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농삿일많은집 딸

보배2004.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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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농사일하러 시댁가기 싫어하시는분 글 읽다가

갑자기 친정 아버지가 생각납니다..

울 친정아버지 3남 1녀의 둘째 아들입니다.

맏아들이 공부해서 출세해야  집안이 일어선다는 할아버지의 믿음으로

아버지는 큰아버지의 공부를 위해 그당시 다니던 보통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바로 농사일을 거들어서 집안에 보탬에 되셨죠...

바로 밑에 있던 작은 아버지도  아버지 덕으로 동네에서 독선생(한문선생)을

집안으로 불러서 공부할수 있었다고 하데요...

고모도 나름대로 아들 셋낳고 난 딸이어서 귀하게 자라

그당시에도 중학교까지 마칠수 있었구요...

그저 집안에서 아버지 한분 희생하여 나머지 집안들이

그럭저럭 일어섰고  울 아버지는그저 일자무식만 면하고

 살면서지장없을정도의 수학만을 마친채로 그렇게 농사일만 하시면서 사셨죠...

그렇게 커오신 아버지는 당신 자식들만큼은 고생스럽게 기르고 싶지 않아

다른집 아이들이 농사일 거들어도 우리 자식들만큼은 농사일 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엄만,남의집 자식들처럼 우리가 농사일거들길 바랬지만  

형제들이 일을 해도 다시 해야 할 정도의 서투르게 하고 망쳐놓으니

차리리 도와주지 않느니만 못하다고 하시면서 불만스럽게 말씀하셨죠...

근데 전 태어나길 농사꾼 체질이었는지 한번만 보면 왠만한 농사일 다 잘했습니다.

과일 봉지 싸는거는 손이 안보일 정도로 잘한다는 소문이 동네에 돌았고

벼수매하는 가마니 꿰매는 솜씨는 과히 수준급이어서 동네 매상 가마니

제손을 거쳐가는게 얼마나 많았는지... 이런저런 농사일 알바삼아 하다보니

용돈도 풍족하게 쓰면서 학교 다니니  그것도 나쁘지 않더군요..

남의집일이야 당연 댓가를 바라지만 내 집일은 그냥 도와주고 싶은맘에

도와드리는데도 아버지는 꼭 따로 용돈을 주시더군요...

일을 댓가를 알아야 한다구요...그리고 뭘 하나 시켜놔도

참 잘한다는 칭찬을 많이 받았구요. 그렇게 농사일을 하다보니

전 농사일이 힘든줄도 모르고 했습니다..

워낙에 보고 자란게 힘든 농사일이고  그저 그걸로 우리 식구 먹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어려서부터 박혀서 남들이 뭐라건 농사일 하는거

어렵고 힘들단 생각 해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내 안에서 스스로 자발적으로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라

힘들어도 힘든줄 모르고 한거구요...

지금도 친정에가면 전 일 도우러 아버지 따라 다닙니다..

산으로 들러 일하러 나가는게 그냥 좋아서...

나머지 식구들은 집에서 늦잠자다가 나들이 삼아 새참들고

논으로 밭으로 찾아오고 힘들겠다고 말한마디 하고 돌아서서 가지만

전 아버지 일끝내고 돌아올때까지 같이 붙어서 일합니다...

나머지 형제들이 도와주고 안 도와주고는 자기들 맘인건지

구태여 도와달란 말씀을 하시지도 않는 아버지니 다른 자식들도

당연 자기들은  농사일은 안해도 돼 라는 생각들이구요.. 그런거로 제가

 서운해 하거나미워하지도 않습니다.. 하고싶으면 하고 하기싫으면 말고...

시댁식구들이 그러면 엄청 얄미운데 그래도 내 피붙이라 그런지 그냥저냥

이해하고 넘어가집니다...

나이는 점점 드시고 기운없어서 경운기 운전도 제대로 못하고

일이 힘들어서인지 짜증만 늘어 자꾸 엄마한테 화내고 하는거 보면

뭐하러 일하냐.. 그냥 다 팔아서 편해서 먹고 살자 고 말이라도 해보면

울 아버지.. 평생 땅강아지처럼 땅만 파고 살던 내가 이것라도

해야지 농사일도 안하고 살면 죽은 사람인게지.. 내 살 동안만큼이라도

내가 거두어들인걸로 니들이 먹고 살았으면 좋겠다 하시는데

 농사거리 다 팔아치우자고 우기는 제가 미워지더군요..

농사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가을 수확철에 들판을 보고 있으면

내집니집을 떠나 마음이 뿌듯합니다.. 물론 남의 농사가 내집 농사보다

훨씬 잘 된걸 보면 속은 아리지만(.사촌이 땅샀을때랑 비슷한 증상)...

조그만 콩 두알에서 어째 저리 많은 콩들이 달려나오는지...

그리고 뿌리도 없는 고구마 줄기에서 달려나오는  애들 머리만한

고구마며, 감자쪼가리 심어놓고 어느새 줄줄 달려나오는 감자며...

그런것들을 보면서 농사일 힘들어도 다시 하게 되는건가 봅니다...

가을 추수철이 지나 친정에 다녀오면 차트렁크 가득 실어진 물건들을 보며

그래도 아직 친정에서 농사를 지으니 이나마 갖다먹는거지...하고

위안을 합니다.. 고소한내 폴폴 풍기는 참기름이며 볶아놓으면 동실동실한

참깨며, 태양초로 따로 해놓은 고춧가루며, 시시철철나는 풋성귀들이며

갈때마다 나오는 과일들이며.. 친정만 갖다오면 정말 맘이 다 흐믓해집니다.

매일씻는 쌀을 보다가도 가끔 아버지랑 논에서 먹던 막걸리도 생각나고

모찌러 갔다가 모자리에서 봤던 뱀도 생각나고..

그런 추억을 만들어 준 아버지에게 정말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농사일 힘든거... 안해보신 분들은 정말 힘들죠...

그런데 가을에 내가 힘들게 농사지었던곳에 다시 가서 보세요...

얼마나 기분이 좋아지는데요..

전 다다음주부터 복숭아 봉지싸러 친정갑니다..

그러면 장당 얼마해서 아버지가 주시는데 기름값까지 받아가지고 옵니다.

안 받으면 늙은이 취급해서 싫어라 하시거든요...

남편이 그걸 보더니 친정에서 다 갖다 먹으면서 돈까지 챙긴다고 나보고

속물, 도둑 그러는데 울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그냥 받아오고 담에 갈때  시장봐서

갖다 드리고 하면 더 좋아하시데요... 아직까지도 자식한테 기대고 싶지 않은

울 친정 아버지 꼿꼿한 성품탓에 뭐 해달라는 말씀을 들어본적은 없지만

그래도 전 뭐라도 해 줄수 있다는게 너무 좋습니다...

제가 아버지가 하시는일 도울수 있고 맛있는 음식을 해서 드릴수 있는게

좋답니다...

힘든농사일 하고  계시는 친정아버지를 둔 딸의 맘입니다.

 

 

근데 제가 며느리라면 또 다른 생각이 들겠죠...

어쩌다 가는 시댁 일철이면 흙발로 집안에 걸어다니셔서 바닥에 저벅거리고,,

일없는 철에는 맨날 경노당이나 마을 회관에 모여 고스톱이나 치고 그런다면...

그리고 일 많으니 내려와서 도와달라 그러고 하면...

 시시철철 때마다 바란다면...

정말 힘들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도 며느리이자 딸인 저 보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