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녀가 짊어질 무게는..........(펌글)

천사2009.06.21
조회1,125

너무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서, 아니 집도 아닌 시댁에서 쫒겨난

우리 부모님이 나를 아빠 친구집의 헛간에서 낳았다는...

당시 두분의 농삿일로 아침 6시출근 밤 12시 퇴근하며,

나는 배고파서 아사 할수도 있을거란거 아시면서도 먹고 살기 바빴다는...

아장아장 걸을때부터 밭에 풀뽑고, 줄줄이 생긴 동생들 챙기며 유년시절 보냈고,

초등학생때는 집안살림 하며 학교 다니고, 중학교 올라가선 우유배달, 신문배달...

고등학교땐 레스토랑 알바로 교복비,교재비, 육성회비 내며,

동생들 용돈에 부모님 용돈도 드리며 고등학교 졸업했습니다.

 

하늘이 도우사, 1995년에 대학생도 입사하기 힘든 유명 외국기업에

고등학교 졸업도 하기전에 입사해서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3년쯤 지났을때 부서가 서울본사로 발령이 나서 태어나 5번째 쯤으로 서울에 와봤습니다.

서울로 출퇴근을 하루 3~4시간씩 하며, 조금 돈을 벌었을때 서울에 전세를 얻어서,

야간대학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엔 주말 알바도 하고, 죽어라고 돈벌었습니다.

첫 적금으로 2,300만원 탔을때 고생만 하시는 부모님 다 드렸습니다.  

 

6년쯤 다녔는데, 승진은 커녕 영어가 안되서 계속 밀리더군요.

그간 벌어놓은 돈과 회사의 스톡옵션 정리하고, 퇴직금도 받고, 적금정리하고 

(당시 IMF 여서 2금융권에서 이자율이 30%를 육발할때라), 1억정도 나오더군요.

 

서울에 4천만원 전세 남겨두고, (유학실패하면 결혼하려고) 3천만원 부모님께 드리고,

3천만원으로 호주로 유학 갔습니다.

 

가서도 마트알바, 청소알바하면서 어학연수 마치고, 대학원입학까지 하게되었습니다.

물론 한국의 부모님께는 손한번 안벌렸어요.  

 

다행히 대학원 입학하면서 유학생으로 주 20시간이내 회사알바까지 하게되었습니다. 

하루 3시간 자고, 밤 11시부터 마트 청소/진열 알바시작해서 새벽 3시 끝나면

집에와 서너시간 자고 7시에 학교가서 종일 수업듣고, 수업없는날은 회사가고...

 

열심히 일한 제모습에 호주 회사 사장님은 한국에 지점을 내신다며

나를 한국 지점 팀장으로 보내주셨고,

그렇게 3년여의 호주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왔을때,

제 연봉은 3년전보다 두배가 되었습니다. 

 

이후로, 돈 버는대로 부모님집에 살림을 장만 해드렸습니다.

가난한 집의 장녀는 이런게 행복이었습니다.  

냉장고, 티브이, 에어컨, 식탁, 쇼파, 집공사, 침대...

그리고, 목돈 마련해서 5천만원 됬을때 부모님 집사는데 드렸습니다.

 

그리고 서른살이 될즈음부터 저 개인을 위한 저축을 했죠.

그런데 목돈이 마련되면 부모님댁에 일이 생깁니다.

남동생 결혼, 여동생 결혼, 그리고 조카 수술... 암튼 아낌없이 계속해줬습니다.

남동생 집 전세금, 여동생 지참금, 조카 심장수술비, 막내동생 차 구입...

32년 인생을 희생아닌 희생과 봉사로 살았습니다.

 

보잘것 없는 집안형편에 나혼자 잘나서 주변에선 좋은 선자리를 많이 해줬지만,

(두명의 전문직 남친을 만났었지만...) 집안에 돈없고 명예없단 이유로 1~2년 사귀다 다 헤어졌어요.

 그리고 열심히 일만 했습니다.

 

우연치 않은 기회에 소개팅을 했는데, 만난지 3시간만에 결혼 결심했습니다.

세상엔 인연 있습니다.

산전 수전 공중전까지 타파한지라 사람 보는눈 하나 제대로 있습니다.

이사람,,, 제대로 된 인격자입니다.

그렇게 33살에 결혼을 했고, 이제 1년 남짓...지금 너무 행복해서 가끔 하늘 보며 눈물까지 흘립니다. 

옆에서 신랑 자는 모습을 보면 슬며시 입가에 미소가 번집니다.

그리고 손을 꼭 잡고 한참을 바라봅니다.

나를 행복하게 해준 남편이 너무 고마워서...

 

난 가장 찾기 힘들다는 "평범한 사람"  과 결혼을 했습니다.  

신랑은 항상 처가를 먼저 챙깁니다. 이런 신랑 고마워서 저는 시댁을 챙깁니다.

 "난 참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삽니다" 라고 했더니,

우리신랑 왈 "나도 참 착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사람이 여기 또 있네요" 하대요.

우리둘 처음엔 별루 였다가 세시간쯤 흐른뒤에 이상형이 웃어른 공경하며

양가에 잘하는 사람이라는 말에 후광이 비쳐졌답니다.

 

이제 남동생네도 여동생네도 친정 부모님도 제대로 안정된 삶을 살고 있답니다.

더이상 제가 경제적 도움 주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부모님 가끔 말씀하십니다.

큰딸 없었으면 지금의 이런생활 어찌 꿈이나 꾸었겠냐고...

 

지난시절 얼마나 힘들었는지 기억도 잘 안나는데...

그것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는듯 사는게 감사합니다.

장녀이기에 당연히 짊어지고 갈 지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보상도 옵니다. 현재에 너무 힘들어 하지 마세요.

 

울엄마 항상 하시던 말씀이 사람의 인생에 있어 세번의 기회가 온다고...

그 기회를 잡느냐 못잡느냐에 따라 인생이 좌우될수 있다고 하셨어요.

 

난 내가 26세 나이에 유학을 결심한것이 나의 첫번째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사회생활에 터닝포인트가 되었거든요. 그리고 지금의 신랑을 만난게 두번째 기회이고,

세번째 기회는 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화이팅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