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유부녀를 만났네요

증거2009.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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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야...... 나야......"

희미하게 들리는 소리.
반사적으로 뛰어나갔다.

인적없이 텅 빈 복도.
아무도 없었다.
잘못 들었나 싶어 허탈한 마음으로 몸을 돌리는데
다시 그녀의 음성이 귓전을 파고 들었다,
조금은 더 또렷하게.

복도 창문을 열고 건물 밖을 내려다 봤지만,
역시 아무도 없었다.

그때,
"여기야, 여기......"


세상에, 윗층이었다.
미친듯이 윗층으로 뛰어올라갔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녀가 입은 모피 외투는 부드러웠지만
겨울 찬 공기 때문에 서늘했다는 느낌 외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한달여 전쯤 처음 만났을 때에도 우린 그랬다.

"Hi, Beauty!"

"Hi"

우린 서로의 눈을 한동안 마주 바라보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가볍게 안았다.
서로 말은 없었다.
마치 상대방을 속속들이 잘 아는,
몇 년을 사귄 연인처럼.
우린 전혀 어색하지 않았고 포옹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윗층에서 내려와 그녀와 함께 방에 들어섰을 때,
마침 내 컴퓨터 모니터에선
스크린 세이버가 돌아가고 있었다.
불가사리, 열대어, 돌고래나 상어가 물 속에서 유유히 헤엄을 치는
입체적이고 사실적인 화면보호기인데,
그녀가 흥미를 갖고 매우 재미있어 하던 화면이다.
그 화면 한 구석의 디지탈 시계는
03:20으로 깜빡거리고 있었다.


48시간만이었다.


그녀가 온다간다 말없이 기척도 없이 집을 나간 것이
26일 새벽 서너시경이었다.
난 그녀가 나가는 것조차 보지 못했다.

다음 달 출장 준비 때문에
새로 구입한 델 노트북에 일본어 윈도우즈를 추가로 설치하고,
드라이버 인스톨이며, 업데이트며...
이런저런 튜닝을 하느라 정신이 팔려있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업데이트 파일 다운로드와 드라이버 인스톨과 리부팅 같은
기다리기 애매한 막간에 홀짝홀짝 마신 술 때문이기도 했다.

뒤늦게 그녀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아챈 나는
그 새벽 거리를 30분 정도 이리 뛰고 저리 뛰어 봤지만,
그녀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녀가 떠났다,
아무 말도 없이.


떠나건 머물건
그건 전적으로 그녀에게 달린 일이라는 것이
우리의 암묵적인 동의이긴 했다.

내가 그녀를 Connie (Constance) 라고 부른 것도
어쩌면 그녀가 언젠가는 떠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코니가 떠날 때 한참 설치되던 중이던 일본어 윈도우즈에서
프린트를 해서 몇 장을 여기저기 붙였다.


The door will ALWAYS be opened, Connie.



48시간만에 돌아온 코니는
초췌했고 지쳐보였으며,
아주 조금은 불안해하는 것 같기도 했지만,
다행히 불편해하지는 않았다.

코니도 아무 말 하지 않았고,
나도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만큼은 분명히 약속해 두고 싶었다.
떠나는 건 코니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일이지만,
적어도 작별 인사는 하고 떠날 것.


잠시 생각하는 것 같더니,
코니가 답했다.



"냐옹...... 냐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