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오탁후 일기...

2009.06.16
조회96

오타쿠의 생활에 접어든지 몇년이 흘렀을까..

(물론 당시에 인터넷이 없던시기니 오타쿠란 단어조차 모를때였다.)

 

아마도 Seal의 Kills from a Rose를 미친듯이 워크맨에서

듣고 다닐때니까...  중학교때로 생각든다.

 

당시,나와 비슷했던 찌질한 인생들과 함께

Table Role Playing Game (이하 TRPG)계의 플레티넘 실버와 같은 존재였던

Dungeons & Dragons (이하 D&D)를 하고 놀았다.

 

쉬는시간과 점심시간만 되면 누가 먼저라 할것 없이 여러개의 책상을 하나로 모아

큰 테이블을 만들고 주변에 모여 앉아 주사위를 굴리며 역활극에 빠져들었다.

 

알만한 이들은 알겠지만 D&D TRPG는

미쿸물 좀 먹은 찌질한 새퀴들은 죄다 한다는 그 게임이었다.(정확히 하자면 역활극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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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 (던전 마스터) : 두두둥~!(효과음) 너희들 앞에 갑자기 희뿌연 연기와 피어올랐어. 그 연기가 사라지고 나니 알수 없는 덩치큰 형체가?!?!?!?!? 이런 ! 오우거(Ogre)야!

 

대가리 : ㅆㅂ 이런상황에서 오우거라니! 마법사들은 내 뒤에 서서 진형을 갖춰!

 

펭귄 : 어떻게 하지? 캐스팅 할수 있는 힐링계열의 마법이 더이상 존재치 않아!

 

번 : 파티를 버리고 도망가겠어. ( 이기적인 모럴리티의 도적....)

 

똥수건 : 제길! 나의 매직미사일로 시간을 끌테니 어서 살궁리를 찾아봐! 자 간닷!!!!!

             매직 미사일 !!!!!!!!!

 

(20면체 주사위를 굴린다....)

 

DM : 성공이야! 18이 나왔어! 똥수건의 손에서 희뿌연 물체가 발생하더니 오우거의

       몸을 향해 돌진했어! 엄청난 굉음과 함께 오우거가 3m 정도 튕겨져 나갔어!

 

모두들 : 끼얏호! 성공이야!

 

번 : 좋아. 섹시댄스를 춰서 정신없는 오우거를 현혹하겠어. 민첩을 포기한대신

올려놓은 +3패널티의 매력지수가 여기서 빛을 발하는거야!  6면체 주사위를 줘!!!!!!!!!

나의 섹시지수를 파악해주라고 DM !!!!!!!!

 

DM : 꺼져.

 

.

.

.

.

 

그랬다. 이게 바로 TPRG의 진행방식이었다.

전체적인 시나리오 진행과 관리 역할을 수행하는 DM과 그 시나리오를 즐기는

유저들이 모여 각자의 직업을 연기하는 고차원적인 놀이었다.

오직 대화와 주사위 굴림만이 게임을 진행하는 모든 것이었고

모르는 영어단어를 찾기 위해 사전을 찾아가며 그렇게 웃고 즐겼다.

 

이 짓을 쉬는시간 10분... 점심까먹고 40분... 학교 끝나고 두~세시간....

우리는 상상의 나래에 빠져 수많은 레드 드래곤과 오우거를 유린하고

그 시체위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4면체, 6면체, 10면체, 12면체, 20면체, 100면체.....

그 조그마한 다이스에 깃든 신들의 작은 숨결 하나하나에

우리 모두는 미친듯 울고

소리지르며 외치고

배꼽을 잡고 땅을 구르며 웃었다...

 

요즘  친구들과 가끔하는 포커에서조차

그때 내 손아귀를 벗어나던 다이스의 손맛에 비할만한 긴장감을 느낄수가 없다.

 

 

근데...

우리 중학교는 남녀 합반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타자 치고 있는 손가락이 오그라들어 버릴것만 같은 이 게임을

난 중학교 2년동안 미친듯이 즐겼다.

 

그리고 12~13년이 지난 지금...

난 단한명의 여자동창과도 연락을 하지 않는다.

 

몇달전에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한 여동창이 반가워 아는척하고 싶었지만...

난 숨어버렸다....

 

내 중학시절은...그랬다...

 

 

그렇다고 지금 돌이켜봐서 후회스럽다는 건 아니다.

 

고등학교 시절의 나의 오덕스러움에 비한다면 이건 조족지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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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종일 회사에서 연필로 제안서를 수정하다

마치 육면체 주사위처럼 생긴 지우개를 보고 어린시절의 나의 찌질함을 회상했다.

하루 하나씩 아무도 없는 이 곳에 내글을 채워가며

혹시나 모를 나의 소중한 옛친구들을 기다려본다.

 

보고싶다. 동창들아.

우리 다시 한번더 예전처럼 찌질하게 놀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