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는 예상보다 훨씬 큰 정치적 사건임이 드러났다. 그것은 다수 시민들의 거센 반발을 불렀고 이번 총선거에서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노 대통령을 지지하고 탄핵에 반대한 정당들은 국회의 과반을 넘는 의석을 얻었지만, 노 대통령에 반대하고 탄핵 소추를 의결한 정당들은 몰락했다.
- 복거일 (소설가)정치적 측면이 그렇게 부각되면서, 탄핵 소추에서 중심적 자리를 차지하는 법적 측면은 오히려 사람들의 관심을 덜 끌었다. “탄핵은 국회에 의한 쿠데타”라는 무지막지한 주장이 큰 호응을 얻는 상황에선, 법적 측면에 대한 차분한 논의가 이루어지기도 어려웠다.
총선거의 결과는 탄핵에 대한 우리 시민들의 생각을 잘 드러냈다. 따라서, 그런 생각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나왔든, 탄핵은 정치적으로는 판결이 난 셈이다. 헌법재판소의 심판은 진행되겠지만, 헌법재판소의 법적 판결도 시민들이 내린 정치적 판결의 압도적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터이다. 법원은 사회로부터 격리된 섬이 아니며, 법원의 판결은 사회의 정치적 자장으로부터 늘 영향을 받는다. 벌써 노 대통령을 지지하고 탄핵에 반대한 정당들은 탄핵의 정치적 해결을 주장하고 나섰다.
사정이 그러하므로, 탄핵의 법적 측면은 이제 실질적으로는 이론적 흥미만을 지닌 주제가 되었다. 그래도 그것은 일반 시민들도 곰곰 살펴볼 만큼 중요한 일이니, 그것은 우리 사회의 법과 정치적 체계에 관해서 중요한 함의들을 품었고 깊은 성찰의 실마리를 내보여준다. 이 글은 총선거가 끝나면서 찾아온 비교적 차분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탄핵의 법적 측면에 관해서 이론적으로 되도록 깊이 고찰하려는 시도다.
2
탄핵 소추에 대해선 그 동안 갖가지 비난들이 나왔다. 그것들의 대부분은 분명히 거칠고 비합리적이다. 그러나 그렇게 거칠고 비합리적인 비난들을 걷어내더라도, 다수 시민들이 탄핵 소추를 정당하지 못한 일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은 오롯이 남는다. 따라서 왜 시민들이 그러한 인식을 지니게 되었나 밝히고 그러한 인식이 법적 측면에서 정당한가 살피는 일은 긴요하다.
시민들의 마음에 그러한 부정적 인식을 낳은 가장 큰 요인은 노 대통령의 잘못과 그것에 대한 벌인 대통령직의 상실 사이에 커다란 불균형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그의 잘못을 구성한 행위들 가운데 중심적이고 탄핵 소추의 직접적 사유가 된 것은 선거법 위반이다. 탄핵 소추의 나머지 사유들은, 즉 그의 측근들의 잘못들과 국정 운영에서의 잘못들은, 일단 부차적 중요성을 지닌다. 그는 선거법을 그리 크지 않은 정도로 어겼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가 그러한 위반을 지적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위반을 계속할 뜻을 밝혔다. 따라서 그는 시민들의 일상 활동과는 거리가 먼 법률 하나를 그리 크지 않은 정도로 어긴 것이다. 그러나 그런 잘못에 대한 벌은 대통령직의 상실이라는 아주 엄중한 것이다. 언뜻 보면, 죄와 벌 사이에 커다란 불균형이 있는 것처럼 보이고 그러한 불균형은 시민들의 정의감과 어긋난다.
다른 편엔, 국회가 법에 규정된 절차를 따라 법에 명시된 책무를 수행했다는 사실이 있다. 국회의 그러한 행위가 어떻게 문제가 될 수 있는가? 혹시 문제의 뿌리는 헌법 자체에 있는 것은 아닐까?
사정이 이러하므로, 이 복잡하고 불투명한 문제에 대한 답변을 내놓으려면, 우리는 두 가지 사항들을 살펴야 한다.
1) 탄핵에 관한 헌법의 규정은 과연 헌법의 정신에 맞는가? 그래서 탄핵에 관한 규정은 헌법의 다른 규정들과 모순되지 않는가?
2) 노 대통령의 잘못은 과연 얼마나 심중한 잘못인가? 그것은 과연 탄핵 소추를 받아야 할 만큼 중대한 잘못인가?
3
이 일을 위해선 우리는 법이 본질적으로 연역적 추리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실제로 한 사회의 법은 ‘연역적 추리의 체계’라 할 수 있다. 한 사회의 법은 일관성이 있어야 하고 그것의 부분들이 서로 부딪쳐서는 안 된다. 하위 법들은 상위 법들로부터 연역적 추리를 통해서 도출되고 재판은 법에 바탕을 둔 연역적 추리를 핵심으로 삼는다는 사실에서 드러나듯, 법은 연역적 추리를 통해서 자신을 구체화하고 자신의 영역을 넓혀 나간다. 아울러, 헌법재판소의 위헌 심사와 같은 활동들에서 잘 드러나듯, 법은 연역적 추리를 통해서 자신의 일체성을 점검하고 유지한다. 법의 본질과 성격에 대한 서로 다른 이론들의 존재와는 관계없이, 이것은 모두 동의할 수 있는 법의 특질이다.
연역적 추리 체계의 모범은 수학이다. 수학은 현실과 관련이 있는 연역적 추리 체계들 가운데 가장 순수하고 엄격하다. 둘 다 본질적으로 연역적 추리에 바탕을 두었으므로, 법과 수학은 형태와 움직임에서 서로 비슷한 점들이 많다. 따라서 연역적 추리의 모범인 수학을 살펴서 법의 본질적 특질들을 드러내는 일은 뜻이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지고 연역적 추리가 두드러진 수학 체계는 유클레이데스 기하학이다. 현대 용어들을 쓰면, 그것은 근원용어들(primitive terms), 정의된 용어들(defined terms), 공리들(axioms) 그리고 그것들에서 연역적 추리를 통해서 도출된 정리들(theorems)로 구성된 체계다.
“유클레이데스는 체계적인 연역적 형태로 기하학을 조직하고자 했으니,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그의 증명들의 엄격함을 늘리고 또한 새로운 법칙들의 증명을 보다 수월하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그의 동기의 전부였다고 하기는 어렵고, 분명히 그것은 현대에서 기하학의 공리화를 시도한 사람들의 동기의 전부는 아니다. 왜냐하면 유클레이데스와 그들은 목표가 그저 기하학의 특정 법칙들이 맞다는 것을 모든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하는 것이었을 경우에 요구되는 것을 넘어선 정교함을 도입하기 때문이다. 또한 공리들과 정리들의 연역적 조직은 또 하나의 목적을, 즉 기하학의 법칙들을 우아하고 명쾌한 방식으로 제시해서 그것들 사이의 흥미로운 논리적 연결들을 예시한다는 목적에도 이바지한다. 수학적 사고의 전형적 특질인 이 추가적 목적은 때로 유클레이데스로 하여금 그의 독자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증명하려고 애쓰게 만드는 것이다. 새로운 논리적 연결성의 이러한 발견은 공리화를 시도하는 현대 사람들로 하여금 그 주제의 보다 우아하게 경제적인 공리화를 추구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Euclid sought to organize geometry in a systematic deductive form because by doing so he could increase the rigor of his proofs and also make it easier to prove new laws. But this could hardly have been the whole of his motivation, and certainly it is not the whole motivation of modern axiomatizers of geometry. For Euclid and they introduce refinements going beyond what would be called for, were the aim merely that of proving beyond all reasonable doubt that certain laws of geometry hold. The deductive organization of axioms and theorems also serves another purpose, that of displaying the laws of geometry in an elegant and perspicuous way, exhibiting interesting logical connections among them. This further purpose, so typical of mathematical thinking, is what makes Euclid sometimes take pains to prove things that his readers think obvious. This discovery of new logical connectedness is what impels modern axiomatizers to seek more elegantly economical axiomatizations of the subject matter.)” [ 스티븐 바커 (Stephen F. Barker), <수학 철학 (Philosophy of Mathematics)>]
위의 인용문에서 거듭 강조된 것처럼, 연역적 체계의 중심적 특질은 “논리적 연결성(logical connectedness)”이다. 그것을 잘 드러내기 위해서 체계의 공리화가 시도되었던 것이다. 연역적 체계의 모든 부분들은 논리적으로 서로 연결되었으며, 어느 한 부분의 타당성의 부족은, 그 부분이 아무리 사소한 정리일지라도, 체계 전체의 타당성에 대한 회의로 이어진다.
기하학이 전통적으로 고대 그리스 문명에서 공리적 체계로 발전한 것과는 달리, ‘수의 수학(mathematics of numbers)’이라 불려온 산수, 대수, 그리고 미적분과 같은 수학 분야들은 주로 바빌로니아 문명, 힌두 문명 그리고 아랍 문명에서 계산의 규칙들(rules of calculation)의 형태로 발전되고 전승되었다. 그래서 수의 수학이 공리적 형태로 조직되기 시작한 것은 아주 최근이다. 이 일에서 선구적 업적을 남긴 이는 이탈리아 수학자 주제페 페아노(Giuseppe Peano; 1858 1932)인데, 그는 다섯 개의 공리들을 바탕으로 삼아 수의 법칙들을 공리적 형태로 조직했다. 그 뒤로 이 일에서 많은 업적이 나와서, 이제는 여러 ‘형식화된 연역적 체계(formalized deductive system)’들이 존재한다.
한 사회의 법은 본질적으로 ‘형식화된 연역적 체계’다. 그것의 핵심적 부분인 헌법은 이상적으로는 근원용어들, 정의된 용어들 그리고 공리들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주변적 부분인 법률들과 다른 하위법들은 그러한 근원용어들, 정의된 용어들 그리고 공리들에서 연역적 추리를 통해서 도출된 정리들로 이루어진다.
법이 구체적 사항들을 다루는 역사적 산물이므로, 특히 법적 기구들을 규정해야 하므로, 법은 수학처럼 순수한 연역적 체계의 모습을 지닐 수는 없다. 그래서 헌법은 흔히 주요 정리들까지도 포함하게 마련이다. (현실적으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정리들까지 포함한다. ) 여기서 강조되어야 할 것은 한 사회의 법은 본질적으로 ‘형식화된 연역적 체계’며 그것의 부분들 사이엔 그리고 부분들과 전체 사이엔 ‘논리적 연결성’이 있다는 점이다. 즉, 논리적 일관성은 법의 중심적 특질이다.
4
이제 우리는 위에서 제기된 물음들을 살필 만한 이론적 틀을 갖추었다. 첫째 물음은 ‘탄핵에 관한 헌법의 규정은 과연 헌법의 정신에 맞는가? 그래서 탄핵에 관한 규정은 헌법의 다른 규정들과 모순이 되지 않는가?’이다.
탄핵(impeachment)은 주로 영국 법의 전통을 따르는 사회들에서 재임 중의 부정행위(misconduct in office)로 기소된 공무원을 그 직책에서 물러나게 하는 의회의 소송(proceeding)이다. 탄핵은 탄핵 소추와 그것에 따른 심판을 포함한다.
우리 헌법은 미국 헌법을 모형으로 삼아 만들어졌다. 미국 헌법은 가장 오래 된 성문 헌법이고 역사상 가장 성공적으로 운용된 헌법들 가운데 하나다. 그리고 가장 많이 연구되었고 그 원리가 가장 잘 밝혀진 헌법이기도 하다. 우리 헌법의 탄핵에 관한 규정도 미국 헌법의 그것을 상당히 충실하게 따랐다.
미국 헌법은 “하원만이 탄핵 소추에 대한 권한을 보유한다 (The House of Representatives · shall have the sole Power of Impeachment)” 그리고 “상원만이 모든 탄핵 소추를 심판할 권한을 보유한다 (The Senate shall have the sole Power of try all Impeachment)”고 규정했다. 아울러, “대통령, 부통령, 그리고 모든 공무원들은 반역, 증수회, 또는 다른 대죄들과 경죄들에 대해서 탄핵 소추를 받고 유죄판결을 받으면 직에서 파면된다 (The President, Vice President and all civil Officers · shall be removed from Office on Impeachment for, and Conviction of, Treason, Bribery, or Other High Crimes and Misdemeanors)”고 규정했다.
탄핵 제도의 성격과 필요성 그리고 그것에 대한 비판은 다음의 설명에 잘 요약되었다.
“탄핵 절차에 대해 제기된 주요 비판은 그것이 거추장스럽고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이었다. 탄핵 심판은 상원 전체가 16일에서 6주에 이르는 기간 동안 그것에만 매달리게 하고, 증언들은 수천 페이지를 채우고 서로 부딪치고 문제적인 정치적 압력들을 끌어들인다. 그러나 그 절차를 수정하려는 국회의 거듭된 시도들은 한결같이 실패했다. 변화에 대한 저항은 탄핵이 견제와 균형이라는 미국적 체계의 없어선 안 될 부분으로 여겨진다는 사실에 의해 부분적으로 설명된다. (The principal criticism directed at the impeachment process is that it is cumbersome and anachronistic. An impeachment trial occupies the entire senate for from 16 days to six weeks, fills thousands of pages of testimony and involves conflicting and troublesome political pressures. Repeated attempts in congress to amend the procedure, however, proved uniformly unsuccessful. A partial explanation of the resistance to change is the fact that impeachment is regarded as an integral part of the U.S. system of checks and balances.)” [브래티니커 백과사전, 탄핵(Impeachment) 항목]
‘견제와 균형(checks and balances)’은 물론 권력의 분립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실제로 권력의 분립은 미국 헌법의 기본적 틀이다.
“헌법의 틀을 짠 사람들은 정부의 압제를 피하는 단 하나의 길은 입법, 행정 및 사법의 권력을 별개 부서들에 배정하는 것이라는 주장을 도전받을 수 없는 격언으로 받아들였다. 이것을 헌법은 모든 입법권은 국회에 있다고 선언하고 행정권은 대통령에게 있다고 규정하고 사법권은 법원에 부여하는 이른바 분배 조항들에서 수행한다. 권력의 분립은 정부의 온당한 조직에 관한 정치 이론일 뿐 아니라 헌법적 법의 교리이기도 하다. (The framers of the constitution accepted it as an unchallengeable maxim that the only way to avoid governmental tyranny is to put the legislative, executive and judicial powers in separate departments. This the constitution does in the so-called distributive clauses, declaring that all legislative powers shall be vested in the congress, stating that the executive power shall be vested in a president and placing the judicial power in the hands of the courts. The separation of powers is not only a political theory about the proper organization of government but also a doctrine of constitutional law.)”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헌법 및 헌법적 법(Constitution and Constitutional Law)’]
요약하면, 탄핵은 미국 헌법의 기본적 교리인 권력의 분립을 통한 견제와 균형을 위한 장치들 가운데 하나다. 따라서 우리 헌법의 탄핵 규정은 미국 헌법과 같은 논리를 따르는 우리 헌법의 근본적 이념에 맞을 뿐 아니라 필수적 장치이기도 하다. 게다가 우리 사회에선 여러 역사적 요인들 때문에 대통령에의 권한 집중이 미국에서보다 훨씬 심각하고 위험하다. 자연히, 대통령의 권한에 대한 견제와 균형은 우리 헌법에서 훨씬 더 중요하고, 탄핵이라는 견제 장치도 훨씬 중요할 수밖에 없다.
실은 우리 헌법의 탄핵에 관한 규정은 미국 헌법의 그것보다 훨씬 합리적이다. 탄핵 소추의 심판을, 미국처럼 의회의 한 부분인 상원에 맡기는 대신, 헌법재판소에 맡김으로써, 우리 헌법은 미국 헌법의 탄핵 규정이 안은 심각한 문제들을 원천적으로 해소했다.
첫째, 탄핵 심판에 대한 정치적 영향을 크게 줄였다. 의회의 한 부분인 상원은 정치가들로 이루어진 기관이므로, 탄핵 심판에서 어쩔 수 없이 정치적 영향을 크게 받지만, 사법부의 한 부분인 헌법재판소는 정치적 영향을 훨씬 덜 받는다. (미국의 경우, 상원 의장인 부통령이 탄핵 심판을 주재한다. 그러나 탄핵의 대상이 대통령이면, 부통령 대신 대법원장이 심판을 주재한다.)
둘째, 탄핵 심판에 필요한 법 지식이 제대로 제공된다. 탄핵 심판은 본질적으로 형사 소송이므로, 정치가들인 상원의원들이 탄핵을 심판하기는 아무래도 어렵고 전문적 법관들로 이루어진 헌법재판소에서 심판을 맡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다.
셋째, 공정한 심판에 도움이 되는 환경을 제대로 마련할 수 있다. 탄핵의 심판을 위헌 소송들을 전담하는 헌법재판소에 맡김으로써, 우리 헌법은 미국 탄핵 제도에 대한 주된 비판인 상원 업무에 대한 압박을 없앴다. 아울러 탄핵 소추를 받은 사람들이 그런 사정 때문에 사직하라는 정치적 압력을 받을 여지를 줄였다. 미국의 경우, 상원에 의한 탄핵의 심판이 워낙 어렵고 복잡한 절차이므로, 보다 실제적인 해결책이 출현했으니, 조사를 받는 공무원은 일반적으로 사직하고 그런 사직으로 소송들이 종결되곤 한다.
5
첫째 물음에 대한 답변은 이처럼 긍정적이다. 둘째 물음에 대한 답변은 어떠한가? 노 대통령의 잘못은 과연 얼마나 심중한 잘못인가? 그것은 과연 탄핵 소추를 받을 만큼 중대한 잘못인가?
노 대통령의 핵심적 잘못은 선거법의 위반이다. 선거법 위반 여부는 선관위가 판단하는데, 그 기구의 판단은 노 대통령이 실제로 선거법을 위반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잘못과 관련된 헌법의 규정은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 행정각부의 장. 헌법재판소 재판관. 법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감사원장. 감사위원 기타 법률이 정한 공무원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이다. 대통령은 선거를 실제로 관장하는 행정부를 이끈다. 따라서 노 대통령은 명백히 ‘직무집행에 있어서 법률을 위배한’ 것이고, 따라서 국회의 탄핵 소추 의결은 적합한 사안에 대해서 적절한 절차를 따라 의결을 한 셈이다. 선거법이 시민들의 일상 생활과 거리가 먼 법이고, 그것을 위반한 정도가 가볍고, 탄핵을 통한 대통령직의 박탈이 잘못에 비겨 너무 무거운 벌이라는 시민들의 판단은 이런 사정에 실질적 영향을 미칠 수 없다.
이렇게 보면, 둘째 물음에 대한 답변도 긍정적일 수밖에 없다. 노 대통령의 잘못은 탄핵 소추를 받을 만큼 심중한 것이었다.
6
그러나 노 대통령의 행위엔 거의 언급되지 않으나 중요한 뜻을 지닌 부분이 또 하나 있다. 선관위가 그에게 그의 행위가 불법임을 통보한 뒤에도, 그는 선관위의 그러한 통보의 권위를 무시하고 계속 전처럼 행동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처음엔 선관위의 통보가 “단순한 의견의 표시”라는 주장을 폈다가, 선관위의 판단이 법적 판정이라는 것이 밝혀진 뒤에는 그러한 주장을 슬그머니 거두었고, 야당의 사과와 재발 방지 요구엔 끝내 응하지 않아서, 국회의 탄핵 소추를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그는 무지나 실수로 한 차례 법을 어긴 것이 아니라 자신의 판단을 앞세워서 앞으로도 계속 법률을 어기겠다는 의사 표시를 한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법률의 위반보다 훨씬 무거운 잘못이다. 그것은 법률의 정당성을 부인한 행위다. 선관위의 판단을 따르는 대신, 그는 자신의 판단을 앞세웠다. 위에서 살핀 것처럼, 한 사회의 법은 ‘형식화된 연역적 체계’며 그것의 부분들 사이엔 ‘논리적 연결성’이 있으므로, 법의 어떤 부분의 정당성을 부인하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부분일지라도, 법 전체의 정당성을 부인하는 것이다. 어떤 정리의 타당성에 대한 부인은,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정리일지라도, 필연적으로 그것의 논리적 원천인 공리들의 타당성에 대한 부인으로 이어지고 궁극적으로는 수학 체계 전체의 타당성에 대한 부인으로 이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선거법이라는 법률의 정당성에 대한 부인은 필연적으로 그것의 논리적 원천인 헌법의 정당성에 대한 부인을 낳고 궁극적으로는 우리 사회 법 체계 전체의 타당성에 대한 부인을 낳는다.
여기서 결정적 중요성을 지니는 요소는 대통령은 보통 공무원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대통령 중심제에서 대통령은 권력이 집중되는 직책이다. 그는 법의 집행에서 궁극적 권한과 책임을 지닌 공무원이다. 제69조 “대통령은 취임에 즈음하여 다음의 선서를 한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라는 규정을 통해서, 헌법은 대통령이 헌법의 수호자임을 명시적으로 밝혔다. 따라서 그는 궁극적인 ‘법적 행위자(jural agent)’이고 그의 모든 행위들은 본질적으로 ‘법적 행위(jural activity)’들이다. 그리고 바로 그 사실이 선거법의 정당성을 부인한 노 대통령의 행위를 대한민국의 법의 정당성에 대한 심중한 도전으로 만든다.
“법적 행위의 개념과 법적 행위자의 개념은 어떤 면들에서 상관적이다. 어떤 행위를 법적 행위의 경우로 파악하려면, 그것이 적절한 종류의 행위이어야 한다. 그것은 법을 강제하거나, 법의 위반 여부를 결정하거나, 법을 만들거나 바꾸거나 분쟁을 해결하는 사람에 의해 행해지는 종류의 행위이어야 한다. [...] 둘째, 법적 행위자는 적절한 행위들을 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를 법적 행위자로 만들고 그의 행위들을 법적 행위들로 만드는 것은 사회에서의 그의 권위적 지위다. (The concepts of jural activity and jural agency are in some respects correlative. In order to identify some act as an instance of a jural activity, it must be an act of an appropriate sort. It must be the kind of act that would be engaged in by someone who is enforcing a law, determining an infraction of a law, making or changing a law, or settling a dispute. [...] Secondly, a jural agent is someone who engages in the appropriate activities. But what makes him a jural agent, and his acts jural activities, is his authoritative status in the society.)” [마틴 골딩 (Martin P. Golding), <법 철학 (Philosophy of Law)>]
우리 사회에서 대통령은 가장 “권위적(authoritative)” 지위를 지녔다. 위의 인용문이 밝힌 것처럼, 그러한 지위는 대통령을 ‘궁극적인 법적 행위자’로 만들고 그의 행위들을 모두 ‘법적 행위’들로 만든다. 이 점에서 대통령은 보통 시민과, 심지어 보통 공무원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는 궁극적 ‘법적 행위자’다. 이 사실은 노 대통령의 사소한 잘못이 결코 사소하지 않다는 것을 가리킨다.
탄핵은 ‘견제와 균형’이라는 헌법의 기본적 틀에서 나온 제도이며, 그것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범행의 ‘억제(deterrence)’다. 그래서 “사소한 범죄들은 엄중한 벌들을 받아서는 안 된다 (Trivial crimes do not deserve severe penalties)”는 명제가 실은 동어반복(tautology)이라는 벤(S. I. Benn)의 주장은 탄핵과 관련된 논의에서 유난히 큰 적절성을 지닌다. 즉 어떤 범행의 “심각함(seriousness)”과 “사소함(triviality)”은 그것들을 억제하기 위해 우리가 기꺼이 가하려는 고통과 상관적으로 정의된다는 얘기다. 큰 권력을 쥔 공무원들의 범죄들을 억제하기 위해선 사람들은 기꺼이 상대적으로 무거운 벌을 주려 하며, 그것이 많은 나라들의 헌법에 탄핵이라는 제도가 마련된 까닭이다. 대통령이 우리 사회의 가장 권위적 직책으로 남아있는 한, 그래서 그가 궁극적인 법적 행위자로 남아있는 한, 그의 범행은 어느 것도 사소할 수 없다. 그리고 그런 범행을 억제하기 위해 우리가 기꺼이 가하려는 벌도 사소한 것일 수 없다.
사정이 그러하므로, 탄핵에 관한 논의에선 범죄의 크기와 벌의 크기 사이에 “도덕적 상응(moral fit)”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부차적 중요성을 지닐 수밖에 없다. 원래 탄핵이라는 제도가 권력을 쥔 고위 공무원들의 권력 남용을 억제하기 위해서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은 시민들의 삶에서 거리가 먼 법률을 그리 크지 않은 정도로 어긴 것이다. 그래서 그의 잘못은 사소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무지나 실수에 의한 일회성 위반이 아니라 선관위에 의해 선거법 위반이라는 판정을 받은 행위를 계속하겠다는 의사 표시를 동반한 위반이었다. 아울러 대통령이라는 궁극적인 법적 행위자의 행위였으므로, 그것은 법적 행위의 성격을 짙게 띠었다. 이 두 사실이 겹치면서, 노 대통령의 불법 행위는 대한민국 법 전체의 정당성에 대한 부인과 도전이 되었다.
7
노 대통령이 저지른 잘못은 아주 작은데 그 잘못에 대한 벌은 아주 심중한 것처럼 보인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범죄의 크기와 벌의 크기 사이에 “도덕적 상응”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이 사람들의 직관에 맞는다. 그래서 일반 시민들이 이번 탄핵 소추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드러낸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의 직관에 어긋나는 일이 늘 그른 것은 아니다. 위에서 살핀 것처럼, 탄핵에 관한 우리 헌법의 규정은 헌법의 정신과 논리적 일체성에 맞고 실제로는 필수적인 제도다. 아울러 노 대통령의 잘못은 보기보다는 훨씬 심중하니, 그의 행위는 본질적으로 대한민국 법 전체의 정당성에 대한 부인과 도전이었다. “악법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취지의 발언들을 그가 여러 차례 했다는 사실은 그러한 해석의 타당성에 다시 무게를 더해준다.
사정이 그러하므로, 이번 탄핵 소추의 법적 측면에 대한 논의는 우리 사회의 법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과 성찰이 나올 만한 마당이었다. 그러나 총선거와 맞물려 탄핵의 정치적 측면이 워낙 부각되다 보니, 법적 측면에 대한 논의는 아주 빈약했고, 총선거에서의 결과로 정치적 판정이 내려진 터라, 이제 현실적으로는 이론적 흥미만을 지닌 주제가 되었다. 아쉬운 일이다.
탄핵의 법적 측면 - 복거일
탄핵의 법적 측면 복거일 (소설가) 2004-04-27 15:12:20
1
- 복거일 (소설가)정치적 측면이 그렇게 부각되면서, 탄핵 소추에서 중심적 자리를 차지하는 법적 측면은 오히려 사람들의 관심을 덜 끌었다. “탄핵은 국회에 의한 쿠데타”라는 무지막지한 주장이 큰 호응을 얻는 상황에선, 법적 측면에 대한 차분한 논의가 이루어지기도 어려웠다.
국회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는 예상보다 훨씬 큰 정치적 사건임이 드러났다. 그것은 다수 시민들의 거센 반발을 불렀고 이번 총선거에서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노 대통령을 지지하고 탄핵에 반대한 정당들은 국회의 과반을 넘는 의석을 얻었지만, 노 대통령에 반대하고 탄핵 소추를 의결한 정당들은 몰락했다.
총선거의 결과는 탄핵에 대한 우리 시민들의 생각을 잘 드러냈다. 따라서, 그런 생각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나왔든, 탄핵은 정치적으로는 판결이 난 셈이다. 헌법재판소의 심판은 진행되겠지만, 헌법재판소의 법적 판결도 시민들이 내린 정치적 판결의 압도적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터이다. 법원은 사회로부터 격리된 섬이 아니며, 법원의 판결은 사회의 정치적 자장으로부터 늘 영향을 받는다. 벌써 노 대통령을 지지하고 탄핵에 반대한 정당들은 탄핵의 정치적 해결을 주장하고 나섰다.
사정이 그러하므로, 탄핵의 법적 측면은 이제 실질적으로는 이론적 흥미만을 지닌 주제가 되었다. 그래도 그것은 일반 시민들도 곰곰 살펴볼 만큼 중요한 일이니, 그것은 우리 사회의 법과 정치적 체계에 관해서 중요한 함의들을 품었고 깊은 성찰의 실마리를 내보여준다. 이 글은 총선거가 끝나면서 찾아온 비교적 차분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탄핵의 법적 측면에 관해서 이론적으로 되도록 깊이 고찰하려는 시도다.
2
탄핵 소추에 대해선 그 동안 갖가지 비난들이 나왔다. 그것들의 대부분은 분명히 거칠고 비합리적이다. 그러나 그렇게 거칠고 비합리적인 비난들을 걷어내더라도, 다수 시민들이 탄핵 소추를 정당하지 못한 일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은 오롯이 남는다. 따라서 왜 시민들이 그러한 인식을 지니게 되었나 밝히고 그러한 인식이 법적 측면에서 정당한가 살피는 일은 긴요하다.
시민들의 마음에 그러한 부정적 인식을 낳은 가장 큰 요인은 노 대통령의 잘못과 그것에 대한 벌인 대통령직의 상실 사이에 커다란 불균형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그의 잘못을 구성한 행위들 가운데 중심적이고 탄핵 소추의 직접적 사유가 된 것은 선거법 위반이다. 탄핵 소추의 나머지 사유들은, 즉 그의 측근들의 잘못들과 국정 운영에서의 잘못들은, 일단 부차적 중요성을 지닌다. 그는 선거법을 그리 크지 않은 정도로 어겼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가 그러한 위반을 지적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위반을 계속할 뜻을 밝혔다. 따라서 그는 시민들의 일상 활동과는 거리가 먼 법률 하나를 그리 크지 않은 정도로 어긴 것이다. 그러나 그런 잘못에 대한 벌은 대통령직의 상실이라는 아주 엄중한 것이다. 언뜻 보면, 죄와 벌 사이에 커다란 불균형이 있는 것처럼 보이고 그러한 불균형은 시민들의 정의감과 어긋난다.
다른 편엔, 국회가 법에 규정된 절차를 따라 법에 명시된 책무를 수행했다는 사실이 있다. 국회의 그러한 행위가 어떻게 문제가 될 수 있는가? 혹시 문제의 뿌리는 헌법 자체에 있는 것은 아닐까?
사정이 이러하므로, 이 복잡하고 불투명한 문제에 대한 답변을 내놓으려면, 우리는 두 가지 사항들을 살펴야 한다.
1) 탄핵에 관한 헌법의 규정은 과연 헌법의 정신에 맞는가? 그래서 탄핵에 관한 규정은 헌법의 다른 규정들과 모순되지 않는가?
2) 노 대통령의 잘못은 과연 얼마나 심중한 잘못인가? 그것은 과연 탄핵 소추를 받아야 할 만큼 중대한 잘못인가?
3
이 일을 위해선 우리는 법이 본질적으로 연역적 추리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실제로 한 사회의 법은 ‘연역적 추리의 체계’라 할 수 있다. 한 사회의 법은 일관성이 있어야 하고 그것의 부분들이 서로 부딪쳐서는 안 된다. 하위 법들은 상위 법들로부터 연역적 추리를 통해서 도출되고 재판은 법에 바탕을 둔 연역적 추리를 핵심으로 삼는다는 사실에서 드러나듯, 법은 연역적 추리를 통해서 자신을 구체화하고 자신의 영역을 넓혀 나간다. 아울러, 헌법재판소의 위헌 심사와 같은 활동들에서 잘 드러나듯, 법은 연역적 추리를 통해서 자신의 일체성을 점검하고 유지한다. 법의 본질과 성격에 대한 서로 다른 이론들의 존재와는 관계없이, 이것은 모두 동의할 수 있는 법의 특질이다.
연역적 추리 체계의 모범은 수학이다. 수학은 현실과 관련이 있는 연역적 추리 체계들 가운데 가장 순수하고 엄격하다. 둘 다 본질적으로 연역적 추리에 바탕을 두었으므로, 법과 수학은 형태와 움직임에서 서로 비슷한 점들이 많다. 따라서 연역적 추리의 모범인 수학을 살펴서 법의 본질적 특질들을 드러내는 일은 뜻이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지고 연역적 추리가 두드러진 수학 체계는 유클레이데스 기하학이다. 현대 용어들을 쓰면, 그것은 근원용어들(primitive terms), 정의된 용어들(defined terms), 공리들(axioms) 그리고 그것들에서 연역적 추리를 통해서 도출된 정리들(theorems)로 구성된 체계다.
“유클레이데스는 체계적인 연역적 형태로 기하학을 조직하고자 했으니,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그의 증명들의 엄격함을 늘리고 또한 새로운 법칙들의 증명을 보다 수월하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그의 동기의 전부였다고 하기는 어렵고, 분명히 그것은 현대에서 기하학의 공리화를 시도한 사람들의 동기의 전부는 아니다. 왜냐하면 유클레이데스와 그들은 목표가 그저 기하학의 특정 법칙들이 맞다는 것을 모든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하는 것이었을 경우에 요구되는 것을 넘어선 정교함을 도입하기 때문이다. 또한 공리들과 정리들의 연역적 조직은 또 하나의 목적을, 즉 기하학의 법칙들을 우아하고 명쾌한 방식으로 제시해서 그것들 사이의 흥미로운 논리적 연결들을 예시한다는 목적에도 이바지한다. 수학적 사고의 전형적 특질인 이 추가적 목적은 때로 유클레이데스로 하여금 그의 독자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증명하려고 애쓰게 만드는 것이다. 새로운 논리적 연결성의 이러한 발견은 공리화를 시도하는 현대 사람들로 하여금 그 주제의 보다 우아하게 경제적인 공리화를 추구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Euclid sought to organize geometry in a systematic deductive form because by doing so he could increase the rigor of his proofs and also make it easier to prove new laws. But this could hardly have been the whole of his motivation, and certainly it is not the whole motivation of modern axiomatizers of geometry. For Euclid and they introduce refinements going beyond what would be called for, were the aim merely that of proving beyond all reasonable doubt that certain laws of geometry hold. The deductive organization of axioms and theorems also serves another purpose, that of displaying the laws of geometry in an elegant and perspicuous way, exhibiting interesting logical connections among them. This further purpose, so typical of mathematical thinking, is what makes Euclid sometimes take pains to prove things that his readers think obvious. This discovery of new logical connectedness is what impels modern axiomatizers to seek more elegantly economical axiomatizations of the subject matter.)” [ 스티븐 바커 (Stephen F. Barker), <수학 철학 (Philosophy of Mathematics)>]
위의 인용문에서 거듭 강조된 것처럼, 연역적 체계의 중심적 특질은 “논리적 연결성(logical connectedness)”이다. 그것을 잘 드러내기 위해서 체계의 공리화가 시도되었던 것이다. 연역적 체계의 모든 부분들은 논리적으로 서로 연결되었으며, 어느 한 부분의 타당성의 부족은, 그 부분이 아무리 사소한 정리일지라도, 체계 전체의 타당성에 대한 회의로 이어진다.
기하학이 전통적으로 고대 그리스 문명에서 공리적 체계로 발전한 것과는 달리, ‘수의 수학(mathematics of numbers)’이라 불려온 산수, 대수, 그리고 미적분과 같은 수학 분야들은 주로 바빌로니아 문명, 힌두 문명 그리고 아랍 문명에서 계산의 규칙들(rules of calculation)의 형태로 발전되고 전승되었다. 그래서 수의 수학이 공리적 형태로 조직되기 시작한 것은 아주 최근이다. 이 일에서 선구적 업적을 남긴 이는 이탈리아 수학자 주제페 페아노(Giuseppe Peano; 1858 1932)인데, 그는 다섯 개의 공리들을 바탕으로 삼아 수의 법칙들을 공리적 형태로 조직했다. 그 뒤로 이 일에서 많은 업적이 나와서, 이제는 여러 ‘형식화된 연역적 체계(formalized deductive system)’들이 존재한다.
한 사회의 법은 본질적으로 ‘형식화된 연역적 체계’다. 그것의 핵심적 부분인 헌법은 이상적으로는 근원용어들, 정의된 용어들 그리고 공리들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주변적 부분인 법률들과 다른 하위법들은 그러한 근원용어들, 정의된 용어들 그리고 공리들에서 연역적 추리를 통해서 도출된 정리들로 이루어진다.
법이 구체적 사항들을 다루는 역사적 산물이므로, 특히 법적 기구들을 규정해야 하므로, 법은 수학처럼 순수한 연역적 체계의 모습을 지닐 수는 없다. 그래서 헌법은 흔히 주요 정리들까지도 포함하게 마련이다. (현실적으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정리들까지 포함한다. ) 여기서 강조되어야 할 것은 한 사회의 법은 본질적으로 ‘형식화된 연역적 체계’며 그것의 부분들 사이엔 그리고 부분들과 전체 사이엔 ‘논리적 연결성’이 있다는 점이다. 즉, 논리적 일관성은 법의 중심적 특질이다.
4
이제 우리는 위에서 제기된 물음들을 살필 만한 이론적 틀을 갖추었다. 첫째 물음은 ‘탄핵에 관한 헌법의 규정은 과연 헌법의 정신에 맞는가? 그래서 탄핵에 관한 규정은 헌법의 다른 규정들과 모순이 되지 않는가?’이다.
탄핵(impeachment)은 주로 영국 법의 전통을 따르는 사회들에서 재임 중의 부정행위(misconduct in office)로 기소된 공무원을 그 직책에서 물러나게 하는 의회의 소송(proceeding)이다. 탄핵은 탄핵 소추와 그것에 따른 심판을 포함한다.
우리 헌법은 미국 헌법을 모형으로 삼아 만들어졌다. 미국 헌법은 가장 오래 된 성문 헌법이고 역사상 가장 성공적으로 운용된 헌법들 가운데 하나다. 그리고 가장 많이 연구되었고 그 원리가 가장 잘 밝혀진 헌법이기도 하다. 우리 헌법의 탄핵에 관한 규정도 미국 헌법의 그것을 상당히 충실하게 따랐다.
미국 헌법은 “하원만이 탄핵 소추에 대한 권한을 보유한다 (The House of Representatives · shall have the sole Power of Impeachment)” 그리고 “상원만이 모든 탄핵 소추를 심판할 권한을 보유한다 (The Senate shall have the sole Power of try all Impeachment)”고 규정했다. 아울러, “대통령, 부통령, 그리고 모든 공무원들은 반역, 증수회, 또는 다른 대죄들과 경죄들에 대해서 탄핵 소추를 받고 유죄판결을 받으면 직에서 파면된다 (The President, Vice President and all civil Officers · shall be removed from Office on Impeachment for, and Conviction of, Treason, Bribery, or Other High Crimes and Misdemeanors)”고 규정했다.
탄핵 제도의 성격과 필요성 그리고 그것에 대한 비판은 다음의 설명에 잘 요약되었다.
“탄핵 절차에 대해 제기된 주요 비판은 그것이 거추장스럽고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이었다. 탄핵 심판은 상원 전체가 16일에서 6주에 이르는 기간 동안 그것에만 매달리게 하고, 증언들은 수천 페이지를 채우고 서로 부딪치고 문제적인 정치적 압력들을 끌어들인다. 그러나 그 절차를 수정하려는 국회의 거듭된 시도들은 한결같이 실패했다. 변화에 대한 저항은 탄핵이 견제와 균형이라는 미국적 체계의 없어선 안 될 부분으로 여겨진다는 사실에 의해 부분적으로 설명된다. (The principal criticism directed at the impeachment process is that it is cumbersome and anachronistic. An impeachment trial occupies the entire senate for from 16 days to six weeks, fills thousands of pages of testimony and involves conflicting and troublesome political pressures. Repeated attempts in congress to amend the procedure, however, proved uniformly unsuccessful. A partial explanation of the resistance to change is the fact that impeachment is regarded as an integral part of the U.S. system of checks and balances.)” [브래티니커 백과사전, 탄핵(Impeachment) 항목]
‘견제와 균형(checks and balances)’은 물론 권력의 분립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실제로 권력의 분립은 미국 헌법의 기본적 틀이다.
“헌법의 틀을 짠 사람들은 정부의 압제를 피하는 단 하나의 길은 입법, 행정 및 사법의 권력을 별개 부서들에 배정하는 것이라는 주장을 도전받을 수 없는 격언으로 받아들였다. 이것을 헌법은 모든 입법권은 국회에 있다고 선언하고 행정권은 대통령에게 있다고 규정하고 사법권은 법원에 부여하는 이른바 분배 조항들에서 수행한다. 권력의 분립은 정부의 온당한 조직에 관한 정치 이론일 뿐 아니라 헌법적 법의 교리이기도 하다. (The framers of the constitution accepted it as an unchallengeable maxim that the only way to avoid governmental tyranny is to put the legislative, executive and judicial powers in separate departments. This the constitution does in the so-called distributive clauses, declaring that all legislative powers shall be vested in the congress, stating that the executive power shall be vested in a president and placing the judicial power in the hands of the courts. The separation of powers is not only a political theory about the proper organization of government but also a doctrine of constitutional law.)”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헌법 및 헌법적 법(Constitution and Constitutional Law)’]
요약하면, 탄핵은 미국 헌법의 기본적 교리인 권력의 분립을 통한 견제와 균형을 위한 장치들 가운데 하나다. 따라서 우리 헌법의 탄핵 규정은 미국 헌법과 같은 논리를 따르는 우리 헌법의 근본적 이념에 맞을 뿐 아니라 필수적 장치이기도 하다. 게다가 우리 사회에선 여러 역사적 요인들 때문에 대통령에의 권한 집중이 미국에서보다 훨씬 심각하고 위험하다. 자연히, 대통령의 권한에 대한 견제와 균형은 우리 헌법에서 훨씬 더 중요하고, 탄핵이라는 견제 장치도 훨씬 중요할 수밖에 없다.
실은 우리 헌법의 탄핵에 관한 규정은 미국 헌법의 그것보다 훨씬 합리적이다. 탄핵 소추의 심판을, 미국처럼 의회의 한 부분인 상원에 맡기는 대신, 헌법재판소에 맡김으로써, 우리 헌법은 미국 헌법의 탄핵 규정이 안은 심각한 문제들을 원천적으로 해소했다.
첫째, 탄핵 심판에 대한 정치적 영향을 크게 줄였다. 의회의 한 부분인 상원은 정치가들로 이루어진 기관이므로, 탄핵 심판에서 어쩔 수 없이 정치적 영향을 크게 받지만, 사법부의 한 부분인 헌법재판소는 정치적 영향을 훨씬 덜 받는다. (미국의 경우, 상원 의장인 부통령이 탄핵 심판을 주재한다. 그러나 탄핵의 대상이 대통령이면, 부통령 대신 대법원장이 심판을 주재한다.)
둘째, 탄핵 심판에 필요한 법 지식이 제대로 제공된다. 탄핵 심판은 본질적으로 형사 소송이므로, 정치가들인 상원의원들이 탄핵을 심판하기는 아무래도 어렵고 전문적 법관들로 이루어진 헌법재판소에서 심판을 맡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다.
셋째, 공정한 심판에 도움이 되는 환경을 제대로 마련할 수 있다. 탄핵의 심판을 위헌 소송들을 전담하는 헌법재판소에 맡김으로써, 우리 헌법은 미국 탄핵 제도에 대한 주된 비판인 상원 업무에 대한 압박을 없앴다. 아울러 탄핵 소추를 받은 사람들이 그런 사정 때문에 사직하라는 정치적 압력을 받을 여지를 줄였다. 미국의 경우, 상원에 의한 탄핵의 심판이 워낙 어렵고 복잡한 절차이므로, 보다 실제적인 해결책이 출현했으니, 조사를 받는 공무원은 일반적으로 사직하고 그런 사직으로 소송들이 종결되곤 한다.
5
첫째 물음에 대한 답변은 이처럼 긍정적이다. 둘째 물음에 대한 답변은 어떠한가? 노 대통령의 잘못은 과연 얼마나 심중한 잘못인가? 그것은 과연 탄핵 소추를 받을 만큼 중대한 잘못인가?
노 대통령의 핵심적 잘못은 선거법의 위반이다. 선거법 위반 여부는 선관위가 판단하는데, 그 기구의 판단은 노 대통령이 실제로 선거법을 위반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잘못과 관련된 헌법의 규정은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 행정각부의 장. 헌법재판소 재판관. 법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감사원장. 감사위원 기타 법률이 정한 공무원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이다. 대통령은 선거를 실제로 관장하는 행정부를 이끈다. 따라서 노 대통령은 명백히 ‘직무집행에 있어서 법률을 위배한’ 것이고, 따라서 국회의 탄핵 소추 의결은 적합한 사안에 대해서 적절한 절차를 따라 의결을 한 셈이다. 선거법이 시민들의 일상 생활과 거리가 먼 법이고, 그것을 위반한 정도가 가볍고, 탄핵을 통한 대통령직의 박탈이 잘못에 비겨 너무 무거운 벌이라는 시민들의 판단은 이런 사정에 실질적 영향을 미칠 수 없다.
이렇게 보면, 둘째 물음에 대한 답변도 긍정적일 수밖에 없다. 노 대통령의 잘못은 탄핵 소추를 받을 만큼 심중한 것이었다.
6
그러나 노 대통령의 행위엔 거의 언급되지 않으나 중요한 뜻을 지닌 부분이 또 하나 있다. 선관위가 그에게 그의 행위가 불법임을 통보한 뒤에도, 그는 선관위의 그러한 통보의 권위를 무시하고 계속 전처럼 행동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처음엔 선관위의 통보가 “단순한 의견의 표시”라는 주장을 폈다가, 선관위의 판단이 법적 판정이라는 것이 밝혀진 뒤에는 그러한 주장을 슬그머니 거두었고, 야당의 사과와 재발 방지 요구엔 끝내 응하지 않아서, 국회의 탄핵 소추를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그는 무지나 실수로 한 차례 법을 어긴 것이 아니라 자신의 판단을 앞세워서 앞으로도 계속 법률을 어기겠다는 의사 표시를 한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법률의 위반보다 훨씬 무거운 잘못이다. 그것은 법률의 정당성을 부인한 행위다. 선관위의 판단을 따르는 대신, 그는 자신의 판단을 앞세웠다. 위에서 살핀 것처럼, 한 사회의 법은 ‘형식화된 연역적 체계’며 그것의 부분들 사이엔 ‘논리적 연결성’이 있으므로, 법의 어떤 부분의 정당성을 부인하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부분일지라도, 법 전체의 정당성을 부인하는 것이다. 어떤 정리의 타당성에 대한 부인은,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정리일지라도, 필연적으로 그것의 논리적 원천인 공리들의 타당성에 대한 부인으로 이어지고 궁극적으로는 수학 체계 전체의 타당성에 대한 부인으로 이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선거법이라는 법률의 정당성에 대한 부인은 필연적으로 그것의 논리적 원천인 헌법의 정당성에 대한 부인을 낳고 궁극적으로는 우리 사회 법 체계 전체의 타당성에 대한 부인을 낳는다.
여기서 결정적 중요성을 지니는 요소는 대통령은 보통 공무원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대통령 중심제에서 대통령은 권력이 집중되는 직책이다. 그는 법의 집행에서 궁극적 권한과 책임을 지닌 공무원이다. 제69조 “대통령은 취임에 즈음하여 다음의 선서를 한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라는 규정을 통해서, 헌법은 대통령이 헌법의 수호자임을 명시적으로 밝혔다. 따라서 그는 궁극적인 ‘법적 행위자(jural agent)’이고 그의 모든 행위들은 본질적으로 ‘법적 행위(jural activity)’들이다. 그리고 바로 그 사실이 선거법의 정당성을 부인한 노 대통령의 행위를 대한민국의 법의 정당성에 대한 심중한 도전으로 만든다.
“법적 행위의 개념과 법적 행위자의 개념은 어떤 면들에서 상관적이다. 어떤 행위를 법적 행위의 경우로 파악하려면, 그것이 적절한 종류의 행위이어야 한다. 그것은 법을 강제하거나, 법의 위반 여부를 결정하거나, 법을 만들거나 바꾸거나 분쟁을 해결하는 사람에 의해 행해지는 종류의 행위이어야 한다. [...] 둘째, 법적 행위자는 적절한 행위들을 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를 법적 행위자로 만들고 그의 행위들을 법적 행위들로 만드는 것은 사회에서의 그의 권위적 지위다. (The concepts of jural activity and jural agency are in some respects correlative. In order to identify some act as an instance of a jural activity, it must be an act of an appropriate sort. It must be the kind of act that would be engaged in by someone who is enforcing a law, determining an infraction of a law, making or changing a law, or settling a dispute. [...] Secondly, a jural agent is someone who engages in the appropriate activities. But what makes him a jural agent, and his acts jural activities, is his authoritative status in the society.)” [마틴 골딩 (Martin P. Golding), <법 철학 (Philosophy of Law)>]
우리 사회에서 대통령은 가장 “권위적(authoritative)” 지위를 지녔다. 위의 인용문이 밝힌 것처럼, 그러한 지위는 대통령을 ‘궁극적인 법적 행위자’로 만들고 그의 행위들을 모두 ‘법적 행위’들로 만든다. 이 점에서 대통령은 보통 시민과, 심지어 보통 공무원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는 궁극적 ‘법적 행위자’다. 이 사실은 노 대통령의 사소한 잘못이 결코 사소하지 않다는 것을 가리킨다.
탄핵은 ‘견제와 균형’이라는 헌법의 기본적 틀에서 나온 제도이며, 그것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범행의 ‘억제(deterrence)’다. 그래서 “사소한 범죄들은 엄중한 벌들을 받아서는 안 된다 (Trivial crimes do not deserve severe penalties)”는 명제가 실은 동어반복(tautology)이라는 벤(S. I. Benn)의 주장은 탄핵과 관련된 논의에서 유난히 큰 적절성을 지닌다. 즉 어떤 범행의 “심각함(seriousness)”과 “사소함(triviality)”은 그것들을 억제하기 위해 우리가 기꺼이 가하려는 고통과 상관적으로 정의된다는 얘기다. 큰 권력을 쥔 공무원들의 범죄들을 억제하기 위해선 사람들은 기꺼이 상대적으로 무거운 벌을 주려 하며, 그것이 많은 나라들의 헌법에 탄핵이라는 제도가 마련된 까닭이다. 대통령이 우리 사회의 가장 권위적 직책으로 남아있는 한, 그래서 그가 궁극적인 법적 행위자로 남아있는 한, 그의 범행은 어느 것도 사소할 수 없다. 그리고 그런 범행을 억제하기 위해 우리가 기꺼이 가하려는 벌도 사소한 것일 수 없다.
사정이 그러하므로, 탄핵에 관한 논의에선 범죄의 크기와 벌의 크기 사이에 “도덕적 상응(moral fit)”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부차적 중요성을 지닐 수밖에 없다. 원래 탄핵이라는 제도가 권력을 쥔 고위 공무원들의 권력 남용을 억제하기 위해서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은 시민들의 삶에서 거리가 먼 법률을 그리 크지 않은 정도로 어긴 것이다. 그래서 그의 잘못은 사소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무지나 실수에 의한 일회성 위반이 아니라 선관위에 의해 선거법 위반이라는 판정을 받은 행위를 계속하겠다는 의사 표시를 동반한 위반이었다. 아울러 대통령이라는 궁극적인 법적 행위자의 행위였으므로, 그것은 법적 행위의 성격을 짙게 띠었다. 이 두 사실이 겹치면서, 노 대통령의 불법 행위는 대한민국 법 전체의 정당성에 대한 부인과 도전이 되었다.
7
노 대통령이 저지른 잘못은 아주 작은데 그 잘못에 대한 벌은 아주 심중한 것처럼 보인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범죄의 크기와 벌의 크기 사이에 “도덕적 상응”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이 사람들의 직관에 맞는다. 그래서 일반 시민들이 이번 탄핵 소추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드러낸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의 직관에 어긋나는 일이 늘 그른 것은 아니다. 위에서 살핀 것처럼, 탄핵에 관한 우리 헌법의 규정은 헌법의 정신과 논리적 일체성에 맞고 실제로는 필수적인 제도다. 아울러 노 대통령의 잘못은 보기보다는 훨씬 심중하니, 그의 행위는 본질적으로 대한민국 법 전체의 정당성에 대한 부인과 도전이었다. “악법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취지의 발언들을 그가 여러 차례 했다는 사실은 그러한 해석의 타당성에 다시 무게를 더해준다.
사정이 그러하므로, 이번 탄핵 소추의 법적 측면에 대한 논의는 우리 사회의 법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과 성찰이 나올 만한 마당이었다. 그러나 총선거와 맞물려 탄핵의 정치적 측면이 워낙 부각되다 보니, 법적 측면에 대한 논의는 아주 빈약했고, 총선거에서의 결과로 정치적 판정이 내려진 터라, 이제 현실적으로는 이론적 흥미만을 지닌 주제가 되었다. 아쉬운 일이다.
[출처 : 자유기업원 ] http://www.cf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