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양들의 침묵’을 책으로만 읽고서는 그 엽기적인 장면들에 질려서 책이고 영화고 안 봤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909번 글을 읽고 함 보자 하고 봤지요. 우연히 책도 영화도 ‘한니발’은 안 보고 ‘레드 드래곤’과 ‘양들의 침묵’만 보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폴 크렌들러를 처리하는 상황을 생각하면 ‘한니발’은 끝까지 안 볼지도 모르겠습니다. 원작이 따로 있는 경우 영화를 만드는 데 어느 정도의 각색이 당연하고 그 결과에 따라 원작을 망쳤다 소리를 들을 수도 있고 원작보다 낫다는 평가를 얻어낼 수도 있지요. 자기 동일성을 주요 테마로 했다면, 제 보기엔 책보다 영화가 낫습니다. 아마도 각색한 사람이 또 다른 자기를 만난 경험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봅니다. 원작자가 던져놓기만 한 암시들을 영화에선 꼬집어서 보여주곤 하거든요. 책 ‘레드 드래곤’에서 한니발 렉터는 41세로 나오더군요. 윌 그레이엄은 39세 정도입니다. (윌에게 잡혀서 이미 독실에 갇혀있는 시점입니다. 잡힌 건 그보다 1년 이상 전입니다.) ‘양들의 침묵’은 거기에서 다시 7년 정도를 경과해있습니다. 한니발은 48세 정도, 클라리스 스탈링은 20대 초중반 정도지요. 영화에서 안소니 홉킨스는 에드워드 노튼이나 조디 포스터보다 한 세대 위의 사람입니다. 영화에서처럼 나이 차가 두드러지면, 윌이나 클라리스가 한니발을 아버지, 선생님처럼 느끼는 게 보통이지요. (레드 드래곤의 첫장면에서 윌은 한니발을 존경하고 신뢰해서, 전혀 긴장하지 않고 느슨해져 있다가 공격 당합니다.) 영화에서도 책에서의 나이를 그대로 적용시킨다면, 한니발과 윌의 경우 같은 남자에 연배도 지적 능력도 비슷하니 어쩔 수 없이 둘은 경쟁의식을 가지게 될 겁니다. 그러면 한니발이 윌을 가르치고 인도하기보다는 골탕 먹이면서 더 희열을 느끼지 않았을까요? ^^;; 그렇게 해석하면 이빨요괴를 조종해서 윌을 위협하는 한니발의 행동은 ‘넌 이빨요괴를 이길 수 있어’ 가 아니라 ‘니가 그렇게 똑똑하다면 빠져나와봐’ 가 되겠지요. 자신만큼 귀한 윌을 곤경에 빠뜨리는 게 미심쩍었는데 이렇게 보면 좀 그럴듯해집니다. (나만 그런가…) 반면 한니발과 클라리스의 경우는, 일단 이성이고 나이도 거의 아버지와 딸 뻘이니 불필요한 긴장은 빠지고 딸처럼 예뻐하기만 하면 되는 상황입니다. 클라리스에게 무례를 저지른 옆방의 믹스를 처리해버리는 한니발의 모습은 그렇게 해석할 수 있겠지요. 책에서는 클라리스가 그 소식을 크로포드에게서 직접 듣지만, 영화에서는 전화로 알게 됩니다. 그렇게 장면 처리를 함으로써, 관객은 클라리스의 묘한 쾌감(렉터 박사님이 나를 위해..?)을 그 표정으로 직접 보게 됩니다. 크로포드 앞에서 그런 얼굴을 했다간… 클라리스가 버팔로 빌을 잡을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도 책에서는 한니발이 자기가 알고있는 정보들을 하나씩 감질나게 흘려주면서 상황을 즐기는 것처럼 보입니다. 물론 클라리스가 버팔로 빌을 잡으면 예쁜 제자가 한껀 하는 거니까 나쁠거 없지요. 하지만 클라리스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자기만족이 더 크지않을까 싶습니다. 한니발이 가진 자만심-나는 너희들보다 위에 있는 자이다-을 알고 있는 크로포드는 그 자만심을 이용해서 정보를 얻기 위해 클라리스를 보낸 거고요. 크로포드는 영화에서는 잠깐씩 나오지만 책에서는 사생활도 보여지면서 제법 역할이 큽니다. 클라리스가 버팔로 빌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뛰느라 FBI 아카데미에서 유급될 처지가 되자 클라리스 모르게 뒷처리를 해주기도 하고, 자기 지갑을 털어서 수사 진행비를 보태주기도 하지요. 보기에 따라서는 클라리스를 영특한 딸로 여기는 건 한니발이 아니라 크로포드 아닌가 싶습니다. 책 ‘양들의 침묵’에 크로포드는 정년을 2년 앞둔 쉰다섯이라고 나옵니다. 버팔로 빌 사건에 책임을 져야 할 경우엔 남은 2년도 못 채울 상황입니다. 평생을 바친 FBI 에서 자기의 시간은 다 했고, 클라리스는 이제 시작입니다. 클라리스에게 자기의 지식과 경험을 전해줌으로써 크로포드는 FBI 안에서의 자기의 삶을 이어가게 되는 거지요. 문득 생각난 건데요 한니발과 윌의 나이가 저 정도라면, 그걸 영화에서도 그대로 표현한다면… 안소니 홉킨스가 40대로 나오긴 좀 무리가 있지요? ^^; ‘레드 드래곤’을 찍을 때 환갑이 넘었다던가 그렇던데요. 에드워드 노튼을 윌 그레이엄의 자리에 그대로 둔다면 한니발 렉터는 어느 배우가 어울릴까요?
[RE:909] 소설 속의 한니발, 윌, 클라리스, 크로포드
오래 전에 ‘양들의 침묵’을 책으로만 읽고서는
그 엽기적인 장면들에 질려서 책이고 영화고 안 봤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909번 글을 읽고 함 보자 하고 봤지요.
우연히 책도 영화도 ‘한니발’은 안 보고 ‘레드 드래곤’과 ‘양들의 침묵’만 보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폴 크렌들러를 처리하는 상황을 생각하면 ‘한니발’은 끝까지 안 볼지도 모르겠습니다.
원작이 따로 있는 경우 영화를 만드는 데 어느 정도의 각색이 당연하고
그 결과에 따라 원작을 망쳤다 소리를 들을 수도 있고 원작보다 낫다는 평가를 얻어낼 수도 있지요.
자기 동일성을 주요 테마로 했다면, 제 보기엔 책보다 영화가 낫습니다.
아마도 각색한 사람이 또 다른 자기를 만난 경험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봅니다.
원작자가 던져놓기만 한 암시들을 영화에선 꼬집어서 보여주곤 하거든요.
책 ‘레드 드래곤’에서 한니발 렉터는 41세로 나오더군요. 윌 그레이엄은 39세 정도입니다.
(윌에게 잡혀서 이미 독실에 갇혀있는 시점입니다. 잡힌 건 그보다 1년 이상 전입니다.)
‘양들의 침묵’은 거기에서 다시 7년 정도를 경과해있습니다.
한니발은 48세 정도, 클라리스 스탈링은 20대 초중반 정도지요.
영화에서 안소니 홉킨스는 에드워드 노튼이나 조디 포스터보다 한 세대 위의 사람입니다.
영화에서처럼 나이 차가 두드러지면, 윌이나 클라리스가 한니발을
아버지, 선생님처럼 느끼는 게 보통이지요. (레드 드래곤의 첫장면에서 윌은
한니발을 존경하고 신뢰해서, 전혀 긴장하지 않고 느슨해져 있다가 공격 당합니다.)
영화에서도 책에서의 나이를 그대로 적용시킨다면, 한니발과 윌의 경우
같은 남자에 연배도 지적 능력도 비슷하니 어쩔 수 없이 둘은 경쟁의식을 가지게 될 겁니다.
그러면 한니발이 윌을 가르치고 인도하기보다는 골탕 먹이면서 더 희열을 느끼지 않았을까요? ^^;;
그렇게 해석하면 이빨요괴를 조종해서 윌을 위협하는 한니발의 행동은
‘넌 이빨요괴를 이길 수 있어’ 가 아니라 ‘니가 그렇게 똑똑하다면 빠져나와봐’ 가 되겠지요.
자신만큼 귀한 윌을 곤경에 빠뜨리는 게 미심쩍었는데
이렇게 보면 좀 그럴듯해집니다. (나만 그런가…)
반면 한니발과 클라리스의 경우는, 일단 이성이고 나이도 거의 아버지와 딸 뻘이니
불필요한 긴장은 빠지고 딸처럼 예뻐하기만 하면 되는 상황입니다.
클라리스에게 무례를 저지른 옆방의 믹스를 처리해버리는 한니발의 모습은 그렇게 해석할 수 있겠지요.
책에서는 클라리스가 그 소식을 크로포드에게서 직접 듣지만, 영화에서는 전화로 알게 됩니다.
그렇게 장면 처리를 함으로써, 관객은 클라리스의 묘한 쾌감(렉터 박사님이 나를 위해..?)을
그 표정으로 직접 보게 됩니다. 크로포드 앞에서 그런 얼굴을 했다간…
클라리스가 버팔로 빌을 잡을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도
책에서는 한니발이 자기가 알고있는 정보들을 하나씩 감질나게 흘려주면서
상황을 즐기는 것처럼 보입니다.
물론 클라리스가 버팔로 빌을 잡으면 예쁜 제자가 한껀 하는 거니까 나쁠거 없지요.
하지만 클라리스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자기만족이 더 크지않을까 싶습니다.
한니발이 가진 자만심-나는 너희들보다 위에 있는 자이다-을 알고 있는 크로포드는
그 자만심을 이용해서 정보를 얻기 위해 클라리스를 보낸 거고요.
크로포드는 영화에서는 잠깐씩 나오지만 책에서는 사생활도 보여지면서 제법 역할이 큽니다.
클라리스가 버팔로 빌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뛰느라 FBI 아카데미에서 유급될 처지가 되자
클라리스 모르게 뒷처리를 해주기도 하고, 자기 지갑을 털어서 수사 진행비를 보태주기도 하지요.
보기에 따라서는 클라리스를 영특한 딸로 여기는 건 한니발이 아니라 크로포드 아닌가 싶습니다.
책 ‘양들의 침묵’에 크로포드는 정년을 2년 앞둔 쉰다섯이라고 나옵니다.
버팔로 빌 사건에 책임을 져야 할 경우엔 남은 2년도 못 채울 상황입니다.
평생을 바친 FBI 에서 자기의 시간은 다 했고, 클라리스는 이제 시작입니다.
클라리스에게 자기의 지식과 경험을 전해줌으로써
크로포드는 FBI 안에서의 자기의 삶을 이어가게 되는 거지요.
문득 생각난 건데요
한니발과 윌의 나이가 저 정도라면, 그걸 영화에서도 그대로 표현한다면…
안소니 홉킨스가 40대로 나오긴 좀 무리가 있지요? ^^;
‘레드 드래곤’을 찍을 때 환갑이 넘었다던가 그렇던데요.
에드워드 노튼을 윌 그레이엄의 자리에 그대로 둔다면 한니발 렉터는 어느 배우가 어울릴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