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생긴일

땅콩2004.05.04
조회845

어제 아침일이다.
늘 그렇듯이 주일날 아침은 왠지 모르게 바쁘다.
요즘같이 새벽3시나 되야 잠자리에 드는 날은 더욱 그렇다.
화장을 마치고 보니 역까지 가야하는데 3분이 남았다.
현관문을 쾅 닫고는 전속력으로 달린다.

얼마나 숨이 찬지 가방이랑 열쇠랑 옆에 내려 놓고
숨을 고르고나니 그제야 여유가 생긴다.
타고 내리는 승객이랑 창 밖의 5월의 경치도 구경하고.....
갈아타야할 Hansaring에 도착했다
지하에 있는 U-Bahn을 타러 나가는데

뒤에서 누가 Hallo, hallo..
날 부르는 건 아니겠지...


예배후에 다과시간.
반가운 얼굴들....한 주동안 잘 있었는지...

안부를 묻고 대답하느라
시간이 잘도 간다....어느새 몇몇 약속이 잡힌다.
같은 동네 사시는 지집사님부부는

내일 그리스로 휴가를 2주간 떠나신단다.
지난번에 빌려주신 책도 드려야 하고 빌려드리려고

맘 먹은 책도 있는데
저녁에 시간이 되시면 전화하시고 잠깐 들리시라 말씀드렸다.
근데 낼 새벽3시에 일어나서 출발이라시네.

운전시험공부도 해야하고 연습도 했으면 좋겠는데
친구가 자꾸 집으로 가잔다.
그래 잠깐 들리지 뭐.
해주는 밥먹고 놀다 보니 벌써 7시.
집에 갈려는데 아쉬운지 영화보러 시내에 가고싶다니...
아까 집사님더러 한 얘기가 있어서

그럼 전화로 확인을 해보고 가자고 했다.
집사님께 coll, 그새 열번은 전화 하셨단다.

얼른 집으로 갈께요..
이따 도착하면 집에서 전화하지요.

부리나케 은경이네서 나와 집으로 가는 U-Bahn을 탔는데,
워낙 길치인 나는 엉뚱한데서 내리고,
타야할 S-Bahn을 하나 놓쳤다.

아무리 같은 동네지만 차로 15분 거리인데 기다리실까봐
집사님께 공중전활 했더니(핸드폰을 집에 두고 왔슴)
벌써 출발하셨는지 아무도 안 받는다. 에고에고..
담 기차가 30분 뒤에 있다.
자리를 잡고 가방을 뒤적이다 열쇠꾸러미를 찾으니 안 보인다.
가슴이 덜컹.
어디있지?
주머니마다 다 뒤져도 안나오는 열쇠.
열쇠 꾸러미가 꽤 묵직해서 왠만하면 보이는데 작은 가방안에서 흔적도 없다. 어디갔지?

내 직장교회의 마스터키가 들어있는데....
집 열쇠는 걱정도 안된다.
그리고 연습하기 위해 3년을 공들여 얻은
다른 교회의 스페어 열쇠2개랑
오르간열쇠...자전거 열쇠.
머리가 아파온다

우리교회의 열쇠를 몽땅 바꿔야 한다고 하면 어쩌지?
옛날에 어떤 친구의 얘기가 생각난다.
빌려서 연습하던 교회의 열쇠를 잃어버렸는데

8000마르크를 물어줬다나?(500만원)
교회안의 모든 문의 열쇠를 바꾸느라 든 돈이란다.

잘 생각해보니 아침에 누가 할로, 할로 하던것이 생각난다.
아~~ 그게 날 부르는 소리였구나.
돌아볼 생각도 안하고 무심코 갔는데...아이구.
그 아줌마 내 열쇠를 어떻게 했을까?
여기 역 아저씨 한테 물어보자.
분실물로 들어온게 있나.

아저씨 간단히 대답.
난 몰라. 낼 아침에 분실물 신고센타에 가봐..

그러는 새 집에가는 열차가 들어온다.
내릴 역이 다와서 집 쪽을 바라보니

(열차길이 집 옆을 지나간다)
두 집사님이 문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서
열차를 목이 돌아가도록 쳐다보신다.
ㅎㅎㅎ...suess!
아마도 낼 일찍 일어나야 하니까 시간을 절약하시려고
일찍 나오셨겠지.

다음순간..눈 앞이 캄캄하다.
책 빌려드려야 하는데, 집에도 못 들어가고....
면목이 없다.....
터덜터덜 걷는데 저만치서 한 집사님이 마중 나오신다..
아까 낮에 뵜건만, 반가와서 얼굴에 웃음이 가득.

열쇠를 잃어 버렸어요.
응? 무슨 열쇠?
집열쇠랑 교회열쇠요

주인집 할머니 한테 가면 스페어가 있을 꺼라고 위로하시는 집사님.
어쨌든지 지금 문만 열면 된다...집사님들은 어서 가서 쉬셔아지.
주인할머니...열쇠가 없단다. 이런~
모두 망연해서 아까처럼 셋이서 문 앞에 쭈구리고 앉았다.

동생은 어디갔니?
오늘 연주있어요.
어디에서?
Leverkusen이요.
언제인데?
8시요
그럼 언제 오나?
한시간 연주하고 지금이 9시니까 적어도 10신 넘어야 오겠네요.
휴........
우리집에가자. 이따가 동생이 올 시간에 데려다 줄께.
아니에요.저 여기있을래요. 책은 담에 빌려드릴께요.
집사님들께선 가서 쉬세요. 죄송해요.
아니야.너 여기서 1시간이나 뭐 할래? 우리집가자..
싫어요.아.배고파........열받으면 뭐 먹어야 되는데....
집사님 뭐 먹을 것 있으세요?
미안하고 겸연쩍어서 어리광을 부린다.

아닌게 아니라 집사님은 무슨 소쿠리를 옆에 갖 고 계신다.
응.......이건 지금 못 먹어...
얘, 너 밤 좋아하니? 이거 밤인데, 냉동시킨거거등?
두고두고 먹어라.글고 이건 신김치고, 이건 고등어랑 오징어.

이건 모에요?
뭐가 음료수컵에 빨대같이 생겼다.

이거? 지나번에 너네 집에 와서 보니까
문들이 뻑뻑해서 소리가 나길래
기름칠 해 줄려고 갖고 왔지.
(으메........집사님 저 감동했어요^^)
옆에서 듣고 있던 지집사님 일어나신다.

여보 어디가?
응 뭐 먹을 거 좀 사오게. 배고프다잔어

한참을 내려가시다말고 집사님.....
아차! 나 지갑 안 갖고 왔다..
어쩌지?
그러지 말고 집에 가자...가서 밥 좀 먹어..

집사님댁에 와서 먹는 야참....
잘도 먹는다....
10시.
동생 핸번에 신호가 간다...

언니 어디야?
넌?
집인데?
응 지금 갈께. 나 열쇠 잃어버렸어.
그래? 그럼 벨 눌러.

한집사님은 피곤하시다며 들어가시고,
지집사님은 오셔서 여기저기 문에 기름칠 해 주신다

이번엔 주머니에서 숫돌을 꺼내신다.
칼 줘봐라.
네? 아, 예.....
전에 우리집 칼이 잘 안든다고 했더니....

쓱쓱..금새 날이 잘 서는 칼이 된다.
이건 뒀다가 다음에 써라.
조그만 숫돌.

책을 찾아서 드린다.
거 참 책한번 빌려보기 어렵네~
한국어로 된 읽을거리가 귀해서
좋은 책이 생기면 서로 돌려본다.

집사님 여행 잘 다녀오세요~
나 때문에 집사님 오늘 참 피곤하시겠다.

열쇠걱정에 잠이 안온다.
뒤척 뒤척..
어떻하지?
도저히 안되겠어서 컴을 킨다.
싸이질...오늘따라 컴이 말을 안듣는다.


XXXX오류입니다.프로그람을 닫아야 합니다. 60초.59초..

에휴...안 되겠다..
다시 잠자기 시도....

3시에 잤는데 동생은 8시부터 깨운다.
일어나 밥먹자
싫은데~~좀만 더 자고....
으음.....앗, 열쇠!

벌떡 일어나 Bahnhof에 전활 건다.

Ich hab gestern in der S-Bahn meine Schuesselbund verloren.
Wann, wo, genau?
gegen 12 Uhr in S-13
Mit Tasche, oder ohne Tasche?
Ohne
Wie sieht sie aus?
mit kleiner Ketten "TJI Friday"
Ach, ist die hier.
Ja? Oh yeh~~~~~~~~.
ich komme gleich. Danke,danke!

열쇠가 있단다. 얏호~~~~~

어제 주신 고등어....굽는 냄새에 침이 돋는다.
음 맛있어...정말 근사한 아침식사다.

뭘 잃어버려서 찾은 건 이번이 벌써 3번째이다.
지갑, 비디오 카메라, 열쇠.
모두 이번보다 더한 드라마가 있지만, 그건 담에 쓰기로 하고..
어쨌든 이래서 독일이 좋다.
그리고 집사님들도 넘 좋다...

지금 내 손에 다시 들어온 열쇠꾸러미.
그 묵직하고 익숙한 느낌이 그대로이다
나도 이렇게 살아가야지.
행복으로 배가 부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