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

사랑받고싶은나!2004.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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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해 주신분들께 너무 감사하구요!

밥은 진짜로 백일지나면서 애가 분유를 너무 안먹어서 된장국을 끓여서 먹였구요!

7개월 뒤부터는 라면도 먹었답니다!  8개월부터는 밥, 물, 다했어, 이런 간단한 말도 했구요!

응가도 화장실에서 변기에 앉혀 놓으면 다 하고 나서 저를 부른답니다!

그리고, 우리애는 변볼때 표정이 변하기 땜에 제가 얼른 변기통위에 앉혀 놓던게 습관이 되어서

가리기 쉬웠어요!

 

그렇게 빚을 떠안고 허리띠를 졸라 맸어요!

생활고에 시달리는 것도 힘든데 남편은 도무지 변하지가 않았습니다.

또 거짓말에 속아버렸고 술도 점점더 마시더군요!

제발 변하기를 바랬는데........

맨날 외박에 술이였고 휴일은 하루종일 잠만자고,......

휴일날 놀러가는 가족들을 보면서 부러웠었고 애들이 불쌍했죠!

제가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삶이 너무 버거웠고! 내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고 있다는걸

제가 느끼고 있었죠!

가정적인 남편으로 돌아오길 기다리던 어느날 방을 닦다가 처음으로 잔소리라는걸 했습니다.

약속도 안지키고 너무하는거 아니냐고.....

갑자기 난데없는 발길질에 저는 꼬꾸라 지고 말았어요! 움직일수가 없었어요!

큰애와 이제 기기 시작하는 둘째애가 저를 내려보던 그 눈빛을 잊을수가 없었어요!

몇시간을 움직일수가 없었고 겨우 움직일수 있었을때 저는 하혈을 했어요.

많은 양의 피를 쏟았고 그때까지만 해도 여자는 시집가면 그집안에 귀신이 되어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기에 조용히 병원을 다녀오고 남편이랑 저랑 그리고 천사같은 눈으로

엄마! 왜그래? 하고 쳐다보았던 우리애들만 아는 비밀이 되어 버렸죠.

다음날 동네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었더니 타박상이 심하다고 하더군요.

피흘리는건 대충 약국에서 약지어먹었구요.

몇년이 흐른뒤에 후유증으로 남았네요. 신장이 한쪽이 고장났대요!

그때 차여서 피를 쏟은게 신장을 차여서 그런거라는걸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어요. 이미 늦었지만...

남편의 허물을 감추면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을뿐인데..... 하늘은 제게 너무 가혹하네요

빛도 다 갚지 못했는데 27개월된 아이가 악성종양에 걸리고 말았네요!

배속에서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은건지.... 모든게 원망스러웠어요!

그래도 아이를 살려야 겠다는 생각에 오로지 아이만을 위해 7시간이나 걸리는 병원(서울)을 선택했고,

2년을 병원에서 살다시피했죠.

98년 10월 21일 우리애가 암선고 받은 날이에요.

26일에 항암을 넣었고 중환자실로 갔죠.

그때일이 생각나서 눈물이 나네요!

다들 가망없다고 했지만 저는 아이를 믿었죠.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다음날 면회를 하면서 하룻밤새 반쪽이 된 아이가 너무 안스럽고

가슴 아팠어요.

기궈기만 채우고 사지를 묶어놓았더군요.

한쪽팔에는 수혈줄, 또 다른 한쪽팔에는 수액을 맞고, 코에는 산소줄을 하고

한쪽다리에는 관을 박아놓고 사지를 묶어놓은 그모습은 가슴이 미어지는것 같았어요!

없던 쌍꺼풀이 생긴 그모습은 밤새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를 말해 주고 있었어요.

엄마! 하며 앙하고 우는 아이에게....

미안하다!  힘들게 해서 미안해!  아가!  엄만 울지 않을거야!  장한 내 아기! 너도 울지마!

나혼자만 면회와서 미안해! 사랑한다! 알지?

고개를 끄떡하며 금방 울음을 뚝그치는 대견스러운 내아이였어요.

간호사에게 왜 묶어놓았냐고 했더니 줄을 뜯으면 다시 주사 맞아야 하니까

그래서 해놓았다네요.

아이가 말귀를 알아들으니까 풀어달라고 하면서 아이에게 이해를 시켰죠.

이거 만지지마! 이거만지면 주사 또 아야 해야돼! 알았지?

고개를 끄떡이는 아이! 저를 보며 물을 달라네요!  간호사한테 물을 달라고 하니

금식이라서 약먹을때 이외에는 안된다고 하네요.

영악한 아이는 약먹으면 물을 주니까 약을 달라네요.

간호사가 아이가 말을 참 잘듣는다면서 칭찬해서 그나마 다행이었어요.

면회시간이 끝나서 나오려는데 내 손을 꼭 잡는 아이에게 엄마 물사러갔다 올께! 했더니 빨리갔다와!

하면서 내손을 미는 아이를 뒤로 하고 중환자실을 나왔어요!

여태까지 그랬던 것처럼 또 혼자서 대기실에서 밤을 새고 아침 면회 시간을 기다렸죠.

중환자실에서 혼자있을 내 작은 아가를 생각하면서.....

생전 처음 엄마를 떨어진 큰애는 걱정도 되지 않았어요. 시누이 집에 맡겨 놓았으니 동생애니까

예뻐해 주겠지 하는 생각뿐이었어요.

아이가 아파도 정신안차린 남편은 이제는 아이핑계로 술을 마시네요.

옆에서 아이와 함께 고통받는 사람은 저인데.... 고통스러워 하는 아이를 지켜보는

나도 있는데...

항암으로 토하고 입안은 걸레처럼 너덜너덜 해지고 항문이 헐어도 아프다는 말한마디

안하고 잘견디는 대견한 아이가 아빠보다 훨씬 나았죠.

그날부터 금식이라네요! 한달동안이나..... 이제 겨우 27개월인데.... 

큰애만 이뻐하고 작은애에게 못해주었던 게 너무 미안했어요.

작은애는 스스로 강해진거나 다름없어요.

제가 외국식으로 키웠거든요.

내성적이고 정신력 약한 남편한테 질려서....

신생아때부터 따로 재우고 뭐든지 스스로 하게 했죠.

그래서 그런지 정신력하나는 강해요!

저는 그애를 사막에서도 살아남을 애라고 한답니다.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중환자실에서 3일만에 일반병실로 올라가게 되었어요.

그날 남편이 옷가지를 챙겨가지고 왔고 저는 조금은 안도의 숨을 쉬었어요.

하지만 여전히 남편은 도움이 안되었고 오히려 아이를 간호하는데 저를 더 힘들고

제 몸을 망가 뜨리고 있었죠.

그상황에 남자들은 생리적인 현상을 그렇게 참기가 힘든가요?

첫경험이 강제였기 때문에 저는 성관계가 너무 싫습니다.

밤마다 도망다녔죠.

병원에 왔다 내려가는날 남편은 주차장 차안에서 그걸 원했고 거부하다가 할수없이...

그리고는 다음 생리가 없었죠.

올케를 하루 오라고 해서 수술을 받았고 몸조리도 못한채 아이의 병간호를 했죠.

금식하는 아이에게 미안해서 밥을 취소하고 낮에 우동하나로 끼니를 해결했고

안죽을 만큼만, 병간호 할수 있을 만큼만 먹었죠. 그것도 사실은 아이에게 미안했지만......

부채밖에 없는 상태에서 병간호도 해야 했지만 병원비도 문제였죠.

오빠가 돈을 주고 가더군요. 회사 언니들이 돈을 줬었구요. 가슴이 찡했어요.

어느덧 병원생활도 익숙해져 가고 아이는 병원내에서 말잘듣고 징징대지 않는다고

요즘말로 인기짱이 되었어요.

주말에 큰애에게 가보라고 해도 남편은 말을 듣지 않았고.......

저는 또 큰애에게 미안했죠. 저런 아빠의 아들로 낳아줘서 ...

한달동안 입원하고 3박 4일 퇴원을 시켜주는데, 저는 그때 집에 가기가 싫었어요.

제게는 스트레스였거든요.

남편에게 미리 전화를 해서 아이의 상태에 대해서 말해줍니다.

항암하는 아이들은 면역이 없기 때문에 환경이 청결해야 하고 사람들 접촉도 피해야 하고

뭐든지 끓여 먹어야 하고....등등...

7시간을 버스를 타고 내려오면 아이는 제 품에서  녹초가 됩니다.

항암치료로 살이 빠져 걸을수 없는 아이를 안고 등에는 배낭을 메고 지쳐서 집에 도착하면

저는 그때부터 또 다른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쉬는건 제게 사치인가 봅니다.

아이에게 마스크를 씌워놓고 방안 가득히 쌓인 먼지를 청소하기 시작합니다.

혼자서 잘 앉아있지도 못하는 아이를 혼자두고 청소하다보면 남편이 정말 원망스럽습니다.

그렇게 하루는 청소를 하고 다음날은 아이가 열이 심하게 나서 바로 병원으로 가야 했죠.

열이 나면 무조건 응급실로 가야 하기 땜에 남편을 불렀고 남편은 자기가 7시간이나 운전해서

데려다 줘야 하는것에 화가 났나 봅니다.

주말에 큰애에게 가보라는데도 말안듣는데 오죽하겠어요?

그렇게 그림을 잘 그리던 애가 도화지를 새까만색으로 칠한다는 소리에 아이가 마음이 다친게

보였는데...

 

 

회사라서.... 나중에 또 쓸께요! 죄송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