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를 만나기 이전까지 난 연예인이라고는 텔레비전으로밖에 본 적이 없었다 아니, 꼬마를 만났어도 그 애가 스스로를 잘 나가는 연예인이라고 했을 뿐 실제로 이 녀석을 영화 등으로 본 적이 없었기에 나한테는 여느 고딩처럼 느껴졌을 뿐이었다 그 애는 (지금도 어리지만) 아주 어렷을 때부터 평범한 아이가 아니었다 외모도, 가지고 있는 재능도, 가정환경까지도 특별했다 (...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어려서는 엄마 손에 이끌려 연기 학원 다니느라 학교를 잘 안 나갔고 지금도 학교에서 예외로 인정해 주기 때문에 학교를 거의 나가지를 않았다 차라리 고딩 졸업 후 연예인이 되었더라면 중고등학교 친구라도 있으련만 그 애는 어려서부터 친구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연기 학원에서 만난 또래들도 그 애를 경쟁상대로만 생각을 하였다 언제나 그 아이와 함께 하는 사람들은 소속사 직원인 매니저, 보디가드 등이었는데 노예계약서나 다름없는 10년 장기 계약을 맺고 그녀를 돌봐주는 소속사 직원들은 평소엔 친절하게 언니 오빠처럼 대해 주는 등 한 가족같은 착각이 들게 만들었으나 정작 그녀가 힘들고 지쳐 있을 때는 소속사를 대변해 주는 그저 사업 파트너일 뿐이었다 그런 그 애가 자신을 사심없이 대하는 나란 인간을 처음 만난 거였다 자기 인생에서 자기를 연예인이 아닌 한 인간으로 대하여 준 최초의 사람이었던 거다 자기가 못되게 굴어도 앞에서는 받아주는 척 하며 뒤에서 씹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자기 행동에 있는 그대로 반응하면서 가식 없이 받아주는 그런 사람을 처음 만난 거였다 「난 가끔 그런 꿈을 꿨어여 내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 나가는 스타가 되었는데 우리나라 사람 중에 날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딱 한 명, 날 모르는 남자가 딱 한 명이 있는 거에여 그 남자는 산에 들어가서 사법시험 같은 걸 공부하느라고 내가 연예인인 줄을 전혀 모르는 거죠 그런 남자를 내가 우연히 만나게 되었는데 그 남자는 내가 연예인인 줄 모르니까 평범한 여자로 대하는 거고 나 역시 그 남자에게 내 신분을 속이고 자연스럽게 대하는 거에여 그렇게 우리는 서로 사랑의 감정을 키워 갔는데 그러다가 그 남자는 내가 유명한 연예인인 줄 결국 알게 되고는 그 사실을 속인 나를 떠나가 버리는 거죠 아무리 내가 유명하고 인기 많은 여배우라고 해도 그 남자는 그런 것들은 자신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는데 자기를 끝까지 속인 나에게 배신감이 들어서 날 떠나간 거죠 나는 현재의 인기 때문에 참 많이 망설이지만 결국 그 사랑을 잊지 못하고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버리고 그를 찾아 나서게 되고 결국 그와 작은 시골에 가서 행복하게 사는 것... 그것이 나의 꿈이에여 어때여? 참 로맨틱하지 않아여?」 녀석은 눈빛을 반짝 거리면서 꿈을 꾸듯 내게 물어왔다 「음... 정말 그런 꿈을 꾸었냐?」 「네. 그런 꿈을 꾸었냐가 아니라 난 매일 그런 꿈을 꿔여」 「음......」 「아저씨」 「왜?」 「정말 그런 사람이 내 눈앞에 나타날까여?」 녀석은 간절한 소망을 담은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난 진지한 태도로 그 아이의 말을 객관적으로 풀어 보았다 「그러니까 너가 인기스타인데 널 모르는 남자이어야 하고 그 남자는 산에서 내려와야 하고 그 남자는 미혼이어야 하고...」 가만히 내 말을 듣던 녀석이 나를 요리조리 쳐다본다 「설마... 그 남자는 아저씨라고 말하려는 건 아니겠죠?」 「아니... 뭐... 그냥 객관적 사실을 나열하다 보니까...」 「아저씨랑 비슷하다고 말 하려고 하는 거죠?」 「아니... 뭐... 그냥 나도 산에서 내려왔고 미혼이고 널 모르고...」 「아저씨는 아니에요!」 녀석이 갑자기 단호한 목소리로 딱 잘라 말한다 「아저씨는 내 왕자님이 절대 될 수 없어여!」 「참 나... 누가 너의 왕자님이 되고 싶대냐. 그냥 객관적 사실을...」 「전혀 객관적 사실이 아니네여. 아저씨는 절대 아니니까여」 「그래! 누가 뭐라 그러냐! 나 아니라구! 근데 너 듣다 보니까 기분 나쁘다! 왜 나는 아닌 건데!」 「아저씨 사법고시 공부해여?」 「아니」 「아저씨 가난한 소설가잖아여 거기다 아저씨 잘 생겼어여?」 「...... 아니 ......」 「그럼 아저씨네 갑부에여?」 「...... 뭐 ...... 가난하지...」 「그리고 저번에 수첩 보니까 주민등록번호 써 있더만 아저씨 나이도 진짜 많더라구여?」 「......」 「잘 생긴 것도 아니고 돈도 없고 직업도 별루고 나이만 먹었고... 이야~~ 정말 양심에 털이 나도 그렇게 말할 순 없는 거에여」 아유 정말 저놈의 기지배 말 하는 뽄대 하고는! 순수한 소녀처럼 운명적인 사랑 어쩌구 저쩌구 늘어 놓고는! 결국 원하는 건 잘 난 남자라는 거 아니냐! 야이 기지배야 그게 어디 현실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이냐! 생각 같아서는 뒤도 안 돌아보고 획 가 버리고 싶었지마는 저런 싸가지를 내가 아니면 누가 받아줄까 싶고 또 오늘 들어가면 4개월은 꼼짝없이 촬영해야 한다니까... 진짜 할 수 없이 녀석을 데리고 에버랜드에 가긴 갔다 근데 이 녀석... 「아저씨! 후룸라이드에욧!」 「그래 후룸라이드」 「저거 꼭 한 번 타 보고 싶었거든욧!」 「한 번도 안 타 봤냐?」 「아마 안 타 봤을 거에욧!!」 한 번도 후룸라이드 안 타봤다고 하는 녀석이 후룸라이드를 타려고 자리를 잡았는데 날 앞에 앉히고 자기가 뒤에 앉는 게 아닌가! 「자리 바꾸자」 「왜여?」 「한 번도 안 타 봤으면 앞에 앉아서 잘 봐야지」 「아니에여 그냥 뒤에 앉아서 봐도 잘 보여여」 그렇다 이 녀석은 후룸라이드가 나중에 높은 곳에서 떨어질 때 물이 졸라 많이 튀겨서 앞 사람은 홀딱 젖는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 거다 그래서 날 앞에 태우고 지가 뒤에 타는 지능플레이를 한 것이다 정말 생각하는 것 하나하나가 이렇게 여우같을 수가 있는 건지! 이러니까 니가 친구가 없는거다 짜식아!! 너무 괘씸했다 내가 그냥 당할 수는 없었다 녀석이 뒤에서 환호성을 지르면서 마냥 신나할 때 나는 계획을 세웠다 드디어 치칵치칵소리가 들리면서 후룸라이드가 마지막 클라이막스를 향해 올라가고 급기야 떨어지는 순간 「에잇!!」 난 잽싸게 몸을 던져서 후룸 라이드 앞유리에 몸을 숙였다 「촤아아악!!」 물이 엄청 튀기면서 그 물이 고스란히 녀석의 몸에 강타를 하는 게 아닌가!! 오 예~~~!!! 「괘, 괜찮냐... 」 「이거나 좀 들고 있어여」 녀석은 마치 해변가에 풍덩 한 것처럼 홀딱 젖었다 변장하였던 안경과 모자를 내게 맡기고는 빨래를 짜듯 옷을 비틀어서 짜고 있었다 「물... 진짜 많이 튀기네... 」 환호성을 지른 게 너무 미안해서 한 마디 하자 녀석이 휙 쳐다본다 「오~~ 물이 이렇게 튀지는지 몰랐나보져?」 「어...? 아... 뭐...」 「평소엔 굼 뜨더니만 결정적일 때 행동이 참 빠르시던데?」 「아... 그게... 」 무서웠다 이 녀석이 그 장기인 잔머리를 굴려서 날 골탕 먹일 생각을 한다면 난 정말 쥐도새도 모르게 당할 수 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녀석이 화를 내기 전에 사과를 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오늘 놀이동산에서 안전하게 귀가할 수 있다 그런데 녀석이 내가 말을 꺼내기 전에 먼저 말을 꺼내는 게 아닌가... 「아저씨」 「알았어! 내가 잘 못 했어!」 「아니 그게 아니라...」 「아니야! 아닌게 아니라 내가 잘 못 했다고!」 「그게 아니라... 들킨 거 같아여...」 녀석이 갑자기 고개를 숙이면서 내게 속삭였다 「주위 돌아보지 말고 그냥 빨리 걸어여」 「왜?」 「눈치 챈 거 같다구여」 녀석은 날 잡고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주위를 슬쩍 본 나는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 쪽으로 모아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녀석이 모자와 안경을 벗자 주위에서 연예인인 줄 알아보는 것 같았다 우리는 빠른 걸음으로 현장을 피했다 그러나 일부의 사람들이 수군거리면서 따라 오는 듯 해서 우리는 급히 맞은편 우주관람차 (큰 풍차처럼 20분 정도 도는 거)로 뛰어 들어갔다 「아이구 큰일날 뻔 했다」 녀석이 살았다는 듯 숨을 몰아쉰다 녀석을 바라보며 만감이 교차한다 내가 이 녀석한테 얼마나 쫄았으면 무조건 잘 못 했다고 빌었을까 라는 생각과 녀석이 잠깐 모자와 안경을 벗었을 뿐인데 사람들이 알아본다는 게 신기했다 정말 이 녀석은 남들이 좋아한다는 그런 연예인이 맞는 것인가...? 「너 진짜 연예인인가 보다?」 「그럼 가짜 연예인도 있어여?」 「음... 」 「우리 정말 큰일날 뻔 했어여」 「뭐가 큰일이야? 오히려 팬들이 알아보면 좋은 거 아닌가? 날 좋아하는 팬들에게 기분 좋게 싸인 해 주면 되는 거잖아」 「싸인이여? 싸인은커녕 어쩌면 밟혀서 죽었을지도 몰라여」 「밝혀 죽어? 왜?」 「왜긴여. 지금 매니저나 보디가드 오빠들도 없는데 그냥 마구 밀고 들어오면 정상적으로 사인이 되겠어여? 싸인은커녕 그냥 밟혀 죽는 거에여」 「음... 그럴수도 있겠다 그래도 널 좋아하는 팬들인데 기쁘지 않아?」 녀석이 갑자기 한숨을 내쉬면서 밖을 내다 보았다 풍차는 천천히 돌면서 에버랜드가 한 눈에 잡혀 보였다 녀석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하자 내 마음도 괜히 우울해졌다 정말... 그녀는 남에게 자신의 기분을 전이시키는 데 재능을 가진 듯 했다... 녀석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연예인 되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여... 그냥 엄마 손에 끌려 다니면서 시키는대로 하고... 근데, 난 연예인이 되어 있었고 팬들도 생기게 되었어여 처음으로 연예인이 되어서 좋았을 때가 팬들에게 사랑받는 걸 느꼈을 때에여 열심히 해서 팬들의 사랑에 보답할 생각을 했었어여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어여... 어느 날 팬들에게 싸인을 해 주고 있었는데 저 뒤쪽에서 날 욕 하는 소리가 들려 왔어여... 귀여운 척만 한다... 남자애들한테 인기 끌려고 졸라 가식적으로 행동한다... 나 정말 너무 큰 충격을 받았었어여... 한 동안 밥도 못 먹고 울기만 했어여... 나 귀여운 척 하지도 않고 가식적으로 행동하지도 않았는데... 내가 왜 그들에게 그런 미움을 받아야 하는지... 그리고 어느 날엔 보디가드 오빠들이 없었는데 갑자기 팬들이 몰려 들은 적이 있었어여 근데 사람들이 내게 마구 몰려 들어와서는 내 몸을 막 만지고 옷을 찢고 머리카락을 뜯고 사람이 마구 몰려 들면서 나를 밀치고 난 쓰러져서 밟히게 되고... 나 그 때 얼마나 무서웠었는지... 정말 아저씨는 상상도 못할 거에여... 너무 무서워서 도와 달라고 외치고 싶었는데... 아무도 도와 주는 사람이 없었어여... 난 무서워서 죽을 것만 같았는데... 팬들은 아랑곳없이 싸인이 우선이고 내 소지품이 우선이고... 날 좋아한다면서... 내가 어떤 기분인지도 전혀 상관 안 하고... 날 쉽게 오해하고... 날 쉽게 욕 하고... 녀석은 여기까지 말한 뒤에 고개를 숙였다... 난 더 이상 말 하지 못하고 녀석의 어깨만 가만히 감싸 안고만 있었다... 에버랜드에서는 꼬마가 노출되었기에 더 이상 있을 수 없어서 우린 그 옆에 있는 캐리비안베이로 도망을 왔다 그 당시 방학이고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사람들이 바글거렸다 「나 어때여?」 녀석은 수영복을 입고 내 앞에서 섹시한 포즈를 취하였다 지딴에는 또 변장한다고 수영모자 깊게 눌러쓰고 색물안경을 썼는데 그런 몰골로 섹시한 포즈를 취하는 거 자체가 엽기코믹이었다 「너가 하면 섹시가 아니라 엽기라니까 그리고 가슴에 왠 뽕을 그리 많이 넣었냐. 아주 뽕이 튀어...」 녀석이 주위를 돌아보며 잽싸게 내 입을 막는다 그리고는 크게 웃는다 「하하하! 아저씨 왜 그래여 이거 진짜에여 하하하!」 「읍... 숨막혀 임마... 내가 다 봤는데 뭘 진짜 읍...」 「하하하! 하하하하!」 녀석의 변장이 효과가 있었던 건지 캐리비안에서는 녀석을 알아보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근데 솔직히 말해서 수영모하고 물안경으로 얼굴의 반을 가리고 몸매도 연예인답지 않게 평범 그 자체인데 다른 사람들이 알아볼 턱이 없잖은가 여하튼, 녀석은 정말 무슨 물 만난 고기마냥 아주 환장을 하고는 방방 뛰다녔다 놀이기구라는 놀이기구는 다 타고 다녔고 먹을거라는 먹을거는 다 먹고 다녔고 (어찌나 많이도 쳐 잡수시던지...) 먹자마자 다시 파도풀로 몸을 던지는 진짜 체력 하나는 끝내주는 애였다 「아저씨!! 깊은 곳으로 전진!! 전진!!」 파도풀에 들어간 녀석은 겁도 없이 가장 깊은 곳으로 마구 들어갔는데 문제는 지 혼자 용감하면 될 것을 내 모가지를 꽉 잡고 한 번도 놔 주지를 않고 무조건 전진을 외치면서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거였다 「켁켁!! 제발... 훅... 꿀꺽꿀꺽... 훅... 제발!! 나 좀!!」 녀석 때문에 난 물을 바가지로 먹었는데도 녀석은 곧 죽어도 내 목은 놔 주지도 않고 「깊은 곳으로 전진!! 전진!!」 차라리 애인하고 왔더라면 즐겁기라도 했을텐데 무슨 공주 수종 드는 것도 아니고 이게 뭐란 말인가... 생과 사를 앞에 두고 별의별 생각이 다 들던 그 때... 「아저씨... 」 녀석이 갑자기 꽉 잡은 내 목을 놓으면서 서서히 물 속으로 가라 앉는 것이 아닌가... 「왜 그래 꼬마야!!」 난 녀석을 얼른 잡고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게 했다 「아저씨... 발에 쥐 났나 봐여...」 녀석은 입술도 파랗게 질린 채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 괜찮아. 쥐 난 거는 금방 풀리니까」 난 온 몸에 힘이 풀린 녀석을 품에 안고 서서히 바깥으로 헤엄쳤다 녀석은 나를 만난 이후로 최고로 고분고분한 모습으로 손으로는 내 목을 끌어 안고는 내 가슴 속에서 숨만 조용히 쉬고 있었다 「아저씨...」 「어」 「나 많이 무겁죠?」 「아니」 「헤~~ 역시 다이어트가 효과가 있었나?」 「요즘 다이어트는 한 끼에 비빔밥 돈까스 쫄면 먹으면서도 하나 보지? 물 속이라서 안 무거운 거야 임마」 「그런건가?」 「그런건가?... 가 아니잖아 임마!! 이것 봐 엉덩짝이 이리 탱탱해서야...」 「아저씨!!」 녀석은 내게 알밤을 주고는 두 손으로 다시 내 목을 꼭 끌어 안았다 그렇게 꼭 끌어 안지 않아도 되는데... 절대 놓지 않겠다는 듯 꼭 끌어 안았다... 녀석을 해변가에 앉혔다 그리고 쥐 난 다리를 열심히 마사지했다 내가 다리를 맛사지하는 동안 녀석은 날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아저씨...」 「응?」 「오늘 즐거웠어여...」 「나도」 녀석이 고맙다고 하니까 가슴이 찌릿해 온다... 이젠... 정말 헤어져야 할 시간이 왔다는 뜻인가... 「아저씨」 「응?」 「나도... 아저씨 같은 아빠가 있었으면... 좋겠다... 」 「그래... 뭐?!! 아빠!!??」 「그래여 아빠」 「이놈자식아! 아빠가 아니라 오빠가 있었으면 좋겠다 라고 해야지!」 「싫어여. 난 오빠보다도 아빠가 더 좋단 말이에여」 「너하고 나하고 몇 살이나 차이 난다고 아빠냐 아빠는!」 「그래도 아빠가 더 좋단 말이에여」 녀석은 참으로 편한 눈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어제오늘 본 녀석의 얼굴 중에서 가장 편한 얼굴이었다 그래... 어차피 너하고 난 오늘 헤어지면 끝인데 오빠면 어떻게 아빠면 어떠냐 난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녀석의 발만 열심히 주물렀다 그 때였다 「어!」 녀석이 갑자기 깜짝 놀란 듯 어딘가를 쳐다본다 녀석이 쳐다보는 쪽을 보자 수영장 입구 쪽에 검은 정장을 입은 여자 한 명이 보였다 「드디어 찾았네...」 녀석이 아는 여자인 듯 했다 「누구?」 「매니저 언니에여」 「아」 「에버랜드에서 나 봤다고 제보를 받았나 보네...」 녀석은 날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잠깐만 기다려여. 말만 하고 올 테니까」 녀석은 매니저 쪽으로 절뚝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그래... 드디어 녀석과 헤어지는 시간이 다가 온 거구나... 결국 녀석은 자기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구나... 약간의 시원섭섭한 마음을 느끼면서 온 몸에 힘이 빠지는 느낌으로 인공해변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 때였다 「정말 맞나 보다!」 「그치? 저기 검은 옷 매니저일 거 아냐!」 「빨리 싸인 받으러 가자!!」 갑자기 주변이 웅성거리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점점 몰려 드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드디어 사람들이 꼬마의 정체를 눈치챈 듯 싶었다 수영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전부 몰려 들기라도 하는 것처럼 순식간에 엄청난 인원이 녀석의 주위로 몰려 들었다 정말 녀석이 스타긴 스타였나 보다 저렇게 사람들이 좋아하고 들뜬 표정들을 지을 줄이야... 난 녀석의 인기를 새삼 실감하면서 녀석에게 다가갈 엄두가 나지 않아서 사람들을 피해 한적한 곳으로 자리를 이동하였다 그런데... 「아저씨...」 환청이었을까... 그 애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아저씨... 나 무서워여... 무서워여...」 녀석의 우는 목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난 꼬마 쪽을 쳐다보았다 꼬마가 내 눈에 보이지 않았다! 순식간에 꼬마쪽엔 사람들이 겹겹이 쌓여 있었고 사람들은 계속해서 몰려 들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매니저가 있는 쪽을 쳐다보았다 매니저는 당황하면서 누군가에게 급하게 전화를 하고 있었다 매니저 역시 사람들을 뚫고 그녀 쪽에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꼬마녀석... 저 녀석은 지금 필시... 사람들에게 둘러 쌓여서... 공포를 느끼고 있을 것인데... 무서워 하고 있을 것인데... 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난 사람들의 벽을 뚫고 꼬마에게 가려고 시도했다 「잠깐 비켜 주세요!! 잠깐만 비켜 주세요!!」 그러나 소용없었다 사람들의 벽은 단단하게 꼬마를 중심으로 둘러쌓고 있었다 이러다가는 꼬마가 밟혀 죽을지도 몰랐다 자기 통제를 잃은 팬들 속에서 어떤 일을 겪을지 몰랐다 「비키란 말이야!!!!!! 비켜!!!!!!」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을까... 난 사람들의 몸을 닥치는대로 부딪치면서 마구 앞으로 돌진했다 그들은 내게 더 이상 벽이 아니었다 내 몸이 부서지던지 그들이 부서지던지 난 그들을 있는 힘대로 다 뚫어야만 했다 한참을 부딪쳐서 어디까지 나갔을까... 「아저씨!!!」 저 쪽 앞에서 꼬마가 날 쳐다 보고 있었다 꼬마는... 뒤에서부터 밀고 들어오는 사람들 속에서 가운데에 꽉 껴서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서 있어야 했다 그런데도... 그런데도 날 향해 손을 내밀고 있었다 울음이 가득한 눈으로... 날 향해 손을... 「제발...... 비키란 말이야!!!!!!!!!!!」 난 내가 이제껏 내지 못했던 힘을 다하여... 그들을 밀치고 닥치는 대로 두들기면서 온 힘을 내어 꼬마가 내민 손을 잡았다 그리고는 꼬마를 끌어안고 내 몸을 방패로 사람들을 마구 뚫었다 「꼭 잡아라 꼬마야」 꼬마는 내 허리를 강하게 끌어 안았다 내 눈에는 다른 사람들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나를 꼭 잡고 있는 꼬마와 꼬마의 어깨를 안고 있는 나만이 있을 뿐이었다 「간다앗!!!!!!!!!!!!!」 난 내 머리를 이용해서 사람들을 마구 두들겼다 그들의 머리와 내 머리가 부딪치고 그들의 주먹과 손톱이 내 얼굴을 할퀴어도 앞으로만 나아갈 수 있다면 무조건 부딪쳐 나갔다 사람들이 나의 행동에 겁을 먹은 듯 조금씩 물러났다 그 순간을 이용해서 그 아이를 안고 마구 뛰었다 그들이 주춤거리는 것도 잠시 그들 역시 내 뒤를 따라서 마구 달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날 듯이 매니저가 있는 곳에 다다랐다 「어서 데리고 가세요!!!」 난 매니저에게 꼬마를 넘겨 주었다 「아저씨!!!」 꼬마가 당황하며 날 쳐다본다 「그래! 빨리 가!」 「아저씨!」 녀석이 채 뭐라고 말 할 새도 없이 매니저는 꼬마를 데리고 급하게 밖으로 빠져 나갔다 「아저씨!! 놔!! 아저씨!!」 녀석은 매니저를 할퀴면서 벗어나려고 하였으나 매니저는 막무가내로 그녀를 끌고 밖으로 빠르게 나갔다 난 지칠대로 지쳐서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꼬마가 사라진 쪽을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그래... 어차피 헤어질 것을... 작별인사 한 마디 더 하고 못 하고가 무슨 문제가 되겠니... 잘 가라 꼬마야... 행복하게 지내야 해... 행복하게... <다음편에 계속...> 이 글이 게시판 성격과 안 맞는지 추천이나 코멘트가 별로 없군요 소수의 사람들만 보신다면 더 이상 글 올리지 않겠습니다 혹 앞으로 계속 읽을 의향이 있으시면 아래 커뮤니티에 오셔서 읽으십시오 http://cafe.daum.net/leewonyoung
고딩 연예인과 사귄다면... <5> 아저씨!!
꼬마를 만나기 이전까지 난 연예인이라고는 텔레비전으로밖에 본 적이 없었다
아니, 꼬마를 만났어도 그 애가 스스로를 잘 나가는 연예인이라고 했을 뿐
실제로 이 녀석을 영화 등으로 본 적이 없었기에 나한테는 여느 고딩처럼
느껴졌을 뿐이었다
그 애는 (지금도 어리지만) 아주 어렷을 때부터 평범한 아이가 아니었다
외모도, 가지고 있는 재능도, 가정환경까지도 특별했다 (...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어려서는 엄마 손에 이끌려 연기 학원 다니느라 학교를 잘 안 나갔고
지금도 학교에서 예외로 인정해 주기 때문에 학교를 거의 나가지를 않았다
차라리 고딩 졸업 후 연예인이 되었더라면 중고등학교 친구라도 있으련만
그 애는 어려서부터 친구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연기 학원에서 만난 또래들도 그 애를 경쟁상대로만 생각을 하였다
언제나 그 아이와 함께 하는 사람들은 소속사 직원인 매니저, 보디가드 등이었는데
노예계약서나 다름없는 10년 장기 계약을 맺고 그녀를 돌봐주는 소속사 직원들은
평소엔 친절하게 언니 오빠처럼 대해 주는 등 한 가족같은 착각이 들게 만들었으나
정작 그녀가 힘들고 지쳐 있을 때는 소속사를 대변해 주는 그저 사업 파트너일 뿐이었다
그런 그 애가 자신을 사심없이 대하는 나란 인간을 처음 만난 거였다
자기 인생에서 자기를 연예인이 아닌 한 인간으로 대하여 준 최초의 사람이었던 거다
자기가 못되게 굴어도 앞에서는 받아주는 척 하며 뒤에서 씹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자기 행동에 있는 그대로 반응하면서 가식 없이 받아주는 그런 사람을 처음 만난 거였다
「난 가끔 그런 꿈을 꿨어여
내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 나가는 스타가 되었는데
우리나라 사람 중에 날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딱 한 명, 날 모르는 남자가 딱 한 명이 있는 거에여
그 남자는 산에 들어가서 사법시험 같은 걸 공부하느라고
내가 연예인인 줄을 전혀 모르는 거죠
그런 남자를 내가 우연히 만나게 되었는데
그 남자는 내가 연예인인 줄 모르니까 평범한 여자로 대하는 거고
나 역시 그 남자에게 내 신분을 속이고 자연스럽게 대하는 거에여
그렇게 우리는 서로 사랑의 감정을 키워 갔는데
그러다가 그 남자는 내가 유명한 연예인인 줄 결국 알게 되고는
그 사실을 속인 나를 떠나가 버리는 거죠
아무리 내가 유명하고 인기 많은 여배우라고 해도
그 남자는 그런 것들은 자신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는데
자기를 끝까지 속인 나에게 배신감이 들어서 날 떠나간 거죠
나는 현재의 인기 때문에 참 많이 망설이지만
결국 그 사랑을 잊지 못하고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버리고
그를 찾아 나서게 되고 결국 그와 작은 시골에 가서 행복하게 사는 것...
그것이 나의 꿈이에여
어때여? 참 로맨틱하지 않아여?」
녀석은 눈빛을 반짝 거리면서 꿈을 꾸듯 내게 물어왔다
「음... 정말 그런 꿈을 꾸었냐?」
「네. 그런 꿈을 꾸었냐가 아니라 난 매일 그런 꿈을 꿔여」
「음......」
「아저씨」
「왜?」
「정말 그런 사람이 내 눈앞에 나타날까여?」
녀석은 간절한 소망을 담은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난 진지한 태도로 그 아이의 말을 객관적으로 풀어 보았다
「그러니까 너가 인기스타인데 널 모르는 남자이어야 하고
그 남자는 산에서 내려와야 하고
그 남자는 미혼이어야 하고...」
가만히 내 말을 듣던 녀석이 나를 요리조리 쳐다본다
「설마... 그 남자는 아저씨라고 말하려는 건 아니겠죠?」
「아니... 뭐... 그냥 객관적 사실을 나열하다 보니까...」
「아저씨랑 비슷하다고 말 하려고 하는 거죠?」
「아니... 뭐... 그냥 나도 산에서 내려왔고 미혼이고 널 모르고...」
「아저씨는 아니에요!」
녀석이 갑자기 단호한 목소리로 딱 잘라 말한다
「아저씨는 내 왕자님이 절대 될 수 없어여!」
「참 나... 누가 너의 왕자님이 되고 싶대냐. 그냥 객관적 사실을...」
「전혀 객관적 사실이 아니네여. 아저씨는 절대 아니니까여」
「그래! 누가 뭐라 그러냐! 나 아니라구!
근데 너 듣다 보니까 기분 나쁘다!
왜 나는 아닌 건데!」
「아저씨 사법고시 공부해여?」
「아니」
「아저씨 가난한 소설가잖아여
거기다 아저씨 잘 생겼어여?」
「...... 아니 ......」
「그럼 아저씨네 갑부에여?」
「...... 뭐 ...... 가난하지...」
「그리고 저번에 수첩 보니까 주민등록번호 써 있더만
아저씨 나이도 진짜 많더라구여?」
「......」
「잘 생긴 것도 아니고 돈도 없고 직업도 별루고 나이만 먹었고...
이야~~ 정말 양심에 털이 나도 그렇게 말할 순 없는 거에여」
아유 정말 저놈의 기지배 말 하는 뽄대 하고는!
순수한 소녀처럼 운명적인 사랑 어쩌구 저쩌구 늘어 놓고는!
결국 원하는 건 잘 난 남자라는 거 아니냐!
야이 기지배야 그게 어디 현실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이냐!
생각 같아서는 뒤도 안 돌아보고 획 가 버리고 싶었지마는
저런 싸가지를 내가 아니면 누가 받아줄까 싶고
또 오늘 들어가면 4개월은 꼼짝없이 촬영해야 한다니까...
진짜 할 수 없이 녀석을 데리고 에버랜드에 가긴 갔다
근데 이 녀석...
「아저씨! 후룸라이드에욧!」
「그래 후룸라이드」
「저거 꼭 한 번 타 보고 싶었거든욧!」
「한 번도 안 타 봤냐?」
「아마 안 타 봤을 거에욧!!」
한 번도 후룸라이드 안 타봤다고 하는 녀석이
후룸라이드를 타려고 자리를 잡았는데
날 앞에 앉히고 자기가 뒤에 앉는 게 아닌가!
「자리 바꾸자」
「왜여?」
「한 번도 안 타 봤으면 앞에 앉아서 잘 봐야지」
「아니에여 그냥 뒤에 앉아서 봐도 잘 보여여」
그렇다
이 녀석은 후룸라이드가 나중에 높은 곳에서 떨어질 때
물이 졸라 많이 튀겨서 앞 사람은 홀딱 젖는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 거다
그래서 날 앞에 태우고 지가 뒤에 타는 지능플레이를 한 것이다
정말 생각하는 것 하나하나가 이렇게 여우같을 수가 있는 건지!
이러니까 니가 친구가 없는거다 짜식아!!
너무 괘씸했다
내가 그냥 당할 수는 없었다
녀석이 뒤에서 환호성을 지르면서 마냥 신나할 때
나는 계획을 세웠다
드디어 치칵치칵소리가 들리면서
후룸라이드가 마지막 클라이막스를 향해 올라가고
급기야 떨어지는 순간
「에잇!!」
난 잽싸게 몸을 던져서 후룸 라이드 앞유리에 몸을 숙였다
「촤아아악!!」
물이 엄청 튀기면서
그 물이 고스란히 녀석의 몸에 강타를 하는 게 아닌가!!
오 예~~~!!!
「괘, 괜찮냐... 」
「이거나 좀 들고 있어여」
녀석은 마치 해변가에 풍덩 한 것처럼 홀딱 젖었다
변장하였던 안경과 모자를 내게 맡기고는
빨래를 짜듯 옷을 비틀어서 짜고 있었다
「물... 진짜 많이 튀기네... 」
환호성을 지른 게 너무 미안해서 한 마디 하자 녀석이 휙 쳐다본다
「오~~ 물이 이렇게 튀지는지 몰랐나보져?」
「어...? 아... 뭐...」
「평소엔 굼 뜨더니만 결정적일 때 행동이 참 빠르시던데?」
「아... 그게... 」
무서웠다
이 녀석이 그 장기인 잔머리를 굴려서 날 골탕 먹일 생각을 한다면
난 정말 쥐도새도 모르게 당할 수 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녀석이 화를 내기 전에 사과를 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오늘 놀이동산에서 안전하게 귀가할 수 있다
그런데 녀석이 내가 말을 꺼내기 전에 먼저 말을 꺼내는 게 아닌가...
「아저씨」
「알았어! 내가 잘 못 했어!」
「아니 그게 아니라...」
「아니야! 아닌게 아니라 내가 잘 못 했다고!」
「그게 아니라... 들킨 거 같아여...」
녀석이 갑자기 고개를 숙이면서 내게 속삭였다
「주위 돌아보지 말고 그냥 빨리 걸어여」
「왜?」
「눈치 챈 거 같다구여」
녀석은 날 잡고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주위를 슬쩍 본 나는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 쪽으로 모아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녀석이 모자와 안경을 벗자 주위에서 연예인인 줄 알아보는 것 같았다
우리는 빠른 걸음으로 현장을 피했다
그러나 일부의 사람들이 수군거리면서 따라 오는 듯 해서
우리는 급히 맞은편 우주관람차 (큰 풍차처럼 20분 정도 도는 거)로 뛰어 들어갔다
「아이구 큰일날 뻔 했다」
녀석이 살았다는 듯 숨을 몰아쉰다
녀석을 바라보며 만감이 교차한다
내가 이 녀석한테 얼마나 쫄았으면 무조건 잘 못 했다고 빌었을까 라는 생각과
녀석이 잠깐 모자와 안경을 벗었을 뿐인데 사람들이 알아본다는 게 신기했다
정말 이 녀석은 남들이 좋아한다는 그런 연예인이 맞는 것인가...?
「너 진짜 연예인인가 보다?」
「그럼 가짜 연예인도 있어여?」
「음... 」
「우리 정말 큰일날 뻔 했어여」
「뭐가 큰일이야? 오히려 팬들이 알아보면 좋은 거 아닌가?
날 좋아하는 팬들에게 기분 좋게 싸인 해 주면 되는 거잖아」
「싸인이여? 싸인은커녕 어쩌면 밟혀서 죽었을지도 몰라여」
「밝혀 죽어? 왜?」
「왜긴여. 지금 매니저나 보디가드 오빠들도 없는데
그냥 마구 밀고 들어오면 정상적으로 사인이 되겠어여?
싸인은커녕 그냥 밟혀 죽는 거에여」
「음... 그럴수도 있겠다
그래도 널 좋아하는 팬들인데 기쁘지 않아?」
녀석이 갑자기 한숨을 내쉬면서 밖을 내다 보았다
풍차는 천천히 돌면서 에버랜드가 한 눈에 잡혀 보였다
녀석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하자 내 마음도 괜히 우울해졌다
정말... 그녀는 남에게 자신의 기분을 전이시키는 데 재능을 가진 듯 했다...
녀석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연예인 되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여...
그냥 엄마 손에 끌려 다니면서 시키는대로 하고...
근데, 난 연예인이 되어 있었고 팬들도 생기게 되었어여
처음으로 연예인이 되어서 좋았을 때가 팬들에게 사랑받는 걸 느꼈을 때에여
열심히 해서 팬들의 사랑에 보답할 생각을 했었어여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어여...
어느 날 팬들에게 싸인을 해 주고 있었는데
저 뒤쪽에서 날 욕 하는 소리가 들려 왔어여...
귀여운 척만 한다...
남자애들한테 인기 끌려고 졸라 가식적으로 행동한다...
나 정말 너무 큰 충격을 받았었어여...
한 동안 밥도 못 먹고 울기만 했어여...
나 귀여운 척 하지도 않고 가식적으로 행동하지도 않았는데...
내가 왜 그들에게 그런 미움을 받아야 하는지...
그리고 어느 날엔 보디가드 오빠들이 없었는데
갑자기 팬들이 몰려 들은 적이 있었어여
근데 사람들이 내게 마구 몰려 들어와서는
내 몸을 막 만지고 옷을 찢고 머리카락을 뜯고
사람이 마구 몰려 들면서 나를 밀치고 난 쓰러져서 밟히게 되고...
나 그 때 얼마나 무서웠었는지...
정말 아저씨는 상상도 못할 거에여...
너무 무서워서 도와 달라고 외치고 싶었는데...
아무도 도와 주는 사람이 없었어여...
난 무서워서 죽을 것만 같았는데...
팬들은 아랑곳없이 싸인이 우선이고 내 소지품이 우선이고...
날 좋아한다면서...
내가 어떤 기분인지도 전혀 상관 안 하고...
날 쉽게 오해하고... 날 쉽게 욕 하고...
녀석은 여기까지 말한 뒤에 고개를 숙였다...
난 더 이상 말 하지 못하고 녀석의 어깨만 가만히 감싸 안고만 있었다...
에버랜드에서는 꼬마가 노출되었기에 더 이상 있을 수 없어서
우린 그 옆에 있는 캐리비안베이로 도망을 왔다
그 당시 방학이고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사람들이 바글거렸다
「나 어때여?」
녀석은 수영복을 입고 내 앞에서 섹시한 포즈를 취하였다
지딴에는 또 변장한다고 수영모자 깊게 눌러쓰고 색물안경을 썼는데
그런 몰골로 섹시한 포즈를 취하는 거 자체가 엽기코믹이었다
「너가 하면 섹시가 아니라 엽기라니까
그리고 가슴에 왠 뽕을 그리 많이 넣었냐. 아주 뽕이 튀어...」
녀석이 주위를 돌아보며 잽싸게 내 입을 막는다
그리고는 크게 웃는다
「하하하! 아저씨 왜 그래여 이거 진짜에여 하하하!」
「읍... 숨막혀 임마... 내가 다 봤는데 뭘 진짜 읍...」
「하하하! 하하하하!」
녀석의 변장이 효과가 있었던 건지
캐리비안에서는 녀석을 알아보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근데 솔직히 말해서
수영모하고 물안경으로 얼굴의 반을 가리고
몸매도 연예인답지 않게 평범 그 자체인데
다른 사람들이 알아볼 턱이 없잖은가
여하튼, 녀석은 정말 무슨 물 만난 고기마냥
아주 환장을 하고는 방방 뛰다녔다
놀이기구라는 놀이기구는 다 타고 다녔고
먹을거라는 먹을거는 다 먹고 다녔고
(어찌나 많이도 쳐 잡수시던지...)
먹자마자 다시 파도풀로 몸을 던지는 진짜 체력 하나는 끝내주는 애였다
「아저씨!! 깊은 곳으로 전진!! 전진!!」
파도풀에 들어간 녀석은
겁도 없이 가장 깊은 곳으로 마구 들어갔는데
문제는 지 혼자 용감하면 될 것을
내 모가지를 꽉 잡고 한 번도 놔 주지를 않고
무조건 전진을 외치면서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거였다
「켁켁!! 제발... 훅... 꿀꺽꿀꺽... 훅... 제발!! 나 좀!!」
녀석 때문에 난 물을 바가지로 먹었는데도
녀석은 곧 죽어도 내 목은 놔 주지도 않고
「깊은 곳으로 전진!! 전진!!」
차라리 애인하고 왔더라면 즐겁기라도 했을텐데
무슨 공주 수종 드는 것도 아니고 이게 뭐란 말인가...
생과 사를 앞에 두고 별의별 생각이 다 들던 그 때...
「아저씨... 」
녀석이 갑자기 꽉 잡은 내 목을 놓으면서
서서히 물 속으로 가라 앉는 것이 아닌가...
「왜 그래 꼬마야!!」
난 녀석을 얼른 잡고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게 했다
「아저씨... 발에 쥐 났나 봐여...」
녀석은 입술도 파랗게 질린 채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 괜찮아. 쥐 난 거는 금방 풀리니까」
난 온 몸에 힘이 풀린 녀석을 품에 안고 서서히 바깥으로 헤엄쳤다
녀석은 나를 만난 이후로 최고로 고분고분한 모습으로
손으로는 내 목을 끌어 안고는 내 가슴 속에서 숨만 조용히 쉬고 있었다
「아저씨...」
「어」
「나 많이 무겁죠?」
「아니」
「헤~~ 역시 다이어트가 효과가 있었나?」
「요즘 다이어트는 한 끼에 비빔밥 돈까스 쫄면 먹으면서도 하나 보지?
물 속이라서 안 무거운 거야 임마」
「그런건가?」
「그런건가?... 가 아니잖아 임마!! 이것 봐 엉덩짝이 이리 탱탱해서야...」
「아저씨!!」
녀석은 내게 알밤을 주고는
두 손으로 다시 내 목을 꼭 끌어 안았다
그렇게 꼭 끌어 안지 않아도 되는데...
절대 놓지 않겠다는 듯 꼭 끌어 안았다...
녀석을 해변가에 앉혔다
그리고 쥐 난 다리를 열심히 마사지했다
내가 다리를 맛사지하는 동안 녀석은 날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아저씨...」
「응?」
「오늘 즐거웠어여...」
「나도」
녀석이 고맙다고 하니까 가슴이 찌릿해 온다...
이젠...
정말 헤어져야 할 시간이 왔다는 뜻인가...
「아저씨」
「응?」
「나도... 아저씨 같은 아빠가 있었으면... 좋겠다... 」
「그래... 뭐?!! 아빠!!??」
「그래여 아빠」
「이놈자식아! 아빠가 아니라 오빠가 있었으면 좋겠다 라고 해야지!」
「싫어여. 난 오빠보다도 아빠가 더 좋단 말이에여」
「너하고 나하고 몇 살이나 차이 난다고 아빠냐 아빠는!」
「그래도 아빠가 더 좋단 말이에여」
녀석은 참으로 편한 눈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어제오늘 본 녀석의 얼굴 중에서 가장 편한 얼굴이었다
그래...
어차피 너하고 난 오늘 헤어지면 끝인데
오빠면 어떻게 아빠면 어떠냐
난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녀석의 발만 열심히 주물렀다
그 때였다
「어!」
녀석이 갑자기 깜짝 놀란 듯 어딘가를 쳐다본다
녀석이 쳐다보는 쪽을 보자
수영장 입구 쪽에 검은 정장을 입은 여자 한 명이 보였다
「드디어 찾았네...」
녀석이 아는 여자인 듯 했다
「누구?」
「매니저 언니에여」
「아」
「에버랜드에서 나 봤다고 제보를 받았나 보네...」
녀석은 날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잠깐만 기다려여. 말만 하고 올 테니까」
녀석은 매니저 쪽으로 절뚝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그래...
드디어 녀석과 헤어지는 시간이 다가 온 거구나...
결국 녀석은 자기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구나...
약간의 시원섭섭한 마음을 느끼면서
온 몸에 힘이 빠지는 느낌으로 인공해변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 때였다
「정말 맞나 보다!」
「그치? 저기 검은 옷 매니저일 거 아냐!」
「빨리 싸인 받으러 가자!!」
갑자기 주변이 웅성거리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점점 몰려 드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드디어 사람들이 꼬마의 정체를 눈치챈 듯 싶었다
수영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전부 몰려 들기라도 하는 것처럼
순식간에 엄청난 인원이 녀석의 주위로 몰려 들었다
정말 녀석이 스타긴 스타였나 보다
저렇게 사람들이 좋아하고 들뜬 표정들을 지을 줄이야...
난 녀석의 인기를 새삼 실감하면서
녀석에게 다가갈 엄두가 나지 않아서
사람들을 피해 한적한 곳으로 자리를 이동하였다
그런데...
「아저씨...」
환청이었을까...
그 애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아저씨... 나 무서워여... 무서워여...」
녀석의 우는 목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난 꼬마 쪽을 쳐다보았다
꼬마가 내 눈에 보이지 않았다!
순식간에 꼬마쪽엔 사람들이 겹겹이 쌓여 있었고
사람들은 계속해서 몰려 들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매니저가 있는 쪽을 쳐다보았다
매니저는 당황하면서 누군가에게 급하게 전화를 하고 있었다
매니저 역시 사람들을 뚫고 그녀 쪽에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꼬마녀석...
저 녀석은 지금 필시...
사람들에게 둘러 쌓여서...
공포를 느끼고 있을 것인데...
무서워 하고 있을 것인데...
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난 사람들의 벽을 뚫고 꼬마에게 가려고 시도했다
「잠깐 비켜 주세요!! 잠깐만 비켜 주세요!!」
그러나 소용없었다
사람들의 벽은 단단하게 꼬마를 중심으로 둘러쌓고 있었다
이러다가는 꼬마가 밟혀 죽을지도 몰랐다
자기 통제를 잃은 팬들 속에서 어떤 일을 겪을지 몰랐다
「비키란 말이야!!!!!! 비켜!!!!!!」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을까...
난 사람들의 몸을 닥치는대로 부딪치면서 마구 앞으로 돌진했다
그들은 내게 더 이상 벽이 아니었다
내 몸이 부서지던지 그들이 부서지던지
난 그들을 있는 힘대로 다 뚫어야만 했다
한참을 부딪쳐서 어디까지 나갔을까...
「아저씨!!!」
저 쪽 앞에서 꼬마가 날 쳐다 보고 있었다
꼬마는...
뒤에서부터 밀고 들어오는 사람들 속에서
가운데에 꽉 껴서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서 있어야 했다
그런데도...
그런데도 날 향해 손을 내밀고 있었다
울음이 가득한 눈으로...
날 향해 손을...
「제발...... 비키란 말이야!!!!!!!!!!!」
난 내가 이제껏 내지 못했던 힘을 다하여...
그들을 밀치고 닥치는 대로 두들기면서
온 힘을 내어 꼬마가 내민 손을 잡았다
그리고는 꼬마를 끌어안고 내 몸을 방패로 사람들을 마구 뚫었다
「꼭 잡아라 꼬마야」
꼬마는 내 허리를 강하게 끌어 안았다
내 눈에는 다른 사람들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나를 꼭 잡고 있는 꼬마와
꼬마의 어깨를 안고 있는 나만이 있을 뿐이었다
「간다앗!!!!!!!!!!!!!」
난 내 머리를 이용해서 사람들을 마구 두들겼다
그들의 머리와 내 머리가 부딪치고
그들의 주먹과 손톱이 내 얼굴을 할퀴어도
앞으로만 나아갈 수 있다면 무조건 부딪쳐 나갔다
사람들이 나의 행동에 겁을 먹은 듯 조금씩 물러났다
그 순간을 이용해서 그 아이를 안고 마구 뛰었다
그들이 주춤거리는 것도 잠시
그들 역시 내 뒤를 따라서 마구 달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날 듯이 매니저가 있는 곳에 다다랐다
「어서 데리고 가세요!!!」
난 매니저에게 꼬마를 넘겨 주었다
「아저씨!!!」
꼬마가 당황하며 날 쳐다본다
「그래! 빨리 가!」
「아저씨!」
녀석이 채 뭐라고 말 할 새도 없이
매니저는 꼬마를 데리고 급하게 밖으로 빠져 나갔다
「아저씨!! 놔!! 아저씨!!」
녀석은 매니저를 할퀴면서 벗어나려고 하였으나
매니저는 막무가내로 그녀를 끌고 밖으로 빠르게 나갔다
난 지칠대로 지쳐서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꼬마가 사라진 쪽을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그래...
어차피 헤어질 것을...
작별인사 한 마디 더 하고 못 하고가 무슨 문제가 되겠니...
잘 가라 꼬마야...
행복하게 지내야 해...
행복하게...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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