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에게 일러 주고 싶다.(12)

이순호2004.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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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을 나누어 진 절반의 어머니.
1999년 6월18일
큰누이가 집으로 전화를 여러 번 했었나 보다. 보름도 넘게 내가 큰누이 집에 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는 사람을 통해 양복점 친구 전화 번호를 알아내시어 양복점 친구 집으로 전화를 하셨다. "거기서 머하노""퍼뜩 오느라 보자" 조금은 화가 나신 목소리가
수화기 넘어 에서 들렸다. "오야 알었따" 하고 수화기를 놓자 말자 큰누이에 집에 들어서니 누이는 "아픈 사람 나 뚜고 거기서 머핸노" "밥 안무거째" 하시며 내 대답이 떨어지기도 전에 오리걸음으로 부엌으로 가시여 식탁 위에 주섬주섬 반찬을 차리시어 밥과 국을 떠주신다. 마주보고 수저를 내민 누이는. "요새 뭐 해가 묵고 사노" "아 어마이는 밥이라도 쪼매 묵나" "집에도 안 오고 김치도 없쩨" 하신다. 나는 누이한데 "뭐해가 묵기는 밥하고 반찬 해가 묵지머" "소금하고 간장 해가 묵고 사까바" "내가 답답 으머 오지 마라 캐도 찾아온다"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누이는 무엇을 그리 많이 챙겨 놓았는지. 아내의 옷. 애들 옷. 내 청바지. 귤. 사과. 고구마. 소고기. 돼지고기, 김치. 멸치 뽁은거. 화장지, 비누, 하이 타이. 수건까지 다 열거하기도 못할 물건을 비니루에  다 담지 못해서 박스에 까지 담아서 보자기로 꽁꽁 묶어 놓으시고 나한데 전화 하셨나보다. 그런데 우리 집으로 전화를 하니 내가 없어 쓰니 화가 나실 만도 해 쓸 법하다. 어머니 같은 누이의 말씀에 나는 그만 목이 메여 울컥 눈물이 쏟아 지려하여 밖에 있는 화장실로 나가니 누이는 "밴 소 갈라 꼬" "안에도 밴소 있는데 말라꼬 한데가노" 하시며 울컥하는 내 속내를 눈치 못 차리신 눈치다. 밖에서 담배 한대 피우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부엌에 들어가 의자에 앉으며 누이한데 "버럭 고함을 지르며 "머라캔노" "머묵꼬 사나꼬" "10발 니기미 안죽으머 사지머" "사는기 밸꺼가" 하니 누이는 "나이가 몇인데 이제 제발 욕 쪼매 하지 마라" 하시며 자식 같은 동생인 나를 타이르신다, 나는 먹던 밥을 꾸역꾸역 씹으면서 "에이 10팔 니기미 천날만날 이래 챙기 주는데도 밥도 제대로 못 묵고 사니 무슨 놈에 팔잔지 모리겠다" 며 투덜거리니 누이는 "그거 쪼매 가주고 가 가가 가간 거마 묵으 까네 그러키도 안 하겠나" 하시며 긴 한숨을 토하신다. "아 어마이 지업 을라 퍼뜩 가바라" 하시며 챙겨 놓은 물건들을 대문밖에 손수 들어내시며 "다 가주고 가겐나. 다 몬 가 가께꺼등 내리 와 가가 가 갈래" 하시며 걱정을 하신다. 나는 누이를 쳐다보며 염치없는 말을 내 뱉는다. "더 조바라 몬가가는강 가 가능 거는 걱정말고 더 줄 꺼 엄나 더 조도 다 가가 간다" 는 나의 말에 누이는 빙그레 웃으시며 오토바이에 짐을 묶는 것을 거들어 주시면서 "우야든동 오토바이조심해서 타고 집으로 바로 가그 래이" 하시는 누이의 말씀이 시멘트 길 위에 떨어지기도 무섭게 "간데이"하며 인사도 하지 않은 체  오토바이를 타고 오면서. 큰누이한데 미안해서 차마 고맙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오는 마음은 누이한데 가져오는 기쁨 보다 서글픔의 감정이 내 뒤통수의 열기를 오리며 따라옴을 느꼈다.
자식이나 다름없는 이 못난 동생 때문에 가끔 며느리와 아들 눈치까지 살펴야 하는 내 큰누이에게 나는 언제까지. 먹고사는 문제 하나 스스로 해결 못하는 못난 동생일까.
하는 마음이 오늘따라 내 눈을 붉게 충 열 시킨다. 내 어깨의 누르고 있는 업이 하루빨리 내려지기를 바라며. 늙은 누이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서 그냥 그렇게 살아갈 뿐이다.
굿은 날씨만큼이나 온통 젖은 삶이지만 참고 살다보면 햇살이 대지를 말리듯 내 지긋 지긋한 업도 언젠가는 화창한 봄날 같은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잠시 가져본다. 그것은 아비보다 나은 아이들이 둘씩이나 나를 지탱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지금은 자신보다 큰 짜장면 통을 들고 다니지만 세월이 물처럼 흘러준다면 언젠가는 짜장면집 주인이 되어 가족이 힘을 모아 열심히 노력하면 지금의 고통도 벗어나지 않을까
하는 조짐이 조금씩 보이고 있다. 그땐 젖은 땅 짚고 박차고 일어나듯이 일어나 세상과 당당히 맞서 살 수 있을 때까지만 내 큰누이가 살아 있어 준다면 고운 한복이라도 한 벌 지어 드리고 싶다. 어머니 같은 큰누이! 자식 같은 동생! 누이의 말씀대로 누이도 내 자신도 업을 타고 낳기에 업을 갚으며 살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내 작은 바램은 내가 스스로 자립 할 때까지만이 라도 큰누이가 지금 만큼의 건강이라도 유지 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은 나의 현실의 업이 너무 무거운 탓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누부야! 이다음 이다음에 말이다. 내가 어 메 만나면. 큰 누부야가 내한데 잘 하지는 몬 해도  몬 하지는 안 했다꼬 내 어메 한데 그말을 꼭 하꾸마" "내가 형주 어 메 한데 잘 하지는 몬 해도 모질게는 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어 메 배속에서 열 달 동안 있다가
세상에 나온 피를 나눈 남매이니 내 업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거 아닐까 싶다" "누부야 어 메가 보고 접다" "어 메가 앞도 보이지 않도록 흐르는 내 눈물은
알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