라보는 그 눈빛이 떨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불에 데인듯 벌겋게 달아오는 남편의 귓볼...
" 엄마, 아직 다 안됐어? 배고파 죽을 것 같단말야...
방에서 공부한다며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던 아들이 배를 손으로 누르듯 비비며 시위를 한다.
" 으응.. 그.. 그래. 다됐으니깐 식탁에 앉어.
등을 돌려 부글부글 끓는 청국장을 바라본다. 두부에 아주 작은 구멍들이 수없이 많이 뚫려있었던가..
그 깊이 만큼 간이 배어 국물에 덜썩거린다. 청국장 냄새에 구역질이 날 것만 같다. 속이 매스껍고, 눈
앞이 흐려지는 걸 막을 도리가 없다.
틱틱대는 소리를 내며 라이터로 담배불을 붙이는 남편...숨소리조차 내지 않고는, 현관문을 열고 슬며
시 밖으로 나간다.
엄마.... 여보..... 며느리... 아줌마.... 미스장... 장현주... 장현주... 청국장....
청국장 국물이 눌어버릴 것만 같은데... 눌어버리면 냄새가 더 지독해지는데... 불을 낮추지 못하고 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