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답답한 마음에 이렇게 판에 글을 올리게 되네요. 이런말을 써도 될지 모르겠는데 제가 너무 철이 없는건가 싶어서요.. 아. 전 현재 서울에 살구요. 24살된 여자입니다. 지금 졸업후에 백수에요. 모든걸 다 솔직히 말할께요. 냉정한 조언부탁드릴께요 부탁드립니다 전 6살에 학교를 갔습니다. 이유야 뭐. 저도 잘 모릅니다. 엄마가 어떻게 보내셨다고 하시더군요~ 제나이 6살 말경일거에요.. 2학년되기전이었으니 1학년 2학기 겨울방학 조금 전에. 전 뇌수술을 받았습니다. 아버지가 홧김에 던지신 재떨이에 맞았죠. 그때 기억이 납니다 자다가 일어났는데 아빠가 아빠친구분과 담배를 피우고 계셨어요. 근데 엄마랑 다투셨는지 안색이 안좋았어요 어렸을때부터 아빠는 저에게 다정다감한 분이시자 굉장히 엄격한 무서운 분이셨어요. 제가 아빠 성격을 닮아서 인지 성격이 굉장히 급하고 다혈질입니다. 자다가 깨서 아빠를 쳐다보는데 아빠가 뭘보냐며 그 두꺼운 사기 재떨이를 던지셨어요. 그때 기억으론 제가 뒤로 넘어진거같은데 천장이 정말 빙글빙글 돌더라구요. 그런후에 근처종합병원에서 수술이 안된다고해서 구,서울중앙병원 지금 현재 현대아산병원에서 수술을 받았고. 성공적이어서 퇴원을 일찍 했어요. 그런후에 저희엄마아빠 이혼하셨습니다. 잘은 모르겠어요 이유가 뭔지는. 전 엄마랑 헤어져서 아빠와 할머니와살았습니다. 노총각 삼촌과 사시던 할머니께서 저희집으로 오신거죠. 이부분은 생략합니다. 그후로 몇년이 지나 저도 중학생이 되었습니다. 어느날 학교에서 돌아왔는데 여자 구두가 있었습니다. 문틈으로 슬쩍 봤습니다. 그렇죠. 새엄마 되실분.이셨어요. 전 아빠의 재혼에 적극 찬성이었습니다. 그냥. 그냥. 나도 엄마가 있었으면할때가 많았거든요. 초등학교. 아 그땐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바뀐지 얼마 되지않아서 ㅎㅎ 국민학교 졸업식. 전 많이 울었습니다. 아무도 오지 않았거든요. 물론 저보다 더한 소녀가장인친구들도 있었지만. 저도 사람인지라 제 처지가 더 불쌍하고 가여운것같더라구요. 부모님이 계신 애들하고만 비교하게 되고요.. 암튼 말이 자꾸 딴쪽으로 가네요.ㅎ 새엄마가 들어오셔서 뭐.. 그냥 그냥저냥 살았어요. 솔직히 눈치도 많이 보이고 그랬지만요. 그러다가 막둥이 동생이 태어났어요. 우연의 일치인지 동생은 생일이 같아요. 그후로 제 생일은 없어졌습니다 . 괜찮아요. 그런건. 전 지금도 새엄마가 싫습니다. 그건 내 친엄마가 아니기때문이 아니에요. 지금 나이 먹고 생각해보면 같은 여자로써 생각할때 이해도 됩니다. 전처의 딸년이 뭐 그리 이쁘겠어요. 하지만 엄마아빠 다투실때보다 나보고 전처의딸이라고 막 욕을 하십니다. 저희 할아버지가 전쟁때 돌아가셔서 우리아빠도 할아버지를 기억못하세요. 그런 우리아빠랑 싸울때 호로자식이라고 그러십니다........ 물론사람이 화가나니까 그런거라 생각하지만........전. 도무지 이해가 되지않네요. 전고3때취업을 했습니다. 제가살던곳은 전라남도입니다. 전 엄마랑 사는 내내 쪼들린단 말을 수도없이 들었습니다. 용돈도 안주셔서 제가 밤에 아르바이트해서 돈벌어쓰고. 그랬었어요. 그러다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고. 경기도 안산 공장으로 취업을 나갔어요. 친구들과도 헤어지고 집과도 헤어져야 했죠. 취업나가는날 엄마가 5만원주시더라구요.형편이 쪼들린다고. 그래서 이것밖에 없다고 가서 니가 벌어서 쓰라고 말씀하시면서요. 그때 안산까지 가는 차비가 2만원이 넘었는데 말이에요. 그때에 애들은 20만원정도씩은 가져왔던데. 솔직히 서운하더라구요. 아르바이트 하는것도 밤에 하는거여서 엄마가 아빠얼굴에 먹칠하고 다닌다고 밤늦게 쏘다니지 말라그러셔서 알바도 하다 말았었기에 돈도 없었거든요. 그래요. 그냥 내 복이이만큼이다.. 라고 생각할께요. 전 22살 3월에 택시타고 집에가다가 택시가전복되는 사고를 당해서 뇌수술을 받았습니다. 살면서 두번째죠. 하...참.. 얼핏기억나요. 중환자실에서 동생이 울었던것만요. 병실로 옮기면서 처음 제얼굴을 보았죠. 머리는 배 망같은걸로 싸져서 빡빡 깍여있고 얼굴 눈에 멍은 들어있고 괴물이 따로 없었습니다. 그래도 가족들앞에서 울수가 없었어요. 병실로 올라와서 그때부터 할머니가절 간호해주셨어요. 짜증도 많이내고 그랬는ㄷ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쇠약한노인이얼마나 힘드셨을까.. 정말 전 개같은년입니다. 2차0술까지 했어요. 2차수술일 아침에 할머니만 계셨죠. 그날 아침 제 컨디션이 너무 좋았습니다. 할머니가 수술실앞까지 오시는데 눈물을 흘리시는거에요. 전 그때까지도 이제 울일이라는걸 생각못하고있었어요. 마침 할머니전화벨소리가 들리길래 할머니 전화받어 나 갔다올께 울지말고 올라가~ 그런후 수술실 문이 닫혔네요. 할머니 우는거 보니까 눈물이 나더라구요. 겁도 나고. 수술대위에서 마취과 교수님인지 1부터 숫자를 세어보라하시는데 13까지 기억이 납니다. 어쨌든 신경외과 교수님 저에게 하신말 땡칠이 안된게 어디니 xx아~ 위로해주시려고 농담식으로 하신말씀이세요~ 그래요 멀쩡히 두손두발 다 쓰고 지금 살아있습니다. 그런후 일년반쯤지난 작년 10월에 택시보험과 합의를 했어요. 상해보험같은거 들은게 있었는데 유감스럽게도 사고나기 전달 2월에 엄마가 해약하셨더라구요 변호사선임해서 재판하고그러는데 솔직히 부모님이 절실이 필요했어요. 보호자가요. 근데 결국 저 혼자 다 하고 합의를 했습니다. 천만원가량 밖에 안됐어요. 솔직히 너무 피해입은거에 비해 적은 액수라고 생각하죠. 그 후로도 내가 어떻게 사는지 연락도 없던 엄마가 어느날 전화해서 돈부치라고 하십니다. 처음으로 제가 그랬습니다. "막내가 저같은 상황에 닥쳤더라면 엄마는 막내에게도 그러셨을까요? 돈도 많이 받지도못할그럴사고날바엔 죽는게 낫다고 그런말씀을 하셨을거같냐구요! 10년동안 한번도 못했었는데. 처음으로 큰소리 쳤네요. 그 후로 저랑 인연끊었다고 하세요. 그년말하지말라고 하시고 명절때건 언제건 전 정말 갈곳도 없네요. 지금 제가 제 자신을 이기고 얼른 일어서야 하는데 뇌수술이 뭔지 부작용이 엄청 심각합니다. 이유없이 아프고 만지면 뜨거운데 체온재면 정상이고. ..... 저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먹은 진통제만 100만원은 더 될거같네요. 두서없이 쓴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친구들에게도 안좋은애긴 잘 안해서인지말할사람이 없더라구요. 전. 친구도 없고.직업도없고 아무것도 가진것없는 월세방에서 월세 축내는 그런 사람입니다 제가 한심하네요. 참 죽고싶단 생각할때도 많았습니다. 우리할머니가 하필 제가 수술하고 난 몇개월후에 폐암 말기란 사실을 알았죠 제가 가서 간병했어요. 병실에 할머니 주무시면 전 신경외과가서 씨티찍고오고.. 참.. 우습네요. 사람들이 다들 그러더라구요. 환자가 환자간병한다구. 새엄마 미워하고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이렇게 미운걸까요.. 제가 철이 없는거에요? 제발 누구하나 붙들고 말하고싶습니다. 나 너무 힘들다구요...
전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안녕하세요
답답한 마음에 이렇게 판에 글을 올리게 되네요.
이런말을 써도 될지 모르겠는데 제가 너무 철이 없는건가 싶어서요..
아. 전 현재 서울에 살구요. 24살된 여자입니다.
지금 졸업후에 백수에요.
모든걸 다 솔직히 말할께요.
냉정한 조언부탁드릴께요 부탁드립니다
전 6살에 학교를 갔습니다.
이유야 뭐. 저도 잘 모릅니다. 엄마가 어떻게 보내셨다고 하시더군요~
제나이 6살 말경일거에요.. 2학년되기전이었으니
1학년 2학기 겨울방학 조금 전에.
전 뇌수술을 받았습니다.
아버지가 홧김에 던지신 재떨이에 맞았죠.
그때 기억이 납니다 자다가 일어났는데 아빠가 아빠친구분과 담배를 피우고 계셨어요.
근데 엄마랑 다투셨는지 안색이 안좋았어요
어렸을때부터 아빠는 저에게 다정다감한 분이시자 굉장히 엄격한 무서운 분이셨어요.
제가 아빠 성격을 닮아서 인지 성격이 굉장히 급하고 다혈질입니다.
자다가 깨서 아빠를 쳐다보는데 아빠가 뭘보냐며 그 두꺼운 사기 재떨이를 던지셨어요.
그때 기억으론 제가 뒤로 넘어진거같은데 천장이 정말 빙글빙글 돌더라구요.
그런후에 근처종합병원에서 수술이 안된다고해서
구,서울중앙병원
지금 현재 현대아산병원에서 수술을 받았고. 성공적이어서 퇴원을 일찍 했어요.
그런후에 저희엄마아빠 이혼하셨습니다.
잘은 모르겠어요 이유가 뭔지는.
전 엄마랑 헤어져서 아빠와 할머니와살았습니다.
노총각 삼촌과 사시던 할머니께서 저희집으로 오신거죠.
이부분은 생략합니다.
그후로 몇년이 지나 저도 중학생이 되었습니다.
어느날 학교에서 돌아왔는데 여자 구두가 있었습니다.
문틈으로 슬쩍 봤습니다. 그렇죠. 새엄마 되실분.이셨어요.
전 아빠의 재혼에 적극 찬성이었습니다.
그냥. 그냥. 나도 엄마가 있었으면할때가 많았거든요.
초등학교. 아 그땐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바뀐지 얼마 되지않아서 ㅎㅎ
국민학교 졸업식.
전 많이 울었습니다. 아무도 오지 않았거든요.
물론 저보다 더한 소녀가장인친구들도 있었지만.
저도 사람인지라 제 처지가 더 불쌍하고 가여운것같더라구요.
부모님이 계신 애들하고만 비교하게 되고요..
암튼 말이 자꾸 딴쪽으로 가네요.ㅎ
새엄마가 들어오셔서 뭐.. 그냥 그냥저냥 살았어요.
솔직히 눈치도 많이 보이고 그랬지만요.
그러다가 막둥이 동생이 태어났어요.
우연의 일치인지 동생은 생일이 같아요.
그후로 제 생일은 없어졌습니다 .
괜찮아요. 그런건.
전 지금도 새엄마가 싫습니다.
그건 내 친엄마가 아니기때문이 아니에요.
지금 나이 먹고 생각해보면 같은 여자로써 생각할때 이해도 됩니다.
전처의 딸년이 뭐 그리 이쁘겠어요.
하지만 엄마아빠 다투실때보다 나보고 전처의딸이라고 막 욕을 하십니다.
저희 할아버지가 전쟁때 돌아가셔서 우리아빠도 할아버지를 기억못하세요.
그런 우리아빠랑 싸울때 호로자식이라고 그러십니다........
물론사람이 화가나니까 그런거라 생각하지만........전. 도무지 이해가 되지않네요.
전고3때취업을 했습니다.
제가살던곳은 전라남도입니다.
전 엄마랑 사는 내내 쪼들린단 말을 수도없이 들었습니다.
용돈도 안주셔서 제가 밤에 아르바이트해서 돈벌어쓰고. 그랬었어요.
그러다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고.
경기도 안산 공장으로 취업을 나갔어요. 친구들과도 헤어지고 집과도 헤어져야 했죠.
취업나가는날 엄마가 5만원주시더라구요.형편이 쪼들린다고. 그래서 이것밖에 없다고
가서 니가 벌어서 쓰라고 말씀하시면서요.
그때 안산까지 가는 차비가 2만원이 넘었는데 말이에요.
그때에 애들은 20만원정도씩은 가져왔던데. 솔직히 서운하더라구요.
아르바이트 하는것도 밤에 하는거여서 엄마가 아빠얼굴에 먹칠하고 다닌다고
밤늦게 쏘다니지 말라그러셔서 알바도 하다 말았었기에 돈도 없었거든요.
그래요. 그냥 내 복이이만큼이다.. 라고 생각할께요.
전 22살 3월에 택시타고 집에가다가 택시가전복되는 사고를 당해서
뇌수술을 받았습니다.
살면서 두번째죠. 하...참..
얼핏기억나요. 중환자실에서 동생이 울었던것만요.
병실로 옮기면서 처음 제얼굴을 보았죠. 머리는 배 망같은걸로 싸져서 빡빡 깍여있고
얼굴 눈에 멍은 들어있고 괴물이 따로 없었습니다.
그래도 가족들앞에서 울수가 없었어요.
병실로 올라와서
그때부터 할머니가절 간호해주셨어요.
짜증도 많이내고 그랬는ㄷ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쇠약한노인이얼마나 힘드셨을까..
정말 전 개같은년입니다.
2차0술까지 했어요. 2차수술일 아침에 할머니만 계셨죠.
그날 아침 제 컨디션이 너무 좋았습니다. 할머니가 수술실앞까지 오시는데
눈물을 흘리시는거에요. 전 그때까지도 이제 울일이라는걸 생각못하고있었어요.
마침 할머니전화벨소리가 들리길래
할머니 전화받어 나 갔다올께 울지말고 올라가~
그런후 수술실 문이 닫혔네요.
할머니 우는거 보니까 눈물이 나더라구요. 겁도 나고.
수술대위에서 마취과 교수님인지 1부터 숫자를 세어보라하시는데
13까지 기억이 납니다.
어쨌든 신경외과 교수님 저에게 하신말
땡칠이 안된게 어디니 xx아~
위로해주시려고 농담식으로 하신말씀이세요~
그래요 멀쩡히 두손두발 다 쓰고 지금 살아있습니다.
그런후 일년반쯤지난 작년 10월에 택시보험과 합의를 했어요.
상해보험같은거 들은게 있었는데 유감스럽게도 사고나기 전달 2월에 엄마가 해약하셨더라구요
변호사선임해서 재판하고그러는데 솔직히 부모님이 절실이 필요했어요. 보호자가요.
근데 결국 저 혼자 다 하고 합의를 했습니다.
천만원가량 밖에 안됐어요. 솔직히 너무 피해입은거에 비해 적은 액수라고 생각하죠.
그 후로도 내가 어떻게 사는지 연락도 없던 엄마가
어느날 전화해서 돈부치라고 하십니다.
처음으로 제가 그랬습니다.
"막내가 저같은 상황에 닥쳤더라면 엄마는 막내에게도 그러셨을까요?
돈도 많이 받지도못할그럴사고날바엔 죽는게 낫다고 그런말씀을 하셨을거같냐구요!
10년동안 한번도 못했었는데. 처음으로 큰소리 쳤네요.
그 후로 저랑 인연끊었다고 하세요.
그년말하지말라고 하시고 명절때건 언제건 전 정말 갈곳도 없네요.
지금 제가 제 자신을 이기고 얼른 일어서야 하는데
뇌수술이 뭔지 부작용이 엄청 심각합니다.
이유없이 아프고 만지면 뜨거운데 체온재면 정상이고.
.....
저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먹은 진통제만 100만원은 더 될거같네요.
두서없이 쓴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친구들에게도 안좋은애긴 잘 안해서인지말할사람이 없더라구요.
전. 친구도 없고.직업도없고 아무것도 가진것없는 월세방에서 월세 축내는 그런 사람입니다
제가 한심하네요.
참 죽고싶단 생각할때도 많았습니다.
우리할머니가 하필 제가 수술하고 난 몇개월후에 폐암 말기란 사실을 알았죠
제가 가서 간병했어요. 병실에 할머니 주무시면 전 신경외과가서 씨티찍고오고..
참.. 우습네요.
사람들이 다들 그러더라구요.
환자가 환자간병한다구.
새엄마 미워하고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이렇게 미운걸까요..
제가 철이 없는거에요?
제발 누구하나 붙들고 말하고싶습니다.
나 너무 힘들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