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제가 천벌을 받고 있습니다........

하얀손2009.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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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제가 천벌을 받고 있습니다........


20년 전, 대학시절 내가 존경하는 한 남자선배가 있었다. 비록, 내가 그의 후배였지만, 나이가 같아서일까? 항상 그는 나에게 존댓말을 사용했다. 그는 문학특기생이었는데, 문학특기생도 A, B, C, D 등의 등급 구분(문예특기 장학금 교부증을 받는 본인만 등급을 확인할 수 있음.)이 있었는데, 그는 정말 시를 잘 썼다. (그때는 왜 그분의 등급을 묻지 않았는지, 아마도 D등급을 받는 나의 알량한 자존심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데, 교수님과 선배들은 그의 천재성이 드러나는 작품에 아낌없는 칭찬을 하면서 항상 문예특기생모임이 있으면,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는 그를 항상 걱정했다.


  “또 장OO는 안 나왔냐?”

  “네, 죄송해요.”


  모임에 참석하신 교수님께서 자리에 앉으시며, 가장 먼저 던지는 질문에 우리 모임의 대표님은 항상 죄인처럼 대답해야만 했다. 나는 대학생활 새내기로 몇 개월을 보냈지만, 그의 얼굴조차 볼 수 없었다. 다만, 나는 학교신문과 동문회지에 발표한 그의 몇 작품을 읽었을 뿐이었다. 그의 작품은 청년의 패기와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을 뿐만 아니라, 시어 및 시상의 배열이 빈틈없이 가지런하게 전개되어 있었다. 그 패기와 열정은 어디서 뿜어져 나오는 것일까? 그는 장문의 시를 썼는데, 어느 한구석 막힘없이 힘차게 뻗어나가는 기운이 넘쳐흘렀다. 그러나 그의 시는 나의 문학적 경향과 전혀 달랐다. 그가 청년이라면, 나는 소녀였다.


  “저는 장OO입니다.”


  그 청년이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는 예상과 달리 나보다 키도 훨씬 작고, 마른 편이었고 한쪽 다리를 절고 있는 장애를 지니고 있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도, 그는 대표님에게 어디에서 추포되어 모임에 반강제로 끌려왔던 것이다. 그의 뒤에 서 계신 대표님의 얼굴 표정은 마치 전국에 수배령이 내려진 범인을 잡은 강력계 형사처럼 자랑과 기쁨이 역력해 보였다. 그는 바닷가의 가난한 어부의 아들이었으나, 성적도 우수하고 문학적 소질이 뛰어나 장학금을 지급 받으며 공부하고 생활할 수 있었다.


  “너, 교수님 만나면 죽을 줄 알아라.”


  그의 동료와 선배들은 그에게 술을 사주며, 온갖 설득과 회유 그리고 각종 협박(?)과 유혹(?)까지 했지만,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다시 그의 얼굴은 그 모임에서 볼 수 없었다. 그는 시국사범으로 형사들에게 쫓기는 신세였다. 그런 과정에서도 그는 틈틈이 신문에 시를 발표했다.


  “아깝다, 저 재주에.......”


  신문을 통해 그의 시를 보는 교수님과 선후배들의 안타까움이 나의 가슴 속에도 들어와 있었다. 그의 작품이 지나치게 돋보였을까? 선배들 중에는 이미 신춘문예 및 각종 문예지  등에 등단한 분들도 적지 않았고, 심지어 교수님의 시보다 그의 작품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에게 시를 배우고 싶었다. 아니, 그의 패기와 열정이 부러웠다. 하지만, 나는 그가 두려웠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한다면, 경찰이 두려웠다. 지금까지 낭만적 기질로 남들에게 피해주지 않고, 경찰서 구경도 하지 못한 내가 자칫하면 그 때문에 소위 ‘빨간 줄’ 긋게 될 것이 나의 발목을 잡았다.


“이것을 잠시 보관해 줄 수 있어요?”


노란색 서류봉투를 그가 나에게 불쑥 건넸다. 나는 어떨 결에 그 두툼한 서류봉투를 받았다. 그는 자신과 동료들이 형사들에게 수배되어 쫓기게 되었는데, 아무래도 조직에 중요한 문건이 경찰에 넘어갈 것 같아서, 경찰의 의심을 받지 않고, 안심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일 것 같아서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말을 듣고 있으면서, 나의 사랑하는 부모님과 형제들이 눈앞에 어른 거렸다. 어찌할 것인가? 그냥 눈을 딱 감고 이 서류를 한 달만 보관해 줄까? 아니다, 내가 달콤한 악(惡)의 수렁에 빠져, 발을 빼지 못하는 순간이 될 수 있다.


“선배님, 제가 이 서류를 보관해 드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의 얼굴은 내가 다시 건넨 서류봉투를 받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매우 실망스럽고 쓸쓸한 표정이 되었다. 그는 나에게 “아쉽지만, 충분히 이해합니다. 이런 무리한 부탁드려서 죄송합니다.”라며 발길을 돌렸다. 그가 다리를 절면서, 천천히 골목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나는 저 연약한 다리로 형사들의 추격을 어떻게 따돌릴 수 있을까? 생각하며,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아무 일 없이 무사히 가기를 바라며 전송을 했다. 그리고 나는 가슴에 무거운 죄책감과 채무감(빚)을 느끼고 있었다.


그 선배의 간절한 그 부탁을 모질게 거절하고, 뒤돌아 선 나는 20년의 세월이 흘러서야,  그 선배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부탁을 거절한 대가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오해와 질시 그리고 야유와 조롱을 받으며, 오늘 새벽에도 일어나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아, 그 선배의 마음이 오죽했을까? 아마, 지금의 내 마음과 같을 것이다. 죄송합니다. 선배님, 어디서 잘 지내고 계신가요? 한번 만나면, 술잔을 기울이며, 지난날을 회고하며 사죄드리고 싶네요. 그때, 제가 무지하고 비겁하고 용기가 없어서 당신을 도와 드리지 못해서, 지금 제가 그 죄로 천벌을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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