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모한 맞불작전, 맨유 완패 결정적 요인

조의선인2009.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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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탈코리아 2009-05-28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를 상대로 이런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는 FC 바르셀로나의 주젭 과르디올라의 말처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가 이토록 무기력하게 무너질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대부분의 축구 전문가들이 맨유의 우세를 점쳤고, 균형 잡힌 맨유의 경기력에 호평을 보냈지만 맨유의 불안요소가 한꺼번에 터지면서 27일 밤(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의 스타디오 올림피코에서 대관식을 치르게 된 것은 바르셀로나가 됐다. 10년 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위대한 트레블(자국리그, 자국 FA컵, 챔피언스리그 동시 우승)’을 이뤘던 맨유는 바르셀로나 ‘트레블’의 제물이 됐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선발 라인업은 대런 플레쳐의 퇴장으로 인한 결장으로 인해 가장 수긍할만한 선택이었다. 아직 어린 안데르송의 경험 부족 문제가 있었지만 최근 체력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왕성한 모습을 보인 라이언 긱스, 그와 보조를 맞춰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있는 마이클 캐릭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좌우 측면에 포진시킨 웨인 루니와 박지성의 수비 가담 능력에도 기대를 걸고 있었다.

반면 바르셀로나의 경우 수비진이 무너진 상황이었다. 주전 수비수인 가브리엘 밀리토는 시즌 시작 이전부터 부상자 명단에 올라있었고, 라파엘 마르케스 역시 시즌 막판에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했다. 여기에 첼시와의 준결승 2차전에서 레프트백 에릭 아비달이 퇴장당하고 라이트백 다니엘 알베스가 경고 누적으로 결승전에 나설 수 없게 됐다. 이로 인해 바르셀로나는 그동안 중앙 수비수로 기용하던 카를레스 푸욜을 라이트백으로 이동시키고 수비형 미드필로 뛰던 야야 투레를 중앙 수비수로 내렸다. 공수 밸런스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되던 시우비뉴가 레프트백으로 선발 출전했다.

이런 이유로 맨유는 바르셀로나의 공세가 더 둔화될 것이고, 수비는 더 많은 공백을 야기할 것이라고 판단한 것 같았다. 경기 시작과 함께 이례적으로 강공을 펼치며 전진했다. 지난 시즌 준결승전 당시에도 경기 초반 번개 같은 공격 시도로 페널티킥을 얻어내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지만 당시에는 기본적으로 강력한 수비벽을 쌓은 뒤 이뤄진 전형적인 역습 형태의 전술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10여 분간 선수들이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며 맞불 작전에 나섰다. 컨디션이 좋아보였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수 차례 예리한 슛으로 바르셀로나 문전을 위협했고, 박지성도 리바운드 슛으로 득점 기회를 잡았지만 결실을 맺지 못했다.

맨유의 여러 차례 슈팅이 무산됐지만 바르셀로나는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의 패스에 이은 사뮈엘 에토의 첫 번째 슈팅을 선제골로 엮어내며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맨유의 무모한 맞불작전은 바르셀로나가 충분히 공격을 전개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줬다. 뒷걸음치던 마이클 캐릭과 안데르송은 전진하던 이니에스타를 저지하지 못했고, 문전 우측에서 볼을 전달 받은 에토는 특유의 기민한 움직임으로 거구의 네마냐 비디치를 가볍게 따돌렸다. 비디치는 이미 리버풀전 완패 당시 페르난도 토레스, 스티븐 제라드 등의 민첩한 동작에 허점을 드러냈던 적이 있다. 적절한 협력 수비가 이뤄지지 않은 순간, 홀로 선 비디치는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다. 뒤늦게 캐릭이 몸을 던져 태클했지만 이미 볼이 에토의 발을 떠난 뒤였다.

경기에 앞서 많은 전문가들이 맨유의 우세를 점쳤던 것은 바르셀로나가 지난 시즌 맨유, 올 시즌 첼시가 펼친 전면 압박에 대한 해법을 찾지 못했다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맨유가 자랑하는 덕목 중 하나는 공격진부터 시작되는 전방위 압박과 그를 통해 따낸 볼로 연결하는 빠르고 날카로운 역습이다. 하지만 맨유는 박지성 만이 정신을 차리고 공수를 오가며 분전했을 뿐, 안데르송과 캐릭이 선제골 실점 후 수비 위치를 잡지도 못하고 바르셀로나의 유연한 패스 연결에 끌려다녔고, 이로 인해 중원 조직이 붕괴됐다. 세계 최고를 자랑하던 포백 라인은 미드필드진의 지원이 없는 상태에서 바르셀로나의 공격진을 맞닥뜨려야 했다.

첼시의 거스 히딩크 감독이 겁쟁이였기 때문에 그토록 극단적인 수비 자세를 취했던 것이 아니다. 지난 시즌 맨유도 마찬가지다. 역사적인 화력을 자랑하는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맞불작전을 편다면, 결국 그들에게 자유롭게 공격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밖에 없다. 페널티 박스 안으로의 진입을 원천봉쇄 해야 하고, 그 근방에서는 물 샐 틈 없는 압박으로 이들의 동선과 패스 루트를 차단해야 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맨유는 압박 대형을 유지하지 못했다. 전반전에 박지성이 분전한 오른쪽 측면에서 티에리 앙리와 시우비뉴의 공격 전개가 무뎠지만, 그 외의 지역에서 프리롤을 수행하며 종횡무진 활약한 메시와 에토, 그 뒤를 지원한 챠비 에르난데스와 이니에스타는 특유의 유연한 드리블과 빠른 패스 워크로 맨유가 남겨놓은 공간을 효과적으로 이용했다.

레알 마드리드가 안방에서 6골이나 헌납했던 것은 단순히 레알 마드리드가 약했기 때문이 아니다. 역사적은 화력을 지닌 것으로 평가되는 바르셀로나에게 공간을 내주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다. 이미 지난 해 유로2008 대회 당시 스페인 대표팀은 바르셀로나의 이니에스타와 챠비를 중심으로 한 중원과 전방 공격진의 연계 플레이로 진정한 공격 축구를 보여주며 우승을 차지했다. 이번 바르셀로나는 이를 뛰어넘는 공격력을 지닌 팀이다.

바르셀로나의 수비진이 무너진 것도 바르셀로나의 팀 정신과 과르디올라 감독의 전술 구사에 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셈이 됐다. 선제 득점 이후 바르셀로나는 이례적으로 선수단 전원이 자기 진영으로 내려와 전면 압박을 구사하는 등 역습 전술을 펼쳤다. ‘곧 죽어도 공격’이라는 바르셀로나의 공격진 역시 후방이 부실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고, 자신들도 수비에 가담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확실히 인식하고 있었다.

반면 맨유는 예상 외의 전개에 정신 없이 흔들렸다. 특히 실점의 중원엔진 캐릭은 실점을 빌미가된 이후 평소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맨유는 쉬운 패스도 어렵게 처리했고, 바르셀로나는 특유의 깔끔한 패스 연결로 맨유를 속된 말로 가지고 노는 상황까지 연출했다. 맨유는 하프 타임에 대대적인 정비를 하고 나섰다. 하지만 동점골이 필요한 상황이었고, 분전하던 박지성도 그라운드에서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실제로 박지성은 몇 차례 득점에 근접한 순간에 마무리에서 아쉬운 모습을 노출했다.

연이은 공격수 투입 과정에서 맨유의 균형은 다시 무너졌다. 박지성이 빠진 공간으로 챠비와 푸욜이 자유롭게 전진했고, 결국 챠비가 오른쪽 측면에서 연결한 크로스 패스가 맨유 문전으로 예리하게 날아들었다. 70분 치욕스럽게도, 비디치와 퍼디난드가 버티고 있는 맨유 문전은 170cm도 되지 않는 단신 메시에게 헤딩골을 내주며 침몰했다.

“이른 시간 골을 내준 후 대처하는 것에 대한 계획이 없었다”는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말이 허망하게 들린다. 바르셀로나는 자신들의 화력이 거품이 아님을 증명했지만, ‘백전노장’ 퍼거슨 감독의 연이은 패착이 너무도 극명하게 드러난 완벽한 전술적인 패배였다.


〈스포탈코리아 한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