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 년 6월 노무현 변호사는 부산 거리에서 살았습니다.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 부산본부 상임집행위원장을 맡던 때죠. 오른쪽 마이크를 잡고 서 있는 사람이 노변입니다. 노변은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합니다. 권여사는 먼훗날 {최루탄 터지는 곳마다 아들 딸 손을 잡고 얼굴한번 보려고 찾아다녔다. 결과적으로 온 가족이 투사가 돼 버린 것}이라며 웃은 적이 있습니다.
<1992년 5월 부산 칠성시장 앞- `광주항쟁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시위중>
1992년 5월 부산 칠성시장 앞에서 `광주항쟁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는 노변호사입니다. 조선일보의 악의적 보도등으로 피해를 입으며...국회의원 재선에 실패하고, 다시 고향에서 활동하던 때입니다.
경찰서장이 그 독종에 혀를 내두른 노무현입니다. 최루탄이 터져도 도망가지 않고 전경들과 혼자 대적해 길바닥에서 버텼기 때문이죠.
"최루탄이 터져도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경찰들과 혼자 대치하던 독종 노무현"
노무현의 힘은 이런 우직함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바보같은 우직함 바보같은 미련함
아래 사진은 최루탄 파면이 튀어 피를 흘리는 장면입니다. 노무현의 애틋한 투쟁이 먼훗날 대선후보 경선때 광주에서 사랑을 받은 한 배경도 되겠죠.
전두환 정권이 민주화운동을 탄압한 대표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가 부산의 ‘부림’사건 이었다. 이는 저항의 기미가 있는 자들에 대한 예비검속이자, 조작사건이었다. 노무현은 이 사건의 변론을 맡으며 행방불명된 학생들의 어머니의 모습, 고문으로 인한 학생들의 상처를 보았고 외면하지 못했다. 이후 시국사건노동 관련 사건 등 인권 변론에 치중하게 되었다. 광주 사람들은 기억합니다.
최루탄 파편이 튀어 피를 흘리면서도 당당해하던 그의 모습을....
그는 또 생소했던 시국사건 변론을 위해 피고인들이 읽었던 ‘전환시대의 논리’ ‘해방전후사의 인식’ ‘우상과 이성’ 같은‘ 금서(禁書)’들을 빠짐없이 읽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책을 읽으면서 독재에 억압 받고 있는 참아낼 수 없는 이 세상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1988년 ‘내가 살아온 길’이란 그의 글에서 그는 그 시절을 이렇게 회고했다.
“부림 사건을 맡고부터 나는 하루하루 양심과 욕망 사이를 오락가락하면서 갈등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갈등 속에서 하나하나 나의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요정이나 살롱에 발을 끊고 그렇게 좋아하던 요트 타기도 그만두었다.”
노무현은 부림 사건을 계기로 드디어 그의 일생을 건 목표를 갖게 된다.
바로 ‘사람 사는 세상’이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진행형인 '동사' 이다.
만약 노무현의 사상이 있다면
나는 그 사상의 궁극은
‘사람 사는 세상’ 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많은 세월 정치에 관심도 없었고 문외한이었다.
부정한 시대를 살아오며 불쌍하게도 아무런 느낌도 없었던 허접떼기였다는 말이다.
어느 날 ‘바보 노무현’을 만나고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뒤늦게 만난 세상과 그를 좀 더 알기 위해서
나는 나의 자아를 넓혀갔다.
인터넷을 뒤져가며......
그리고 지금까지......
노무현의 ‘사람 사는 세상’은,
정치에 관심도 없고 문외한이었던 내가,
‘부림 사건’이 노무현의 양심을 흔들게 된 계기가 된 것처럼,
부정한 시대를 살아오며 아무런 느낌도 없었던 내 불쌍한 양심을 흔들어 깨우고
나의 자유를 한없이 불편하게 했던 차디찬 어느 한 주검!
그 넋이 소망하던 세상이랑 너무나 꼭 닮았다.
그래서 나는 소망한다.
노무현의 ‘사람사는 세상’ 과
나랑 동갑네기인 김의기가 생전에 간절히 바랬던
'사람이 보다 더 사람스럽게 사는 세상' 이 꼭 이루어지기를........
1987 년 8월 거제 대우조선 파업현장에서 최루탄에 맞아 숨진 노동자 이석규씨의 사체부검과 임금협상을 도와주다 노동법의 대표적 악소조항인 `3자개입' 금지 혐의로 구속된 노무현 변호사. 33이라는 숫자가 선명한 수의와 반성문을 거부한 눈빛이 인상적이네요.
위대한 평민 노무현--- 판사 ... 잘나가는 조세 변호사... 가시밭길
까마귀도 먹을게 없다던 봉화마을 빈농의 아들,
자기자신 밖에는 가진게 없었던 노무현
책값이 없어 울산에서 막노동판에 뛰어들며 힘들게 고생....
사법고시 합격...판사 출신...
공판확률 90%를 넘는 돈잘벌고 잘나가는 조세 전문 변호사...
부산에서 다섯손가락에 꼽히던 시절...
앞으론 기름진 토양 위를 밟으며 호위호식 편하게 살아갈수 있었는데
돈은 고사하고 제 몸 제 가족 부지하기 힘든
정부의 탄압과 감시를 받는 인권변호사의 길에 뛰어들어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약자들 편에 서서
서민을 대변하는 정치인으로...
정직한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을수 있고...
부모의 지위에 좌우되지 않는
공정한 경쟁 기회를 주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올곧은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나라를 만들기위해...
치열한 기록으로 역사를 다시 쓰기위해... 그렇게...
국민 곁으로 다가갔다
1987 년 6월 노무현 변호사는 부산 거리에서 살았습니다.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 부산본부 상임집행위원장을 맡던 때죠. 오른쪽 마이크를 잡고 서 있는 사람이 노변입니다. 노변은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합니다. 권여사는 먼훗날 {최루탄 터지는 곳마다 아들 딸 손을 잡고 얼굴한번 보려고 찾아다녔다. 결과적으로 온 가족이 투사가 돼 버린 것}이라며 웃은 적이 있습니다.
<1992년 5월 부산 칠성시장 앞- `광주항쟁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시위중>
1992년 5월 부산 칠성시장 앞에서 `광주항쟁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는 노변호사입니다. 조선일보의 악의적 보도등으로 피해를 입으며...국회의원 재선에 실패하고, 다시 고향에서 활동하던 때입니다.
경찰서장이 그 독종에 혀를 내두른 노무현입니다. 최루탄이 터져도 도망가지 않고 전경들과 혼자 대적해 길바닥에서 버텼기 때문이죠.
"최루탄이 터져도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경찰들과 혼자 대치하던 독종 노무현"
노무현의 힘은 이런 우직함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바보같은 우직함 바보같은 미련함
아래 사진은 최루탄 파면이 튀어 피를 흘리는 장면입니다.
노무현의 애틋한 투쟁이 먼훗날 대선후보 경선때 광주에서 사랑을 받은 한 배경도 되겠죠.
전두환 정권이 민주화운동을 탄압한 대표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가 부산의 ‘부림’사건 이었다. 이는 저항의 기미가 있는 자들에 대한 예비검속이자, 조작사건이었다. 노무현은 이 사건의 변론을 맡으며 행방불명된 학생들의 어머니의 모습, 고문으로 인한 학생들의 상처를 보았고 외면하지 못했다. 이후 시국사건노동 관련 사건 등 인권 변론에 치중하게 되었다.
광주 사람들은 기억합니다.
최루탄 파편이 튀어 피를 흘리면서도 당당해하던 그의 모습을....
그는 또 생소했던 시국사건 변론을 위해 피고인들이 읽었던 ‘전환시대의 논리’ ‘해방전후사의 인식’ ‘우상과 이성’ 같은‘ 금서(禁書)’들을 빠짐없이 읽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책을 읽으면서 독재에 억압 받고 있는 참아낼 수 없는 이 세상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1988년 ‘내가 살아온 길’이란 그의 글에서 그는 그 시절을 이렇게 회고했다.
“부림 사건을 맡고부터 나는 하루하루 양심과 욕망 사이를 오락가락하면서 갈등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갈등 속에서 하나하나 나의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요정이나 살롱에 발을 끊고 그렇게 좋아하던 요트 타기도 그만두었다.”
노무현은 부림 사건을 계기로 드디어 그의 일생을 건 목표를 갖게 된다.
바로 ‘사람 사는 세상’이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진행형인 '동사' 이다.
만약 노무현의 사상이 있다면
나는 그 사상의 궁극은
‘사람 사는 세상’ 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많은 세월 정치에 관심도 없었고 문외한이었다.
부정한 시대를 살아오며 불쌍하게도 아무런 느낌도 없었던 허접떼기였다는 말이다.
어느 날 ‘바보 노무현’을 만나고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뒤늦게 만난 세상과 그를 좀 더 알기 위해서
나는 나의 자아를 넓혀갔다.
인터넷을 뒤져가며......
그리고 지금까지......
노무현의 ‘사람 사는 세상’은,
정치에 관심도 없고 문외한이었던 내가,
‘부림 사건’이 노무현의 양심을 흔들게 된 계기가 된 것처럼,
부정한 시대를 살아오며 아무런 느낌도 없었던 내 불쌍한 양심을 흔들어 깨우고
나의 자유를 한없이 불편하게 했던 차디찬 어느 한 주검!
그 넋이 소망하던 세상이랑 너무나 꼭 닮았다.
그래서 나는 소망한다.
노무현의 ‘사람사는 세상’ 과
나랑 동갑네기인 김의기가 생전에 간절히 바랬던
'사람이 보다 더 사람스럽게 사는 세상' 이 꼭 이루어지기를........
1987 년 8월 거제 대우조선 파업현장에서 최루탄에 맞아 숨진 노동자 이석규씨의 사체부검과 임금협상을 도와주다 노동법의 대표적 악소조항인 `3자개입' 금지 혐의로 구속된 노무현 변호사. 33이라는 숫자가 선명한 수의와 반성문을 거부한 눈빛이 인상적이네요.
세상은 이토록 그에게 참기 힘든 굴욕과 고통을 주었지만
그는 그 어떤 강압적인 힘에도 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결코 그른 것을 옳다하지 않았고 그래서 그는 언제나 외로웠습니다.
하지만, 뜻있는 사람들이 그들 외롭지 않게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