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의 자유가 없는 사람들........

하얀손2009.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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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의 자유가 없는 사람들........


어느 재벌 회장이 돌연 자살을 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이나 이별의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선택하거나, 가난한 경제적 형편이나 신체의 불구적 이유도 없는, 소위 아쉬울 것이 없는 사람이 자살을 어째서 선택했을까? 의외로 유명한 연예인이나 대기업 임원 및 판사들도 자살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그 이유는 무엇인가?


문자 그대로 자살은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죽음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선택’의 문제이다. 그 선택을 판단하고 실천하도록 하는 것은 바로 가치관의 영역이다. 우리 사회는 자살로 인해 죽은 사람들에 대해 관용적이다. 이런 사회적 관용은 더 많은 사람들을 자살로 몰아간다.


사실, 자살을 하고 싶어도 자살을 할 수 없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 불치병이 걸린 환자보다 그를 돌보는 간병인이 더 오래 산다는 이야기가 있다. 특히 그 환자를 돌볼 수 있는 사람이 자신 밖에 없다면 더욱 삶에 대한 애착을 갖는다고 한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를 위해 자신은 죽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죽을 수 없는 정신, 즉, 소명의식이다.


물론, 뒤르캠의 주장에 의하면, 소명의식을 갖고 자신이 소속한 집단이나 다른 사람을 위하여 죽는 이타적 자살이 있지만, 과연 자신의 문제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한 생각을 지니고 있다면 쉽게 자살을 결심하고 실행하는 사람은 현격이 감소할 것이다. 특히, 근대화 이후 분업화된 사회적 현상으로 연대감이 느슨할수록 자살률이 높다는 이론은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다.


즉, 자신이 사회 연대감을 갖고, 자신이 속한 사회 구성원을 위한 봉사 및 헌신의 자세를 지니게 된다면, 그것은 타인을 위한 봉사뿐 아니라, 자신에 대한 봉사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교육은 사회 구성원의 상호연관성 및 연대감을 강화하는 방향이 아니라, 상호 경쟁관계를 유도하고 있다.


상대를 이기고 앞서기 위한 치열한 경쟁심이 정치 및 경제, 연예계뿐만 아니라 교육계에도 만연하고 있다. 학생들의 봉사 활동도 대학진학을 위한 요식적 봉사에 머물고 있는 실적이다. 아무리 공부를 잘하고 재주가 많으면 무엇하랴? 제 입속에 먹고 넣은 것만 전전긍긍하다가, 여의치 않으면 불법과 부정부패, 그렇지 않으면 자살이나 하도록 방치하고 있으니, 어찌 한심하지 않는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기심이나 가족주의의 작은 사랑은 부러지기 쉬운 나뭇가지에 불과하다. 이웃과 민족 그리고 인류를 위한 큰 사랑은 비바람에도 쓰러지지 않는 거목이다. 작은 시련에도 쓰려지는 작은 사랑을 지니고 있으니, 자살이 많은 것이다.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큰 사랑의 깨달음을 갖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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