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 고딩 연예인과 사귄다면... <9> 이러면 안돼...

이원영2004.06.05
조회3,984


<들어가기 앞서>


글을 쓰면서 독자들이 스크롤의 압박을 심하게 받을까봐 미안했었는데

이 긴 글이 짧다고 더 길게 쓰라는 독자들의 성화로 인해서

오늘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먼저 할까 합니다

(어찌 되었든 길기만 하면 좋은 거잖우-_-...)

 

 

제가 공식적으로 이 글을 올리는 곳은 네 군데입니다

 

제 카페 ( http://cafe.daum.net/leewonyoung )

나우누리 ( http://www.nownuri.net )

웃긴대학 ( http://web.humoruniv.com )

네이트   ( http://nate.com )

 

 

웃대(웃긴대학)는 PC 통신 이후로, 그리고 ‘푸하’ 이후로 유머에 관한 한

가장 폭발적인 ‘파워’를 가진 공간이라 생각됩니다

 


이 곳은 우선 좋은 작가들이 많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작가들이 글을 쓰는 데 가장 힘이 되어 주는 것은 추천과 코멘트입니다

(돈을 내고 글을 팔지 않는 이상 독자의 응원만큼 힘 되는 게 없겠죠)

웃대는 로그인을 하지 않더라도 아이피 하나에 한 번씩 추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쉽게 추천을 해 줄 수 있고

추천이 많으면 많은 사람들이 읽게 되고

그러면 추천수는 더욱 올라가게 되고

글 쓰는 사람들은 신나서 더 열심히 글을 쓰게 됩니다

젊은 세대의 이런 열정적인 모습들이 긍정적으로 나타나게 되는 부분입니다

 


저 역시 웃대에 본격적으로 글을 쓰면서

정말 간만에 ‘현역’에 복귀한 기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예전 PC통신에서 글 쓸 때의 짜릿함이라고 할까요...

PC통신작가라는 타이틀로 아직도 현역에 남아 있는 사람들 가운데에선

거의 ‘원로작가’에 속할 저임에도 불구하고 웃대의 폭발적인 반응 때문에

가끔 페이스 조절이 안 될 때가 있을 정도입니다

 

 

나우누리의 경우엔...

나우누리는 예전 PC통신사 가운데서 가장 젊은 곳이었습니다

천리안, 하이텔 등의 유머글들이 감동이 섞인 유머가 많았다면

나우누리에는 정말 위트가 불꽃 튀기듯 일어나지 않는다면

살아남기 힘들 정도로 감각적인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이 곳은 20대 초중반 이후의 VT 세대들의 향수가 많이 남은

마지막 PC통신의 명백을 잇고 있는 ‘전설’처럼 저에게 느껴지고 있습니다...

 


사실 나우는 예전처럼 작가들에게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 되지 않습니다

이 곳의 유저들의 경우엔 대부분 VT 세대들입니다 (지금은 VT를 안 쓴다 해도)

그들은 나우누리를 거치고 간 수많은 유머작가들을 겪었고

그들의 수준 높은 유머글들에 유머를 보는 수준이 까다로워졌고

로그인을 해야만 추천을 할 수 있기에 추천에 대해 인색하게 되었고

(유료시절엔 로그인을 해야만 이용할 수 있었기에 맘만 먹으면 추천이 가능했었죠)

여러 이유로 인해 반대 기능을 잘 이용하는 유저들이라서

혹 이런저런 이유로 거슬리는 유머가 올라오면 반대를 누르기도 하는데

유머작가들로써는 추천도 적고 반대가 몇 개만 있어도 글 쓰는데 부담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유머작가들뿐 아니라 일반 유저들도 쉽게 글을 올리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나우누리에 글을 올리는 이유는...

저 역시 VT 시절의 향수를 잊지 못하는 늙은이라서 그런가 봅니다...

 


베스트유머란에 가봤자 제 글의 경우엔 양도 많기 때문에

(여긴 바이트(K)로 게시물의 양이 표시가 되거든요)

조회수도 그리 높지 않은 곳입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PC통신작가로 생각하고 살아온 저로써는

그놈의 정이 왜 이렇게 끌리는지...

나우누리만큼은 포기할 수가 없더군요...

 

 

네이트는 넷츠고와의 인연 때문에 글을 올립니다

사실, 네이트의 경우엔 게시판이 아주 잘 발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유머 게시판의 경우엔 대부분 웃대에서 퍼 온 것들이고

직접 유머작가가 글을 쓰는 경우는 아마 저 혼자라고 생각됩니다

네이트는 유머란보다는 다른 게시판들이 잘 발달되어 있죠

 


네이트의 경우엔 추천이 많아야 10개 정도이고

(사실상 추천에 대해 큰 의미가 없고 유저들 역시 추천의 기능을 염두하지 않습니다)

유저들은 네이트만 이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유머작가들의 글을 직접 보고 유머작가를 양성한다는 그런 의미보다는

그냥 재미있는 글을 퍼 오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면서 게시판을 사용합니다

 


제가 앞서 얘기했지만 네이트에 글을 올리는 이유는 스스로와 약속 때문입니다

제 소설이 처음 출판했을 때, 그리고 영화 계약을 했을 때

이곳 게시판 운영자가 신문사 섭외해 줘서 기사를 내 보내 주었고

책 출판할 때 이벤트 열어 주었고 작가방 꼭꼭 챙겨 주었었습니다

 


그 때 약속했었죠

제가 글을 쓰는 한 죽을 때까지 이 곳에 글을 올리겠다고...

 


제가 좀 구식이라서 정에 약하고 의리 이딴 거에 목을 좀 맵니다

그래서 이젠 낯설고 힘든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힘든 공간이죠... 추천도 없고 코멘트도 없고 그냥 무반응이죠...)

누가 알아주던 말던 유머 게시판에 계속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물론 제가 올리는 이곳 말고도 제 글이 많이 돌아다닐 겁니다

그러나 위에 열거한 곳 만큼은 꼭 제 손으로 올리고 싶었고

앞으로도 계속 그 공간에 글을 올리고 싶습니다

1차적인 책임은 저에게 있겠지만

독자들께서도 제가 용기를 낼 수 있도록 앞으로도 힘을 주시길 원합니다

 

 

말이 길어졌는데

오늘은 사실 평소보다 글을 빨리 올리게 되었습니다

이유는 추천과 코멘트의 압박 때문이지요

 


원래 제 나름대로의 기준은 48시간을 기준으로 해서

반응이 소극적으면 좀 늦게 올리고

반응이 적극적이면 그만큼 빨리 올리리라 다짐 했습니다

 


뭐 늦게 올리는 이유는 다른 이유가 아니라 저도 좀 쉬엄쉬엄 쓰려고 하는데

마침 핑계가 딱 되니까 천천히 올리겠다는 의미인 것이고

빨리 올리는 이유는 그만큼 반응이 적극적으로 오면

제가 그 은혜에 대한 보답을 하겠다는 사명의식이라 할 수 있죠

 

 

이번에 글을 빨리 올리게 된 이유는 나우누리와 제 팬카페 덕분입니다

나우누리는 현재 상황에선 상상할 수 없을만큼 파격적으로

저를 지지해 주셨습니다

 


마치 예전 VT 시절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전성기 나우누리 시절만큼의 조회수 대 추천 비율에 근접해 주었습니다

솔직히 감동 먹었습니다

‘선추천 후감상’이라는, 이젠 나우누리에서 잊혀졌던 말을 해 주었습니다

비록 적은 인원이라고 하나

예전의 추억을 같이 해 온 동질감으로 인해서 더 기뻤습니다

 


그리고 제 팬 카페의 게시판의 코멘트들...

아... 정말...

압박이 겁이 날 정도로 심했습니다-_-...

 


빨리 안 올리면 자살하겠다는 말까지 운운하니

그런 압박들은 제 페이스를 휘청하게끔 만들 정도였습니다

솔직히 이번 9편이 빨리 올라온 이유는 팬 카페 코멘트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웃대의 이번 압박은 솔직히 평범했습니다

아마 많은 유저들이 제 팬카페로 직접 오셔서 글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가 고딩 연예인을 연재하는 힘의 근원이 웃대였음은 분명합니다

 


연재 특성상 앞으로도 보는 사람들만 볼 것이고

제 카페와서 보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더더욱 추천수가 줄어들겠지만

솔직히 추천수가 적다고 해도 웃대의 300가까이 되는 추천수와

제가 다른 작가들처럼 꼬리말에 답글도 못 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순수한 마음으로 많은 꼬리말을 달아 주시는 웃대 독자들의 파워는...

그 모습으로만 지켜봐 주셔도 제가 힘이 날 수 밖에 없습니다

(다만 압박이 약해서 48시간 기준으로 좀 더 늦어질지도 모릅니다-_-...)

 


아...

정말 시작도 안 했는데 스크롤 엄청나게 길었죠?

 


자... 그럼 이번 회 시작해 보겠습니다

 


저번회 어디까지 했죠?

아...

범생 녀석이 고시원 앞에서 기습적인 뽀뽀를 감행한 찰라에

뒤쪽에서 꼬마 녀석이 나타났던 것까지 했죠?

그럼 이야기 계속합니다

 

 

 

<9> 이러면 안돼...

 

「아저씨!!」

 

꼬마 녀석이 어둠 속에서 갑자기 튀어 나왔다

 

「으아아악!!!」

 

순간적으로 난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아저씨야!! 여자랑 뽀뽀를 한 단 말이얏!!」

 

하면서 나의 주탱이를 주먹으로 냅다 후려 갈기는...

 


... 그런 상황이 벌어질까 봐 겁이 덜컥 났다

 


그러나...

 

「아저씨!!!」

 

꼬마 녀석이 냅다 달려와서는 그냥 나의 가슴팍에

 

「부우웅~~」

 

하고 안기는데...

 


그 힘이 너무 거세서 그만 영화 속에 나올 법한 상황이...

(그거 있자나. 둘이 안고 뱅글뱅글 도는 거...)

 


녀석을 몇 바뀌 돌리고 난 다음

아니 몇 바뀌 도는 동안 범생 녀석과 눈이 마주친 다음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범생 녀석의 엄청난 째림을 당한 다음

 

「얘, 얘야... 이제 그만...」

 

하면서 꼬마를 바닥에 내려 놓고 진정을 시키려는데

 

「아저씨 미여!!!」

 

녀석이 순간 내 가슴팍에 얼굴을 팍 묻어 버리는 게 아닌가!

 

「미여!! 미여!! 아저씨 미여!!」

 

내 가슴팍에서 바둥바둥 거리는 녀석을 멍하게 쳐다보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범생 녀석의 얼굴을 쳐다본 나는

그녀의 안경 너머로 보이는 냉정한 시선에 겁을 먹고 급히 수습에 나섰는데...

 

「아, 아니... 얘가 미, 미여...억국이 먹고 싶다고... 」

 

그러나 범생 녀석은

 

「오늘 감사했습니다」

 

차분하게 인사를 하고 고시텔로 낼름 들어가는게 아닌가...

 


아아...

마른 하늘에 날벼락도 유분수지 이게 뭔 일이란 말이냐...

 

 


꼬마녀석을 데리고 신도림역 순대타운으로 데리고 갔다

꼬마녀석 완전히 분위기 탔는지 방방 뛰어 다닌다

 

「나 순대볶음 먹을꼬에요!」


「그래 그래서 순대타운에 데리고 온 거잖아」


「순대볶음에다가 나중에 밥도 비벼서 먹을꼬에요!」


「그래 임마. 너 양 많은 줄 알고 있어 이 꿍때지야」


「아저씨랑 둘이서 많이많이 비벼 먹을 꼬에요!」


「거 녀석 하고는! 왜 애기같이 코맹맹이 소리를 내는데!」


「난 애기할꼬에요!」

 

녀석이 며칠 떨어져 있는 사이에 맛이 간 모양이다

자꾸 되도 안 되는 애기 흉내를 내면서 징징대는 게 아닌가

 

「아주머니 여기 순대볶음 2인분 주세요」

 

메뉴를 시키자 녀석이 모자챙 밑으로 날 쓰윽 올려다 보았다

 

「나 순대 3인분 먹을꼬에요~~」

 

난 녀석의 모자를 팍팍 누르며 말했다

 

「코맹맹이 소리 내지 마라. 남들이 보면 원조교제하는 줄 알겠다」


「남들이 보면 아빠랑 아기랑 온 줄 알 꼬에요~」


「허허! 니가 지금 애기 흉내 내느라고 니 상태를 모르는 모양인데

  너 키도 제법 크고 몸도 제법 크고 갑빠도... 뭐 하여튼...

  아무도 널 애기로 안 보니까 이젠 애기 흉내 내지 마라」


「난 아저씨한테는 애기 할 꼬에요」


「장가도 안 갔는데 그놈의 아저씨 소리는 그만 좀 해 줄래」


「그럼 아빠라고 부를까여?」


「이눔아! 장가도 안 갔는데 웬 아빠야!」


「이런이런... 아저씨가 패턴을 몰라서 그러는 건데요...」

 

녀석이 갑자기 내 얼굴 앞으로 자기 얼굴을 바싹 들이댔다

 

「원래 오빠가 아빠 되는 거고 아빠가 자기 되는 거고 자기가 또...」


「되써 임마! 얼른 순대나 먹어!」

 

녀석은 재밌다는 듯 내 앞에서 모자챙을 왔다갔다했다

 

「이 상황 진짜 영화 같지 않아여?」


「뭐가」


「연예인이 3류 소설가와 애정의 도피 행각을 한다...

  이야... 너무 로맨틱하다...」


「어쭈. 소설을 써라. 뭔놈의 애정도피야」


「남들이 보면 그렇게 생각할껄여?」


「그런 생각은 너나 나나 눈꼽만큼도 없으니까 순대나 드시지요」


「허허... 왜 그렇게 생각하죠?」


『당연하지. 우선 니가 날 좋아할 이유가 없잖아

  니 말대로 너는 잘 나가는 연예인이고 나는 그냥 3류 소설가고

  난 잘 생기지도 않았고 나이도 많고 한 마디로 별 볼 일 없고

  그리고 딱 하루 같이 있었는데 뭔놈의 애정이 생기냐」


「아저씬 정말 로맨틱하고는 상극인가 봐

  원래 여고생들은 영화같은 사랑을 꿈꾸는 거라구여」


「그 영화라는 게 임마 그림같이 잘 생긴 남자가 상대역이 되야 하는 거지」


「어이구. 내 주위엔 그림같이 생긴 남자는 쎄고 쎘어여

  그래서 걔네들 실체도 아주 뼈져리게 잘 알고 있구여」


「알았다 임마. 그럼 앞으로도 계속 소설 혼자 쓰고 난 빼 주라

  난 먹고 사는 문제로 괴로운 사람이야

  괜히 꼬마의 사랑타령에 놀아날 시간이 없다구」


「놀아난다구여?」

 


녀석이 갑자기 발끈한다

그리고는 ‘휴우~’ 하고 한숨을 쉬고는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왜  젊은놈이 한숨이야」


「......」

 

녀석이 또 삐졌나 보다...

아 정말...

질풍노도의 시기의 감성들은 이래서 피곤하다니까...

 

 

「천천히 먹어라」


녀석이 걸신들은 것처럼 순대를 먹는다. 아니 꾸역꾸역 집어 넣는다

 

「천천히 먹어. 그러다 체한다」

 

녀석이 휙 쳐다보며 뭐라 중얼거린다

입에서 잔뜩 들어 있어서 잘 안 들리지만

아마 ‘남이사 체하든 말든’ 인 듯 하다

 


그래!

니 좋을대로 해라 이 변덕쟁이 심술쟁이 지지배야!

체하면 니가 체하지 내가 체하냐!

 

 


「후두둑!」


밖에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비 온다. 빨리 먹고 집에 가라」

 

녀석은 심퉁심퉁 거리면서 중얼거린다

 

「내가 머 여기 순대볶음 먹으러 왔나

  자기 걱정 되서 온 거지」

 

또 또 중얼거린다 저놈의 지지배...

 

「난 전화 목소리 듣고 놀래 가지고 전화 수소문 해서 간신히 왔더만

  자기는 멀쩡한 얼굴로 여자랑 데이트도 하더만」


「데, 데이트는 뭔 놈의 데이트야...

  그, 그냥 영화 보자고 해서 영화 보고 온 건데...」


「호오~ 요즘엔 영화 보는 건 데이트가 아니라 노가다인가 보져?

  그리고! 영화만 봤게써! 밥도 먹었겠지!

  밥은 순대볶음 먹었게써! 근사한 거 먹었겠지!」

 


우어어어어...

녀석의 추리력은 정말 대단하구나...

 

「아저씨 그런 놀란 눈으로 보지 말아여

  속으로 또 이 녀석이 어떻게 알았지 하고 생각했져?

  그런 걸 말 해야 하는 사람은 아저씨밖에 없다구여」


「아, 알았다... 하여튼 그건 오해니까...」


「오호~~ 오해~~」


「됐어 임마! 뭔가 다 안다는 그런 눈빛은 위험한 거야!

  자 어서 가자! 비 많이 온다」

 

 


녀석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비가 제법 쏟아졌다

 

갑자기 내린 비라 당황한 시민들이 많았는데

언제나 그렇듯 어디선가 나타난 우산장수가 정류장 앞에서 우산을 팔고 있었다

 

「자. 이거 쓰고 집에 가라」

 

녀석에게 우산을 들려 주니까 녀석이 날 휙 쳐다본다

 

「나 이런 거 안 써여」


「이런 거라니?」


「난 메이커 우산 아니면 안 쓴다구여」


「이눔의 자식! 어디서 못 된 것만 배워서! 빨리 우산 써!」


「싫어여! 난 이런 우산 안 쓴다구여!」

 

녀석이 우산을 팽개치고 그냥 빗 속을 걷는 게 아닌가!

저런저런 싸가지 없는 기지배 같으니라구!

기껏 우산을 사 줬더니 그냥 버리고 간단 말이야!

 

「야 임마! 너 거기 안 서!」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주변 사람들이 전부 쳐다본다

할 수 없이 난 녀석이 팽개친 우산을 들고 녀석의 뒤를 쫓았다

 

「우산 쓰고 가라」


「싫다니까여」


「그럼 그냥 비 맞고 갈 꺼냐」


「......」


「알았다. 그럼 내가 택시 잡아 줄 테니까 일단 잠깐만 쓰자」

 

녀석은 내가 우산을 씌워 주자 슬쩍 몸을 밖으로 뺀다

 

「거 녀석!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는 건데!」

 

또 다시 목소리가 커지려고 하자 녀석이 잽싸게 우산 안으로 들어왔다

 

「그놈의 소리 좀 지르지 마여. 무슨 기차 화통을 삶아 먹었나 봐」


「기차 화통? 너 그런 말도 아냐?」


「이봐여 아저씨. 나 이래뵈도 상당히 구식여자란 말이에여

  문화도 오래된 문화 좋아하고 남자도 구식남자 좋아한다구여」


「알았다. 그러니까 택시 타고 얼른 집에 가라

  구식 여자애들은 밤거리보다는 포근한 집을 더 사랑한단다」


「아저씨」

 

녀석이 모자챙을 가만히 들고 날 쳐다본다

 

「나 아저씨네 집에서... 자고 가면 안 되여...?」

 

녀석의 모자챙 끝으로 빗물이 또르르 굴려 내려온다...

그리고 녀석의 속눈썹 끝에도 물이 고여 있다...

이럴 때의 녀석의 눈은 정말...

가슴이 아려올 정도로 눈부시다...

 


난 녀석의 모자챙에 가만히 손을 올렸다

그리고는 머리 깊숙이 쑥 눌렀다

 

「그런 소리 하면 아저씨 경찰서에 잡혀 간다

  아저씨는 법을 지키고 싶거든. 좀 더 큰 다음에 와라. 지금은 안 된다」


「아저씨이~~」


「아무리 그래도 안 된다」


「저번에도 같이 잤잖아여」


「그 때는 정말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었고 지금은 안 된다. 빨리 가라」


「아저씨 왜 그래여? 아저씨 남자 아니에여?

  여자가 같이 자자는데 왜 안 된다는 거에여?」


「이눔아! 니가 미성년자가 아니면 같이 자자고 말 안 해도 내가 보쌈을 해 간다!

  나도 여자 좋아하고 지금도 잘 때는 고시텔 방 문 열어 놓고...

  하여튼! 안 돼! 빨랑 가!」


「아까 그 언니 때문에 그러는 거져!? 이 바람둥이 아저씨야!」


「뭐 임마?!」


「그 언니랑 뽀뽀 하는 거 내가 못 본 줄 알아욧!!

  그 언니가 팔뚝에 매달려 오는 거 못 본 줄 알아욧!!

  얼마나 지났다고 그 새 여자가 생겨욧!!」


「내가 생겼건 말건 니가 뭔 상관인데! 니가 내 마누라라도 되냐!」


「그래! 내가 니 마누라다!」


「아쭈! 이 놈이 이제 막 가자는 거지!」


「그래! 막 간다!」

 

 

어느 덧 폭포처럼 쏟아지는 비 속에서...

모든 사람들이 바쁜 발걸음으로 사라져 가는 그 거리에서...

꼬마녀석과 나는 내리는 비 고스란히 다 맞으면서...

씩씩거리고 서로를 노려보고 서 있었다...

 

「됐다... 니 맘대로 해라...」

 

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는 녀석 발 밑에 우산을 던졌다

 

「쓰고 가던지 말던지 니 맘대로 해

  난 너처럼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은 모르니까」


난 녀석을 뒤로 하고 성큼성큼 고시텔로 걸어갔다

뒤를 한 번도 안 돌아보고

빠른 걸음으로 고시텔로 돌아왔다

 


「에이 정말!」

 

사무실에 들어 온 나는 젖은 채로 털썩 의자에 주저 앉았다

그리고

씻을 생각도 못 하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정말 저 녀석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왜 가슴이 아파 오는 느낌인지...

 


더 이상 저 녀석을 만나면 안 될 거 같은 생각이 든다...

저 녀석을 더 이상 만났다가는...

나도 내가 무슨 짓을 할 지를 모르겠다...

 

 


얼마나 앉아 있었을까...

OL 한 명이 급한 발걸음으로 고시텔로 뛰어 들어온다

 

「늦었습니다~~」

 

OL 이 날 보면서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시계를 보았다

벌써 12시가 넘어 있었다

 

「비 아직도 많이 옵니까?」


「네. 엄청나게 쏟아져요」

 

OL 은 우산을 썼음에도 비에 많이 젖어 있었다

그녀는 급한 걸음으로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비가 많이 온다...

녀석...

집에 잘 돌아갔을까...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그러고 보니까...

범생 녀석도 마음에 걸린다...

 


범생 녀석 역시 오늘 큰 일을 겪었는데

그 녀석 마음은 괜찮으려나...

 

 


이런 저런 잡생각으로 머리가 아파오는데...

 

「때르르릉... 때르르릉...」

 

갑자기 전화가 온다

지금 시간에 전화가 올 리 없는데...

 

난 고개를 갸웃거리며 전화를 받았다

 

「고시텔입니다」

 

전화기 밖에서는 아무런 말이 없다

 

「여보세요? 말씀 하십시오」


「......」


「여보세요? 여보... 너 혹시 꼬마냐...?」


「......」


「꼬마냐? 너 꼬마지? 너 어디야?」


「......」


「집에 들어 간 거야? 꼬마? 대답해 봐」


「......」

 

수화기에선 가날픈 숨소리만 들려왔다

 

「꼬마!! 대답해 보라고 임마!!」


「......」


「너 뭐야!! 지금 어디야!!」


「아저씨...」

 

역시 꼬마였다...

 

「그래! 너 지금 어디야!」


「아저씨...」

 

녀석이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저씨... 나 추워... 무서워여...」


「......」

 

숨이 멎을 것 같았다...

녀석의 목소리는...

 

「기다려! 움직이지 말고 그 자리에서 기다려!」

 

난 전화를 팽개치고 밖으로 뛰어 나갔다

 


「쏴아아아아!!」

 

마치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난 녀석과 아까 헤어진 곳으로 뛰어갔다

 

「꼬마!! 어딨냐!!」

 

급한 마음에 녀석을 부르며 마구 달렸다

어두운 골목은 인적이 없이 텅 비어 있었다

이 비엔 도둑 고양이도 한 마리 없을 거 같았다

 

그런데...

 

「아저씨...」

 

꼬마 녀석이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서 날 쳐다보는 게 아닌가...

 

「야 임마!!」

 

녀석은 날 보더니 힘없이 바닥에 쓰러진다

 

「임마!!」

 

녀석을 얼른 일으켜 앉았다

 

「아저씨...

  나 춥구... 무서워서...」


「괜찮아... 아저씨 왔잖아...」


「아저씨... 아저씨...」

 

녀석이 날 보면서 희미하게 웃는다...

녀석을 꼭 끌어 안았다

녀석이 귀에다 대고 작게 속삭인다

 

「나 오늘 아저씨한테 가서... 잘 거에여...」


「알았어. 알았다구...」

 

하늘에선 하염없이 빗줄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마치...

우리 두 사람의 앞길을 예고라고 하는 것처럼...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