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목을 잘라버려!” 8살짜리가 듣기에는 너무 무시무시한 말이었다. 윤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비칠비칠 뒤로 물러났다. “당장 끌어내 손목을 자르라니까!” 세진오빠는 당황한 얼굴로 유진과 눈높이를 맞춰 무릎을 꿇었다. “유진아, 윤이가 손을 내민 건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는 뜻이란다. 인간들은 이런 식으로 서로에게 인사를 해.” “말도 안 되는 소리! 무지가 무례함을 가려주진 못한다. 하지만 특별히 너의 얼굴을 봐서 용서해 주기로 하지.” 여기서 유진은 손가락으로 윤을 똑바로 가리켰다. “자, 당장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어라.” 위엄있는 유진의 말에 윤은 겁먹은 얼굴로 세진을 올려다보았다. “오빠, 내가 뭐 잘못했어?” “아니, 윤아, 그게…” “어서 무릎을 꿇지 못할까?” 갑자기 오기가 발동한 듯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한대 칠 기세로 유진의 앞으로 나아간 윤… “꿇으란다고 내가 꿇을 것 같아?” 의기양양하게 대든 윤에게 세진의 결정적 한 마디가 들려왔다. “너 지금 꿇고 있어.” 안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세진과 눈이 마주친 순간 윤은 앞으로 푹 쓰러졌다. “안 돼에에에에~” 1. 남자친구 사귀기 대작전 “안 돼에에에에~” 윤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야. 왜 하필 유진이를 처음 본 날이 꿈에 나타난 거야?” 띠리리리리~ “여보셔!” -깜짝이야, 무슨 소리를 그렇게 질러? 어제의 제 63차 미팅도 실패했냐? “숫자붙이지 마라.” -내가 죽기전에 네 남친 한번 볼 수는 있는 거야? 여러 사람 괴롭히지 말고 차라리 지금 죽던가. 내가 네 미팅대느라 허리가 휜다. 성공이라도 하면 보람이라도 있지, 이건 원, 밑빠진 독에 물붓기니… “남친사귀기 전엔 절대 뭇 죽어. 넌 다음 미팅 준비나 해. 기간떼지 말고 바짝 땡겨. -넌 휴일도 없냐? 징그럽다. 어쨌든 64차 미팅 준비는 끝났냐? “헉, 그게 오늘이었냐?” 윤은 책상위에 놓인 보물 1호 미팅일지를 펼쳤다. “3시… 미진… 헉, 의대생이다. 6시, 은주… 8시, 정아… 젠장젠장젠장. 왜 이렇게 장소가 띄엄띄엄이야? 잘못하면 하나 빵꾸나겠네.” -너 오늘 세개냐… 그래서 온다는 거야, 안 온다는 거야? 윤은 겉옷을 꿰입으며 현관으로 달려나갔다. “집앞이야!” -독한 년. 하여튼 빨랑 튀어와. ‘의대생… 컴전공… 꽃사모회장… 근데 꽃사모 회장이 뭐하는 거야? 어쨋든 회장이니 좋은 거겠지. 아무 것도 놓쳐선 안 돼. 자, 달려라!’ ************** 미팅장소에 도착한 윤은 초조한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설마 여기까지 따라오지는 않았겠지? 일부러 빙 둘러왔는데…’ 윤은 마치 텔레포티를 하듯 입간판과 전봇대 뒤로 몸을 숨겨가며 약속장소앞까지 전진했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 다시 한번 뒤를 둘러보고 나서야 총알같이 뛰어든 윤. 얼굴에는 의기양양한 미소가 가득했다. “캬캬캬… 오늘은 완벽하게 따돌렸군. 지들이라고 별 수 있어?” 승리의 포즈로 미친듯이 웃고 서 있는 윤의 앞을 지나가던 남자가 이상하다는 얼굴로 쳐다봤고 순간 둘의 눈이 마주쳤다. ‘내가 대낮에 헛것을 보나? 왜 허여멀건한 얼굴이 하나 둥둥 떠다니지? 왜 쟤 얼굴주변에만 빛이 가득한 거야?’ 멍하니 서 있는 윤의 팔을 누군가가 나꿔챘다. “호호, 얘는… 왔으면 얼른 나를 찾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여전히 아득한 머리로 남자에게서 눈을 못 떼는 윤의 귀에 미진의 콧소리가 들려왔다. “준서씨도 자리로 가요. 이제 다 도착했으니 시작해야죠.” 미진에게 질질 끌려 자리에 앉은 윤은 그제서야 현실로 돌아왔다가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만세~!” 순간 모든 사람의 시선이 윤에게 와 꽂혔다. 놀란 미진이 윤을 끌어앉힐 때까지도 윤은 여전히 싱글벙글이었다. ‘신이시여, 저 남자가 정녕 오늘 미팅 상대란 말입니까? 내가 너무 착하게 살아온 거야. 감사합니다, 64호에 대박터졌네.’ “쟤 내가 찍었다. 건들면 죽는다고 전달해라.” 살며시 귓속말을 건네자 미진의 이마에 땀이 주륵 흘렀고 미진이가 뭔가 속삭일 때마다 친구들도 하나둘씩 몸을 떨었다. 잠시 후 친구들은 경련이 일어나는 입가로 미스코리아식 웃음을 짓고 있었다. “자, 오늘 커플선정은 사랑의 작대기로 하겠습니다. 하나, 둘, 셋 하면 마음에 드는 사람을 과감하게 찍어주세요.” 미진의 말이 끝나자마자 여자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남자들은 어떻게든 얼굴을 보기 위해 애를 썼지만 여자들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돌려댔다. “자, 이제 결정하셨죠? 셋에 찍어주세요. 하나, 둘, 셋!” 순식간에 지나간 카운트에 남자들이 주춤거리며 손가락을 내민 반면 여자들은 약속이나 한듯 준서를 비껴 지목했다. 의외의 상황에 남자들이 놀라 서로를 바라보았다. “왠일로 준서가 싹쓸이를 안 하냐? 제일 아닌 애 하나만 준서를 찍었네.” “박준서랑 미팅나와서 이런 일이 생기다니…” “기회다. 얼른 내보내자.” 순간 남자들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여자들은 자기를 향한 손가락보다는 준서의 손가락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가 그 손가락 끝이 윤이 아니라는 사실에 절망해 소리를 질렀다. “으악~” “안 돼…” 험악한 윤의 눈초리를 접한 미진은 나오지도 않는 웃음을 억지로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나, 내가 이런 실수를... 오늘 미팅은 여자가 찍으면 끝입니다. 남자들은 무조건 따르세요.” “아니, 잠깐만…” 준서가 막 항의하려는 순간 남자들이 일제히 준서의 말을 막았다. “그것 참, 민주적이고 정의로운 방법이네요.” “그렇죠. 아무래도 여자분들의 의견이 우선이죠.” “이 미팅은 정말 합리적이네요. 하하…” “자, 커플끼리 오붓한 시간을 갖죠.” 순식간에 카페는 텅 비었다. 남은 것은 윤과 준서뿐. 황당한 얼굴로 카페문을 바라보던 준서는 엉거주춤 일어나다 만 자세로 윤을 바라보았다. ‘뭐야,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나랑 얘가 커플이 됐다는 거야?’ “호호… 애들이 급하기도 하지.” “하하하, 그렇군요.” ‘이걸 확 나가버려? 하지만 박사노바가 여자를 마다한대서야... 내 이미지가 있지. 자세히 살펴보자. 어디 한 군데는 괜찮은 구석이 있겠지. 음... 옷이 좀 그렇지만 웃는 얼굴은 귀엽군.’ 준서는 이왕 이렇게 된 거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잠시 후 윤과 준서는 거리에서 파는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나눠들고 나란히 걷고 있었다. “왜 말이 없어? 카페에서 나온 뒤로 조용하네. 나랑 있는 게 재미없어?” “아니야. 너때문이 아니라…” 윤은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섰다. “당장 못 튀어나와!” “뭘 튀어나와?” 어리둥절해 하는 준서의 눈에 가로수 뒤에서 후다닥 튀어나와 윤앞에 정렬하는 남자들이 보였다. 준서의 표정이 창백해진 것을 윤은 미처 보지 못했다. “우연이네.” “뭐가 우연이야? 솔직히 불어. 나 따라온 거지?” “우리가?” “제대로 불어. 언제부터 본 거야?” “쭉.” 윤은 잠깐 심호흡을 한 뒤 빽 소리를 질렀다. “대체 언제까지 이럴거야? 내 남자친구가 놀랐잖아!” “네 남자친구가 대체 어디 있냐?” “여기 있잖아.” 라고 말한 윤의 옆자리로 찬바람이 휭 불었다. “… 가 아니고…” “혹시 저기 열심히 뛰는 놈 말이냐?” “…열심히 뛰고 있네. 근데 왜 뛰는 거야?” 저만치서 준서의 다급한 목소리만이 날아왔다. “오늘은 급한 일이 생겨서 먼저 간다…. 미안하지만 나중에 전화할게…” 휙 돌아보는 윤의 눈초리에 오빠들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집에 가자.” 윤의 목소리에는 싸늘하다못해 잔인한 기운이 배어있었다. 한편 준서는 조금이라도 그 장소에서 멀어지기 위해 열심히 뛰는 중이었다. ‘그 선배가 왜 거기 나타난 거지? 이한한테 걸리면 최소한 정신병원행이라는데… 하마터면 마주칠뻔 했어. 아직도 가슴이 벌렁거리네. 가만.’ 준서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그 자리에 멈춰섰다. “대체 걔는 이한선배랑 어떻게 알지? 언뜻 보기에도 꽤 친해 보이던데… 불길한 느낌이 들어…”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민에 잠긴 준서는 허탈하게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뭐냐, 전화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혹시 걔도 저주를 내리는 거 아니야? 으아, 미치겠네.”
#1 화성에서 온 왕자님
“손목을 잘라버려!”
8살짜리가 듣기에는 너무 무시무시한 말이었다.
윤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비칠비칠 뒤로 물러났다.
“당장 끌어내 손목을 자르라니까!”
세진오빠는 당황한 얼굴로 유진과 눈높이를 맞춰 무릎을 꿇었다.
“유진아, 윤이가 손을 내민 건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는 뜻이란다.
인간들은 이런 식으로 서로에게 인사를 해.”
“말도 안 되는 소리! 무지가 무례함을 가려주진 못한다.
하지만 특별히 너의 얼굴을 봐서 용서해 주기로 하지.”
여기서 유진은 손가락으로 윤을 똑바로 가리켰다.
“자, 당장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어라.”
위엄있는 유진의 말에 윤은 겁먹은 얼굴로 세진을 올려다보았다.
“오빠, 내가 뭐 잘못했어?”
“아니, 윤아, 그게…”
“어서 무릎을 꿇지 못할까?”
갑자기 오기가 발동한 듯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한대 칠 기세로 유진의 앞으로 나아간 윤…
“꿇으란다고 내가 꿇을 것 같아?”
의기양양하게 대든 윤에게 세진의 결정적 한 마디가 들려왔다.
“너 지금 꿇고 있어.”
안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세진과 눈이 마주친 순간 윤은 앞으로 푹 쓰러졌다.
“안 돼에에에에~”
1. 남자친구 사귀기 대작전
“안 돼에에에에~”
윤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야. 왜 하필 유진이를 처음 본 날이 꿈에 나타난 거야?”
띠리리리리~
“여보셔!”
-깜짝이야, 무슨 소리를 그렇게 질러? 어제의 제 63차 미팅도 실패했냐?
“숫자붙이지 마라.”
-내가 죽기전에 네 남친 한번 볼 수는 있는 거야?
여러 사람 괴롭히지 말고 차라리 지금 죽던가.
내가 네 미팅대느라 허리가 휜다.
성공이라도 하면 보람이라도 있지, 이건 원, 밑빠진 독에 물붓기니…
“남친사귀기 전엔 절대 뭇 죽어.
넌 다음 미팅 준비나 해. 기간떼지 말고 바짝 땡겨.
-넌 휴일도 없냐? 징그럽다. 어쨌든 64차 미팅 준비는 끝났냐?
“헉, 그게 오늘이었냐?”
윤은 책상위에 놓인 보물 1호 미팅일지를 펼쳤다.
“3시… 미진… 헉, 의대생이다. 6시, 은주… 8시, 정아… 젠장젠장젠장.
왜 이렇게 장소가 띄엄띄엄이야? 잘못하면 하나 빵꾸나겠네.”
-너 오늘 세개냐… 그래서 온다는 거야, 안 온다는 거야?
윤은 겉옷을 꿰입으며 현관으로 달려나갔다.
“집앞이야!”
-독한 년. 하여튼 빨랑 튀어와.
‘의대생… 컴전공… 꽃사모회장… 근데 꽃사모 회장이 뭐하는 거야?
어쨋든 회장이니 좋은 거겠지. 아무 것도 놓쳐선 안 돼. 자, 달려라!’
**************
미팅장소에 도착한 윤은 초조한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설마 여기까지 따라오지는 않았겠지? 일부러 빙 둘러왔는데…’
윤은 마치 텔레포티를 하듯 입간판과 전봇대 뒤로 몸을 숨겨가며
약속장소앞까지 전진했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 다시 한번 뒤를 둘러보고 나서야 총알같이 뛰어든 윤.
얼굴에는 의기양양한 미소가 가득했다.
“캬캬캬… 오늘은 완벽하게 따돌렸군. 지들이라고 별 수 있어?”
승리의 포즈로 미친듯이 웃고 서 있는 윤의 앞을 지나가던 남자가
이상하다는 얼굴로 쳐다봤고 순간 둘의 눈이 마주쳤다.
‘내가 대낮에 헛것을 보나? 왜 허여멀건한 얼굴이 하나 둥둥 떠다니지?
왜 쟤 얼굴주변에만 빛이 가득한 거야?’
멍하니 서 있는 윤의 팔을 누군가가 나꿔챘다.
“호호, 얘는… 왔으면 얼른 나를 찾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여전히 아득한 머리로 남자에게서 눈을 못 떼는 윤의 귀에
미진의 콧소리가 들려왔다.
“준서씨도 자리로 가요. 이제 다 도착했으니 시작해야죠.”
미진에게 질질 끌려 자리에 앉은 윤은
그제서야 현실로 돌아왔다가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만세~!”
순간 모든 사람의 시선이 윤에게 와 꽂혔다.
놀란 미진이 윤을 끌어앉힐 때까지도 윤은 여전히 싱글벙글이었다.
‘신이시여, 저 남자가 정녕 오늘 미팅 상대란 말입니까?
내가 너무 착하게 살아온 거야. 감사합니다, 64호에 대박터졌네.’
“쟤 내가 찍었다. 건들면 죽는다고 전달해라.”
살며시 귓속말을 건네자 미진의 이마에 땀이 주륵 흘렀고
미진이가 뭔가 속삭일 때마다 친구들도 하나둘씩 몸을 떨었다.
잠시 후 친구들은 경련이 일어나는 입가로 미스코리아식 웃음을 짓고 있었다.
“자, 오늘 커플선정은 사랑의 작대기로 하겠습니다.
하나, 둘, 셋 하면 마음에 드는 사람을 과감하게 찍어주세요.”
미진의 말이 끝나자마자 여자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남자들은 어떻게든 얼굴을 보기 위해 애를 썼지만
여자들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돌려댔다.
“자, 이제 결정하셨죠? 셋에 찍어주세요. 하나, 둘, 셋!”
순식간에 지나간 카운트에 남자들이 주춤거리며 손가락을 내민 반면
여자들은 약속이나 한듯 준서를 비껴 지목했다.
의외의 상황에 남자들이 놀라 서로를 바라보았다.
“왠일로 준서가 싹쓸이를 안 하냐? 제일 아닌 애 하나만 준서를 찍었네.”
“박준서랑 미팅나와서 이런 일이 생기다니…”
“기회다. 얼른 내보내자.”
순간 남자들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여자들은 자기를 향한 손가락보다는 준서의 손가락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가 그 손가락 끝이 윤이 아니라는 사실에 절망해 소리를 질렀다.
“으악~”
“안 돼…”
험악한 윤의 눈초리를 접한 미진은
나오지도 않는 웃음을 억지로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나, 내가 이런 실수를...
오늘 미팅은 여자가 찍으면 끝입니다. 남자들은 무조건 따르세요.”
“아니, 잠깐만…”
준서가 막 항의하려는 순간 남자들이 일제히 준서의 말을 막았다.
“그것 참, 민주적이고 정의로운 방법이네요.”
“그렇죠. 아무래도 여자분들의 의견이 우선이죠.”
“이 미팅은 정말 합리적이네요. 하하…”
“자, 커플끼리 오붓한 시간을 갖죠.”
순식간에 카페는 텅 비었다. 남은 것은 윤과 준서뿐.
황당한 얼굴로 카페문을 바라보던 준서는
엉거주춤 일어나다 만 자세로 윤을 바라보았다.
‘뭐야,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나랑 얘가 커플이 됐다는 거야?’
“호호… 애들이 급하기도 하지.”
“하하하, 그렇군요.”
‘이걸 확 나가버려? 하지만 박사노바가 여자를 마다한대서야... 내 이미지가 있지.
자세히 살펴보자. 어디 한 군데는 괜찮은 구석이 있겠지.
음... 옷이 좀 그렇지만 웃는 얼굴은 귀엽군.’
준서는 이왕 이렇게 된 거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잠시 후 윤과 준서는 거리에서 파는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나눠들고
나란히 걷고 있었다.
“왜 말이 없어? 카페에서 나온 뒤로 조용하네. 나랑 있는 게 재미없어?”
“아니야. 너때문이 아니라…”
윤은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섰다.
“당장 못 튀어나와!”
“뭘 튀어나와?”
어리둥절해 하는 준서의 눈에 가로수 뒤에서 후다닥 튀어나와
윤앞에 정렬하는 남자들이 보였다.
준서의 표정이 창백해진 것을 윤은 미처 보지 못했다.
“우연이네.”
“뭐가 우연이야? 솔직히 불어. 나 따라온 거지?”
“우리가?”
“제대로 불어. 언제부터 본 거야?”
“쭉.”
윤은 잠깐 심호흡을 한 뒤 빽 소리를 질렀다.
“대체 언제까지 이럴거야? 내 남자친구가 놀랐잖아!”
“네 남자친구가 대체 어디 있냐?”
“여기 있잖아.”
라고 말한 윤의 옆자리로 찬바람이 휭 불었다.
“… 가 아니고…”
“혹시 저기 열심히 뛰는 놈 말이냐?”
“…열심히 뛰고 있네. 근데 왜 뛰는 거야?”
저만치서 준서의 다급한 목소리만이 날아왔다.
“오늘은 급한 일이 생겨서 먼저 간다…. 미안하지만 나중에 전화할게…”
휙 돌아보는 윤의 눈초리에 오빠들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집에 가자.”
윤의 목소리에는 싸늘하다못해 잔인한 기운이 배어있었다.
한편 준서는 조금이라도 그 장소에서 멀어지기 위해 열심히 뛰는 중이었다.
‘그 선배가 왜 거기 나타난 거지? 이한한테 걸리면 최소한 정신병원행이라는데…
하마터면 마주칠뻔 했어. 아직도 가슴이 벌렁거리네. 가만.’
준서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그 자리에 멈춰섰다.
“대체 걔는 이한선배랑 어떻게 알지? 언뜻 보기에도 꽤 친해 보이던데…
불길한 느낌이 들어…”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민에 잠긴 준서는 허탈하게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뭐냐, 전화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혹시 걔도 저주를 내리는 거 아니야? 으아, 미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