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신대영성수련과 네이버해피빈/다음하이픈과 공정한 사법부위해

컴퓨터명상2009.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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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은 곧 발견입니다-장신대 영성수련
 
"주님은 까마귀까지 먹이신다면서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을 굶기십니까?"
"나는 저들에게 먹을 것을 주었다."
"거짓말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지구상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왜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습니까?"
"너희에게 준 음식은 굶주리는 그들과 나누라고 준 것이다."
 
용서함으로써 용서받고, 죽음으로써 영생으로 부활하리니.
 
성프란시스코가 애용한 기도문처럼 평화로운 영성의 기운이 움트는 곳. 경기도 포천 운악산으로 접어들어 20여 분을 걸어 올라가자 갑자기 산 속답지 않게 평평한 대지가 나온다. 외부에선 좀처럼 눈치채기 힘든 천연의 요새 위에 토굴처럼 지어진 20여 개의 기도실과 시원한 계곡이 어우러져 있다. 장신대 경건훈련원은 세상과 까까이 있으면서도 신에 더욱 가까운 느낌이었다. 그러나 영성수련은 위해 찾은 장신대 신학대학원생들은 고요한 수도원의 분위기가 답답한 듯 산책길과 계곡을 오가며 방황하고 있었다. 이곳의 '통성기도 금지'와 "침묵"방침은 통성기도를 하며 밖을 향해 기도하던 습관에 젖어 있던 이들에게 너무도 생소한 것이었다. 친구들과 말조차 못하게 하면서 내면으로만 향하도록 하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유해룡교수는 묵상할 성경구절을 제시하면 '하느님과의 대화'를 유도했다. 그러나 학생들은 묵상을 틍해 하느님을 체험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듯 묵상에 쉽게 몰입하지 못했다. 그러다 영성을 호흡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이 곳에서 거친 마음이 쉼을 얻은 듯 조금씩 묵상에 익숙해져갔다. "주님은 누구이며, 나는 누구입니까?" 김상개씨는 묵상을 시작하면서 누구보다 고통이 심했다. 유교수가 그러에 준 묵상구절은 요한복음 8장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에 대한 것이었다. 이 구절은 그를 견디기 어려운 고통으로 내몰았다. 그는 과거에 한 여자에게 상처를 입혔다는 자책감에 심하게 시달리고 있었다.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떠올릴 때마다 자신이 상처를 입힌 여자가 떠올라 한숨을 토해내곤 했다. 묵상 중에 간음한 여자가 군중들로부터 추궁을 당하고 있을 때 자기 죄를 회피한 채 군중 속에 숨어 있는 한 남자의 모습에서 자신을 보았다. "저 성난 군중의 돌팔매질이 무섭다."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여자를 멀리서 쳐다보면서 그는 앞으로 나가지 못한 채 떨고 있었다. 자신의 비겁한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묵상을 계속하기도 힘들었다.
다른 학생들은 주어진 구절에 대한 묵상을 마치고 진도를 나가고 있었지만 그는 이 구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가 두려움으로 묵상을 재개했을 때였다. 어떻게 된 일일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내리치라"는 예수님의 말 때문이었을까. 어느 순간 군중들이 모두 돌을 내려놓고 돌아가고 있었다. 남은 것은 예수님과 자신뿐이었다. 예수에게서 무슨 말씀이 나올까. 그는 돌팔매가 날아다닐 때보다 몸을 더욱 납작 엎드렸다. 돌팔매보다 더운 두려움이 업습했기 때문이다. 고통스런 그의 묵상은 이렇게 큰 고비를 맞고 있었다. 4일간의 수련을 마치고 함께 둘러앉아 수련을 정리할 때까지도 그는 예수님의 사죄선언을 기대할 수 없다며 눈물을 쏟았다. 여전히 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때 판단을 온전히 예수님께 맡기지 못하고 있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자신이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순간 주님의 사죄가 선포되었다. 베드로의 입을 통해 주님의 신뢰가 선포된 것이다. 그 여인에 대한 사죄는 자기 입을 통해 이미 이루어졌다." 유 교수는 "주님이 이미 그 마음을 받았으니 앞으로 큰 진전이 있을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주님과 더욱 깊은 대화를 해보라고 조언했다. 유교수는 수련 때 주로 예수시대의 사건을 구성하는 구체적인 성경말씀을 읽고 성서의 사건이 자기 안에서 일어나도록 관상기도를 하게 했다. 이냐시오의 관상기도 방식에 따른 것이다. 수련자는 성경말씀을 읽고 그리스도의 사건에 더욱 공감하며 그런 심정에 동참하기를 원한다든가, 참회의 심정과 눈물을 원한다든가, 혹은 과거 어떤 경험 속에서 얻은 상처가 치유되기를 원한다든가 하는 은총을 미리 구한다.
혼란스런 마음을 잠재우고 차츰 복음의 사건 속으로 침투하면서 영혼이 함께하도록 기도한다. 그리고 상상속에서 그 사건으로 깊이 들어가 그 사건과 하나되는 경험을 한다. 예를들어, 예수가 풍랑을 잠재우는 장면에서 수련자는 요동치는 배를 바로잡기 위해 씨름하고 있는 제자들과 함께 그 배 안에 있거나, 혹은 그 장면 밖에서 표류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성령께서 상상을 사용해 기도자와 성서적인 사건 사이를 중계한다고 믿는 것이다. 거기서 예수의 뜻과 만나고 그가 원하는 것에 반응함으로써 예수가 하나 되는 경험에 이른다. 기도가 끝난 뒤에 반추를 한다. 기도 가운데 하느님이 어떻게 임재했는지 분명하게 인식하려는 데 반추의 목적이 있다. 기도하는 동안에 일어난 기쁨, 평화, 슬픔, 두려움, 모호함, 분노 등의 감정을 읽으면 특별히 기도의 경험을 영성 지도자와 나눌 수 있다. 기도자는 자신이 어디에 있었는지, 즉 구경꾼이었는지 참가자였는지 확인한다. 그런 활동 속에서 얼마나 깊은 관상 경험이 있었는지, 즉 주님과 얼마나 친밀한 교제가 있었는지 인식한다.
김경혜씨는 '마리아가 향유옥합을 깨서 예수의 발에 붓는 장면'을 묵상할 때, '그것을 300데나리온에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나 주지'라고 생각하며 마리아를 비난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가난한 사람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때 "네가 하라"는 음성을 들었다. 항상 남 뒤에서 욕만 하며 자신의 것을 내놓지 못하는 그를 향한 주님의 목소리였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너무 사랑해서 값진 것을 깨뜨렸는데, 난 소중한 바칠 것이 무엇인가." 내면의 울림이 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주저하고 있었다. "내가 깨뜨려야 할 것은 나의 자존심과 욕심과 험담이 아니었던가." 그는 한참 뒤 주님께서 '네가 하라'고 한 뜻을 깨닫기 시작했다.
김영민씨도 김경혜씨와 마찬가지로 향유옥합사건을 묵상하면서 마뜩치 않았다. 그는 관상기도법에 따라 그 사건에 참가했다. 주님이 찾아오자 열심히 음식을 준비했다. 그런데 그의 동생은 놀고만 있었다. "주님, 동생을 부엌으로 보내주세요. 일손이 바빠요." 그때 뜻밖의 말씀이 들렸다. "왜 그렇게 마음이 급한가. 내가 음식을 먹으러 왔느냐. 난 너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 왔다." 그는 주님의 뜻은 살피지도 않은 채 혼자 생각만으로 자신의 일을 했고, 자기는 옳고 동생은 그르다는 생각 속에 빠져 있었음을 알았다. 자신의 일을 위해 정작 주님을 잃어버린 것이다. 주객이 바뀐 격이었다.
"너를 보고 싶었다. 너를 사랑한다."
"주님, 저를 정말 보고 싶었습니까? 정말 저를 사랑합니까?"
"그렇단다. 너를 위해 내 몸까지 버리지 않았니."
"주님, 전 향유처럼 값비싼 것도 없고, 아무것도 드릴 게 없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사랑만을 원한단다."
얌전한 성격이지만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교육의 비교육성을 절감하고 자퇴하고 말았을 정도로 도전적인 면모를 지닌 그는 '몰라도 아는 척', '안 믿어도 믿는 척'하는 대충대충형이 아니었다. 그는 지금껏 풀리지 않는 의문을 송두리째 내면의 예수님을 향해 던졌다. 사랑을 강조하는 예수님에게 미움에 대해 물었다.
"주님, 왜 세상에는 보기 싫은 사람이 이렇게 많습니까?" "그들을 사랑하라." "하지만 전 도무지 미운 사람들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는 항변하고 싶었다. '그럴 만도 하다'는 위로도 듣고 싶었다. 그러나 내면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더욱 단호했다. "난 네가 싫어하는 그 사람을 사랑한다. 그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내가 이처럼 사랑하는 그 사람을 너는 미워할 수 있겠느냐." 가슴이 아려왔다. 하지만 의문은 아직도 풀리지 않았다.
"주님은 까마귀까지 먹이신다면서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을 굶기십니까?"
"나는 저들에게 먹을 것을 주었다."
"거짓말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지구상에서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고 있습니까?"
"너희에게 준 음식은 굶주리는 그들과 나누라고 준 것이다."
모든 책임을 예수님께 돌리려 했던 그는 할 말을 잃었다. 그때였다. "나는 그들과 함께 있다. 내가 지금 배가 고프구나." 머리로는 수긍할 수 없는 예상 밖의 목소리가 그의 가슴을 쳤다. 언제나 고통의 책임일 다른 곳에, 다른 사람들에게 돌려왔던 '바로 나'를 예수님께서 원한다는 자각의 순간이었다. 이렇듯 수련생들이 하나둘 깊은 체험 속으로 흘러 들어갔지만, 여전히 하느님과 자신사이에 고정관념에 벽을 쌓은 채 움직이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다. 묵상경험을 나눌 때 김영민씨의 얘기를 들은 다른 수련생이 헐벗은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은 해방신학적 관점이 아니냐고 따지듯이 물었다. 김영민씨는 "해방신학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다"며 그의 말에 의아해했다.
"말의 비논리성에 초점을 맞출 필요는 없습니다. 내면에 초점을 맞추십시오. 주님의 마음을 감지하고 주님의 마음을 전해 받는 게 중요합니다. 주님이 왜 그런 아이디어와 이미지를 허락했을까요. 내면의 흐름을 보십시오." 유교수는 다시 생각과 고정관념에 빠져드는 수련생들에게 내면의 흐름을 주시하도록 했다. 이들이 관상기도 중에 들은 음성은 평소 그들의 생각이 아니었다. 감히 자신의 생각이라고 말할 수 없을만큼 성스럽기까지 했다. 자신의 이기심과 사욕편정의 이미지대로 하느님을 그려 '욕심의 하느님', '분노하는 하느님' 만들기를 주저하지 않는 기도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김한윤씨는 예수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기적을 행한 현장을 묵상했다. 예수께서 한적한 곳에 갔는데, 그 곳에 사람들이 병자들을 데리고 몰려왔다. 그도 예수의 제자로서 그 현장에 있었다. 예수께서 병자를 고치는 모습을 유심히 살피니, 한꺼번에 고치는 게 아니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성심껏 고치고 있었다. 식사시간이 되었다. 그러나 군중을 먹일 음식이 없었다. 그가 예수님께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네가 주어라." "저에겐 저 혼자 먹을 것 밖에 없는데요." "네가 주어라" "...." 그는 혼자 먹기에도 부족한 음식을 나누고 싶지 않았다. '왜 예수님은 내 것을 못 빼았아 안달일까,' 자신의 몫을 빼앗으려는 예수님이 원망스러웠다. "이들은 내게 온 손님이고, 나의 양이다." 그러니 먹을 것을 내놓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는 숨겨둔 몫을 내놓았다. 예수님께서 그것을 받았다. 그는 아까운 자신의 몫이 어떻게 쓰일지 궁금했다. 그 궁금증이 풀리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금세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가 내놓은 것은 한 사람 몫에 불과했는데 그 곳에 모인 1만 2천명의 군중을 모두 먹이고도 남았다. 그것은 기적이었다. 자기 것을 내어주는 사랑이 가져온 기적이었다. 나눌수록 커지는 기적 앞에서 그는 한술 밥도 나누려 하지 않았던 자신의 모습에 진정으로 부끄러움을 느꼈다. 사랑은 나눌수록 커졌다. 그 놀라운 신비과 기적이 이 작은 나눔에서 시작되었다.
장신대 경건훈련원(은성수도원) 전화번호 : 031)532-9994

출처 :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 31가지 수행, 수도, 명상을 통해 행복을 찾은 사람들의 이야기(한겨레출판-달라이라마,이해인수녀추천)
 
이 글을 쓴 이유 중에 하나는 요즘 네이버에 해피빈이라는 후원제도가 있더라고요. 네이버 사이트를 이용하면서 글을 쓰거나 Mr. Blog씨에게 답변 글을 작성한다거나 하면 기부할 수 있는 콩 1개(1개당 100원)이 제공되더라고요. 그것을 활용하여 마음 속에 안쓰럽게 생각되었던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단체에 기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답니다. 네이버 해피빈 기부를 하는데에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도 않기에 이 정보를 위 영성수련 가르침과 연장선 상에서 알려드리는 거랍니다.
 
또한 이 글을 쓴 이유 중에 또 하나는 요즘 사법부에선 촛불집회 재판배당에 개입한 신대법관 처리에만 관심이 가있지 정작 정치중립적이면서 공정한 모습을 보여주시는데에는 미흡한 면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면 또한 비슷한 맥락에 있는 옛 독재시절과 연관된 시국사건재판(인혁당재건위 사건 민사배상재판)이 검찰의 형식적인 항의에 특별한 연유없이 재판종결이 계속 미뤄져오고 있는 상황인데도 말입니다. 물론, 신대법관에 대한 거취문제를 깔끔하게 종결짓는 것도 사법부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는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현재 진행중인 다른 민주화나 옛 시국관련 사건에 대한 사법부의 공정하고 신속한 대응도 새로운 사법부의 면모를 보여주는데 오히려 더 필요한 면이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