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W 2부 (#47 : 진실)

J.B.G2004.05.07
조회85

 

정후의 회상을 듣고 있던 유채는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었다. 그리고 놀라는 그녀에게 슬픈 눈을 한 정후가 말했다.

 

“어때… 내 애기 재미 있었어?”

 

유채는 정후에게 물었다.

 

“그… 그럼… 그 지구연합의 컴퓨터 X가 수진씨 였단 말야?”

“…아니… 그건… 아냐… 그건… 수진의 분신이었어…”

“수… 진씨의 분신…?”

 

유채는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그녀는 어렵사리 쉼 호흡을 하고 있었으며, 정후는 여전히 넋이 나간 사람처럼… 대꾸했다.

 

“그래… 인간이 뿌린 씨앗이… 열매를 거둔 거야… 왜냐하면… 새로 태어난… X가 수진에게서… 이어받은 건… 자신을 속인 인간들에 대한.. 적개심과 복수심 뿐이었거든…”

“이… 이럴 수가…”

 

유채는 결국 그 자리에서 심하게 구토를 하고 말았다. 그렇게 한참 구토를 하던 유채는 마음을 진정하고 정후 에게 물었다. 그리고 정후도 진정되고 있었다.

 

“그럼… 수진씨의 반대쪽의 마음은 어디로 사라진 거야?”

“그건… 아마… 소멸 되었겠지… 인간들의 배신이… 수진의 그런 마음을 소멸 시킨 거야…”

 

두 사람은 모두 침묵했다. 정후도 유채도 슬픔이 밀려왔다.

 

“어때… 이정도면… 혜성의 퇴치를 X가 방해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는데 동의해…?”

“…”

 

유채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정후의 말에 그녀는 아무런 변명을 할 수 없었다. 그러한 그녀에게 정후가 물었다.

 

“…이제… X를 용서할 수 있겠어…?”

“그건… 또, 무… 슨 소리야…?”

 

유채가 자신의 질문에 되묻자 정후는 아주 잠시… 잠시 신경이 곤두섰다. 그러나 곧 다시 침착하게 되물었다.

 

“네가 M을 용서했듯이… X도 용서할 수 있는가? 묻는 거야…”

 

그녀는 지금 정후의 질문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유채는 신중하게 대답하고 있었다.

 

“그건… 나 한 사람의 문제가 아냐?”

 

정후는 유채에게 다시 한번 자신의 마음을 상기시켜 주었다.

 

“아니… 너 하나면 충분해…”

“그게 무슨 소리야… 도대체…”

 

그녀는 애써 정후의 질문을 외면하려 애쓰고 있었다. 그러나 정후는 그러한 그녀를 내버려 두려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수진의 아이는… 한 인간을 사랑하게 되었거든…”

“…”

 

침묵.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도 감정을 가지고 있어서… 그래서… 자신의 어머니를 배반한 인간을… 한 인간만은… 사랑하게 된 거야…

“…X는… 살아 있는 거야…”

 

유채의 목소리는 실낱같이 떨리고 있었다.

 

“그래… 그는 내 오랜 친구야…”

“친…구…”

“그는 내 안에 살아 있어… 그의 영혼을 내가 이어받았어… 모두…”

“이… 이건… 말도 안돼…”

 

그녀의 계속되는 부정에 정후의 목소리가 갑자기 메말라 버렸다.

 

“뭐가…?”

“…”

“인간에게 창조된 기계에게 영혼이 있을 리 없다는 이기적인 말을 하려거든. 집어 치워!”

“…”

 

그녀는 그만 침묵해 버렸다. 더 이상 아무런 반박도할 수가 없었다.

 

“넌… 어째서 그렇게 편협한 거지? 어째서… 어째서… 인간 이외의 생명체를 동등하게 인정하는 네가… 기계들은… 왜… 동등하게 인정해 주지 않는 거지…?”

“미안해!”

 

그녀의 이 무책임한 한마디에 정후는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고 흥분해서 소리를 질렀다.

 

“이건 그런 문제가 아냐! 이건 생존의 문제야! 존엄성의 문제라고! 알아!”

 

유채는 그만 자신이 지고 있는 운명의 무게에 짓눌려 참지 못하고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도대체 날보고 뭘 어떻게 하란 말야! 인간들도… M도… 너도… 다 날 미치게 하고 있어. 난… 난… 그냥 평범한 사람일 뿐이야… 그뿐이라고… 흑…”

 

정후는 자신이 짊어진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려 버린 유채를 바라보며 그만 자신보다도 더 측은하다는 생각이 일고 말았다. 그래서 그는 그만 침묵해 버렸다. 그리고 오랜 침묵 끝에 정후가 말했다.

 

“바보같이… 네가 평범한 사람일 리가 없잖아… 바보…”

“흑…”

“평범한 여자가… 모든 존재들에게 이렇게 사랑 받고 의지하고 싶어지는 존재일 리가 없잖아… 젠장…”

 

정후도 더 이상 말을 멈추었고, 유채도 이제는 눈물이 마른 듯 울음을 멈추어 버렸다.

 

“일어나… 너한테 보여줄 게 있어…”

 

유채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서 조용히 정후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정후가 유채를 인도한 곳은… 폐기장 이었다.

 

“여긴… 폐기장 이야…”

“폐기장?”

 

유채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녀를 다시 한번 자신의 작은 존재감에 한탄할 수 밖에 없도록 그녀를 짓누르고 이었다. 그러나 선택 또한 그녀의 것이었다. 운명의 무게에 무너져 내리든지… 아니면… 무게를 딛고 일어서던지…

 

그녀의 눈 앞에 펼쳐진… 거대한 지하 돔. 그곳에는 악취가 난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쉴 새 없이 새로운 찌꺼기들이 유입되고 있었다. 인간의 시신… 돌연변이의 시신… 기계의 무덤… 그곳은 악몽 그 자체였다.

 

“실험에 실패해서 버려진 돌연변이… 인간숙주… 그리고 기계의 폐품들… 이것이 M의 도시의 진실이야… M의 백성들의 수명은 10년… 그렇게 밖에 살 수 없도록 정해져 있어… 그 이상 살면… 자아가 형성되어서 관리하기 힘들어 지거든… 뭐 그래도 그들은 다행이야… 기계들은… 겨우 6개월 이거든… 80년 이상 사는 인간들은 정말 큰 혜택을 받은 거지…”

“어째서… 어째서… 이런 짓을…”

 

기계의 소음… 그 속에서 정후는 아무런 해답도 내려주지 않았다. 그리고 폐기장의 소음이 유채의 마음을 한 없이 찢고 있었다.

 

“어째서…”

 

정후는 마지막에 협상을 제안했다.

 

“그러면… 이제 기계문명과도… 협상할 마음이 생긴 건가…?”

 

그녀는 온 몸에서 빠져나가는 기를 붙잡아 두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