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오래전 20대 초반의 일이지만, 오방떡 장사를 해본적이있다. 물론 메이드인 구루마이다. 뭔소리냐고? 길거리 구루마 즉 노점상이었다는 말이다. 그당시 한 30만원 돈이 들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우선 리어카사고 가스통, 오방떡기계 등등으로 그 돈이 들었다. 근데 난 돈을 아끼려고 중고 기계를 샀는데 그것이 첫번째 실수였다. 왜냐면 길거리장사라는 것이 물가가 올랐다고 그 당시 100 원 하던 가격을 120원이나 130 원을 받을수 없는 노릇인지라 새로나온 기계는 가다가(틀) 작아졌는데 나는 중고를 샀기 때문에 가다가 더 커서... 무슨 말이냐면, 새기계는 다라이(또 일본말이다...그러나 어쩌랴...고무다라이를 뭐라 할까?) 한반죽 만들면, 오방떡 350개가 나오는데비해서 중고기계는 250개 뿐이 안나온다는 말이지. 그말은 남들이 다라이 한개분을 팔면 35000원이 되는데 나는 25000원 밖에 안된다는 말이지. 난 그 사실을 한 보름쯤 지나서 알았지. 상상이 가시나? 리어카를 용달로 실어가면 당시 운임비 5천원이 나오니까, 그 오천원을 아끼려고 새벽에 두시간이 넘게 걸려서 끌어다 노았었는데... 그리고 밤에 집에 들어오면, 바로 쉬기는 커녕 앙꼬(팥)를 쑤어놔야 했다. 앙꼬쑤는게 뭐 어때서라고? 그건 모르는 말이다. 앙꼬 쑤는데는 꼬박 2 시간이 걸린다. 잠시도 한눈 팔지 못하고... 그러니 그당시 결론은 하루매상 25000원에 원가제하고... 근데 이 원가가 장난이 아니다. 밀가루 반죽이 뭔 장난이 아니냐 하겠지만 그것 역시 모르는 소리다. 우선 반죽에 전지분유,계란 한판,마아가린,바나나향료등 이건 도저히 같은길거리에서 파는 풀빵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나는 매일 건너편의 호떡 장사가 부러웠다. 당연 하겠지... 그 당시 실감 했음.. 웃지마시라 ..남의떡이 더 커 보인다는게 이런 거구나 하는 사실을...
첫날 행길 건너편 호떡장사가 뒤뚱거리며 길을 건너 왔다 그리곤 내게 말했다.
"학생 여기서 하면 않돼" 난 가능하면 안면근육을 무시카게 정돈 시키며
"학생 ? ...나 학생 아니고 거 같이 먹고 삽시다...거 상권도 서로 다른데 뭘.." 호떡은 지지 않고 대꾸한다.
" 아니 같은 떡이잖아?" 나도 질수가 없다.
" 아니 같은 밀가루지만 그쪽은.. 그쪽은 흑설탕이고 난 앙꼬자너.....대신 여기서 장사 안돼도 길건너로 안너머갈께...거 행길을 삼팔선으로 합시다"
그러자 그는 뒤뚱 뛰뚱 행길을 건너갈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 겨울을 서로 비무장지대 보초처럼 마주보고 지냈다.
부러진 안경다리 반창고로 붙이고 있던 호떡은 지금은 어디서 뭐하고 있을까?
호떡도 가끔 이 오방떡 생각이 날까?
난 돈 8 천원이 아까워 포장도 치지 못하고, 한겨울에 파라솔 한개 달랑놓고 그겨울을 버텼다. 빌어먹을 그 겨울은 10 년만에 찾아온 아주추운 겨울이었다. 그러나 난 그 겨울에 길거리에서 아주 소중한 것을 몸으로 배웠다. 그건 단속 공무원들을 다루는 법과 생존해야 한다는 본능 말이다. 물론 사업은 망했지만...
이렇게 하니까 망하더라.
아주오래전 20대 초반의 일이지만, 오방떡 장사를 해본적이있다.
물론 메이드인 구루마이다. 뭔소리냐고?
길거리 구루마 즉 노점상이었다는 말이다.
그당시 한 30만원 돈이 들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우선 리어카사고 가스통, 오방떡기계 등등으로 그 돈이 들었다.
근데 난 돈을 아끼려고 중고 기계를 샀는데 그것이 첫번째 실수였다.
왜냐면 길거리장사라는 것이 물가가 올랐다고 그 당시 100 원 하던 가격을 120원이나 130 원을 받을수 없는 노릇인지라
새로나온 기계는 가다가(틀) 작아졌는데 나는 중고를 샀기 때문에 가다가 더 커서... 무슨 말이냐면,
새기계는 다라이(또 일본말이다...그러나 어쩌랴...고무다라이를 뭐라 할까?) 한반죽 만들면, 오방떡 350개가 나오는데비해서 중고기계는 250개 뿐이 안나온다는 말이지.
그말은 남들이 다라이 한개분을 팔면 35000원이 되는데 나는 25000원 밖에 안된다는 말이지.
난 그 사실을 한 보름쯤 지나서 알았지.
상상이 가시나?
리어카를 용달로 실어가면 당시 운임비 5천원이 나오니까, 그 오천원을 아끼려고 새벽에 두시간이 넘게 걸려서 끌어다 노았었는데...
그리고 밤에 집에 들어오면, 바로 쉬기는 커녕 앙꼬(팥)를 쑤어놔야 했다.
앙꼬쑤는게 뭐 어때서라고?
그건 모르는 말이다. 앙꼬 쑤는데는 꼬박 2 시간이 걸린다. 잠시도 한눈 팔지 못하고...
그러니 그당시 결론은 하루매상 25000원에 원가제하고...
근데 이 원가가 장난이 아니다.
밀가루 반죽이 뭔 장난이 아니냐 하겠지만 그것 역시 모르는 소리다.
우선 반죽에 전지분유,계란 한판,마아가린,바나나향료등 이건 도저히 같은길거리에서 파는 풀빵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나는 매일 건너편의 호떡 장사가 부러웠다. 당연 하겠지... 그 당시 실감 했음.. 웃지마시라 ..남의떡이 더 커 보인다는게 이런 거구나 하는 사실을...
첫날 행길 건너편 호떡장사가 뒤뚱거리며 길을 건너 왔다 그리곤 내게 말했다.
"학생 여기서 하면 않돼" 난 가능하면 안면근육을 무시카게 정돈 시키며
"학생 ? ...나 학생 아니고 거 같이 먹고 삽시다...거 상권도 서로 다른데 뭘.." 호떡은 지지 않고 대꾸한다.
" 아니 같은 떡이잖아?" 나도 질수가 없다.
" 아니 같은 밀가루지만 그쪽은.. 그쪽은 흑설탕이고 난 앙꼬자너.....대신 여기서 장사 안돼도 길건너로 안너머갈께...거 행길을 삼팔선으로 합시다"
그러자 그는 뒤뚱 뛰뚱 행길을 건너갈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 겨울을 서로 비무장지대 보초처럼 마주보고 지냈다.
부러진 안경다리 반창고로 붙이고 있던 호떡은 지금은 어디서 뭐하고 있을까?
호떡도 가끔 이 오방떡 생각이 날까?
난 돈 8 천원이 아까워 포장도 치지 못하고, 한겨울에 파라솔 한개 달랑놓고 그겨울을 버텼다. 빌어먹을 그 겨울은 10 년만에 찾아온 아주추운 겨울이었다.
그러나 난 그 겨울에 길거리에서 아주 소중한 것을 몸으로 배웠다.
그건 단속 공무원들을 다루는 법과 생존해야 한다는 본능 말이다.
물론 사업은 망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