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형사 이야기 episode2 술래잡기5

전선인간2004.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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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남 형우 이놈 어디 갔어? 요즘 자주 시야에서 사라지네!

이 놈 또 어디서 사고치고 있는 것 아냐?”


5년의 세월 후 이제는 형사 반장이 된 박 철현 형사는 자신의 집무 책상에

걸쳐 앉으며 꼭 박 반장의 경찰근무경력만큼이나 오래된 검은색 다이얼식 전화기의

수화기를 들며 남 형사를 찾았다.


“요즘 남 선배! 바람이라도 낫는 지 매일 아침 조례 마치기 무섭게

어딘가로 휙 가더라구요. 어디 가는지 물어도 대답도 안 해주고

업무일지도 ........“


김 경장은 업무일지마저 자신에게 맡기고 자리를 비우는 남 형사에게

약간은 심통이 났는지 뾰루퉁한 표정으로 박 반장을 쳐다보았다.


“그 놈 참 매일 쇼파 위에서 디비 자다 11시나 되어야 일어나는 놈이 먼 바람인지........

Tv에서 아침형 인간 아침형 인간 하니까.

그 놈이 지도 아침형 경찰이 되려고 그러나?“


박 반장은 여의 없는 농담을 건네며 수화기를 들지 않은 나머지 한손으로 익숙하게

자신의 이름이 적힌 플라스틱 팻말 옆을 스윽 하고 쓸어보다

큰 소리로 이 순경을 부르기 시작했다.


“어이 이 순경! 이 순경! 이거 또 내 유산균 요구르트가 없잖아.

이거 범인 아직 못 잡았어? 분명히 조례 전까지 있었는데 말야?“


오늘도 역시나 오전 대민봉사업무를 하기 위해 포돌이 인형을 챙기고 있던

이 순경은 박 반장의 질문에 똑바로 눈을 보고 대답할 용기가 없었는 지 서둘러

커다란 포돌이 인형을 머리에 쓴 후 고개만 좌우로 절레절레 흔들기 시작하였다.


“에이 시발. 진짜 이 놈의 새끼 누군지 걸리기만 해봐라.

내 아주 요구르트 대신 갈아 마신 후 30년 경찰생활 동안 숙성된

고농축 위산으로 아주 녹여 버릴 테니까.

그나저나  번호가 02-367-8978이 맞던가“


박 반장은 컴퓨터 모니터 앞에 붙여져 있는 노란색 포스트잇에 적힌 전화번호대로

검은색 전화기의 다이얼을 돌리기 시작하였다.


“차르륵....... 챠르륵.......”


“반장님도 참 왠만하시면 전화기 좀 바꾸시져? 반장님  명예가 있지

그런 구식 돌리는 다이얼 전화기가 멉니까? 다이얼이요?“

 

“아 모름 가만 있어. 이 다이얼 하나 하나 돌아갈 때 들리는 이 챠르륵 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운데 더욱이 하나하나 정성스레 전화번호를 돌리다보면

왠지 상대방에게도 내 마음이 전해질 것 같단 말야. 디지털 전화기는 영 나랑 안맞아. "

 

"여보세요? 여보세요?

아 접니다. 박 반장“










“진짜 안되는 거냐구요? 정말 이러실 겁니까? 최영감님

높은 자리에 있을 때 좀 봐달라구요!“


“이거 알만한 분이 왜 이러세요. 남 형사님도 아시잖아요! 무리라는 거”


“무리인거 아니까 지금 제가 며칠째 영감님에게 부탁드리는 거 아닙니까.”


“아니 글쎄 가석방요구도 안한 제소자를 어떻게 가석방을 시켜달라는 겁니까?

먼저 죄수의 가석방 요구가 있고 그러고 최소한

2개월 이내에 가석방 심사를 받아야 가석방 처리를 할 수 있다는 거

남 형사님도 잘 아시잖아요?

근데 왜 자꾸 떼를 쓰고 그러세요“


“제가 잘 못 잡아넣은 놈이라니까요. 냉철한 법이 잠시 눈이 흐려져

억울하게 벌 받는 놈이라구요.

더군다나 이제 어차피 몇 개월 후면 만기 출소잖아요.

거기다 여기 보세요. 영등포 교도소장이 보낸 추천서요.

이 놈 교도소 내에서의 평점도 우수하고 어디한군데 흠 잡을 때 없는

모범수 아닙니까? 그러니까 저랑 우리 반장님이랑 인연을 생각해서라도

제발 좀 도와달라니까요“


남 형사는 서울지검 특수부 제 2과 최병호 검사의 책상 앞에

영등포 교도소장이 적어준 추천서를 세차게 들이 밀었다.

A4용지에 빽빽한 글자로 채워져 있는 세 장짜리 교도소장의 추천서는

마치 이제 막 30대 후반에 들어서려는 서울지검 특수부 검사의

탄탄한 성공의 길처럼 반들반들 윤택이 나있는 갈색 원목 책상 위를

미끄러져 갔다.


“휴 남 형사님 이런 거 백장 주셔도 소용없다니까요.

법이 그렇게 제정이 되어있는데 저보고 어쩌라는 겁니까?

대체 10일 이내에 중범죄를 짓고 수감 중인 제소자를 가석방을 시켜달라니요.

이건 마치 어제 임신한 부인에게 오늘 10개월짜리 애를 낳아달라는 식이잖아요“


최 검사는 언제나 원리원칙에 충실한 법조인답게 하얀 와이셔츠에

윈저 놋트 스타일로

단정히 매어둔 검은 색 넥타이의 매듭을 만지작거리며

계속해서 무리한 부탁을 해대는 남형사가 답답함에 

깊은 한숨들을 쉬어대기 시작했다.

단 한번도 업무시간 외엔 풀지 않은 그의 넥타이 매듭이 오늘따라 더욱

단단해 보였다.


“시발 그 놈의 법은 피도 눈물도 없다는 말입니까?

글케 졸라게 어려우니까 잘나가는  서울지검 특수부 스타 검사인

최 검사님에게 부탁하는 거 아닙니까?

기억 못하세요? 저랑 박 반장이 지난 해 영등포 벌떼 룸 싸롱 사건 때

일부러 검사님 오실 때 까지 기다려서

조폭 애새끼들 잡아들였다 아닙니까?

검사님 고과점수 높여 드릴라구요.

그리고 올해 신도림 역전 앞 특수강도 상해 사건 때도 그렇고........“


“아.......그만 하세요 충분히 알았으니까.

내 다른 거라면 모르겠지만 이건 진짜 제 능력 밖입니다.

이런 식으로 제소자들을 빼내면 나중에 큰 문제도 생기고

특혜니 머니 말도 많아지고

저 좀 봐주세요. 남형사님“


“아 시발 진짜 너무하시네.

나 남 형우 졸라게 무식해서 법이니 머니 그런 거 잘 모르지만

이건 압니다. 최소한의 사람의 도의라는 거 그리고 법도 중요하지만

그건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서 만들어놓은 제도 아닙니까.

그럼 그걸 관장하는 검사 나으리 같은 분이

가끔씩은 냉철한 법의 철조망에 작은 구멍이라도 뚫어

힘없고 빽 없어 걸린 서민들에게 숨통이라도 뚫어줘야 할 것 아니오.


진짜 시발 됐수다.

졸라 고명하신 검사 나으리께서 안된다면 안된다는 거죠.

그렇게 원리 원칙 따져서

꼭 검찰총장도 되고 대법원장도 되쇼.

나는 이제 그렇게 고명하시고 높은 검찰 나으리랑은 대화하기 싫으니까.

진짜 시발 법 더럽게 좋네 좋아“


“쾅!”


남 형사는 자신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 최 검사에게 단단히 화가 치밀어 올랐는지

검사실 벽을 한 차례 주먹으로 친 후

갑갑하리 만치 무거운 검사실의 문을 세차게 닫고 나갔다.


“휴....... 그 양반 진짜 성질머리하고는.......”


최 검사는 남형사의 심통맞은 뒷 모습을 바라보면서 답답함과 미안함에

천천히 담뱃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때르릉 때르릉“


이제 막 한 모금 빨아 당겼을까 최 검사의 왼쪽 집무 서류상자 아래 놓인

전화기의 벨이 급하게도 울리기 시작했다.


“네 서울지검 특수부 제 2과 최 병호 검사입니다.”


최 검사는 서둘러 긴 담배연기를 목구멍으로 쑤셔 넣은 후 매캐하게

목을 따끔거리는 연기를 참아가며 검사다운 목소리로 수화기를 들었다.

저쪽 편의 수화기를 통해 낯익은 음성이 들리고

최 검사는 수화기를 든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후 계속해서

따꼼 따꼼한 헛기침을 뱉어 대기 시작했다.


“쿨럭 쿨럭....... 아 진짜 요즘 두 분 왜 이러세요 쿨럭

진짜 두 분이서 쿨럭........ 안된다니까요! 쿨럭“


“에이씨”


곤란할 때 마다 내뱉는 그의 최대의 욕설을 입에 담으며

최 검사는 탁자위에 이제 겨우 두 가치를 꺼내어 피웠던 담배갑을

손으로 꽉 쥐어 우그러뜨린 후 검사실 바닥을 향해 내팽겨쳤다.

마치 잘 짜여진 법규마냥 정형화된 체크무늬가 그려져 있는

카페트 바닥 위로 하얀 담배가치들이

일탈이라도 하듯 너저분하게 튀어져 나왔고


최 검사는 다시 바닥에 구겨진 담배 한 가치를 주어 든 후

일부러 라이터의 불꽃을 최대한 높여 구겨진 담배에 불을 붙였다.


“사람의 도의?

참 나 요즘은 경찰을 말 잘하는 순서로 뽑나?...... 에이씨

하하 나 참 에이씨”


긴 몇초간의 어의 없는 웃음을 짓던 최 검사는 자신의 목에 꽉 짜 매어진

넥타이를 풀어 제친 후 수화기를 들어 어딘가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