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의 청계고가도로. 주변을 보면 이길 이외에는 길을 낼수도 없을정도로 작은 집들이 꽉들어차있습니다. 당시에는 정부에서 추진하던 '조국근대화'의 중심에 있는 서울이라는 수도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했던 공사였습니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청계천이 복원되고, 복원추진자가 찬양받고있지만, 사실 청계고가를 추진했던 사람들이야말로 더 찬양받았어야 할지 모릅니다.
1969년 광화문 앞: 왼쪽에 보면 이승만 대통령때 한국의 건설사가 8층짜리 건물을 지을 시공능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미국의 수주를 받은 필리핀 건설사가 와서 지은 미국대사관과 미국대사관이 우리정부에 기부형식으로 '지어준' 당시의 경제기획원. 재무부 건물 (현. 문화 관광부) 이 있습니다. 8층짜리 건물에서 1-4층은 경제기획원. 5-8층은 재무부가 나누어쓰던 (국세청. 기획예산처 등은 사세국. 예산실 이라 불리며, 독립도 하지않았던), 이 나라의 경제규모는 현재 수십개의 부와 청으로 나누어져 나라경제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광화문과 정부 제 2 종합청사: 차없고, 걸어다니던 시절에 복원한 광화문 입니다. 못먹고 못살던 시절에 박정희가 민족정기를 부활한다는 취지에 중앙청앞에다가 그 당시의 복원기술로는 최고의 기술을 자랑하던 문화재 복원국이 복원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중심에 서있는 이곳에 이례적으로 한글을 써서 '광화문'이라는 현판을 달았습니다. 한번쯤은 왜 그가 국가의 중심에 "한글"로 현판을 달았는지 생각해 볼 가치가 있습니다. 현재 문화재쳥이 이 광화문을 조선시대의 것과 더 똑같이 복원한다는 이유로 철거 작업에 들어가고 광화문 현판을 한문으로 바꾼다고 합니다. 못살던 시절에 정부가 없는 예산을 쓰는 의미를 두면서 복원보다는 '만들어낸' 이 광화문은 그대로가 의미를 가진 문화재의 가치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세월이 지나 더 발달된 복원기술이 개발되어 다시 복원을 한다고해도 조선시대의 그 광화문이 돌아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레이건: 미국정부의 특사로 69년에 한국을 방문한 레이건 특사입니다. 79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한 레이건이 80년대를 박정희와 함께 이끌었다면, 역사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것입니다.
69년 진해: 해군사관학교 졸업식에 참석할때면, 매년 머룰던 진해의 대통령 휴양지 입니다. 161cm 의, 부인보다도 작은, 저 채구에서 18년의 집권으로 조국의 근대화를 이끌어냈다는 업적은 한민족 5000년 역사에 우리가 중국보다 잘 먹고 잘 살수있었던 20년을 살게 해준것으로도, 그가 훌륭한 인생을 살았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사진으로 보는 박정희 시대의 평가
1969년의 청계고가도로. 주변을 보면 이길 이외에는 길을 낼수도 없을정도로 작은 집들이 꽉들어차있습니다. 당시에는 정부에서 추진하던 '조국근대화'의 중심에 있는 서울이라는 수도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했던 공사였습니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청계천이 복원되고, 복원추진자가 찬양받고있지만, 사실 청계고가를 추진했던 사람들이야말로 더 찬양받았어야 할지 모릅니다.
1969년 광화문 앞: 왼쪽에 보면 이승만 대통령때 한국의 건설사가 8층짜리 건물을 지을 시공능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미국의 수주를 받은 필리핀 건설사가 와서 지은 미국대사관과 미국대사관이 우리정부에 기부형식으로 '지어준' 당시의 경제기획원. 재무부 건물 (현. 문화 관광부) 이 있습니다. 8층짜리 건물에서 1-4층은 경제기획원. 5-8층은 재무부가 나누어쓰던 (국세청. 기획예산처 등은 사세국. 예산실 이라 불리며, 독립도 하지않았던), 이 나라의 경제규모는 현재 수십개의 부와 청으로 나누어져 나라경제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광화문과 정부 제 2 종합청사: 차없고, 걸어다니던 시절에 복원한 광화문 입니다. 못먹고 못살던 시절에 박정희가 민족정기를 부활한다는 취지에 중앙청앞에다가 그 당시의 복원기술로는 최고의 기술을 자랑하던 문화재 복원국이 복원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중심에 서있는 이곳에 이례적으로 한글을 써서 '광화문'이라는 현판을 달았습니다. 한번쯤은 왜 그가 국가의 중심에 "한글"로 현판을 달았는지 생각해 볼 가치가 있습니다. 현재 문화재쳥이 이 광화문을 조선시대의 것과 더 똑같이 복원한다는 이유로 철거 작업에 들어가고 광화문 현판을 한문으로 바꾼다고 합니다. 못살던 시절에 정부가 없는 예산을 쓰는 의미를 두면서 복원보다는 '만들어낸' 이 광화문은 그대로가 의미를 가진 문화재의 가치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세월이 지나 더 발달된 복원기술이 개발되어 다시 복원을 한다고해도 조선시대의 그 광화문이 돌아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레이건: 미국정부의 특사로 69년에 한국을 방문한 레이건 특사입니다. 79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한 레이건이 80년대를 박정희와 함께 이끌었다면, 역사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것입니다.
69년 진해: 해군사관학교 졸업식에 참석할때면, 매년 머룰던 진해의 대통령 휴양지 입니다. 161cm 의, 부인보다도 작은, 저 채구에서 18년의 집권으로 조국의 근대화를 이끌어냈다는 업적은 한민족 5000년 역사에 우리가 중국보다 잘 먹고 잘 살수있었던 20년을 살게 해준것으로도, 그가 훌륭한 인생을 살았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