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화성에서 온 왕자님

wagi2004.06.03
조회1,430

 


14. 슬픔이란 뭐지?


“어? 유진이도 같이 온 거냐?”

 

“밥 좀 줘. 유진이 배고프대.”

 

콧노래라도 부를 듯 들뜬 윤을 보며 오빠들은 의아한 표정을 했다.

 

“윤이가 왜 저러지?”

 

“그러게. 정말로 유진이한테 넘어간 건가?”

 

“앉아, 유진아. 오빠, 오늘 반찬은 뭐야?”

 

“소세지 부침이다.”

 

“겨우 그거야? 찌개같은 거 없어? 유진이 찌개 좋아하는데.

어? 순부두있네. 오빠, 순두부찌개 해 줘.”

 

“......갑자기 회의가 든다.”

 

“그러게. 친정에서 뭐든 퍼가려고 하는 딸을 둔 엄마 심정을 알겠다고나 할까.”

 

“오빠, 얼른!”

 

한은 내키지 않는 손길로 순두부를 꺼냈다.

 

“달걀은 두 개 넣어주십시오.”

 

“시끄러!”

 

“오빠, 유진이한테 왜 그래?”

 

“아, 아니야.”

 

“형, 힘내.”

 

등을 토닥거리는 온의 손길에 한은 눈물을 감추며 파를 썰었다.

 

“맛있어?”

 

“맛있다.”

 

“다행이다. 많이 먹어.”

 

마치 자신이 한 음식인 양 유진의 앞으로

찌개 그릇을 밀어주기까지 하는 윤의 행동에 한과 온은 기가 막혔다.

 

“너무 밀었어. 윤이가 이렇게 변할 줄이야.”

 

“나 갑자기 유진이 놈이 미워지려고 해.”

 

“동감이다.”

 

유진의 앞에만 늘어서 있는 반찬 그릇을 보고

길게 한숨을 쉰 한과 온은 맨밥을 열심히 퍼 먹었다.

 

“너 오늘 좀 이상하다. 왜 그러느냐?”

 

턱을 괴고 흐뭇하게 먹는 모습을 지켜보는 윤이 부담스러워

유진이 찌개를 뜨다 말고 물었다.

 

“그냥... 너무 고마와서. 감격하기도 했고.”

 

“고맙다고? 뭐가?”

 

“이거 말야.”

 

윤은 목걸이를 슬쩍 가리켰다.

 

“고맙다는 게 대체 뭐냐?

먹을 것까지 퍼 줄 정도로 대단한 거냐?”

 

“고맙다는 건... 음. 그건 말이지...”

 

‘뭐라고 해야 얘가 알아들을까? 그러고보면 유진인 감정이 없는 사람같아.

아니지, 정말로 감정이 없는 건지도 몰라.

그래, 전에 자기 땜에 애들이 돌아갔을 때도 몰라서 그랬던 걸 수도 있어.

그렇게 생각하니까 얘가 했던 그 이상한 행동들이 이해가 되네.’

 

“유진아.”

 

윤은 유진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너, 혹시 기쁘다는 게 뭔지 알아?”

 

“기쁘다? 그게 뭐냐?”

 

유진의 물음에 윤은 빈 접시에 소세지 부침을 한가득 담아왔다.

 

“자, 먹어.”

 

“정말이냐? 나 다 먹어도 되는 게냐?”

 

“지금 무슨 생각이 들어?”

 

“맛있겠다.”

 

“그게 기쁨이야.”

 

“아... 이게 기쁘다는 거냐?”

 

유진은 뭔가 수긍한 듯 접시와 자신의 밥그릇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때 갑자기 윤이 유진에게서 밥그릇을 빼앗았다.

 

“뭐하는 거냐?”

 

“화나지?”

 

“뭔가 가슴 속에서 끓어오른다.”

 

“그게 바로 분노야. 화나는 거.”

 

“아...”

 

“쟤들 지금 뭐하는 거냐?”

 

“......참 독특한 방법이네.”

 

한과 온이 어이없는 얼굴로 중얼거려도

이미 유진에게 감정을 가르쳐 주는 즐거움에 푹 빠진 윤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김유진! 너 그만 먹어. 넌 무슨 애가 그렇게 먹을 것만 밝히냐?

게다가 먹기는 또 얼마나 먹어대는지... 너 땜에 우리집 식비가 팍팍 준다.”

 

갑자기 소리치는 윤을 멍하니 바라보던 유진은

창백한 얼굴로 들고 있던 숟가락을 떨어뜨렸다.

 

“저건 뭐 같아?”

 

“글쎄... 일부러 면박을 주는 걸 보니... 창피함인가?”

 

“기분이 어때? 어땠어?”

 

윤은 유진이 떨어뜨린 숟가락 대신 다른 숟가락을 찾아 쥐어주며 물었다.

 

“충격을 받았다.”

 

“바로 그거야! 그게 바로 상처받는 거야. 말하자면 아픔이지.”

 

“그런 거냐?”

 

“너도 상처받으니까 아프지?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한테도 상처주면 안 되는 거야.

진실이라고 해도 아무런 대비없이 까발려지면 상처가 되는 법이거든.”

 

“그렇구나... 그럼 내가 잘못했던 거로군.”

 

“그래, 그래! 드디어 네가 인간이 되어 가는 구나. 이 누님은 참 기쁘다.”

 

“음... 기쁘다고...”

 

유진은 아까 윤이 가득 담아준 소세지를 생각했다.

 

‘기쁨... 그런 기분이란 말이지... 이렇게 하니까 참 알기가 쉽군.’

 

생각에 잠긴 유진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던 윤이 문득 얼굴을 찌푸렸다.

 

‘가만, 근데 슬픔은 뭐라고 하지?’

 

“유진아, 밥이 다 떨어졌어.”

 

“괜찮다. 오늘은 이미 충분히 먹었다.”

 

“어휴, 그게 아니라... 만약 네가 아직 배가 고픈데 밥이 떨어진 거야.

그러면 어떤 생각이 들 것 같아?”

 

“얼른 집에 가서 세진이에게 밥을 달라고 하자.”

 

“세진오빠가 집에 없다면?”

 

“세진인 늘 집에 있다.”

 

“만약에 말이야.”

 

“그런 일은 없다.”

 

“상상력을 좀 동원해 봐.”

 

“상상력은 수행할 때 쓰는 중요한 정신력이다.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낭비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됐어. 그럼 슬프다는 건 한번도 느끼지 못한 거야?”

 

“슬프다는 게 뭐냐?”

 

“너 지구로 올 때 무슨 생각했어?”

 

“지구에서 내가 일을 잘 해 낼 수 있을까,

왜 뽑히지도 못할 내가 지도자의 후보로 적합한 유전자를 갖고 태어나게 된 것일까,

우주비행은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 그런 생각들을 했다.”

 

광할한 우주. 간혹 보이는 소행성들과 운석들,

소리도 빛도 없는 공간을 미끄러지는 조그마한 우주선 하나...

그리고 그 안에 혼자 덩그러니 앉은 8살의 유진.

 

윤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 먼 거리를 어린 아이가 오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불안과 두려움, 외로움, 절망... 뭔지도 모를 감정을 무표정하게 삭이면서

유진인 그게 어떤 건지도 몰랐겠지? 너무 불쌍해...

그 나이에 익숙했던 모든 것으로부터 떨어져서 생소하기만한 낯선 별로 오다니...

아이한테 그런 잔인한 짓을 하다니...’

 

주르륵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놀란 얼굴의 유진이 부옇게 흐려진다.

 

“네가 너무 불쌍해... 울지도 못하고 그게 슬픔인 줄도 몰랐겠지?”

 

슬픔과 안쓰러움이 가득 가슴에 차서

윤은 울지 못하는 유진 대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아무 말없이 바라보던 유진이 문득 손을 내밀었다.

 

“따뜻하구나... 이게 눈물이냐?”

 

윤의 눈물이 닿은 손가락 끝에서부터

따스함과 알 수 없는 통증이 가슴 한 가운데로 밀려들어왔다.

유진은 그 알지 못할 기묘한 감각에 혼란스러움을 느끼면서도 그대로 윤을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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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유진은 집으로 돌아오며 가만히 윤이 흘렸던 눈물을 생각했다.

 

‘왜 울었을까? 슬프면 우는 것인가?

그렇다면... 윤이는 슬펐던 게로군. 하지만 왜 슬프단 말인가?’

 

윤이 운 이유가 자신 때문이라는 것은 어렴풋이 짐작이 간다.

하지만 왜 울었는지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유진이었다.

 

‘한이 형과 온이 형도 그렇다.

평소 같으면 나 때문에 울었다고 길길이 날뛰었을 사람들이

오늘은 그저 조용히 보기만 했다.

한이 형과 온이 형도 내가 그렇게 슬픈가? 그래서 아무 말 하지 않은 것인가?’

 

유진은 그 자리에 서서 윤의 집을 바라보았다.

창문으로 한과 온, 그리고 윤이 보였다.

 

늘 티격태격 싸우면서도 윤은 오빠들을 잘 따랐다.

한과 온이야 더 말할 필요도 없이 윤을 챙긴다.

 

‘왜 그러는 거지? 형제라서? 형제란 게 무엇이지?

같은 핏줄을 타고 났다는 이유만으로 저렇게 맹목적으로 같은 편이 될 수 있는 건가?’

 

셋이 같이 있는 풍경은 평화롭고 아늑하다.

유진은 멍하니 한가로운 세 사람의 일상을 관찰했다.

그들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부드러워진다.

 

‘나도 내 위의 후보들과 같은 유전자를 타고 났으니 형제라 할 수 있는 건가?

하지만 그들과 나는 저런 식으로 서로를 대한 적이 없다.

아니, 말 한마디라도 건넨 적이 있었던가?

얼굴을 마주 볼 시간도 없이 바빴지만 그래도 수업은 같이 받았으니

충분히 서로에 대해 알 기회가 있었던 것을.

 

하지만 나는 그들을 이겨 지도자가 되는 것만을 생각했다.

그들도 그랬을 것이다.

내가 지구로 보내졌을 때 그들은 경쟁자가 줄어서 기뻐하지도,

같이 지내던 존재가 사라져서 슬퍼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나 또한 그렇게 담담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어쩌면 그들과 나는 좀 더 다르게 지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저 사람들처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윤이 펄펄 뛰며 온을 쫓아 뛰었다.

소파에 앉아 그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한의 모습도 보였다.

 

‘저렇게 서로를 더 다정한 눈으로 보았어도 좋았을 것이다.’

 

유진은 더 보지 않고 몸을 돌렸다.

후회해도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이다. 다시 한번 돌아갈 수만 있다면...

 

‘아니다. 과거는 과거일 뿐, 현재의 내가 돌아본다하여 과거가 달라지지 않는다.

현재의 깨달음은 현재와 미래에 유효한 것. 어리석은 상념이다.’

 

“유진님, 이제 오십니까? 저녁은요?”

 

온 몸에서 기름냄새를 풍기며 나온 세진이 안부를 묻는다.

유진은 그런 세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것은 세진이다.

지구에서의 명목상 세진은 나와 형제로 되어 있지.

그런데 난 세진에게 그런 대접을 해줬던 적이 있었던가?’

 

물끄러미 바라보는 유진의 시선에 세진은 얼굴이 파래졌다 빨개졌다 안절부절 못 했다.

 

“나는 먹었다. 너는 먹었느냐?”

 

“예?”

 

이제는 거의 울상이 된 세진이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유진님,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습니까?”

 

“없었다. 너는 오늘 어떻게 지냈느냐?”

 

“유, 유진님... 잘못했습니다! 남은 튀김이 몇 개 안 돼서, 그만...

절대 처음부터 혼자 먹으려고 한 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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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신인분들이 대거 진출하셨네요!

정말 소세지하고 찌개합니다. ^^

 

가끔 투정도 부려볼만 하구나... 허튼 생각을 하고 있답니다. ^^

 

닐리리님, 반갑습니다. ^^

그러시지 않으셔도 되는데...^^;;

그래도 이렇게 인사 나누니까 좋아요.

귀찮지 않으시면 가끔은 안부 전해 주세요. ^^ 기다릴게요.

 

자갸님, 그쵸? 아줌마가 불쌍해요. ㅠ.ㅠ

얼마나 놀라셨겠어요? ㅋㅋㅋ 유진이가 의외로 귀여운 구석이 있다니까요.

그건 대체 누구한테 배웟을까?

혹시 세진이가 생활비 아낄 목적으로 시장에 데려가 시킨 건 아닐지...^^

 

보갱장님, 아녜요, 보갱짱님 정도면 월등하게 양호하시지요.

제가 강요하는 게 절대 아니라요. 그냥 가끔 인사 나눴으면 하는 것 뿐이랍니다. ^^

 

좋은아이님, 어서 오세요. 유진사이코와 윤단순의 우주선 날리고

닭털 날리는 사차원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ㅎㅎㅎ

자, 윤이와 유진이는 행성을 뛰어넘어 과연 사랑을 이룰 것인지...

기대해 주세요~! ^^

 

바다님,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유진이는 과연 갈까요? 안 갈까요? ㅋㅋㅋ 알아맞춰 보세요~!

 

솜사탕님, 아녜요, 절대 그런게 아니라요. ㅠ.ㅠ

그치만... 역시 이렇게 이야기하게 되어서 기쁘기도 합니다. ^^

앞으로도 계속 재밌게 읽으실 수 있어야 할텐데...

아, 정말 점점 부담이...-_-;;

 

yoga님, 귀환명령은 그저 명령일 뿐...이라고 말할 수 없는 제 마음도 찢어집니다.

그치만 명령이라고 무작정 따를 수도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자... 또 한번 퀴즈~! 유진이는 갈까요, 안 갈까요? ㅎㅎㅎㅎㅎㅎ

 

봄꽃님, 그렇죠. 미운 정이 제일 무섭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미운 정은 한번 들이면 못 뗀다 하더군요.

윤이 성격으로 봐서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깁니다. ^^

편하게 생각하시고 가끔 생각날 때 들러 주셔요.

 

바다나무님, 저의 그 말이 이렇게 많은 분들의 가슴을 찔렀군요. ^^;;

어떤 분들이 봐주시나 궁금해서 드린 말씀이니까요,

너무 부담 갖지 마시고... 읽어주시는 것만 해도 얼마나 감사한데요.

잘 찾아보십시오. 눈 크게 뜨고 찾아보면 분명히 외계인이 있을 겁니다.

찾으시면 꼭 연락주세요. 제가 아는 녀석들이랑 인사라도 ^^;;

 

sOda님, ㅋㅋㅋ 님은 이제 팬이 아니라 가족같다는;;

왠지 잘 알고 친한 분처럼 느껴져요.

가끔 제가 장난치고 그래도 다 편해서 그런 거니까 이해해 주실거죠? ^^

더불어... 간혹 늦거나 빼먹더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하시지 않으실 거죠? ^^

 

환님, 네, 유진이는 아직 어린아이나 다름없죠.

감정을 모르는 게 아니라 서투를 뿐이라고 생각해요.

하나 하나 배우고 깨닫다 보면

언젠가 가슴 속에 가득한 감정들을 표현하게 될 날이 올 거라고 믿어요. ^^

 

bklove님, 네, 님의 협박에 올렸습니다. ㅠ.ㅠ

사실은 오늘 양이 좀 적어서 다음 편하고 이어 올릴까 하다가...

유진이, 아/직/은/ 안 갔습니다. ㅋㅋㅋ 불안하시죠?

 

글램님, 그런가요? 

많은 분들이 유진이가 정말 화성인인 줄은 몰랐다고들 말씀해 주셔서

저로서는 정말 즐거웠답니다.

앞으로도 그래야 할텐데... 머리나쁜 바기로서는 참 심각하게 고민이 되네요. ^^

최선을 다 할테니 앞으로도 지켜봐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