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변하지 않는 건 없다 늘 북적거리던 MIB(Masters Interspace Being: 지구 거주 외계인 관리기관) 내부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모인 곳은 전면의 모니터였다. 알아보지 못할 문자들이 어지럽게 나열되는가 싶더니 이내 지구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화성의 제 7후보자를 귀환시키라. 화성의 새로운 통치자가 명령한다. 지구 시간으로 일주일 뒤까지 보내지 않으면 지구를 적으로 간주, 발포하겠다. 다시 한번 알린다. 전대 지도자의 제 7후보를 즉각 송환하라. 화성의 새로운 통치기구는 지구와 우호관계를 유지하고자 한다. 이에 불응할 시 지구는 화성과의 전면전에 돌입하게 될 것이다. 심각한 얼굴로 의자에 깊숙이 등을 묻고 있던 사내가 벌떡 일어났다. “관장님, 어떻게 할까요?” 조심스레 묻는 검은 양복의 남자에게 관장은 이마를 찌푸렸다. “우리 선에서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과 핫라인을 연결해라. 내가 직접 말씀드리겠다. 뭘 넋을 놓고 있나? 각자 자리로 돌아가라. 이 일은 극비에 부친다.” “연결되었습니다.” “각하, 지급(至急: 아주 급함)사항입니다. 화성에 쿠데타가 일어나 군부가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새로운 통치자는 현재 지구에 파견되어 있는 제 7후보를 송환하지 않을 시 선전포고하겠다고 합니다.” 관장의 미간에 깊은 골이 패였다. “한국에 있습니다. 네, 제가 직접 가겠습니다. 아직 지구는 화성과 전쟁을 할만한 수준이 아닙니다. 네,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거칠게 전화기를 내려놓은 관장은 길게 한숨을 쉬고 옆에서 눈치를 보는 보좌관을 바라보았다. “한국으로 간다. 한국 MIB지부에 연락하라.” ********************************* “너 솔직히 말해.” “뭘?” “오늘 유진이 만나기로 했지? 나도 갈래.” ‘여우같은 것. 어떻게 알았지? 돈도 없는데... 이건 꼭 비싼 데로만 다닌단 말야. 자존심상 돈없다는 소린 하기 싫고... 어쩔수 없다. 따돌려야지.’ “아냐, 나 오늘 오빠 심부름으로 용산에 가.” “유진이랑 같이 가는 거잖아.” “아닌데. 걔네 아직 시험 안 끝났대서 혼자 가거든. 같이 갈래?” “됐어. 유진이도 없는데 용산까지 뭐하러 가니?” ‘그럼 그렇지. 못 된 것, 유진이밖에 안중에 없다 이거지?’ “근데 말야, 너 정말로 유진이 안 좋아해? 요즘 너랑 유진이 분위기가 좀 이상하던데.” “걔랑 나 사이에 분위기 씩이나? 그런 거 없다.” “아님 다행이고. 친구랑 남자 때문에 얼굴 붉히기 싫거든. 아, 맞다. 나 오늘 차 나와. 나중에 시승식이나 한번 하자.” 저만치 달아나는 미진의 뒷모습을 보며 윤은 혀를 끌끌 찼다. “진짜 너무하네. 그나저나 차도 사고 좋겠다. 아, 난 언제 차 한번 몰아보나?” * 거미집처럼 빽빽이 들어찬 건물을 비집고 다니다가 겨우 한이 지정한 가게를 찾은 윤과 유진은 이미 녹초가 되어 있었다. 지하철역으로 가는 도중에 둘은 결국 길거리에 주저앉았다. “다리 너무 아파. 괜히 굽 있는 신 신고 왔나봐. 좀 쉬었다 가자.” “그러는 게 좋겠다.” “힘들다...” “배도 고프구나.” “그러게. 미안해, 아까 마우스만 안 샀어도... 딱 차비밖에 안 남았어.” “무슨 일인지 이 달 지원금이 안 왔다고 세진이도 용돈 못 준다고 하더구나.” 겸연쩍음에 슬그머니 딴청을 부리던 윤이 갑자기 유진의 옷소매를 붙잡았다. “저거 진짜 맛있어 보이지 않냐?” 윤이 가리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유진은 순간 넋을 잃었다. 길거리에 있는 포장마차에 수북이 쌓여있는 먹거리들. 특히나 유진의 눈을 끈 건 일명 ‘만득이 핫도그’. 단돈 천원으로 한끼 식사를 해결하고도 남을만한 경제성을 자랑하는 대용량 군것질거리다. 유진의 입가로 침이 흘러나왔다. “유진아, 침 나온다.” 윤이 슬쩍 유진의 입가를 훔쳐 주었다. “너도 나온다.” 윤과 유진은 그렇게 서로의 침을 닦아주면서 하염없이 핫도그를 바라봤다. ‘지금 수중에 있는 돈은 딱 천삼백원. 집에까지 가는 지하철비는 칠백원이다. 그러면 육백원이 남는군. 핫도그는 천원. 깎아달라면 깎아줄까? 아니, 40%를 깎아달라는 건 무리가 있다. 하지만...’ 유진은 핫도그에서 여전히 눈을 떼지 못하는 윤을 다시 한번 보고 비장한 결심을 했다. ‘그래, 저렇게 먹고 싶어 하는데... ’ “하나는 살 수 있다.” “정말?” 좋아라 포장마차로 달려가는 윤의 뒷모습을 유진은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윤의 몸 전체에서 행복이 뿜어져 나온다. 늘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윤의 곁에 있으면 무기물처럼 가라앉아 있던 유진의 잔잔한 마음에도 파랑이 일었다. “이거 하나 주십시오.” “아냐, 이거요, 이거. 이게 더 커. 케찹이랑 설탕이랑 다 뿌려주세요. 많이요.” 얼굴만큼이나 큰 핫도그를 들고 윤과 유진은 사이좋게 한 입씩 나눠 먹었다. “너무 많이 베지 마.” “아까 네가 먹은 것보다 작다.” “거짓말. 헉, 벌써 다 먹었네.” 물끄러미 손에 든 빈 막대를 쳐다보는 윤의 눈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에이, 얼른 집에 가서 밥 먹어야겠다.” “먼저 가거라. 난 학교에 들러야 한다.” “갑자기 학교는 왜?” “시험볼 책을 놓고 왔다.” 난생 처음 거짓말을 한 유진은 집으로 가는 윤을 배웅하고 쓸쓸히 지하철역을 나왔다. ‘네시간이면 되려나...’ ******************************** 저녁을 먹고 유진의 집에 간 윤은 아직 유진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서관에 있나? 밥도 안 먹고 도서관에 있을 리가 없는데.” 돌아서 집으로 향하던 윤의 발걸음이 낯익은 형체를 발견하고 멈췄다. ‘헛, 저건 유진이랑 미진이잖아? 왜 쟤들 둘이...’ 윤은 조심스럽게 유진의 대문옆 골목으로 몸을 숨기고 빼꼼히 눈만 내밀어 두 사람을 훔쳐봤다. “오늘 고마웠다.” “같은 방향인데, 뭐.” “그럼 들어간다.” “잠깐만.” 미진은 잽싸게 유진의 팔을 잡더니 기습 뽀뽀를 했다. “이건 차비야.” 생긋 웃은 미진은 돌아서 차로 가다가 멍하니 서 있는 유진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 “이런 우연을 사람들은 인연이라고 해.” 유진은 미진이 뽀뽀한 볼에 손을 대고 미진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 있었다. ‘저, 저 자식... 뭘 그렇게 멍청하게 서 있는 거야? 얼른 들어가. 김유진, 너도 남자는 남자구나. 그게 그렇게 좋으냐? 나도 해 줄 수 있는데... 헉,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윤은 골목에 숨어서 혼란스러운 머리를 움켜쥐었다. ‘이것들이 나 몰래 만난 건가? 유진이 녀석, 도서관에 간다더니... 근데 나 왜 이렇게 화가 나지?’ 유진이 들어간 후에도 윤은 벌렁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한참을 어두운 길에 서 있었다. 붉은 색 고운 노을이 어스름한 어두움으로 변해 갈 때까지 꼼짝 않고 서 있던 윤은 결국 고개를 푹 수그린 채로 집으로 들어갔다. “이런 것 따위...” 책상 위, 유진이 사 준 목걸이가 눈에 띄자 윤은 그것을 움켜쥐었다. “내가 바보였어. 이런 거에 그렇게 혹해서 헬렐레... 사실 유진이는 아무 생각도 없었을 건데.” 생각할수록 가슴이 아프다. 윤의 머리에는 자꾸 미진의 다정한 말과 눈, 그리고 뽀뽀를 받고 정신이 나가버린 유진의 얼굴만 떠올랐다. ‘그 동안 만나고 있었던 건가? 하긴... 예쁘고 애교많고 돈도 많은 미진이를 어떤 남자가 싫어하겠어?’ 둘이 같이 있는 모습은 자연스럽고 잘 어울렸다. 그 생각이 더욱 윤을 슬프게 했다. “난 8살 때부터 같이 있었어도 몰랐는데. 유진이가 얼마나 순수하고 다정한지... 나는 몰랐었는데...” 가슴 속에서 불덩이가 치밀어 오른다. 그것이 슬픔인지 분노인지도 모른 채 윤은 들고 있던 목걸이를 창밖으로 던져 버렸다. “필요없어, 이딴 거!” 그리고 윤은 침대에 파묻혔다.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서 그냥 이대로 한숨 자고 싶었다. 자고나면 모든 일이 다 해결되어 있으리라는 헛된 희망을 품고 윤은 눈을 감았다. “아, 도저히 신경쓰여서 못 자겠네.” 잠시 후 벌떡 일어난 윤은 밖으로 뛰어나갔다. “내 목걸이... 어디 있지?” 홧김에 던지기는 했지만 도저히 그대로 버릴 수가 없었다. 윤은 그 목걸이를 사주던 유진을 기억했다. 유진이는 말을 안 했지만 윤은 그것이 유진의 일주일치 용돈이었다는 것도, 그래서 그 동안 세진 몰래 서투른 솜씨로 도시락을 쌌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미안해... 그걸 내가 버리다니... 평생 소중하게 간직하겠다고 약속해 놓고.” 윤은 울면서 집 부근, 목걸이가 떨어졌을법한 장소를 샅샅이 뒤졌다. 불안한 마음이 두근두근 고동쳤다. “못 찾으면 어떡하지? 안 돼. 찾아야 해. 유진이가 사 준 거란 말야... 제발 나타나.” 안타까움과 불안, 그리고 미안함... 윤은 계속해서 집주변을 뒤졌지만 목걸이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먼동이 터 오는 새벽 으스름 앞에 결국 윤은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어떡해... 어떻게 해... 없어. 아무리 뒤져도 없어... 유진아, 미안해... 정말 미안해...” 밤새 땅바닥을 헤집고 다닌 윤의 온 몸은 새카맣게 더러워져 있었다. 얼굴이며 손에 묻은 먼지와 흙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윤은 길거리에 쭈그리고 앉아 계속 눈물을 흘렸다. “저기요... 어디 아파요?” 신문배달을 하던 소년이 윤의 앞으로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윤은 흐린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잃어버렸어... 그러면 안 되는 건데 내가 버렸어요... 밤새 찾았는데 나오질 않아. 어디로 가버린 걸까? 내가 버려서... 그래서 벌을 받는 건지도 몰라...” 다시 눈물이 흘렀다. 아이가 윤의 손을 잡더니 품에서 우유를 하나 꺼내 쥐어주었다. “이거 마셔요... 기운내고. 어디 연락할 데는 있어요?” “윤아? 너 거기서 뭐 하니?” 눈이 휘둥그레진 온이 새카맣게 더러워진 윤을 보고 놀라 달려왔다. “오빠... 흑흑...” “이자식! 너 뭐야? 너 무슨 짓을 한 거야?” “네? 저요?” “그래, 너 오늘 내 손에 죽어봐라.” 난데없이 멱살을 잡힌 신문배달소년은 버둥거렸다. 착한 일 한번 하려다가 된통 잘못 걸렸다. ‘이래서 사람들이 점점 남의 일에 무관심해지는 거라고!’ 그러나 슬프게도 소년의 마음 속 외침은 온의 귀에 닿지 않았다. “아니예요! 아니라니까요!” “오빠... 흑흑... 그런 게... 아니라...” “시끄러워! 너같은 자식들은 맞아야 돼!” “아니라니까요!” 소년의 절규는 조용한 새벽의 주택가에 오래도록 울렸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닐리리님, 와아, 축하합니다! 일등이시군요! 선물로 드릴 것은... 없지만... 저의 마음을 듬뿍 드립니다. ㅎㅎㅎ 받기 싫으셔도 드릴 거예욥. 윤이랑 유진이도 마음을 드린다네요. ^^ 애들이 좀 빈곤해서..;; 글램님, 헉, 8시 20분인데 벌써 회사세요? *_* 놀라와라~ 전 죽어도 아침형 인간은 못 될 위인이라... 아침부터 부지런하신 분들을 보면 감탄만 나온답니다. 좋은아이님, 둘이 잘 될까요, 안 될까요? ^^ 앞으로 계속 보시면 그 답을 알 수 있답니다. 그때까지 계속 윤이랑 유진이 지켜 봐 주세요. ^^ wcat님, 아아, 그런 칭찬을... 님 최고! ㅋㅋㅋ 바기는 칭찬을 먹고 자라요. 근데 왜 키는 안 크고 옆으로 퍼져만 가는지..ㅠ.ㅠ sOda님, 님 강아지는 분노가 아니라 슬픔을 느낄 거예요. 줄까 말까 장난치는 주인이라니... 강아지가 너무 불쌍해요! 비야님, 아아, 감사합니다. 히죽. 칭찬만 받으면 입이 안 다물어지는 심각한 불치병이 있거든요. 앞으로도 칭찬받을 수 있는 글 쓰도록 홧팅해 주세요. ^^ 봄꽃님, 어떤 사랑이건 사랑은 다 같은 마음일 겁니다. 유진이도 윤이도 빨리 깨달으면 좋으련만... 그렇죠? ^^ 바다님, 아아, 뭐라고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아직 말씀드릴 수가 없는 ㅠ.ㅠ 주말에 최대한 많이 올릴께요. 보시고나서 다시 이야기해요. ^^ 초코초코님, 인간은 복잡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굉장히 단순할지도 몰라요. 물은 한곳으로 흐른다는 말이 있죠. 인간의 감정도 깊은 곳에선 하나로 귀결되지 않나 생각한답니다. ^^ 윤이가 화성인이 되기엔 좀 무리가;; 화성인은 윤이처럼 단순솔직하면 안 되는데..^^ coco님, 오랜만에 인사드리네요 ^^ 그러게 자주 좀 오시지. ㅋㅋㅋ 농담입니다. 사실 제가 저번에 그런 말씀드려서 찔린다는 분들 많으셨는데요. 그거 그냥 이 작가가 어리광을 피우는구나, 정도로 이해해 주세요. ^^;; 짱마님, 먹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데요! *_*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바로 먹을 거예요. (진지) 아, 먹을 것 이야기하니까 배고픕니다. 바기는 이제 밥먹으러 가요. ^^
#15 화성에서 온 왕자님
15. 변하지 않는 건 없다
늘 북적거리던 MIB(Masters Interspace Being: 지구 거주 외계인 관리기관) 내부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모인 곳은 전면의 모니터였다.
알아보지 못할 문자들이 어지럽게 나열되는가 싶더니 이내 지구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화성의 제 7후보자를 귀환시키라. 화성의 새로운 통치자가 명령한다.
지구 시간으로 일주일 뒤까지 보내지 않으면 지구를 적으로 간주, 발포하겠다.
다시 한번 알린다. 전대 지도자의 제 7후보를 즉각 송환하라.
화성의 새로운 통치기구는 지구와 우호관계를 유지하고자 한다.
이에 불응할 시 지구는 화성과의 전면전에 돌입하게 될 것이다.
심각한 얼굴로 의자에 깊숙이 등을 묻고 있던 사내가 벌떡 일어났다.
“관장님, 어떻게 할까요?”
조심스레 묻는 검은 양복의 남자에게 관장은 이마를 찌푸렸다.
“우리 선에서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과 핫라인을 연결해라.
내가 직접 말씀드리겠다. 뭘 넋을 놓고 있나? 각자 자리로 돌아가라. 이 일은 극비에 부친다.”
“연결되었습니다.”
“각하, 지급(至急: 아주 급함)사항입니다.
화성에 쿠데타가 일어나 군부가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새로운 통치자는 현재 지구에 파견되어 있는 제 7후보를 송환하지 않을 시 선전포고하겠다고 합니다.”
관장의 미간에 깊은 골이 패였다.
“한국에 있습니다. 네, 제가 직접 가겠습니다.
아직 지구는 화성과 전쟁을 할만한 수준이 아닙니다.
네,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거칠게 전화기를 내려놓은 관장은 길게 한숨을 쉬고
옆에서 눈치를 보는 보좌관을 바라보았다.
“한국으로 간다. 한국 MIB지부에 연락하라.”
*********************************
“너 솔직히 말해.”
“뭘?”
“오늘 유진이 만나기로 했지? 나도 갈래.”
‘여우같은 것. 어떻게 알았지? 돈도 없는데...
이건 꼭 비싼 데로만 다닌단 말야. 자존심상 돈없다는 소린 하기 싫고...
어쩔수 없다. 따돌려야지.’
“아냐, 나 오늘 오빠 심부름으로 용산에 가.”
“유진이랑 같이 가는 거잖아.”
“아닌데. 걔네 아직 시험 안 끝났대서 혼자 가거든. 같이 갈래?”
“됐어. 유진이도 없는데 용산까지 뭐하러 가니?”
‘그럼 그렇지. 못 된 것, 유진이밖에 안중에 없다 이거지?’
“근데 말야, 너 정말로 유진이 안 좋아해?
요즘 너랑 유진이 분위기가 좀 이상하던데.”
“걔랑 나 사이에 분위기 씩이나? 그런 거 없다.”
“아님 다행이고. 친구랑 남자 때문에 얼굴 붉히기 싫거든.
아, 맞다. 나 오늘 차 나와. 나중에 시승식이나 한번 하자.”
저만치 달아나는 미진의 뒷모습을 보며 윤은 혀를 끌끌 찼다.
“진짜 너무하네. 그나저나 차도 사고 좋겠다.
아, 난 언제 차 한번 몰아보나?”
*
거미집처럼 빽빽이 들어찬 건물을 비집고 다니다가
겨우 한이 지정한 가게를 찾은 윤과 유진은 이미 녹초가 되어 있었다.
지하철역으로 가는 도중에 둘은 결국 길거리에 주저앉았다.
“다리 너무 아파. 괜히 굽 있는 신 신고 왔나봐. 좀 쉬었다 가자.”
“그러는 게 좋겠다.”
“힘들다...”
“배도 고프구나.”
“그러게. 미안해, 아까 마우스만 안 샀어도... 딱 차비밖에 안 남았어.”
“무슨 일인지 이 달 지원금이 안 왔다고 세진이도 용돈 못 준다고 하더구나.”
겸연쩍음에 슬그머니 딴청을 부리던 윤이 갑자기 유진의 옷소매를 붙잡았다.
“저거 진짜 맛있어 보이지 않냐?”
윤이 가리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유진은 순간 넋을 잃었다.
길거리에 있는 포장마차에 수북이 쌓여있는 먹거리들.
특히나 유진의 눈을 끈 건 일명 ‘만득이 핫도그’.
단돈 천원으로 한끼 식사를 해결하고도 남을만한 경제성을 자랑하는 대용량 군것질거리다.
유진의 입가로 침이 흘러나왔다.
“유진아, 침 나온다.”
윤이 슬쩍 유진의 입가를 훔쳐 주었다.
“너도 나온다.”
윤과 유진은 그렇게 서로의 침을 닦아주면서 하염없이 핫도그를 바라봤다.
‘지금 수중에 있는 돈은 딱 천삼백원. 집에까지 가는 지하철비는 칠백원이다.
그러면 육백원이 남는군. 핫도그는 천원. 깎아달라면 깎아줄까?
아니, 40%를 깎아달라는 건 무리가 있다. 하지만...’
유진은 핫도그에서 여전히 눈을 떼지 못하는 윤을 다시 한번 보고 비장한 결심을 했다.
‘그래, 저렇게 먹고 싶어 하는데... ’
“하나는 살 수 있다.”
“정말?”
좋아라 포장마차로 달려가는 윤의 뒷모습을 유진은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윤의 몸 전체에서 행복이 뿜어져 나온다.
늘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윤의 곁에 있으면
무기물처럼 가라앉아 있던 유진의 잔잔한 마음에도 파랑이 일었다.
“이거 하나 주십시오.”
“아냐, 이거요, 이거. 이게 더 커. 케찹이랑 설탕이랑 다 뿌려주세요. 많이요.”
얼굴만큼이나 큰 핫도그를 들고 윤과 유진은 사이좋게 한 입씩 나눠 먹었다.
“너무 많이 베지 마.”
“아까 네가 먹은 것보다 작다.”
“거짓말. 헉, 벌써 다 먹었네.”
물끄러미 손에 든 빈 막대를 쳐다보는 윤의 눈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에이, 얼른 집에 가서 밥 먹어야겠다.”
“먼저 가거라. 난 학교에 들러야 한다.”
“갑자기 학교는 왜?”
“시험볼 책을 놓고 왔다.”
난생 처음 거짓말을 한 유진은 집으로 가는 윤을 배웅하고 쓸쓸히 지하철역을 나왔다.
‘네시간이면 되려나...’
********************************
저녁을 먹고 유진의 집에 간 윤은
아직 유진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서관에 있나? 밥도 안 먹고 도서관에 있을 리가 없는데.”
돌아서 집으로 향하던 윤의 발걸음이 낯익은 형체를 발견하고 멈췄다.
‘헛, 저건 유진이랑 미진이잖아? 왜 쟤들 둘이...’
윤은 조심스럽게 유진의 대문옆 골목으로 몸을 숨기고 빼꼼히 눈만 내밀어 두 사람을 훔쳐봤다.
“오늘 고마웠다.”
“같은 방향인데, 뭐.”
“그럼 들어간다.”
“잠깐만.”
미진은 잽싸게 유진의 팔을 잡더니 기습 뽀뽀를 했다.
“이건 차비야.”
생긋 웃은 미진은 돌아서 차로 가다가 멍하니 서 있는 유진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
“이런 우연을 사람들은 인연이라고 해.”
유진은 미진이 뽀뽀한 볼에 손을 대고 미진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 있었다.
‘저, 저 자식... 뭘 그렇게 멍청하게 서 있는 거야? 얼른 들어가.
김유진, 너도 남자는 남자구나. 그게 그렇게 좋으냐?
나도 해 줄 수 있는데... 헉,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윤은 골목에 숨어서 혼란스러운 머리를 움켜쥐었다.
‘이것들이 나 몰래 만난 건가? 유진이 녀석, 도서관에 간다더니...
근데 나 왜 이렇게 화가 나지?’
유진이 들어간 후에도 윤은 벌렁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한참을 어두운 길에 서 있었다.
붉은 색 고운 노을이 어스름한 어두움으로 변해 갈 때까지
꼼짝 않고 서 있던 윤은 결국 고개를 푹 수그린 채로 집으로 들어갔다.
“이런 것 따위...”
책상 위, 유진이 사 준 목걸이가 눈에 띄자 윤은 그것을 움켜쥐었다.
“내가 바보였어. 이런 거에 그렇게 혹해서 헬렐레...
사실 유진이는 아무 생각도 없었을 건데.”
생각할수록 가슴이 아프다.
윤의 머리에는 자꾸 미진의 다정한 말과 눈,
그리고 뽀뽀를 받고 정신이 나가버린 유진의 얼굴만 떠올랐다.
‘그 동안 만나고 있었던 건가? 하긴...
예쁘고 애교많고 돈도 많은 미진이를 어떤 남자가 싫어하겠어?’
둘이 같이 있는 모습은 자연스럽고 잘 어울렸다.
그 생각이 더욱 윤을 슬프게 했다.
“난 8살 때부터 같이 있었어도 몰랐는데.
유진이가 얼마나 순수하고 다정한지... 나는 몰랐었는데...”
가슴 속에서 불덩이가 치밀어 오른다.
그것이 슬픔인지 분노인지도 모른 채 윤은 들고 있던 목걸이를 창밖으로 던져 버렸다.
“필요없어, 이딴 거!”
그리고 윤은 침대에 파묻혔다.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서 그냥 이대로 한숨 자고 싶었다.
자고나면 모든 일이 다 해결되어 있으리라는 헛된 희망을 품고 윤은 눈을 감았다.
“아, 도저히 신경쓰여서 못 자겠네.”
잠시 후 벌떡 일어난 윤은 밖으로 뛰어나갔다.
“내 목걸이... 어디 있지?”
홧김에 던지기는 했지만 도저히 그대로 버릴 수가 없었다.
윤은 그 목걸이를 사주던 유진을 기억했다.
유진이는 말을 안 했지만 윤은 그것이 유진의 일주일치 용돈이었다는 것도,
그래서 그 동안 세진 몰래 서투른 솜씨로 도시락을 쌌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미안해... 그걸 내가 버리다니... 평생 소중하게 간직하겠다고 약속해 놓고.”
윤은 울면서 집 부근, 목걸이가 떨어졌을법한 장소를 샅샅이 뒤졌다.
불안한 마음이 두근두근 고동쳤다.
“못 찾으면 어떡하지? 안 돼. 찾아야 해. 유진이가 사 준 거란 말야... 제발 나타나.”
안타까움과 불안, 그리고 미안함...
윤은 계속해서 집주변을 뒤졌지만 목걸이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먼동이 터 오는 새벽 으스름 앞에 결국 윤은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어떡해... 어떻게 해... 없어. 아무리 뒤져도 없어...
유진아, 미안해... 정말 미안해...”
밤새 땅바닥을 헤집고 다닌 윤의 온 몸은 새카맣게 더러워져 있었다.
얼굴이며 손에 묻은 먼지와 흙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윤은 길거리에 쭈그리고 앉아 계속 눈물을 흘렸다.
“저기요... 어디 아파요?”
신문배달을 하던 소년이 윤의 앞으로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윤은 흐린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잃어버렸어... 그러면 안 되는 건데 내가 버렸어요...
밤새 찾았는데 나오질 않아. 어디로 가버린 걸까?
내가 버려서... 그래서 벌을 받는 건지도 몰라...”
다시 눈물이 흘렀다.
아이가 윤의 손을 잡더니 품에서 우유를 하나 꺼내 쥐어주었다.
“이거 마셔요... 기운내고. 어디 연락할 데는 있어요?”
“윤아? 너 거기서 뭐 하니?”
눈이 휘둥그레진 온이 새카맣게 더러워진 윤을 보고 놀라 달려왔다.
“오빠... 흑흑...”
“이자식! 너 뭐야? 너 무슨 짓을 한 거야?”
“네? 저요?”
“그래, 너 오늘 내 손에 죽어봐라.”
난데없이 멱살을 잡힌 신문배달소년은 버둥거렸다.
착한 일 한번 하려다가 된통 잘못 걸렸다.
‘이래서 사람들이 점점 남의 일에 무관심해지는 거라고!’
그러나 슬프게도 소년의 마음 속 외침은 온의 귀에 닿지 않았다.
“아니예요! 아니라니까요!”
“오빠... 흑흑... 그런 게... 아니라...”
“시끄러워! 너같은 자식들은 맞아야 돼!”
“아니라니까요!”
소년의 절규는 조용한 새벽의 주택가에 오래도록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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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리리님, 와아, 축하합니다! 일등이시군요!
선물로 드릴 것은... 없지만... 저의 마음을 듬뿍 드립니다. ㅎㅎㅎ
받기 싫으셔도 드릴 거예욥.
윤이랑 유진이도 마음을 드린다네요. ^^ 애들이 좀 빈곤해서..;;
글램님, 헉, 8시 20분인데 벌써 회사세요? *_*
놀라와라~ 전 죽어도 아침형 인간은 못 될 위인이라...
아침부터 부지런하신 분들을 보면 감탄만 나온답니다.
좋은아이님, 둘이 잘 될까요, 안 될까요? ^^
앞으로 계속 보시면 그 답을 알 수 있답니다.
그때까지 계속 윤이랑 유진이 지켜 봐 주세요. ^^
wcat님, 아아, 그런 칭찬을... 님 최고! ㅋㅋㅋ
바기는 칭찬을 먹고 자라요.
근데 왜 키는 안 크고 옆으로 퍼져만 가는지..ㅠ.ㅠ
sOda님, 님 강아지는 분노가 아니라 슬픔을 느낄 거예요.
줄까 말까 장난치는 주인이라니... 강아지가 너무 불쌍해요!
비야님, 아아, 감사합니다. 히죽.
칭찬만 받으면 입이 안 다물어지는 심각한 불치병이 있거든요.
앞으로도 칭찬받을 수 있는 글 쓰도록 홧팅해 주세요. ^^
봄꽃님, 어떤 사랑이건 사랑은 다 같은 마음일 겁니다.
유진이도 윤이도 빨리 깨달으면 좋으련만... 그렇죠? ^^
바다님, 아아, 뭐라고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아직 말씀드릴 수가 없는 ㅠ.ㅠ
주말에 최대한 많이 올릴께요.
보시고나서 다시 이야기해요. ^^
초코초코님, 인간은 복잡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굉장히 단순할지도 몰라요.
물은 한곳으로 흐른다는 말이 있죠.
인간의 감정도 깊은 곳에선 하나로 귀결되지 않나 생각한답니다. ^^
윤이가 화성인이 되기엔 좀 무리가;;
화성인은 윤이처럼 단순솔직하면 안 되는데..^^
coco님, 오랜만에 인사드리네요 ^^ 그러게 자주 좀 오시지. ㅋㅋㅋ
농담입니다. 사실 제가 저번에 그런 말씀드려서 찔린다는 분들 많으셨는데요.
그거 그냥 이 작가가 어리광을 피우는구나, 정도로 이해해 주세요. ^^;;
짱마님, 먹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데요! *_*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바로 먹을 거예요. (진지)
아, 먹을 것 이야기하니까 배고픕니다.
바기는 이제 밥먹으러 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