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귀거래사 71 / 사라져가는 것은 언제나 그립다

김명수2004.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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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것은 언제나 그립다

따사로운 햇살을 받고 있는 배불뚝이 단지 위에 동네 고양이가 나른하게 졸고 있는 마당을 보며 한가롭게 창문을 열면, 바람 일렁이며 가슴 가득 안겨드는 눈부신 햇살과 그것을 맞이하는 감미로움이 어디로 날아갈 새라 찬찬히 즐긴다. 하늘은 깊고 푸르고 산마루 위에 피어오르는 뭉게구름이 소녀의 꿈

처럼 싱그로운 만춘의 풍요로움에 맑은 정신이 감미로워 감정의 사치를 즐긴다.

줄 장미 농염하게 붉은 꽃송이가 뿜어내는 향의 풍성함에 잠시 마음이 현란해 진다. 이미 산천은 짙은 녹색의 옷으로 갈아입은 지 오래고 들길 밟히는 곳마다 강아지풀 살강살강 종아리 간질인다. 하얀 감 꽃 떨어지니 풋풋한 내 유년의 그리움에 젖어 곱게 주워 모아 꽃목걸이를 만들었다.

총총 심긴 아기 모들이 여간 보기 좋은 게 아니어서 잠자코 바라보고 있으려니 이앙기로 모내기도 단숨에 끝낸다. 예전에 손으로 모내기하던 시절을 떠올리면 모내기 같지도 않은 홀가분한 모심기다. 못줄잡고 여남은 명이 농요 가락에 흥을 돋우며 북새를 떨었는데 집집마다 기계화된 농사로 어느 집의 모내기가 언제 끝날지도 모를 정도로 빨리도 끝났다. 이앙기의 기계소리가 이 시대의 "농가월령가"다.

해가 중천으로 오르면서 햇살은 벌써 성하의 여름 흉내를 낸다. 내리 꽂히는 햇살의 따가움에 그늘을 찾는다. 따가운 햇살은 날 감시하는 사냥꾼의 눈매처럼 호시탐탐 그림자가 되어 푸른 그늘의 바람 속에 나는 숨는다.

모내기는 일년 농사 중에 가장 큰 일이었다. 농사는 혼자서보다 여러 사람이 어울려 하는 일이 많다. 모심기라든가 논매기, 타작, 가래질 등이 그렇다. 모심기에는 여러 사람이 동원되어야 한다. 넓은 논에 혼자서 모를 심는다는 것은 작업능률도 오르지 않을 뿐 아니라 모심는 때가 있기 때문에 함께 빨리 심어야 한다. 다들 돌아가며 품앗이를 하거나 놉을 사야만 했다.

모심기는 못자리에서 모찌기부터 해야 한다. 따라서 모심기할 때는 못 줄잡이가 선창으로 구수하게 농요를 부르면 모심기꾼들은 교환 창으로 걸쭉하게 후렴을 받아내며 모심기를 한다. 그것은 신나는 일이었다.

 

 

  예봐라 농부말들어

  느마지기 왼뱀이가

  반달만치 남았다

  어서밧비 심고가세

  요내곁에 모숭구던

  처자애기 어데갔노

  밀양이라 영남숲에

  화초구경 가고없네

모를 심으면서도 옆에서 심고 있는 처녀에게 관심이 있다. 모심기하면서도 사랑의 연분을 꿈꾸는 아름다운 농요도 이제는 세월의 먼 산에 아물아물 묻혀 버리고 사람들의 굵은 팔뚝 대신 이앙기의 기계소리가 신 농가월령가로 풀려 나가고 있다.

거머리 뜯어내며 풀 섶에 둘러앉아 맛있는 들밥에 한 잔 막걸리의 시원한 음주도 이제는 먼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없으려니, 들밥대신 자장면 배달부가 오트바이로 실어 나르고  경승용차가 들길 따라 커피를 배달하는 농촌의 신 풍속에 격세지감을 느낀다. 하물며 구수한 모심기의 노래도 화석이 된지 오래다. 여유와 멋과 자연의 정취까지 곁들인 아름다운 들녘의 모습은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사라진 그리움이다.

   들녘에 들밥을 내니 늙은 삽살개 뒤따르고

   푸른 숲 그늘에서 붉은 해를 피하네

   힘들여 더부룩한 악초를 제거하고

   흔연히 배불리 먹고 긴 두둑에 누웠도다

                                          

                                     

김 명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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