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Amis' 라는 연합 봉사 동아리에서 31기라는 깃발을 올리고 너와 나는 같은 배를 탔다. 신입생 환영회 때, "정 ㅇ ㅇ 입니다. 둔촌동에 살구요.. 앞으로..." 라고 소개하는 목소리에 나는 처음으로 너를 누구일까, 하고 궁금해했다. 집안일 때문이었는지 한참 환영회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 무렵 주섬주섬 웃옷을 챙겨입던 너. 선배님들에게 90도 각도의 정중한 인사를 돌리더니 잰 걸음으로 호프집을 빠져나갔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나는 들고있던 맥주잔 잡은 손을 놓고 물기를 닦을 여념도 없이 어서어서 자리를 나와 네가 나갔을 법한 루트를 너만큼 잰 걸음으로 짚어가며 달려나갔다. "휴.. 빠르기도 하네." 나에게 처음의 너는, 그렇게 깊지도 얕지도 않은, 이렇게 많은 시간을 예정해 둔 아쉬움이었다. #2. "PAS 해외청년 봉사단 중국 하남성 팀"의 일원이 추가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만큼, 너를 본 내 소감은 그닥 유쾌하지 않았다. 유독 마르기만 마르고 당찬 구석도 없는 것이 어쩐지 같은 팀으로써는 짐만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 심지어는 네가 돌발 사태로 어쩔 수 없이 함께 갈 수 없게 되었다는 전갈이라도 듣게 되지 않을까, 모임 때마다 팀장의 공지사항 전달을 귀에 못 박아가며 들었던 기억도 난다. 그러나 모임 최다 출석률과 최저 지각률, 게다가 최고 적극성을 보여주는 너는 그래서 더 내 눈에 가시로 박힌 채 보란듯이 한 비행기에 올랐다. 중국에는 장대비가 억수로 억수로 많이 내렸다. 그 날도 그렇게 땅이 꺼져라, 꺼져라.. 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중국 현지인로 가득 메워진 '하남성'의 중앙 공원에서 특별 야외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동안 밤벌레에 살점 뜯겨가며, 얼음장 같은 물에 머리 감아 가며 밤이고 낮이고 준비해 온 사물놀이와 탈춤, 노래공연을 보여주는 날. 비에 젖어 땀에 젖어 찌근찌근한 몸에 팔이며 다리며 축축 늘어진 탈춤 의상을 갈아입을 때부터 손가락은 떨려대고 옷은 맘대로 안 입혀지고, 두 다리가 미친듯이 후들거리는 통에 정말 얼마나 긴장을 했었는지... 툭 건드리만 하면 툭 또르르르... 하고 빗물, 콧물, 눈물이 말똥처럼 내 두 볼을 타 내려갈 지경이었다. 어? 아주 잠시의 순간이었다. 시뻘겋게 상기된 얼굴에 말똥이나마 흐르지 말라고 달래주러 온 너의 옷깃. 그 흥건한 탈춤복의 긴 소매끝이 내 이마에 스쳐간 건 아주 찰나였다. "짜식, 긴장하기는. 잘 할거야." 고작 아주 찰나에 스친 옷깃으로, 빗살 틈에 묻혀 선명히 들리지도 않던 한마디로 나는 다시 너를 처음 보았다. 내 눈에 박혀있던 너에대한 가시가 한풀 한풀 따사로운 솜털이 되어 오히려 내 심장으로 들어와 쉴새없이 두근대는 혈류와 혈류 사이를 한없이 파고들기 시작했다. 사랑일까, 이런 게 사랑일까.. 자꾸만 초조해지는 의심을 아랑곳도 없이 충동질해대던 그 잠시의 순간. 나에게 처음의 너는, 그 순간으로부터 생성되는 매 순간마다 쉴새없이 심장을 멎을 것 같게 하던 내 인생 최고의 강속구였다. #3. "츄르르르륵~~~" "오늘도 고마워. 키 큰 사람 싱겁다는데 제대로 크네..^^" 너의 삶에서 셧더맨이라는 별칭은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의 고 3시절을 보낸 그 독서실에서 총무 자리에 앉아 있으려니 낯설기도 했었는데 그 땐 제법 총무누나, 총무언니 하는 소리도 귀에 익어가던 때였던 것 같다. 고3이었던 네가 처음으로 입실카드를 쓰러 왔던 그 때. 벌써 5년 하고도 두어달 전. 네가 독서실을 다니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하도 높아서 높은 굽을 신은 키로도 도저히 손이 닿지 않는 셧더를 내리는 일을 나는 더이상 고민하지 않아도 좋았다. 내 머리가 겨우 어깨 쯤에야 닿는 큰 키로 시원스럽게 셧더를 쭉 뽑아 당겨주는 네가 그렇게 내게도 익숙해졌던 것일까. 나와 같은 아파트 한 동의 다른 입구로 들어가면서 네가, "같은 방향인데요, 뭘..." 하면 나는 대충 웃으며 미안하다, 고맙다는 말도 묻어두었다. <내가, 그 때 미안하다는 말 안해서 벌 받나보다.> 라고 몇 년 후 나는 일기를 썼다. 한참 허상같은 짝사랑에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하던, 하필 너에게 전화가 왔던 그 날. "맥주 사줄께요, 누나." "그래." 전화를 끊은 직후에도, 집에 가서 잠이나 자 두는 것을 어린 애랑 맥주나 기울이다 따분하게 하루를 마감하게 되리라는 생각에 땅이 꺼져라 한숨이 쉬어지던 그 날. 몇 해 전 네가 셧더를 내려주면 내가 늘 고맙다, 미안하다는 말을 웃음으로 묻어놓던, 같은 아파트 한 동의 다른 입구로 갈라지는, 그날 너와 나는 그, 너와 나의 집 앞에 섰다. "괜찮아요..? 그 사람 진짜 나쁘네.. 도대체 누가 우리 누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거야! 어?" 아앗..차! ... 내게는 절대로 오지 말아야 할 그 순간이 내 앞에 버젓이 와 있음을 느낄 때 온 몸을 짓누르는 그 특유의 무력감. 너의 그 한마디가 채 떨어지기도 전에 너의 품에서 부끄럼도 없이 눈물을 덜게 되던 것은 그 무기력감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순종이었을까. 절대로 오지 않을 줄 알았던, 내게 처음의 너는 그렇게 내 의지는 개의치도 않고 끝없이 돋아나던, 깍아내려하면 할수록 더 거세게 내 두 팔이 무기력하도록 돋쳐나는 날개였다.
그리고 설레임, 그 이상의 처음.
#1.
'Amis' 라는 연합 봉사 동아리에서
31기라는 깃발을 올리고 너와 나는 같은 배를 탔다.
신입생 환영회 때,
"정 ㅇ ㅇ 입니다. 둔촌동에 살구요.. 앞으로..." 라고
소개하는 목소리에
나는 처음으로 너를 누구일까, 하고 궁금해했다.
집안일 때문이었는지 한참 환영회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 무렵 주섬주섬 웃옷을 챙겨입던 너.
선배님들에게 90도 각도의 정중한 인사를
돌리더니 잰 걸음으로 호프집을 빠져나갔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나는 들고있던 맥주잔 잡은 손을 놓고
물기를 닦을 여념도 없이
어서어서 자리를 나와 네가 나갔을 법한 루트를
너만큼 잰 걸음으로 짚어가며 달려나갔다.
"휴.. 빠르기도 하네."
나에게 처음의 너는,
그렇게 깊지도 얕지도 않은, 이렇게 많은 시간을 예정해 둔
아쉬움이었다.
#2.
"PAS 해외청년 봉사단 중국 하남성 팀"의 일원이
추가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만큼,
너를 본 내 소감은 그닥 유쾌하지 않았다.
유독 마르기만 마르고 당찬 구석도 없는 것이
어쩐지 같은 팀으로써는 짐만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
심지어는 네가 돌발 사태로
어쩔 수 없이 함께 갈 수 없게 되었다는
전갈이라도 듣게 되지 않을까,
모임 때마다 팀장의 공지사항 전달을
귀에 못 박아가며 들었던 기억도 난다.
그러나 모임 최다 출석률과 최저 지각률,
게다가 최고 적극성을 보여주는 너는
그래서 더 내 눈에 가시로 박힌 채 보란듯이 한 비행기에 올랐다.
중국에는 장대비가 억수로 억수로 많이 내렸다.
그 날도 그렇게 땅이 꺼져라, 꺼져라..
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중국 현지인로 가득 메워진 '하남성'의 중앙 공원에서
특별 야외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동안 밤벌레에 살점 뜯겨가며, 얼음장 같은 물에 머리 감아 가며
밤이고 낮이고 준비해 온 사물놀이와 탈춤,
노래공연을 보여주는 날.
비에 젖어 땀에 젖어 찌근찌근한 몸에
팔이며 다리며 축축 늘어진 탈춤 의상을 갈아입을 때부터
손가락은 떨려대고 옷은 맘대로 안 입혀지고,
두 다리가 미친듯이 후들거리는 통에
정말 얼마나 긴장을 했었는지...
툭 건드리만 하면 툭 또르르르... 하고
빗물, 콧물, 눈물이 말똥처럼
내 두 볼을 타 내려갈 지경이었다.
어?
아주 잠시의 순간이었다.
시뻘겋게 상기된 얼굴에 말똥이나마 흐르지 말라고
달래주러 온 너의 옷깃.
그 흥건한 탈춤복의 긴 소매끝이 내 이마에 스쳐간 건
아주 찰나였다.
"짜식, 긴장하기는. 잘 할거야."
고작 아주 찰나에 스친 옷깃으로, 빗살 틈에 묻혀
선명히 들리지도 않던 한마디로
나는 다시 너를 처음 보았다.
내 눈에 박혀있던 너에대한 가시가
한풀 한풀 따사로운 솜털이 되어
오히려 내 심장으로 들어와 쉴새없이 두근대는
혈류와 혈류 사이를 한없이 파고들기 시작했다.
사랑일까, 이런 게 사랑일까..
자꾸만 초조해지는 의심을 아랑곳도 없이 충동질해대던
그 잠시의 순간.
나에게 처음의 너는, 그 순간으로부터 생성되는 매 순간마다
쉴새없이 심장을 멎을 것 같게 하던 내 인생 최고의 강속구였다.
#3.
"츄르르르륵~~~"
"오늘도 고마워. 키 큰 사람 싱겁다는데 제대로 크네..^^"
너의 삶에서 셧더맨이라는 별칭은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의 고 3시절을 보낸 그 독서실에서 총무 자리에 앉아 있으려니
낯설기도 했었는데 그 땐 제법 총무누나, 총무언니 하는 소리도
귀에 익어가던 때였던 것 같다.
고3이었던 네가 처음으로 입실카드를 쓰러 왔던 그 때.
벌써 5년 하고도 두어달 전.
네가 독서실을 다니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하도 높아서 높은 굽을 신은 키로도
도저히 손이 닿지 않는 셧더를 내리는 일을
나는 더이상 고민하지 않아도 좋았다.
내 머리가 겨우 어깨 쯤에야 닿는 큰 키로
시원스럽게 셧더를 쭉 뽑아 당겨주는 네가
그렇게 내게도 익숙해졌던 것일까.
나와 같은 아파트 한 동의 다른 입구로 들어가면서 네가,
"같은 방향인데요, 뭘..." 하면
나는 대충 웃으며 미안하다, 고맙다는 말도 묻어두었다.
<내가, 그 때 미안하다는 말 안해서 벌 받나보다.> 라고
몇 년 후 나는 일기를 썼다.
한참 허상같은 짝사랑에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하던,
하필 너에게 전화가 왔던 그 날.
"맥주 사줄께요, 누나."
"그래."
전화를 끊은 직후에도, 집에 가서 잠이나 자 두는 것을
어린 애랑 맥주나 기울이다
따분하게 하루를 마감하게 되리라는 생각에
땅이 꺼져라 한숨이 쉬어지던 그 날.
몇 해 전 네가 셧더를 내려주면
내가 늘 고맙다, 미안하다는 말을 웃음으로 묻어놓던,
같은 아파트 한 동의 다른 입구로 갈라지는,
그날 너와 나는 그,
너와 나의 집 앞에 섰다.
"괜찮아요..? 그 사람 진짜 나쁘네..
도대체 누가 우리 누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거야! 어?"
아앗..차!
...
내게는 절대로 오지 말아야 할 그 순간이
내 앞에 버젓이 와 있음을 느낄 때
온 몸을 짓누르는 그 특유의 무력감.
너의 그 한마디가 채 떨어지기도 전에
너의 품에서 부끄럼도 없이 눈물을 덜게 되던 것은
그 무기력감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순종이었을까.
절대로 오지 않을 줄 알았던, 내게 처음의 너는
그렇게 내 의지는 개의치도 않고 끝없이 돋아나던,
깍아내려하면 할수록 더 거세게
내 두 팔이 무기력하도록 돋쳐나는 날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