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것은 언제나 그립다

푸른바다2004.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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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것은 언제나 그립다

 

사라져가는 것은 언제나 그립다

 

 

따사로운 햇살 머금고 있는 배불뚝이 단지 위에 늙은 고양이가 게으르게 졸고 있는 마당을 바라보며 마음도 한가롭게 창문을 여니, 가슴 가득 안겨드는 눈부신 햇살과 그늘 속에 청신한 바람이 걸리는 소리의 보드라움이 귓결속으로 감미롭게 파고든다. 혹시나 꿈결처럼 날아갈새라 나는 바람 한 올 한 올 여유롭게 즐긴다. 하늘은 깊고 푸르고 산마루 위에 피어오르는 뭉게구름이 소녀의 꿈처럼 새곰새곰한 유월의 싱그러움에 맑은 정신이 감미로워 또 다른 자연의 뽀듯한 감정의 사치를 즐긴다.

 

 

줄 장미 농염하게 핀 붉은 꽃송이가 뿜어내는 향의 풍성함에 잠시 마음이 꽃처럼 현란해 진다. 이미 산천은 짙은 녹색의 옷으로 갈아입은 지 오래고 들길 밟히는 곳마다 강아지풀 살강살강 종아리 간질인다. 하얀 감 꽃 푸지게 떨어지니 풋풋한 내 유년의 그리움에 젖어 한 송이 입에 넣고 새콤한 단맛을 씹어며 한 송이 곱게 주워 모아 꽃목걸이를 만들었다.

 

 

총총 심긴 아기 모들이 여간 보기 좋은 게 아니어서 가늘게 눈뜨고 들녘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이앙기로 모내기도 단숨에 끝낸다. 예전에 손으로 모내기하던 시절을 떠올리면 모내기 같지도 않은 홀가분한 모심기다. 못줄잡고 여남은 명이 농요 가락에 흥을 돋우며 들녘 가득 신명으로 북새를 떨었는데 집집마다 기계화된 농사로 어느 집의 모내기가 언제 끝난 지도 모를 정도로 빨리도 끝났다. 이앙기의 기계소리가 이 시대의 "농가월령가"다.

 

 

해가 중천으로 오르면서 햇살은 벌써 성하(盛夏)의 한여름 흉내를 낸다. 내리 꽂히는 햇살의 따가움에 하얀 고무신을 끌며 서늘한 동구나무 그늘을 찾는다. 따가운 햇살은 날 감시하는 사냥꾼의 눈매처럼 호시탐탐 그림자가 되어 푸른 그늘 술렁이는 바람 속에 나도 나무가 되고자 구름처럼 고요하게 흩어지듯 숨어버린다.

 

 

모내기는 일년 농사 중에 가장 큰 일이었다. 농사는 혼자서보다 여러 사람이 어울려 하는 일이 많다. 모심기라든가 논매기, 타작, 가래질 등이 그렇다. 모심기에는 여러 사람이 동원되어야 한다. 넓은 논에 혼자서 모를 심는다는 것은 작업능률도 오르지 않을 뿐 아니라 모심는 때가 있기 때문에 함께 빨리 심어야 한다. 다들 돌아가며 품앗이를 하거나 놉을 사야만 했다. 농사는 발자국따라 하기 때문이다.

 

 

모심기는 못자리에서 모찌기부터 해야 한다. 따라서 모심기할 때는 못 줄잡이가 선창으로 구수하게 농요를 부르면 모심기꾼들은 교환 창으로 걸쭉하게 후렴을 받아내며 모심기를 한다. 그것은 힘든 일이었지만 흥겹고 신나는 일이었다.

 

 

  예봐라 농부말들어

  느마지기 왼뱀이가

  반달만치 남았다

  어서밧비 심고가세

  요내곁에 모숭구던

  처자애기 어데갔노

  밀양이라 영남숲에

  화초구경 가고없네

 

 

모를 심으면서도 옆에서 심고 있는 처녀에게 총각의 붉은 마음이 논바닥에 꽂히는 모들만큼이나  시나브로 쌓여가는 연정이 있다. 모심기하면서도 사랑의 연분을 꿈꾸는 아름다운 농요도 이제는 세월의 먼 산에 아물아물 묻혀 버리고 사람들의 굵은 팔뚝 대신 이앙기의 칙칙한 기계소리가 신 농가월령가로 풀려 나가고 있다.

 

 

거머리 뜯어내며 풀 섶에 둘러앉아 맛있는 들밥에 한 잔 막걸리의 시원한 음주도 이제는 먼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없으려니, 들밥대신 자장면 배달부가 오트바이로 새참을 실어 나르고, 작은 승용차가 들길 따라 커피를 배달하는 농촌의 신 풍속에 나는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낀다. 하물며 구수한 모심기의 노래도 화석(化石)이 된지 오래다. 여유와 멋과 자연의 정취까지 곁들인 아름다운 들녘의 모습은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사라진 그리움이다. 들밥 배불리 먹고 시원한 그늘에 누워 노동 뒤의 꿀맛 같은 휴식을 잠시 취하며 다가올 풍년을 기다리는 옛 시인의 노래가 사라진 따뜻한 그리움을 더 할 뿐이다.

  

  

   들녘에 들밥을 내니 늙은 삽살개 뒤따르고

   푸른 숲 그늘에서 붉은 해를 피하네

   힘들여 더부룩한 악초(惡草)를 제거하고

   흔연히 배불리 먹고 긴 두둑에 누웠도다

                                                                                                     

                                                                                                2004, 6, 04

                                                                                                      

                                                                                                푸 른 바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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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태평가
2.카투리 사냥
3.울산 큰 애기
4.성주풀이
5.꽃타령
6.양산도 봄바람
7.양산도
8.능수버들
9.궁초댕기
10.몽금포 타령
11.관서천리
12.오봉산 타령
13.진도 아리랑
14.방아 타령
15.사발가
16.노래가락
17.한오백년
18.뱃노래
19.매화 타령
20.도라지 타령
21.창부 타령
22.신고산 타령
23.닐리리야
24.군밤 타령
25.노들강변
26.새타령
27.긴 아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