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비에 그 자식

은하철도 2004.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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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비에 그 자식  

그 아비에 그 자식,



내 아들,

잘 났는지, 못 났는지, 도대체 지금 떠먹는 것이 밥인지, 죽인지 제대로 알기나 하는지...... 아빠를 닮아서 자기의 아이큐는 측정불가능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뭔 봉창을 두드리는 소린지,


내가 오십 평생을 살면서 헷갈리는 일도 많이 당해보았고 빙빙 돌아가는 세상에 어지럼증도 적지 아니 느꼈지만, 그래도 내 눈빛은 어둡지 않았다.  그러나 애비를 닮아서 그토록 총명하다고 큰소리 펑펑 치는 자식 앞에만 서면 꼭 하늘과 땅이 뒤바뀐 기분이니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눈앞이 어질어질하여 낮술에 취하여 비틀대는 느낌이다.  자고로 자식 앞에 현명한 아비는 그다지 흔치 않으리라.


“네 말대로 수능점수가 안 나와서 원하는 대학에 못 가면 어떻게 하지?”

옆 눈으로 힐끗 쳐다보며 믿지 못하겠다는 말투로 물었다.

“그러면 아무 대학에나 원서를 접수 시키고 군대에 먼저 갈래요.”

약간 기분이 낳아진다.

“흠흠, 그 말이 틀림없으렷다?  올해에 점수가 엉망으로 나오면 그냥 해병대에 쳐 박아 버릴 거야?”

“아유~ 미쳤어요?  그냥 육군에 갈래요.  사서 고생할 일 있어요?”


나도 말발이라면 누구 못지않다.  맘먹고 입을 열면 내 입에서도 청산유수처럼 거침없는 말투가 쏟아지건만,  이 녀석 앞에서는 꼭 밀리는 기분이다.  그리고 내 권위가 엉망이다. 

“아빠가 말이다.  매일 글을 쓰는데, 그냥 글이 나오는 줄 아니?  아빠도 매일 공부한단다.  네가 수능시험공부 하는 것 하고 다르지 않아.  제대로 글을 쓰려면 아빠도 몇 년은 죽어라 하고 공부해야 돼.  그래야 지금의 수준을 한 단계 뛰어 넘을 수 있고, 폭발적인 글실력을 발휘할 수 있거든.”


“아...... 그러니깐, 지금 아빠의 실력으로는 보통의 고수들하고 싸워서 이길 수는 있지만 무림을 평정하려면 내공을 기똥차게 쌓아 올려야 된다는 말이죠?  히히, 맞아.  만화책에서 보니깐 주인공이 산 속에서 지존의 무공을 쌓는 장면이 나오거든.  바로 그 말이죠?”

입맛을 쩝 다신다.  아빠의 권위를 만화책에 비유하다니...... 열심히 공부하라고 기껏 없는 말을 지어내니깐 별안간 뭔 만화책의 무공과 내공이 튀어 나오는지,  에라 모르겠다.  어려운 말로 하지 말고 이 녀석이 보았다는 만화주인공처럼 말해야겠다.


“그렇지.  강호의 지존이 되려면 그만큼 어려운 과정을 거쳐 내공을 쌓아야 된다는 말이다.  집중력이라는 것이 있어.  모든 일은 오랜 기간을 통한 집중력으로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짧은 집중력으로는 상승무공을 터득하지 못한다.  계속적이고 끊임없는 집중을 장기간 발휘해야 된다.  서두르지 말고 하나씩 확실하게 헤쳐 나가야 무림지존의 자리에 우뚝 설 수 있는 법이다. 흠흠,”

“히히, 그러니깐 아빠 말은 딱 이것이잖아요.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된다. 이거죠?”

어쭈?  말귀는 제대로 알아 쳐 먹는 모양인데?


차는 강변북로를 빠지면서 한강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다음달부터 다니는 학원근처의 고시원을 향한다.  괜히 잔소리라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 농담을 실실 주고받으며 언중유골(言中有骨)의 비법으로 교육을 시키려는데, 도대체 통하고 있는지, 먹통에 대고 지껄이는지 알 수가 없다. 


작년에 이 녀석이 얼마나 큰소리를 펑펑 쳤는가,

“걱정 마세요.  그 정도야 안 되겠어요?  수도권 대학이야 그냥 갈 수 있죠.  아빠는 그냥 믿고만 계시면 자동적으로 다 술술 풀릴 것이에요.”

자동적으로 술술 풀리는 것 좋아하네.  주둥아리를 꽉 틀어막고, 대갈통 뚜껑을 활짝 열어서 국어책, 영어책, 수학책, 등등 온갖 참고서까지 몽땅 집어넣고 발로 꽉꽉 밟아 버리고 싶지만 앞뒤로 돌아가며 두드려봐야 쇠뭉치 소리만 나는 녀석의 대갈통인데......


“어떤 과목이 그렇게 어려워?  네가 어렵다고 느끼면 바로 네 기초실력에 문제가 있는 거야.  고등학교 3학년 책으로 공부하지만, 알고 보면 네 실력은 중학교 3학년 수준에 머물러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러면 얼른 자신의 실력이 어디까지인가를 먼저 찾아서 기초부터 차근차근 밟아 올라야 된다는 말이닷.  기초적인 보법도 터득치 못한 주제에 소림사의 나한십팔장을 흉내 내는 그 어리석음을 알아채야 한다는 말이닷. 알았어?”

과거를 회상하자니 은근히 열 받는다.  그래서 잔소리 가까운 직설법으로 공략한다.


“아빠, 나한십팔장이라는 무공이 그렇게 높아요?”

잉?

아니 이 녀석이...... 본연의 뜻을 모른 척 하고 기껏 알아들으라고 비유한 소림사의 무공인 나한십팔장을 물고 늘어지다니,

“그렇다.  높다.  높다는 것만 알아두면 돼.  마치 네 글실력하고 아빠의 글실력 차이라고 보면 정확하지.”


“흠흠, 그렇구나.  그런데 저는 문학쪽 보다는 비문학쪽이 더 좋아요.  언어영역이 영 약하거든요.  저는 시만 나오면 죽음이에요.  시험문제에 시를 써 놓고 해석하라고 하면, 나는 이렇게 해석했는데, 답안지를 보면 영 엉뚱한 답이 나오거든,”

퍽~

그 딱딱한 대갈통을 한대 쥐어박는다.  내 입을 틀어막느냐 초치는 것이 분명하다.

“이게 뺀질뺀질하게 아빠 약 올려?  에그...... 그냥 한강에 집어 던졌으면 좋겠다.”


“인터넷 강의를 듣는다는 핑계로 지금 컴퓨터를 가지고 가는데...... 솔직히 말해봐.  매일 게임만 하고 있지?  리니지라는 게임 말이야.  그치?”

이제는 한걸음 썩 내딛으며 직격탄을 퍼붓기 시작한다. 

“에유, 제가 어린애예요?  게임 같은 것은 안 해요.”

“그래? 그러면 19살 되었으니깐, 빨간색 동그라미 속에 19라는 글이 써 있는 요상한 사이트만 돌아다니는 것은 아냐?  응큼하게.”


멀뚱한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며 그 녀석이 하는 말,

“19라는 숫자가 써 있는 사이트는 뭐예요?”

아쭈?  이 녀석 봐라.  정말 모른 척 하는지, 진짜 모르는지, 아리송한 표정으로 되묻는데,  인터넷에서 음악방까지 열어놓고 수다 떨던 컴퓨터 실력에 그것을 모른 척 하다니......

“흠흠, 모르면 되었어.  알려고 하지도 말아.”

뭐~ 당사자가 모른다는데 더 할 말이야 없다.  그렇다고 그 사이트가 어떻다는 둥 하면서 설명할 수야 없지.  그저 모르기를 빌 뿐이다.  물론 믿지는 않지만.


새벽 한 시,

콧구멍만한 방에 녀석의 짐을 다 들여놓고 식당에 들어섰다.

“뭘 먹어야 네 대갈통이 잘 풀릴 것 같아?”

꾹꾹 눌러 참는 내 감정에 꼭 따라다니는 대갈통이라는 소리다.

“아무거나 먹어도 기똥차게 풀려요. 헤헤.”

“그래?  특별한 조치가 없어도 그 대갈통은 위대하단 말이지?”

“그럼요. 아빠 머리를 닮았는데, 제 아이큐는 측정불가능이에요.”


흑,

닮을 것을 닮아야지.  도대체 애비의 대갈통을 닮아서 뭐에 쓴다는 말인가,

솔직히 말하면...... 나도 이 녀석의 나이 때에 공부를 잘한 편은 아니다.  언어영역이 어렵다고 했는데,  나도 국어가 점수가 제일 나빴다.  그 다음이 수학이었다. 

그런데 돌대가리가 약간 발전한 모양이다.  다행히 이 녀석은 수학을 잘하는 편이니깐, 내 대갈통 보다는 좀 낳은 편이라고 안 할 수야 없지.  흠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