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 난 남자 /20

나다2004.06.02
조회1,595

부장님: 소이씨 본사로 발령났어. 운도 좋아.

 

 

약간 비꼬는 듯한 부장님의 말에 소이는 마음이 상했다.

 

 

소이: 안가면 안되나요
부장님: 이런 좋은 기호를 왜 놓쳐 소이씨 바보야
소이: 전 고졸이고 머리 굴리는 일 못해요 분명히 하루도 못있고 짤리거예요 부장님이 힘 좀 써주세요
부장님: 인사담당이 발령낸 것도 아니고 사장이 시키는 일인데 나도 힘들어 내일부터 출근해

모두들 소이의 뒤에서 소근거렸다. 무슨 큰 죄라도 짓은 것 같이 소이는 고개도 들지 못하고 사무실에서 나왔다. 온 몸에 오물이라도 뒤집어 쓴 것처럼 기분이 더럽고 비참했다.

진성은 아직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소이는 모른 척 지나갔다. 지금은 그 누구의 기분도 이해해주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소장님: 어이 윤소이 위에 아는 사람 있는가봐 사장비서라니.... 내가 이 회사 몸 담은지 30년이지만 이런 특별 대우는 처음이야
소이: 놀리마세요 지금 제 기분이.... 아니예요 소장님 저 송별회 해주세요
태민: 맞아요. 소이씨랑 이제 정들었는데... 많이 서운하네요
소장님: 이 자식은 일은 안하면서 술 마시는 자리는 귀신처럼 알아 이 놈이 발령나야하는데....
태민: 소장님 너무 미워하지마세요. 저 없으면 이 회사 못 돌아가요
소장님: 니가 이 세상에 없어도 잘 돌아갈 세상이야 가서 일이나 해
태민: 그래도 오늘 소이씨 송별회 하실거죠
소장님: 소이씨가 일 잘해서 하는거야
소이: 감사합니다 소장님.

마음이 답답하고 숨이 막혔다. 정말 여기서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다. 그러나.... 그러나....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소이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그 동안 정든 이 창고가 이상하게도 그리워질 것 같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날 저녁 송별회치고는 간소하게 막창집에서 했다. 소장님, 서태민, 그리고 윤소이. 올 사람도 없었다. 한달동안 일했는데 올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소이가 나갔다고 해도 서운해 할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그런 사람이 있었냐고 물어볼 것이다.

소장님: 정들라고하니 이별이네. 내 술한잔 받아
소이: 소장님 저 미우시죠 이렇게가니 그것봐라 하시죠 그런데요 소장님 저 정말가기 싫어요 죽기보다 가기 싫어요
태민: 소이씨 술주정하네. 사장 비서로 가는게 안 좋아요 남들은 못가서 난리데....
소이: 아무도 모르죠 그 인간이 얼마나 싸가지인지. 왕재수에 싸가지 마왕이구... 얼마나... 얼마나.. 성질이 더러운지.또 ...또 아무튼 이젠 전 죽었어요
소장님: 무슨 말하거야 취했네 취했어

소이: 소장님 소장님 우리 소장님 저 못가요 저 못가요

 

소이는 소장님의 팔뚝을 잡고 못간다고 죽어도 못간다고 고래고래 소리치고 있었다. 옆에서 사람들이 혹시 둘이 불륜아닌지 의심하는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었다

 

소장님: 애가 왜 이래. 제 정신이 아니네... 그만 일어나지

 

주위에 눈치때문에  소장님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이: 저 못가요. 소장님 못가요..

거기서 소이는 필름이 뚝...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채 태민의 등에 업혀 집으로 끌러와야했다. 태민이 등에 업혀오는 내내 소이는 못간다고 죽어도 못간다고 어찌나 소리를 치는지 동네 사람들이 화를 내고 난리도 아니었다.


첫날부터 지각이다. 세상에 이런일이... 소이는 벼락 맞을 일를 저지르고 말았다. 머리가 깰듯이 아팠지만 소이는 전속력으로 뛰었다. 심장이 터질것 같았다. 숨이 턱까지 올라와도 소이는 진용의 얼굴만 생각날 뿐이다. 죽었다.
사무실은 아주 깔끔했다. 보기보다 장식품도 없는 것이 심플했다. 그런 첫 느낌이 이상하게 좋았다. 마음이 안정되는 느낌이라고 할까? 술이 아직도 안 깨웠나보다. 진용 사무실이 좋아보이다니....

진용: 첫날부터 지각이나하고 .. 들어와
소이: 네 알겠습니다

다시 진용의 지시를 받아야 할 처지가 되었다. 앞으로의 일들이 눈 앞에 그려졌다. 생각만 해도 끔직하다. 신이 있다면 세상에 신이 있다면 제발 절 좀 도와주세요

진용: 사무직 일은 처음이지 할 줄 아는 것은 있어
소이( 어이가 없네. 진짜 ... 아는게 없지) 사장님 말씀대로 사무직 일은 처음이라서 배워야해요 그러니까 다시 현장으로 보내주세요
진용: 이런.. 당당한 윤소이씨는 어디가고 도망갈 궁리부터 할까? 모르면 배워 오늘부터 업무인계받아 시간은 이틀주겠어 그 전에 다 배우라고... 나가봐
소이(너,... 너,.... 내가 죽어버릴거야) 네. 사장님

 

사장실에 나온 소이는 밖에 어느 여자가 서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이선옥: 안녕하세요 이선옥이라고해요. 이틀동안 제가 업무인계해 드리려고 왔어요
소이: 네 그런데 어디에서 일하는거에요
이선옥: 저는 결혼해요. 뭐 회사에 더 다니고 싶지만.. 사장님 성격이...
소이: 개떡같죠
이선옥: 뭐 비슷해요 그래서 더 결혼를 앞 당겼어요
소이: 전 아무것도 모르는데.. 이런일 처음이거든요
이선옥: 그럼 곤란한데....

그랬다. 현실은 언제나 봐주지 않았다. 전화 받는 예절부터 메모하는 습관까지 머리부터 말끝까지 성형수술 받는 기분이라고 할까? 하나하나 다 배워야했다.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모든것들이 다 처음보는 것들이었다. 꼭 바보가 된 느낌이라고 할까? 소이는 정신이 없었다.. 이런 일을 할 자신이 점점 없어졌다.  진용의 말대로 그 당당한 소이는 어디로 가고 도망갈 궁리부터 하고 있었다. .


이선옥: 생각보다 잘 따라오는데요
소이: 놀리지마세요 이런일 못 할것 같아요
이선옥: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어요 오늘은 여기까지. 일단 각 부서에 있는 과장급까지는 이름이나 전화번호 정도는 외워두세요 그리고 전화번호는 항상 가까운 곳에 두시고 사장님과 만나려는 사람들이 많을거에요 좀 높은 자리에 있는 분들의 목소리 정도는 기억해두세요
소이: 어떻게 혼자서 다 하셨어요
이선옥: 그냥 하다보면 익숙해져요

 

 

인터폰에서 삐소리가 났다.

 

진용: 두시까지 전화연결하지마세요
이선옥:네. 사장님

인터폰에서 들려오는 진용의 목소리. 소이는 섬뜩했다.

이선옥: 오늘은 양호하네요. 아참 그리고 복장은 정장으로 입으세요 너무 요란하지 않게...
소이:네

이틀동안 소이는 늦게까지 일했다. 각 부서 외우는 것도 쉽게 않는데 문서작성은 얼마나 많은지 알아야하는게 너무나 많았다. 이틀동안 이 업무를 다 익히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였다. 그걸 알면서도 진용은 무슨 마음으로 이런 일을 시키는건지 도저히 속을 알수 없었다. 사람 미치게 하는게 취미인지... 그래도 진용은 아무런 내색은 하지 않았다. 아직까지... 아무런 말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그런 진용이 더 무서웠다. 이틀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혼자 비서일을 하는데 모든 것이 실수 실수 실수투성이었다.

진용: 그게 뭐냐고 이걸 일이라고 하는거야 다시
진용: 잘못했잖아 여기가 아니잖아 다시
진용: 도대체 잘하는 일이 뭐야 힘쓰는 일말고.... 아무리 생각해도 넌 파출부가 딱이야

 

 

드디어 진용의 본색이 드러났다. 고양이 앞에 쥐꼴이다. 소이는 모든 잔소리를 참고 또 참고 들었다

소이(망할자식. 날 이렇게 못살게 굴려고 옆에 두는거야) 죄송합니다
진용: 죄송한 태도가 아닌데... 나가봐

하루가 십년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