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하마을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느꼈던...

봉하마을2009.05.30
조회23,388

대학생 봉사단 중 한명 입니다.

많은 시민분들 및 관계자분들께서 찾아와 주셨습니다.

분향 할때는 시민분들의 단결된 모습과 질서의식을 보고서 많이 놀랐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얼마가지 못했습니다.

사진을 찍는 분들도 계셨고 관계자를 사칭하시며 대열을 잡고있던 저희를

무르시려는 분들도 계셨어요.

처음에는 몇번 속을뻔 했지만 말씀하실때 술냄새가 나거나해서 알 수 있었죠.

짧다면 2시간 길다면 4시간 가량 서 계시던 분들은 진심으로 화장실이 급해서

달려나오시면 전 줄을 맞추다말고 안내해 드리곤 했습니다.

 

하지만 새치기를 하려고 화장실이 급한척을 하는분들도 많으셨고 봉사단 눈치를

보시면서 화장실을 갔다가 줄로 돌아가지않고 근처를 서성거리기도 일쑤였습니다.

때문에 많은 분들이 그 모습을 보고선 대열이 급격히 안좋아졌던 적이 많았습니다.

연인분들이나 친구분들끼리 돌아가서 마치 자랑이라도 하려는듯 사진을 찍는 분들도

많이 계셨구요. 손에 버젓이 있는 'V'는 정말이지 가서 한대 쥐어 박아주고 싶더군요.

 

마지막 발인식 날이 되었습니다.

아니나다를까 상주분들이 나오시기 전 까진 괜찮았습니다.

발인식이 거행된 순간부터 질서의식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죠.

목이 터져라 앉으라고 외쳐도 몇몇의 시민분들은 욕설까지 하시며

외고집으로 밀기 일쑤셨습니다.

보아하니 그 분들 중에는 그전날 질서를 망치셨던 분들이 보였어요.

 

많이 착잡했습니다.

 

서울로 올라가기직전, 간이 분향소 앞에서 명계남씨의 짧은 애도가 있었고

故 노무현 前 대통령께서 살아생전 즐겨 부르셨던 노래(상록수 등)가 흘려나오며

노란종이비행기가 운구차로 날아 올때는 그동안 참았던 눈물이 북받쳐 올랐습니다.

 

다음날 새벽즈음이 되어 운구차량이 다시 마을로 도착했고, 정토원으로 올라가며

사람들을 인도했습니다. 봉하 입구쯤에 줄을 만들고 대기하고있던 사람들은

다행히 초가 있어서 길을 만들어주었는데.

정토원 입구에 계신분들은 초가 모자라 하는수없이 핸드폰 불빛으로라도 하려고

핸드폰을 꺼내라고 말씀드렸는데...

막상 운구차가 오니 그냥 폰카질도 모자라 플래쉬를 터뜨리기 시작했습니다.

 

기자는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서 최대한 방해가 안되게 찍는것 만큼은 이해했습니다.

몇일을 그런 분들을 많이 봐온 저로서는 슬픔을 감출 수가없었죠.

 

압니다.

여러분들의 마음... 애도의 뜻... 그 크기를 알순 없지만

시민들의 자발적 의식에서 비롯된 이번 국상은 참으로 고맙기도 하고

남은 사람들에게 많은 힘이 되주었던건 분명합니다.

 

그러나 애도의 뜻이 지나쳐 흥분과 격정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사람들을 선동하던

분들도 계셨고 기자들도 하는데 왜 자기들은 사진 찍으면 안되냐고 버럭 화내시던

분들도 계셨습니다.

 

저희도 일하면서 사진... 많이 찍고싶었습니다.

왜 안그랬겠습니까... 저희도 인간인데...

하지만 인간이기에... 생각이 있는 인간이기에 찍지않았습니다.

 

고작해야 사람들이 다 빠져나간 곳이나 한적할때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않는

곳에서 글귀 정도 찍었었습니다.

 

봉사단분들과 정이 많이 들어서 그 분들과 사진도 찍고싶었지만 참았습니다.

그분(봉사단)들도 아셨는지 찍자는 분들도 계시지않았고, 짧은 악수로 서로를 위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봉화마을이 아니라 봉하마을입니다.

사람들이 많이들 잘못 알고 계신거 같아서 이 점은 꼭 집어 말해드리고 싶었네요.

진영에서 봉하로 시민들을 운송하는 셔틀버스조차 봉'화'로 썼다가 '하'로 바꾼

흔적이 보여서 말씀 드려요.

 

봉하마을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느꼈던...

 

故노무현 대통령님 많이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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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대한 오해의 소지가 있어서 알립니다.

이사진은 숙소 한켠 조용한 곳에서 제가 맺던 근조띠를 개인 소장용으로 찍었습니다.

오해 없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