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설화(雪化)----------2부

sOda2004.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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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雪化)

 

 

 

선비족과의 전투가 승리로 끝나고, 내성에서는 왕에 대한 반란에 가담했던 자들의

대대적인 숙청이 일고 있었다.

 

그러나 휘와 결에 대한 문제는 크게 대두되지 않았다.

 

결의 출전에 크게 노여워했던 왕이 태도를 바꾼것은 부여에서 온 사신때문이란 것을

휘는 곧 알게되었다.

 

부여의 왕은 가우리의 원군에 대해 크게 감사하고 있었으며,

둘째왕자의 반란을 막게된것도 가우리덕이라 말하고 있었다.

 

부여의 왕은 가우리와 한의 새로운 무역을 주선하고 공물의 양을 늘렸다.

 

 

“역시 조의두대형이 신중했소. 계루부의 족장과 대모달의 단독적인 행동은

벌을 받아 마땅하나, 이번일을 위해 목숨을 바친 조의두대형의 공을 봐서

죄를 묻지 않기로 하겠소.”

 

“망극하옵니다.”

 

“대신, 대모달은 부여의 왕이 청한 임무를 받도록 하시오.”

 

 

부여의 왕이 무슨 요구를 했단 것일까?

 

 

“그동안 부여와 가우리를 오가며 암살을 저지르던 설화란 자객이

부여연의 수하였다는 것이 드러났소. 설화란 자객이 가우리인이니

부여가 혼란한 틈을 타 숨어들어왔을 수도 있소.

대모달은 그 자를 추적하여 반드시 척결하도록 하시오.”

 

“......!”

 

 

휘는 망연자실했다.

 

 

“전하... 이미 부여의 역적 부여연은 세력을 잃고 행방을 감추었고,

반역에 가담했던 자들도 모두 처형되었사옵니다.

수하 하나를 잡으나 안 잡으나 양국에 해가 되지는 못할것이옵니다.”

 

 

왕이 휘의 말을 막았다.

 

 

“그것은 부여왕의 안위뿐 아니라, 일국의 위신과도 관련되는 일이오.

우리 역시 부여에 체면이 서려면 반드시 그 자를 잡아 본보기를 보여야 하오.

그러니 대모달은 두말말고 임무에 힘쓰도록 하시오.

그리고 이것은 부여의 내성에서 자결한 가우리 여인의 유품이오.

표창은 자객 설화의 것이라 추정된다고 하오. 그리고 귀고리에는 이름이

새겨져 있소. 분명 연관이 있을것이오.”

 

“......예.”

 

 

물건을 받아 살펴보니 분명 표창은 설화의 것이었다.

또한 귀고리에는... 담이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허탈했다.

 

담이를 살리기 위해 벌인일이, 죽이란 명을 받는일이 되었으니...

 

설화의 뒤를 쫓는자는 임무를 받은 휘 뿐만이 아니다. 태대형이나,

부여에서도 행방을 뒤쫓고 있는것이다.

 

공을 세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자들이 나설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아... 감사합니다...”

 

 

휘를 맞아 소식을 들은 사와는 그만 비틀거리며 쓰러질 뻔 했다.

 

사와를 부축한 몸종은 기쁜 낯으로 “마님께서는 지금 회임중이십니다.” 라고 말해,

휘를 놀래켰다.

 

 

“많이 다치신 것은 아닌거죠? 언제쯤이면 돌아오실 수 있을까요?

아니, 내가 이럴때가 아니지... 제가 관노부로 가겠어요.”

 

 

몸종은 여전히 웃으며 사와를 말렸다.

 

 

“마님, 홀몸이 아니신걸 잊으시면 안됩니다. 거기까지 갔다간

족장님께 혼이 나실걸요~”

 

 

그제서야 사와는 자신이 너무 들뜬 것이 부끄러웠는지 몸을 추스르고 자리에 앉았다.

 

 

“죄송해요... 제가 너무 주책을 떨었죠? 전 결이님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봐...”

 

“부인, 족장은 뛰어난 사람이니 앞으로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이 소식을 들으면... 엄살 피우던걸 멈추고 한걸음에 달려올겁니다.”

 

 

사와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럴까요? 기뻐해 주실까요?”

 

“당연하죠...”

 

 

하지만 휘는 끝말을 흐렸다.

 

과연... 결이는... 그리고 담이는... 기뻐할까?


 

 

 

 

결의 부상은 타고난 체력으로 빠르게 회복되어갔다.

 

결과 담이는 한시도 떨어지지 않은채 더없이 행복하고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날, 담이는 옛날집터를 찾았다.

 

집은 이제 터만 남고 거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았다.

 

담이가 매달리며 놀던 도화나무도 말라죽어있었다.

 

슬프고 허무한 광경이었다.

 

결이는 담이의 어깨를 감싸며 밝고 따뜻한 어조로 말을 건넸다.

 

 

“저 도화나무가 없었다면 우린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르지...

이곳에 가득히 도화나무를 심어야겠군.”

 

 

담이는 결의 손을 꼭 잡으며 살짝 웃었다.

 

 

“고마워요...”

 

 

담은 아버지의 유골을 집터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묻기로 했다.

 

 

“영영 이곳으로 돌아오지 못할 줄 알았어요. 그래서, 모든일이 끝나면

계루부의 강에 유골을 뿌리자고 생각했죠. 제대로 된 무덤이 아니긴 하지만

아버지는 역시 이곳을 더 좋아하실 거에요.”

 

 

그 시각, 휘는 호위하는 무사도 없이 혼자 관노부를 향해 말을 달리고 있었다.

 

맹렬한 속도였다.

 

결과 휘는 한적한 길을 따라 산책을 즐기며 처소로 돌아왔다.

 

 

“담아...”

 

“네.”

 

“너를... 곁에 두고자 하는 이 마음이... 너무 큰 욕심인거냐...”

 

“......”

 

 

담이의 얼굴이 붉어지다 점점 슬픈빛으로 바뀌었다.

 

곁에 있을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나는 자꾸... 욕심을 부리고 싶구나...”

 

 

결의 말을 막은건 문앞을 지키고 있던 병사였다.

 

 

“족장님, 이제 오십니까? 대모달께서 와서 기다리십니다. 한참 되었습니다요.”

 

 

쉴틈없이 계루부를 다녀온 휘는 보기에도 많이 지쳐보였다.

 

담이는 휘에게 미안한 심정이 되었다.

 

휘는 결을 반기는 기색도 없이 퉁명스럽다 싶을정도로 거칠게 말을 건넸다.

 

 

“몸은 다 나은거야?”

 

“내가 한가한꼴을 보니 심사가 뒤틀리는거냐?”

 

 

결은 오히려 유쾌하게 휘의 말을 넘겼다.

 

 

“네 농이나 듣자고 발도 못 뻗고 돌아온 것이 아니다.”

 

 

휘가 화가 난 것도 어찌보면 당연했다.

 

노심초사 밤새 말을 달려왔건만 결과 담이는 여유를 부리며

놀러 나갔다오지 않았는가 말이다.

 

 

“대체 무슨일이야? 무엇 때문에 잔뜩 골이 난거야?”

 

“이러고 있을때가 아니야. 내성에서...”

 

“?”

 

 

문득 휘가 말을 멈추고 담이를 쳐다봤다.

 

대충 분위기를 눈치챈 담이는 방을 나갔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담이까지 내보내는거냐?”

 

 

휘는 굳은 얼굴로 바로 대답했다.

 

 

“부여에서 담이를 잡아달라 요청했어.”

 

“뭐!”

 

“담이가 무연왕자의 수하라고 밝혀졌다더군. 무연왕자의 수하였든 아니든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야. 역적과 함께 있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참수감이니까.”

 

 

결은 버릇대로 이마를 괴었다.

 

 

“어쩔거냐고 네게 묻지 않겠다. 넌 계루부로 돌아가 족장의 자리를 지켜야 하니까.”

 

“...?”

 

“부인이 회임중이다.”

 

“......!”

 

“그러니 네게 어려운 문제에 답을내라 하지 않을거야. 네 아이까지

위태롭게 만들고 싶진 않겠지? 그러니 이제 그만... 담이를 놓아줘.”

 

 

내 아이...!

 

결의 심정이 복잡해졌다.

 

 

“네가 이쯤에서 물러나는 것이 너의 부인과 가족... 그리고 담이를 살리는 일이야.”

 

“담이를... 어떻게 할건가...?”

 

“가우리에 머무르는 것은 너무 위험하니 일단 옥저로 피신시켜야겠어.

담이의 모친이 옥저분이었으니 옥저인으로 행세하는 것이 이상하진 않을거야.”

 

“그 다음엔?”

 

“설화를 찾는척 일 이년 시간을 끌다 조금 잠잠해지면 대모달에서 물러날 생각이야.”

 

“...!”

 

“...그리고 담이곁에 있어야지.”

 

 

결은 더 이상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은 이제 담이에게 무엇을 해줄수도... 해줘서도 안되는 것이다.

 

 

“...부인 소식은 묻지 않는거야?”

 

 

대답 대신 결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휘의 어깨에 손을 올린 결은 시선을 맞추지 않고 잠시 그대로 있다가 입을 열었다.

 

 

“...부탁한다.”

 

“잠깐!”

 

 

휘는 결의 팔을 잡았다.

 

 

“이제 담이가 떠나면... 다시는 보지 않아야 해. 무슨 말인지 알지?”

 

 

결은 대답없이 방을 나갔다.

 

마침 멀리있던 담이가 결을 보고 환하게 웃었지만 결은 그런 담을 무시한채

그대로 걸어가버렸다.

 

 

‘왜 그러시지... 안좋은 이야기라도 들은걸까...’

 

 

담은 휘가 남아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이에요?”

 

 

휘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담이와 휘가 바깥으로 나오자, 병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들어왔다.

 

 

“무슨 일이에요?”

 

“무슨일이긴요~ 이제 고향으로 가는거죠~ 아가씨도 계루부가 고향인게죠?

그렇다면 어서 짐을 챙겨요~”

 

 

담은 적잖이 당황한 얼굴로 휘를 돌아봤다.

 

결님이 함께 가자고 할까? 만약 그렇게 말하면... 난 어떻게 해야하지?

 

 

“저기... 족장님은 어디 계세요?”

 

“족장님은 명령만 내리시고 먼저 떠나셨어요. 몸도 다 낫지 않으셨는데

혼자 가다 산적이라도 만나면 어쩌시려고...”

 

 

담이가 살짝 휘청했다.

 

 

‘그럴 리가 없어... 아무런 말도 없이 가실리가...’

 

 

담이는 모든걸 알고 있는 표정의 휘를 돌아보며 겨우 입을 열었다.

 

 

“...얘기해주세요.”

 

“일단 방으로 들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