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력 (#01~#03)

J.B.G2004.06.02
조회527

#01

미스터리 소설을 쓰다가 머리에 쥐가 나서, 잠시 숨을 돌릴까 합니다.

 

짧은 이야기를 그냥 생각의 흐름대로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잘 될지는 모르지만….

 

초벌 이후로 한번도 떠들어 보지 않았던 글입니다. 그래서 지금 펴 보니…. 조금은 생소하고, 또 처음 의도와는 다른 글이 되어 버렸습니다.

 

 

 

#02

겨울…

산 중턱에 자리잡은 한 묘소.

며칠 전에 내린 눈이 이직 미처 다 녹지 못하고 하얗게 쌓여 있다. 그리고 산의 중턱인데도, 바람이 불어주지 않은 온화한 날의 장례식 이다. 지하의 차가운 흙 구덩이 속에 내려 않은 관을 바라보는 사람들 사이로 햇빛이 주변에 온통 따뜻한 온기를 전해주고 있다.

 

장례에 얼굴을 비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초희 엄마가 가끔 나가던 교구의 목사님과 성도분들 몇몇 그리고 초희의 대학 친구들이 자리를 지켜 주었다.

 

초희의 엄마는 지금 사각의 흙 구덩이 속에 사각의 장식이 하나도 없는 초라한 나무 관 속에 누워 있었다. 목사님의 축복의 말씀이 끝나자 곧 사람들이 관 위에 하나, 둘 꽃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목사님께서 다시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초희에게는 지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 눈물로 초점이 맞지 않아 엄마의 마지막 가는 모습도 잘 보이지 않았고, 귀도 멍해져서 그저 알 수 없는 울림만이 메아리처럼 전해질 뿐이었다.

 

길지 않은 목사님의 기도가 끝나자 이제는 일꾼들이 관 위에 흙을 뿌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뿌려진 흙들이 이제는 관을 하나도 남김 없이 덮고 있었다. 그렇게 엄마가 보이지 않게 되자 초희는 결국, 소리 내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엄마!”

 

그렇게 한산한 장례는 마쳐졌다.

 

 

 

#03

산 중턱에 자리잡은 초희의 집은 이웃과는 조금 멀리 떨어진 2층으로 된 별장이었다.

 

‘엄마는 왜… 그렇게도… 혼자였을까…’

 

엄마가 초희 이름으로 남긴 유일한 유산인 별장은 넓은 앞마당을 가지고 있었다. 마당은 눈에 덮여서 온통 하얗게 자신이 받은 빛을 다시 되돌리며 빛나고 있었다. 초희는 지금 2층 발코니에서 탁자가 딸린 그네로 된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 옆에는 빈 2인용 의자와 함께 2개의 차가 더 놓여 있었다.

 

‘엄마는 왜 항상 3의의 차를 준비했을까…?’

 

초희는 엄마를 회상하며 생각에 잠겼다.

 

‘엄마가 항상 기다렸던 손님은 도대체… 누구였을까…?’

 

초희는 그렇게 겨울햇살을 맞으며 한참동안 추억의 회상에 잠겨 있었다.

 

저녁.

날이 어두워지고 주변이 온통 검게 되어 눈마저 그 빛을 일게 되었다. 그러자 곧 초희는 이미 자신은 혼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혼자… 구나…”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선 초희는 온 집안을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엇인가를 하고 있지 않으면… 무엇인가 다른 일에 몰두해 있지 않으면… 엄마 생각이 나서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뜨릴 것만 같았다. 그렇게 초희는 부산하게 온 집안을 혼잡하게 돌아다니면서 이 잡듯이 들쑤셔놓았다가, 다시 정리했다가 하기를 밤이 깊도록 한없이 반복하고 있었다.

 

초희는 벌써 몇 번째 엄마의 방을 청소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도저히 엄마의 방에서 엄마의 흔적을 아무것도 지울 수가 없었다.

 

“엄마…”

 

그렇게 중얼거리던 초희는 문득, 엄마의 사진이 있는 액자를 발견했다. 매일 보아왔던 액자 속의 사진인데… 오늘은 왼지 자꾸만 더 보게 되는 자신을 돌아보며, 초희는 더 이상은 참아내지 못하고 또 눈물이 흘려 버렸다. 그렇게 한참 울다가 충혈 된 눈으로 액자 속 엄마를 바라보던 초희는 잠시 회상에 잠겼다.

 

“엄마…”

 

어린시절의 어느날…

초희는 학교에서 돌아와서 집안에 엄마가 보이지 않자 엄마의 방을 들여 다 보았다. 초희의 시야에는 안락의자에 누워 졸고 있는 엄마를 보였다. 잠들어 있는 엄마의 얼굴은 무슨 꿈을 꾸는지 무척 평화로워 보였다. 그렇게 엄마의 미소 짓는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초희는 엄마의 옆에 자물쇠가 열린 상자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처음 보는 예쁜 나무상자는 초희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호기심이 한번 발동한 초희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아주 조심스럽게 열려 있는 자물쇠를 벗기고 엄마가 비밀을 담아두었을지도 모를 상자를 열어보았다.

 

‘뭐가 있길래…’

 

초희가 몰래 들여다본 그 나무상자 안에는 낡은 공책들이 하나 들어 있었다.

 

‘이건… 일기장?’

 

초희는 순간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엄마는 자신에게 과거에 대해서 전혀 이야기 해 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아빠에 대해서도… 하지만 이 일기장에는 그러한 애기가 숨겨져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초희는 가슴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렇게 가슴을 조이며 낡은 공책에 담겨져 있는 엄마의 과거를 훔쳐보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직 초희가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엄마의 젊은 시절의 추억이 담긴 일상이었다.

 

‘1981년 4월 18일

오늘 나에게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

딸이다. 그이를 닮은…

하지만 그이는 모른다…

자신의 아이가 태어났는지도…

나에게도 이제 비로소 가족이 생긴지도…

이 아이가 자라… 언젠가 자신을 찾아간다면…

그이는 이 아이를 알아볼 수 있을까…

아니… 이 아이만은 자신의 가족으로 인정해 줄까…

이 아이만은…’

 

순간, 엄마가 잠에서 깨어났다.

 

“…”

 

잠이 깬 엄마를 목격한 초희는 깜짝 놀라서 일기를 그만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 순간 초희의 눈에 비친 것은 처음 겪어보는 노기가 가득한 엄마의 얼굴이었다. 엄마는 지금까지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무서운 얼굴로 초희를 바라보고 있었다. 초희는 금새 몸이 차갑게 얼어붙어 자신도 모르게 바닥에 떨어진 공책을 황급히 더듬고 있었다. 그 순간에도 엄마는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그렇게 한참을 서 있었다. 초희는 눈 앞에 캄캄해져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엄마의 그렇게까지 화난 얼굴을 지금까지 한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것이었다.

 

“어… 엄마…”

 

그렇게 초희가 알 수 없는 공포에 떨고 있는 모습을 말 없이 내려다보던 엄마는 아무 말 없이 상자와 일기장을 들고 다락으로 올라갔다. 엄마는 일기장을 상자에 다시 넣고 그것을 잠가 버리고는 상자를 다락에 던져넣고 곧 다락 문을 걸어 잠가 버렸다. 그날… 엄마는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는 하루 종일 단 한번도 방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저녁.

그날은 초희도 하루 종일 자기 방에서 꼼짝 않고 굶으면서 쪼그려 앉아 있었다. 그렇게 두 모녀는 하루 종일 단절되어 있었다. 초희는 저녁이 되어도 낮의 일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낮에 보았던 지금까지 단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엄마의 그런 노기서린 냉랭한 얼굴을… 초희는 그런 엄마를 회상하는 것 조차 두려웠다. 초희는 지금 깊이 반성하고 있었다.

 

밤이 깊어지자 엄마는 혼자 차를 몰고 집을 나가 버렸다. 초희를 혼자 버려두고…

 

‘엄마… 용서해 줘요… 잘못했어요… 엄마…’

 

그리고 엄마는 자정이 넘어서야 만취한 상태로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

 

“초희야… 어디 있니… 최희야…”

 

집에 돌아와서 초희를 찾던 엄마는… 술 냄새를 풍기며 초희의 방에 들어왔다. 그런 엄마의 손에는 디지털 캠코더가 들려져 있었다. 그리고 엄마는 한 손으로는 캠코더를 들고, 한 손으로는 초희를 얼싸 안고 녹화를 하기 시작했다. 초희가 바라본 엄마는 취했지만 웃고 있었다.

 

“자… 여길 봐야지… 우리 예쁜 공주님…”

 

그날 엄마는 캠코더를 초희에게 사과의 선물로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