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여자로서의 향기보다는 삶의 향기를 은은히 풍기며 지나온 생을 뒤돌아 보며, 자식들 혼수 걱정, 취직걱정을 해야 한 나이인데....
남편이 젊은 여자와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을 알게 된지도 어언 1년의 시간이 흘렀다
봄에 꽃이 피는지, 여름이 더웠는지, 낙엽이 지는지, 눈이 내리는지도 모르게 멍한 고통스러운 날들이 화살같이 흘러갔다
월 200만원 정도 받는 봉급장이 남편이 노래방 도우미라는 내연녀에게 4년동안 기꺼이 봉사하고 바쳤던 돈이 수천만원
아이들에게 입힐 거 먹일 거 제대로 해 주지 못하고 조금씩 모아놓은 딸아이 결혼자금 빼 내 그녀에게 집 마련해주고 들락거리며 이중살림에
은행마다 빚 얻어 내연녀 카드빚, 내연녀 친정돕기 하느라 갚아야 할 빚만 수천만원이 된다고
내연녀가 이혼하고 혼자 사니 불쌍하다고
남편을 보기만 하면 품에 안겨 울어대니 너무 안쓰럽다고
그녀가 조그만하고 젋고 이쁘니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마누라는 키도 덜렁 크고, 늙었다고 (내 키는 164, 53kg. 그녀의 키는 156이란다)
나도 그만한 나이 땐 예뻤는데 웅얼거려보지만 혼자만의 궁시렁인걸..
들키고 나자 그 여자는 내게 담판을 짓자며 내 남편이 그녀 없이는 안되니까 내가 물러나주기를 강요했었다. 아주 당연한 표정으로
남편도 내게 그랬다
"당신은 씩씩하니 나 없어도 되고, 그 사람은 내가 곁에 있어주어야 한다"
어려운 살림 일으키려고 애쓰면서도 남편 힘들지 않게 하려 했던 것이 씩씩하게 보였나 보다
이혼 안하면 만나주지 않겠다는 내연녀 때문에 남편은 미쳐가고 있었다
착하고 선했던 내 남편, 너무나 변해버린 모습이 너무나 낯설어서 나는 피눈물을 흘리며 직장도 사표 내고 세상과도 단절하고 홀로 칩거하며 숨만 쉬고 있다
부끄러워서, 세상도 이웃도 친구도 다 부끄러워서
올 봄 딸아이가 대학 졸업 후 좋은 직장 첫 출근 날도 난 창가에 우두커니 서서 "미안하다 내 딸아"
갑작스런 엄마의 변화에 어리둥절한 딸과 아들은 1년 내내 내 눈치만 본다
"엄마 왜 그러세요, 아프면 병원 같이 가요"
착하고 바르게 자란 내 자식들
부모로서 자식 낳아 넉넉히 뒷바라지 못해 준 것도 평생 가슴에 응어리로 남는 건데 이렇게 뿌리째 흔들리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오로지 침묵과 인내로 사력을 다해 버티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영문 모르는 아이들에겐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
"미안하다 내 새끼들, 남들 백화점 가서 좋은 옷 사 입힐 때 난 재봉틀 돌려 엉성한 옷 만들어 입히고, 남들 제과점에서 부드러운 빵 사서 먹일 때 난 내가 만든 볼품없는 과자 먹여 키웠고, 학원 못 보내는 대신 아이들과 같이 공부하는 엄마 모습 보이며 독려했고, 여행 한 번 못 데리고 다니고, 기억에 남는 추억 하나 만들어 줄 수 없었던 형편이었기에 이제는 거의 다 큰 아이들인데도 바라볼때마다 가슴 한켠이 항상 아렸었는데 마지막까지 못난 엄마일 수 밖에 없구나"
머잖아 시집갈 딸을 둔 엄마이기에, 내 딸이 시집가서 부모의 흠이 원인이 되어 힘들게 살게 될까 봐서 가슴 쥐어뜯으며 참고 살아야 하는 내 심정을 내 아이들은 짐작도 못한다
나이 50, 다 늙은 마누라더러 어디로 가라고 남편은 나를 내 보내려 했는지
부부는 신뢰와 믿음만 있으면 어떤 풍랑도 어려움도 헤쳐갈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너무나 믿었던 내 남편, 그래서 그 오랜 세월의 이중살림을 나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어려운 형편에도 나와 아이들은 헐벗어도 남편 양복 한벌이라도 더 해 입히려 노력했었고, 행여 아플까 늙어갈까 노심초사 살폈었는데 그는 이유도 없이 내 등에 칼을 꽂았다
영문도 모르는 체 벼량끝에 몰려 나는 밤마다 내가 내일 아침 눈뜨지 말기를 그래서 조용히 사라질 수 있기를 기도했었다
아이들에게 큰 상처 주지 않고 사라질 수 있기를.
남편은 새로운 여자를 만나 맺은 육체관계의 늪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결혼과 가정이라는 신성한 울타리를, 몸 굴려 사는 그 여자의 작은 몸뚱이 하나보다도 가치없게 생각했던 남편
그 여자 하나만 영원히 품에 안을 수 있다면 가정도 처자식도 다 버려도 상관없다고
늦바람이 무섭다 했다. 그들의 육체적 만남이 얼마나 갈 거라고
남편이 무섭다
선비 같았던 사람이었는데 변해버린 그의 동물적인 모습이 무섭다
어디로 가야 할까
이제 돈도 줄 수 없고 별 볼일 없어진 남자인지라 이미 등 돌려버린 그 여자는 오늘도 노래방에서 내 남편 같은 봉을 찾고 있다고
아내의 피울음보다도, 걷어 채인 그 자신의 연민에 빠져 내내 기운없이 지내더니 이제 다시 활기가 돈다. 또 다른 젋고 예쁜 노래방 도우미와 또 한창 열을 내고 있는 중이라서
50이 넘은 자신의 나이는 늙지 않다며...
가정이 남 모르게 가라앉게 될 정도이면, 아내가 폐인이 다 되어가고 있으면 이제라도 정신을 차려야 사람일텐데
학교다닐 때 친구로 만나서 결혼한 우리이기에 그 어릴적 정을 나는 잊지 못하고 있는데 남편은 나를 까맣게 잊어버렸다
나보다 한살 많지만 훨씬 젊어 보였었는데 바람피는 동안 너무 많이 늙어버린 그의 모습에 속없이 또 가슴 한켠이 찡하다
돈을 뿌려주기에 여자가 곁에 머물렀었다는 것을 그는 아직도 깨닫지를 못한다
남편은 굳게 믿고 있다.
내가 이혼을 해 주지 않으니 그녀가 떠난 거라고
이제 알고보니 술집 여자와 첩살림 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자랐다 한다
그 여자도 첩의 소생이고
그래서 둘 다 그렇게 미안함 모르고 그리도 당당했는지
자라온 환경이란 게 그렇게 중요한 것을
오늘도 그는 집안에만 웅크리고 하늘만 바라보는 내게 한마디한다
"나가서 다시 뭐든 할 일을 찾아 봐"
돈이 필요하다는 거다. 그녀에게 준 은행빚도 갚아야 하고 또 다른 여자 뒷바라지 해 주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
이곳에 사연을 말하면 가슴이 좀 뚫릴까 싶어 친구에게도 혈육에게도 말 못한 아픔 올립니다
내 나이 50세
이젠 여자로서의 향기보다는 삶의 향기를 은은히 풍기며 지나온 생을 뒤돌아 보며, 자식들 혼수 걱정, 취직걱정을 해야 한 나이인데....
남편이 젊은 여자와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을 알게 된지도 어언 1년의 시간이 흘렀다
봄에 꽃이 피는지, 여름이 더웠는지, 낙엽이 지는지, 눈이 내리는지도 모르게 멍한 고통스러운 날들이 화살같이 흘러갔다
월 200만원 정도 받는 봉급장이 남편이 노래방 도우미라는 내연녀에게 4년동안 기꺼이 봉사하고 바쳤던 돈이 수천만원
아이들에게 입힐 거 먹일 거 제대로 해 주지 못하고 조금씩 모아놓은 딸아이 결혼자금 빼 내 그녀에게 집 마련해주고 들락거리며 이중살림에
은행마다 빚 얻어 내연녀 카드빚, 내연녀 친정돕기 하느라 갚아야 할 빚만 수천만원이 된다고
내연녀가 이혼하고 혼자 사니 불쌍하다고
남편을 보기만 하면 품에 안겨 울어대니 너무 안쓰럽다고
그녀가 조그만하고 젋고 이쁘니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마누라는 키도 덜렁 크고, 늙었다고 (내 키는 164, 53kg. 그녀의 키는 156이란다)
나도 그만한 나이 땐 예뻤는데 웅얼거려보지만 혼자만의 궁시렁인걸..
들키고 나자 그 여자는 내게 담판을 짓자며 내 남편이 그녀 없이는 안되니까 내가 물러나주기를 강요했었다. 아주 당연한 표정으로
남편도 내게 그랬다
"당신은 씩씩하니 나 없어도 되고, 그 사람은 내가 곁에 있어주어야 한다"
어려운 살림 일으키려고 애쓰면서도 남편 힘들지 않게 하려 했던 것이 씩씩하게 보였나 보다
이혼 안하면 만나주지 않겠다는 내연녀 때문에 남편은 미쳐가고 있었다
착하고 선했던 내 남편, 너무나 변해버린 모습이 너무나 낯설어서 나는 피눈물을 흘리며 직장도 사표 내고 세상과도 단절하고 홀로 칩거하며 숨만 쉬고 있다
부끄러워서, 세상도 이웃도 친구도 다 부끄러워서
올 봄 딸아이가 대학 졸업 후 좋은 직장 첫 출근 날도 난 창가에 우두커니 서서 "미안하다 내 딸아"
갑작스런 엄마의 변화에 어리둥절한 딸과 아들은 1년 내내 내 눈치만 본다
"엄마 왜 그러세요, 아프면 병원 같이 가요"
착하고 바르게 자란 내 자식들
부모로서 자식 낳아 넉넉히 뒷바라지 못해 준 것도 평생 가슴에 응어리로 남는 건데 이렇게 뿌리째 흔들리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오로지 침묵과 인내로 사력을 다해 버티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영문 모르는 아이들에겐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
"미안하다 내 새끼들, 남들 백화점 가서 좋은 옷 사 입힐 때 난 재봉틀 돌려 엉성한 옷 만들어 입히고, 남들 제과점에서 부드러운 빵 사서 먹일 때 난 내가 만든 볼품없는 과자 먹여 키웠고, 학원 못 보내는 대신 아이들과 같이 공부하는 엄마 모습 보이며 독려했고, 여행 한 번 못 데리고 다니고, 기억에 남는 추억 하나 만들어 줄 수 없었던 형편이었기에 이제는 거의 다 큰 아이들인데도 바라볼때마다 가슴 한켠이 항상 아렸었는데 마지막까지 못난 엄마일 수 밖에 없구나"
머잖아 시집갈 딸을 둔 엄마이기에, 내 딸이 시집가서 부모의 흠이 원인이 되어 힘들게 살게 될까 봐서 가슴 쥐어뜯으며 참고 살아야 하는 내 심정을 내 아이들은 짐작도 못한다
나이 50, 다 늙은 마누라더러 어디로 가라고 남편은 나를 내 보내려 했는지
부부는 신뢰와 믿음만 있으면 어떤 풍랑도 어려움도 헤쳐갈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너무나 믿었던 내 남편,
그래서 그 오랜 세월의 이중살림을 나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어려운 형편에도 나와 아이들은 헐벗어도 남편 양복 한벌이라도 더 해 입히려 노력했었고, 행여 아플까 늙어갈까 노심초사 살폈었는데 그는 이유도 없이 내 등에 칼을 꽂았다
영문도 모르는 체 벼량끝에 몰려 나는 밤마다 내가 내일 아침 눈뜨지 말기를 그래서 조용히 사라질 수 있기를 기도했었다
아이들에게 큰 상처 주지 않고 사라질 수 있기를.
남편은 새로운 여자를 만나 맺은 육체관계의 늪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결혼과 가정이라는 신성한 울타리를, 몸 굴려 사는 그 여자의 작은 몸뚱이 하나보다도 가치없게 생각했던 남편
그 여자 하나만 영원히 품에 안을 수 있다면 가정도 처자식도 다 버려도 상관없다고
늦바람이 무섭다 했다. 그들의 육체적 만남이 얼마나 갈 거라고
남편이 무섭다
선비 같았던 사람이었는데 변해버린 그의 동물적인 모습이 무섭다
어디로 가야 할까
이제 돈도 줄 수 없고 별 볼일 없어진 남자인지라 이미 등 돌려버린 그 여자는 오늘도 노래방에서 내 남편 같은 봉을 찾고 있다고
아내의 피울음보다도, 걷어 채인 그 자신의 연민에 빠져 내내 기운없이 지내더니 이제 다시 활기가 돈다. 또 다른 젋고 예쁜 노래방 도우미와 또 한창 열을 내고 있는 중이라서
50이 넘은 자신의 나이는 늙지 않다며...
가정이 남 모르게 가라앉게 될 정도이면, 아내가 폐인이 다 되어가고 있으면 이제라도 정신을 차려야 사람일텐데
학교다닐 때 친구로 만나서 결혼한 우리이기에 그 어릴적 정을 나는 잊지 못하고 있는데 남편은 나를 까맣게 잊어버렸다
나보다 한살 많지만 훨씬 젊어 보였었는데 바람피는 동안 너무 많이 늙어버린 그의 모습에 속없이 또 가슴 한켠이 찡하다
돈을 뿌려주기에 여자가 곁에 머물렀었다는 것을 그는 아직도 깨닫지를 못한다
남편은 굳게 믿고 있다.
내가 이혼을 해 주지 않으니 그녀가 떠난 거라고
이제 알고보니 술집 여자와 첩살림 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자랐다 한다
그 여자도 첩의 소생이고
그래서 둘 다 그렇게 미안함 모르고 그리도 당당했는지
자라온 환경이란 게 그렇게 중요한 것을
오늘도 그는 집안에만 웅크리고 하늘만 바라보는 내게 한마디한다
"나가서 다시 뭐든 할 일을 찾아 봐"
돈이 필요하다는 거다. 그녀에게 준 은행빚도 갚아야 하고 또 다른 여자 뒷바라지 해 주려면........
이젠 모두 그만 두고 싶다는 생각 하루에도 몇 번씩 든다
지치고 또 지쳐서....
어떻게 해야 하나
어디로 가야 하나
나는 어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