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소리지? 슬금슬금 핸드폰을 찾아 시간을 확인하니 벌써 낮 1시도 넘어 있었다. 화들짝 놀라 일어나는데, 밖에서 우 기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기자, 안에 있어?"
아니, 벌써 왔나?
"이 기자?"
"응? 응. 나 여기 있어."
"빨리도 와 있네. 진짜 나 보고 싶었나 보다. 얼른 나와. 짐 싸는 거 도와준다며."
"응, 나갈게."
나는 거울을 보면서 대충 머리를 빗었다. 세수도 못해서 얼굴이 엉망진창이었다. 언제쯤 온다고 전화라도 하고 왔으면 이런 모습은 안 보였을 텐데.
평소에는 아침에 막 일어난 험악한 모습으로 우 기자를 봐도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신경이 쓰였다. 나는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거의 뛰다시피 욕실로 갔다.
"아침에 떡국은…."
우 기자가 말을 하다가 내가 하도 황급히 뛰어가니까 말을 멈추고는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얼른 문을 쾅 닫고 욕실로 들어갔다. 세수를 하면서 거울을 보는데 얼굴이 말이 아니게 부어 있었다. 차라리 싸워서 누구한테 몇 대 맞았다고 하는 편이 설득력 있을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냥 자고 일어났더니 얼굴이 이렇게 부었다고 하면 누가 믿는담.
스스로 내가 예쁘다 못 생겼다, 그런 생각은 안 하고 살아왔다. 거울 보는 시간도 아까울 정도로 열심히 살았던 게 사실이고, 한편으로는 예쁘게 보이고 싶은 사람이 없었기도 했다. 그런데 문득 거울을 보니 정말이지, 나는 예쁘지가 않았다. 게다가 착하지도 않다. 내가 우 기자 앞에서 내세울 수 있는 건 뭐가 있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닌 존재로 느껴지는 걸까. 갑자기 자기가 굉장히 못 생긴 사람 같고 못난 사람 같은 생각이 드는 걸까. 내가 생각해도 나는 사랑 받기에 너무 형편없는 존재였다. 비참한 기분으로 세수를 마치고 나오는데, 우 기자가 식탁 의자에 앉아서 흥미롭게 내 쪽을 보고 있었다.
"하하, 정말 부끄러움을 모르는 여자야. 이 기자는."
"응?"
"그렇게 급했어? 하하하."
으잉? 아닌데…. 정말 민망하다. 이게 뭐람.
"아무리 같이 사는 사이라지만 내 앞에서 너무 부끄러움을 안 타는 거 아냐?"
"잠깐만."
방에 들어와 화장품을 바르는데 기분이 정말 울적했다. 휴우. 남의 마음도 모르면서 그런 말을 하다니.
그나저나 우 기자가 나간다는데,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 말려야 하나? 두 번이나 말렸는데 그렇게 못 알아들으니 아예 노골적으로 나가지 말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잡는다고 무슨 수가 생기는 것도 아닌데…. 아, 정말 고민된다.
처음에 이 집에 들어오지 말라고 할 때는 그렇게 들어온다고 난리더니, 몇 달 살지도 않고 나간다는 건 또 뭐야. 이렇게 쉽게 나갈 거면 들어온다는 말이나 하지 말지. 그래도 일단은 뭔가 얘기라도 해봐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뭐라고 말을 하나?
"이 기자, 내 방에 들어와 본 적 없지?"
내가 마루로 나가자 우 기자가 자기 방문을 열며 말했다.
"응."
"나 말고 다른 남자 방에 들어가 본 적은 있어?"
문득 우 기자가 정색을 하며 진지하게 물었다. 내가 고개를 가로젓자 우 기자가 씩 웃었다.
"어, 그래? 영광인 걸?"
밖에서 들여다보이는 우 기자의 방은 한눈에 보기에도 말쑥했다. 진짜 깔끔하구나, 저 남자. 하긴, 집안일 가지고 잔소리하는 거 보면서 진작 알았지.
"하마터면 질투할 뻔했네, 하하하. 들어와."
조심조심 그의 방 안에 한 발씩 들여놓았다. 어제 우 기자의 코트에서도 맡아졌던 익숙한 냄새가 전해져왔다.
"처음엔 아주 작정을 하고 이사를 와서 원래 집에 있던 책이랑 옷이랑 다 가져 왔는데, 이렇게 빨리 짐을 뺄 줄 몰랐네? 그럴 줄 알았으면 간단한 것들만 들고 오는 건데. 역시 사람 일은 알 수가 없어?"
엉거주춤 서 있는 나를 보더니, 우 기자가 책상 의자에 앉으라고 권했다.
"나는 박스를 좀 구해올게. 잠깐만 앉아서 기다려."
우 기자가 나가고 나서 나는 혼자 남아 우 기자의 방을 휘휘 둘러보고 있었다. 그러다 책상 위에 있는 사진이 눈에 띄었다. 흑백 사진. 컴퓨터 배경 화면에도 있던 바로 그 사진이었다. 이 여자 때문인가? 우 기자가 더 이상 여기 살 수 없다고 하는 건. 사진을 손에 들고 그녀와 눈을 맞춰 보았다.
사랑하나요, 그를? 우지훈 기자를 사랑하나요? 나도 그런 것 같은데…. 당신의 마음과 나의 마음은 크기를 비교할 수 있을까요? 아니, 중요한 건 우 기자의 마음이죠. 당신을 책상 위에 두고 컴퓨터 배경에 두고, 그 남자는 늘 이렇게 눈을 맞추고 있었네요.
나는 차라리 눈을 감았다. 휴우…. 그래도 그냥 이렇게 포기해야 하나? 어쩔 수 없더라도, 그래도….
"책부터 챙기려구."
어느새 우 기자가 돌아왔다. 나는 놀라서 눈을 반짝 떴다. 우 기자는 내가 사진 액자를 손에 들고 있는 것을 보더니 장난스럽게 웃었다.
"내 주위 여자에 관심이 많네?"
나는 민망해하며 얼른 액자를 내려놓았다.
"내 주위 여자한테 관심이 있는 건, 나한테 관심 있다는 뜻 아닌가?"
내가 가만히 있자 그가 하하 웃었다.
"농담이야, 농담. 요즘 이 기자, 부쩍 농담이 안 통해요."
그는 책을 박스에 넣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진담이 잘 통하냐? 글쎄올시다? 하하하."
"우 기자."
그는 열심히 책을 챙기면서 대답했다.
"왜?"
"나, 배고파."
"그래? 아침에 떡국은 먹었어?"
"으응…. 근데 지금 1시도 넘었잖아. 배고파."
"배고프면 진작에 얘기하지. 아까 수퍼에 박스 구하러 갈 때 얘기했으면 뭐라도 사왔을 텐데. 집에 먹을 게 있나 모르겠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우 기자는 배 안 고파?"
정말 배가 고프기도 했지만, 점심을 준비해서 먹다 보면 그가 나가는 시간을 조금 늦출 수는 있을 것이었다. 그러면서 더 생각을 해보자.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서로 얘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무슨 방법이 나올지도 모르지.
"이 집에서 하는 마지막 식사가 될 수도 있는데, 내가 해줄게."
"당연히 그래야지."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확인하더니, 우 기자는 반찬거리가 없다며 김치찌개를 끓여주겠다고 했다. 나는 식탁 의자에 앉아 우 기자가 음식 만드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빈말이라도 이 기자가 해준다고 하지는 않네?"
"나 원래 빈말 못 하잖아."
"난 짐 챙기느라 바쁜데 말이야, 이 여자 눈치도 참 없어."
"해준다는데 거절할 것 없지, 뭐."
좁은 부엌을 누비며 식사 준비를 하는 우 기자의 모습을 보자니, 다시 저 모습을 볼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슬프면서도 보기 좋아 괜히 웃음이 나기도 했다.
"그러고 있으니까 우 기자가 꼭 내 마누라 같아."
나는 할 수 있는 한 아주 명랑하게 말했다. 우 기자는 하하, 소리내어 웃다가 식탁 의자에 앉아 있는 나를 보면서 말했다.
"그래? 근데 어쩌나? 이 기자는 내 남편 같지 않은데. 하하."
"왜? 나도 이만하면 듬직한 남편 같지 않아?"
"난 집안일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남편을 원하거든."
"후훗! 진짜 여자 같이 얘기하네. 나중에 그런 남편 되나 어디 보겠어?"
"글쎄, 이 기자가 알 수 있을까? 나랑 결혼하지 않는 한, 내가 어떤 남편이 될지."
"어떤 남편이 되나 보려면 우 기자하고 결혼해야 되겠네?"
나도 지지 않고 대꾸했다. 그래, 이렇게 대하면 돼. 예전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편안하게. 아주 편안하게.
"궁금하면 한번 해보지 그래?"
"내가 해달라면 해 줄 거야?"
"와, 이런 황홀한 청혼은 또 처음 받네. 하하. 내 요리하는 뒷모습에 반한 여자가, 내가 어떤 남편이 될지 궁금해서 결혼을 해달라고 하다니! 세상에 나 같은 청혼을 받은 남자가 또 있을까? 하하하."
"영광인 줄 알아. 나 같은 여자한테 결혼하자는 말 듣기가 쉬운 줄 알아? 그리고 이 몸도 청혼은 처음이네. 그런데 죽이는 카리스마도 아니고, 애간장 녹이는 부드러운 모습도 아니고, 겨우 요리하는 모습에 반해서 하게 될 줄이야?"
"이 기자는 청혼 받아본 적 있어?"
"왜? 없을 것 같아?"
"당연히!"
"이래봬도 한번 받아본 몸이야! 대학교 4학년 때 자취방 창문 너머로 낭만적인 남학생이…."
"그때 그 남학생 지금은 뭐 하는데?"
"음…, 딴 여자한테 청혼해서 애 낳고 잘 살고 있어."
"그래서 후회해?"
"뭘?"
"안 받아들인 걸."
"후회는 무슨."
"하긴 받아들였으면 나하고 같이 사는 행운도 못 누렸을 걸? 하하하.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누리고 싶어하는 행운인데!"
"다시 생각해 보니 조금 후회되는군!"
"절대 안 진다니까? 하하하."
우 기자가 식사 준비를 마치고 우리는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를 만찬을 즐겼다. 유쾌하고도 조금은 진한 농담이 오고 가는 분위기 속에서.
"어휴,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2시 반이잖아? 빨리 짐 챙겨야 하는데. 설거지는 이 기자가 해 줄 거지?"
"아니? 안 해줄 건데? 난 그냥 이렇게 앉아서 우 기자한테 반하고 있을게."
"너무 반하면 안 되는데. 이 기자, 나 책임질 수 있어?"
"책임질 테니까 설거지 멋있게 해봐."
"어떻게? 이렇게?"
우 기자는 장난스럽게 이런 저런 포즈를 취하면서 설거지를 했다. 나는 큰 소리로 웃으면서 그런 우 기자를 보았다. 그런데 정말 나갈 거야? 같이 사는 게 이렇게 재미있는데, 정말 나갈 마음으로 온 거야?
"귀엽게 설거지하는 모습!"
"우아하게 설거지하는 모습!"
"자상하게 설거지하는 모습!"
우 기자는 자기가 하는 포즈를 하나씩 설명까지 해가며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이건 뭐게? 맞혀봐!"
"글쎄…."
"지금 이 모습이 필이 안 온단 말이야? 이래도 잘 모르겠어?"
우 기자는 좀더 우스꽝스러운 포즈를 취하며 물었다.
"전혀 필이 안 오는데?"
"섹시하게 설거지하는 모습이잖아!"
"하하하!"
나는 넘어갈 듯 웃으며 우 기자의 모습을 보았다. 그런데 정말 나가겠다는 거야? 설거지를 마치고 나서 우 기자는 다시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인천까지 차로 두 번은 왔다 갔다 해야 하는데. 언제 이사를 다 하냐. 휴우."
나는 될 수 있는 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책을 박스에 담았는데도 진행 상황을 보니 너무 빨리 정리되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금세 다 되겠네, 뭐. 오늘 다 못 하면 내일 마저 하던가."
"내일도 다 못 하면? 모레 다 하고? 모레도 다 못 하면 그 다음날? 또 그 다음날, 그래서 아예 이 집에서 살까?"
"그러시든지."
심상하게 말하려고 하는데도 목소리가 떨리는 것만 같았다.
"내가 나가는 거 싫어?"
짐을 챙기던 내가 멈칫했다.
"이 기자 보면 좀 아쉬워하는 것 같다?"
"우 기자가 아쉬워하는 거겠지!"
"하하, 그런가?"
그는 다시금 부지런히 짐을 챙겼다. 저 인간 힘이 넘치나. 저렇게 빨리 챙기게. 어느덧 박스가 네 개 가득 쌓아지자 방이 비좁아 져서 박스 두 개를 밑에 놓고 두 개는 그 위에 올려두었다. 나는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위에 아직 포장해놓지 않은 박스를 슬쩍 건드렸다. 마침 불안하게 놓여있던 그 박스는 옆으로 넘어지며 와르르 쏟아졌다. 성공이다!
"어머나! 이게 왜 넘어져?"
내가 짐짓 당황하는 표정으로 말하는데, 우 기자는 울상이었다.
"이 기자! 겨우 싸놨더니!"
"미안해."
나는 정말 미안한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다시 처음부터 차곡차곡 쌓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안정되게 박스를 올려놓아서 밀어도 꿈쩍 하지 않을 것 같았다. 네 개의 박스가 꽉 차자 우 기자와 나는 끙끙대면서 우 기자의 차로 운반해 놓았다.
"무거운데 괜찮아?"
"하나도 안 괜찮아."
나는 짐짓 힘들다며 조금만 쉬었다가 옮기자고 하였고, 그런 식으로 계속 시간을 벌었다. 옷을 넣은 박스도 예의상 한번 넘어뜨려 주었고, 그러다 보니 어느덧 겨울의 짧은 해가 지고 있었다. 인천까지 두 번을 왔다 갔다 해야 한다던 우 기자는 아직 그 중 한 번도 출발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게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네? 좀 더 일찍 올 걸 그랬다."
"그러게. 내가 도와준다고 도와줬는데도 자꾸만 지체되네?"
"두 번 도와줬다간 아예 차도 뒤집어 넘어뜨리겠다. 하하하."
나는 우 기자를 곱게 노려보다가 말했다.
"이봐, 아저씨."
"왜, 또. 이제는 부를 때마다 겁난다."
"배고파. 저녁 해줘."
"뭐? 저녁? 지금 저녁까지 해달라는 말이야?"
"나 힘을 너무 많이 썼더니 도저히 더는 못 움직이겠어. 밥할 힘도 없어. 아저씨가 밥 좀 해줘."
"참 나…. 정말 무서운 여자야. 취재하느라 뛰어다닐 때는 그렇게 막강 체력인 여자가 갑자기 왜 이러실까?"
"힘을 많이 썼잖아. 빨리 밥 해줘. 나 진짜로 쓰러질 것 같단 말이야."
"그럼 이사는 언제 하고?"
"밥 먹고 하면 되잖아."
"밥 먹고 나면 7시도 넘겠네요, 이 아가씨야."
"그럼 나 굶으라는 거야?"
"알았어, 알았다구."
우 기자는 할 수 없이 저녁을 또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래, 저녁까진 왔다 이거야. 저녁 먹고 나면 7시. 그 다음은 또 먹으면서 생각하지, 뭐.
<달콤동거> [26] - 그날,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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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동거> [25]편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지?" 보셨나요?
우 기자가 집에 간 12월 31일 밤,
우 기자가 없는 집에서 혼자 있는 이 기자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쓸쓸함을 느낀답니다..
뭐든지 혼자서도 잘 해왔던 이 기자가 말이지요^^
아직 못 보셨거나, 다시 보고 싶으시다면 여기를 눌러주세요~
하나더, <달콤동거> 연재 리스트를 보고 싶으신 분은 여기를 눌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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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동거> [26] - 그날,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밖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소리지? 슬금슬금 핸드폰을 찾아 시간을 확인하니 벌써 낮 1시도 넘어 있었다. 화들짝 놀라 일어나는데, 밖에서 우 기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기자, 안에 있어?"
아니, 벌써 왔나?
"이 기자?"
"응? 응. 나 여기 있어."
"빨리도 와 있네. 진짜 나 보고 싶었나 보다. 얼른 나와. 짐 싸는 거 도와준다며."
"응, 나갈게."
나는 거울을 보면서 대충 머리를 빗었다. 세수도 못해서 얼굴이 엉망진창이었다. 언제쯤 온다고 전화라도 하고 왔으면 이런 모습은 안 보였을 텐데.
평소에는 아침에 막 일어난 험악한 모습으로 우 기자를 봐도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신경이 쓰였다. 나는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거의 뛰다시피 욕실로 갔다.
"아침에 떡국은…."
우 기자가 말을 하다가 내가 하도 황급히 뛰어가니까 말을 멈추고는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얼른 문을 쾅 닫고 욕실로 들어갔다. 세수를 하면서 거울을 보는데 얼굴이 말이 아니게 부어 있었다. 차라리 싸워서 누구한테 몇 대 맞았다고 하는 편이 설득력 있을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냥 자고 일어났더니 얼굴이 이렇게 부었다고 하면 누가 믿는담.
스스로 내가 예쁘다 못 생겼다, 그런 생각은 안 하고 살아왔다. 거울 보는 시간도 아까울 정도로 열심히 살았던 게 사실이고, 한편으로는 예쁘게 보이고 싶은 사람이 없었기도 했다. 그런데 문득 거울을 보니 정말이지, 나는 예쁘지가 않았다. 게다가 착하지도 않다. 내가 우 기자 앞에서 내세울 수 있는 건 뭐가 있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닌 존재로 느껴지는 걸까. 갑자기 자기가 굉장히 못 생긴 사람 같고 못난 사람 같은 생각이 드는 걸까. 내가 생각해도 나는 사랑 받기에 너무 형편없는 존재였다. 비참한 기분으로 세수를 마치고 나오는데, 우 기자가 식탁 의자에 앉아서 흥미롭게 내 쪽을 보고 있었다.
"하하, 정말 부끄러움을 모르는 여자야. 이 기자는."
"응?"
"그렇게 급했어? 하하하."
으잉? 아닌데…. 정말 민망하다. 이게 뭐람.
"아무리 같이 사는 사이라지만 내 앞에서 너무 부끄러움을 안 타는 거 아냐?"
"잠깐만."
방에 들어와 화장품을 바르는데 기분이 정말 울적했다. 휴우. 남의 마음도 모르면서 그런 말을 하다니.
그나저나 우 기자가 나간다는데,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 말려야 하나? 두 번이나 말렸는데 그렇게 못 알아들으니 아예 노골적으로 나가지 말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잡는다고 무슨 수가 생기는 것도 아닌데…. 아, 정말 고민된다.
처음에 이 집에 들어오지 말라고 할 때는 그렇게 들어온다고 난리더니, 몇 달 살지도 않고 나간다는 건 또 뭐야. 이렇게 쉽게 나갈 거면 들어온다는 말이나 하지 말지. 그래도 일단은 뭔가 얘기라도 해봐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뭐라고 말을 하나?
"이 기자, 내 방에 들어와 본 적 없지?"
내가 마루로 나가자 우 기자가 자기 방문을 열며 말했다.
"응."
"나 말고 다른 남자 방에 들어가 본 적은 있어?"
문득 우 기자가 정색을 하며 진지하게 물었다. 내가 고개를 가로젓자 우 기자가 씩 웃었다.
"어, 그래? 영광인 걸?"
밖에서 들여다보이는 우 기자의 방은 한눈에 보기에도 말쑥했다. 진짜 깔끔하구나, 저 남자. 하긴, 집안일 가지고 잔소리하는 거 보면서 진작 알았지.
"하마터면 질투할 뻔했네, 하하하. 들어와."
조심조심 그의 방 안에 한 발씩 들여놓았다. 어제 우 기자의 코트에서도 맡아졌던 익숙한 냄새가 전해져왔다.
"처음엔 아주 작정을 하고 이사를 와서 원래 집에 있던 책이랑 옷이랑 다 가져 왔는데, 이렇게 빨리 짐을 뺄 줄 몰랐네? 그럴 줄 알았으면 간단한 것들만 들고 오는 건데. 역시 사람 일은 알 수가 없어?"
엉거주춤 서 있는 나를 보더니, 우 기자가 책상 의자에 앉으라고 권했다.
"나는 박스를 좀 구해올게. 잠깐만 앉아서 기다려."
우 기자가 나가고 나서 나는 혼자 남아 우 기자의 방을 휘휘 둘러보고 있었다. 그러다 책상 위에 있는 사진이 눈에 띄었다. 흑백 사진. 컴퓨터 배경 화면에도 있던 바로 그 사진이었다. 이 여자 때문인가? 우 기자가 더 이상 여기 살 수 없다고 하는 건. 사진을 손에 들고 그녀와 눈을 맞춰 보았다.
사랑하나요, 그를? 우지훈 기자를 사랑하나요? 나도 그런 것 같은데…. 당신의 마음과 나의 마음은 크기를 비교할 수 있을까요? 아니, 중요한 건 우 기자의 마음이죠. 당신을 책상 위에 두고 컴퓨터 배경에 두고, 그 남자는 늘 이렇게 눈을 맞추고 있었네요.
나는 차라리 눈을 감았다. 휴우…. 그래도 그냥 이렇게 포기해야 하나? 어쩔 수 없더라도, 그래도….
"책부터 챙기려구."
어느새 우 기자가 돌아왔다. 나는 놀라서 눈을 반짝 떴다. 우 기자는 내가 사진 액자를 손에 들고 있는 것을 보더니 장난스럽게 웃었다.
"내 주위 여자에 관심이 많네?"
나는 민망해하며 얼른 액자를 내려놓았다.
"내 주위 여자한테 관심이 있는 건, 나한테 관심 있다는 뜻 아닌가?"
내가 가만히 있자 그가 하하 웃었다.
"농담이야, 농담. 요즘 이 기자, 부쩍 농담이 안 통해요."
그는 책을 박스에 넣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진담이 잘 통하냐? 글쎄올시다? 하하하."
"우 기자."
그는 열심히 책을 챙기면서 대답했다.
"왜?"
"나, 배고파."
"그래? 아침에 떡국은 먹었어?"
"으응…. 근데 지금 1시도 넘었잖아. 배고파."
"배고프면 진작에 얘기하지. 아까 수퍼에 박스 구하러 갈 때 얘기했으면 뭐라도 사왔을 텐데. 집에 먹을 게 있나 모르겠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우 기자는 배 안 고파?"
정말 배가 고프기도 했지만, 점심을 준비해서 먹다 보면 그가 나가는 시간을 조금 늦출 수는 있을 것이었다. 그러면서 더 생각을 해보자.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서로 얘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무슨 방법이 나올지도 모르지.
"이 집에서 하는 마지막 식사가 될 수도 있는데, 내가 해줄게."
"당연히 그래야지."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확인하더니, 우 기자는 반찬거리가 없다며 김치찌개를 끓여주겠다고 했다. 나는 식탁 의자에 앉아 우 기자가 음식 만드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빈말이라도 이 기자가 해준다고 하지는 않네?"
"나 원래 빈말 못 하잖아."
"난 짐 챙기느라 바쁜데 말이야, 이 여자 눈치도 참 없어."
"해준다는데 거절할 것 없지, 뭐."
좁은 부엌을 누비며 식사 준비를 하는 우 기자의 모습을 보자니, 다시 저 모습을 볼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슬프면서도 보기 좋아 괜히 웃음이 나기도 했다.
"그러고 있으니까 우 기자가 꼭 내 마누라 같아."
나는 할 수 있는 한 아주 명랑하게 말했다. 우 기자는 하하, 소리내어 웃다가 식탁 의자에 앉아 있는 나를 보면서 말했다.
"그래? 근데 어쩌나? 이 기자는 내 남편 같지 않은데. 하하."
"왜? 나도 이만하면 듬직한 남편 같지 않아?"
"난 집안일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남편을 원하거든."
"후훗! 진짜 여자 같이 얘기하네. 나중에 그런 남편 되나 어디 보겠어?"
"글쎄, 이 기자가 알 수 있을까? 나랑 결혼하지 않는 한, 내가 어떤 남편이 될지."
"어떤 남편이 되나 보려면 우 기자하고 결혼해야 되겠네?"
나도 지지 않고 대꾸했다. 그래, 이렇게 대하면 돼. 예전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편안하게. 아주 편안하게.
"궁금하면 한번 해보지 그래?"
"내가 해달라면 해 줄 거야?"
"와, 이런 황홀한 청혼은 또 처음 받네. 하하. 내 요리하는 뒷모습에 반한 여자가, 내가 어떤 남편이 될지 궁금해서 결혼을 해달라고 하다니! 세상에 나 같은 청혼을 받은 남자가 또 있을까? 하하하."
"영광인 줄 알아. 나 같은 여자한테 결혼하자는 말 듣기가 쉬운 줄 알아? 그리고 이 몸도 청혼은 처음이네. 그런데 죽이는 카리스마도 아니고, 애간장 녹이는 부드러운 모습도 아니고, 겨우 요리하는 모습에 반해서 하게 될 줄이야?"
"이 기자는 청혼 받아본 적 있어?"
"왜? 없을 것 같아?"
"당연히!"
"이래봬도 한번 받아본 몸이야! 대학교 4학년 때 자취방 창문 너머로 낭만적인 남학생이…."
"그때 그 남학생 지금은 뭐 하는데?"
"음…, 딴 여자한테 청혼해서 애 낳고 잘 살고 있어."
"그래서 후회해?"
"뭘?"
"안 받아들인 걸."
"후회는 무슨."
"하긴 받아들였으면 나하고 같이 사는 행운도 못 누렸을 걸? 하하하.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누리고 싶어하는 행운인데!"
"다시 생각해 보니 조금 후회되는군!"
"절대 안 진다니까? 하하하."
우 기자가 식사 준비를 마치고 우리는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를 만찬을 즐겼다. 유쾌하고도 조금은 진한 농담이 오고 가는 분위기 속에서.
"어휴,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2시 반이잖아? 빨리 짐 챙겨야 하는데. 설거지는 이 기자가 해 줄 거지?"
"아니? 안 해줄 건데? 난 그냥 이렇게 앉아서 우 기자한테 반하고 있을게."
"너무 반하면 안 되는데. 이 기자, 나 책임질 수 있어?"
"책임질 테니까 설거지 멋있게 해봐."
"어떻게? 이렇게?"
우 기자는 장난스럽게 이런 저런 포즈를 취하면서 설거지를 했다. 나는 큰 소리로 웃으면서 그런 우 기자를 보았다. 그런데 정말 나갈 거야? 같이 사는 게 이렇게 재미있는데, 정말 나갈 마음으로 온 거야?
"귀엽게 설거지하는 모습!"
"우아하게 설거지하는 모습!"
"자상하게 설거지하는 모습!"
우 기자는 자기가 하는 포즈를 하나씩 설명까지 해가며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이건 뭐게? 맞혀봐!"
"글쎄…."
"지금 이 모습이 필이 안 온단 말이야? 이래도 잘 모르겠어?"
우 기자는 좀더 우스꽝스러운 포즈를 취하며 물었다.
"전혀 필이 안 오는데?"
"섹시하게 설거지하는 모습이잖아!"
"하하하!"
나는 넘어갈 듯 웃으며 우 기자의 모습을 보았다. 그런데 정말 나가겠다는 거야?
설거지를 마치고 나서 우 기자는 다시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인천까지 차로 두 번은 왔다 갔다 해야 하는데. 언제 이사를 다 하냐. 휴우."
나는 될 수 있는 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책을 박스에 담았는데도 진행 상황을 보니 너무 빨리 정리되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금세 다 되겠네, 뭐. 오늘 다 못 하면 내일 마저 하던가."
"내일도 다 못 하면? 모레 다 하고? 모레도 다 못 하면 그 다음날? 또 그 다음날, 그래서 아예 이 집에서 살까?"
"그러시든지."
심상하게 말하려고 하는데도 목소리가 떨리는 것만 같았다.
"내가 나가는 거 싫어?"
짐을 챙기던 내가 멈칫했다.
"이 기자 보면 좀 아쉬워하는 것 같다?"
"우 기자가 아쉬워하는 거겠지!"
"하하, 그런가?"
그는 다시금 부지런히 짐을 챙겼다. 저 인간 힘이 넘치나. 저렇게 빨리 챙기게. 어느덧 박스가 네 개 가득 쌓아지자 방이 비좁아 져서 박스 두 개를 밑에 놓고 두 개는 그 위에 올려두었다. 나는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위에 아직 포장해놓지 않은 박스를 슬쩍 건드렸다. 마침 불안하게 놓여있던 그 박스는 옆으로 넘어지며 와르르 쏟아졌다. 성공이다!
"어머나! 이게 왜 넘어져?"
내가 짐짓 당황하는 표정으로 말하는데, 우 기자는 울상이었다.
"이 기자! 겨우 싸놨더니!"
"미안해."
나는 정말 미안한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다시 처음부터 차곡차곡 쌓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안정되게 박스를 올려놓아서 밀어도 꿈쩍 하지 않을 것 같았다. 네 개의 박스가 꽉 차자 우 기자와 나는 끙끙대면서 우 기자의 차로 운반해 놓았다.
"무거운데 괜찮아?"
"하나도 안 괜찮아."
나는 짐짓 힘들다며 조금만 쉬었다가 옮기자고 하였고, 그런 식으로 계속 시간을 벌었다. 옷을 넣은 박스도 예의상 한번 넘어뜨려 주었고, 그러다 보니 어느덧 겨울의 짧은 해가 지고 있었다. 인천까지 두 번을 왔다 갔다 해야 한다던 우 기자는 아직 그 중 한 번도 출발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게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네? 좀 더 일찍 올 걸 그랬다."
"그러게. 내가 도와준다고 도와줬는데도 자꾸만 지체되네?"
"두 번 도와줬다간 아예 차도 뒤집어 넘어뜨리겠다. 하하하."
나는 우 기자를 곱게 노려보다가 말했다.
"이봐, 아저씨."
"왜, 또. 이제는 부를 때마다 겁난다."
"배고파. 저녁 해줘."
"뭐? 저녁? 지금 저녁까지 해달라는 말이야?"
"나 힘을 너무 많이 썼더니 도저히 더는 못 움직이겠어. 밥할 힘도 없어. 아저씨가 밥 좀 해줘."
"참 나…. 정말 무서운 여자야. 취재하느라 뛰어다닐 때는 그렇게 막강 체력인 여자가 갑자기 왜 이러실까?"
"힘을 많이 썼잖아. 빨리 밥 해줘. 나 진짜로 쓰러질 것 같단 말이야."
"그럼 이사는 언제 하고?"
"밥 먹고 하면 되잖아."
"밥 먹고 나면 7시도 넘겠네요, 이 아가씨야."
"그럼 나 굶으라는 거야?"
"알았어, 알았다구."
우 기자는 할 수 없이 저녁을 또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래, 저녁까진 왔다 이거야. 저녁 먹고 나면 7시. 그 다음은 또 먹으면서 생각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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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현정입니다^^
빗소리가 너무 좋은 날이군요~
비가 내리니, 오늘 같은 날은 그냥 아무나 상대로 잠깐 짝사랑을 품어도 좋을 것 같지 않나요?^__^
즐겁게 읽으셨는지 궁금하네요^^
오늘도 제 글 읽어주시고, 답글로 마음 나누어주시고, 추천해주신 님들
감사합니다*^__^*
참, 그리고요, 쪽지 주셨던 님들 중
jang5976이라는 아이디 쓰시는 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닉네임을 안 써주셔서 제가 어떤 분인지 몰라서..^^
이 기자의 귀여운 작전이 성공하길 바라며,
김현정 올림^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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