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김해 활X초등학교를 잠깐 다녔었는데, 당시엔 국민학교란 호칭을 쓰고 있었죠. 제가 2학년, 즉 아홉살때의 일입니다.
당시 학생들이 그 학교에 몰리게 되어 반 인원은 오십명을 초과했었고 우리반 옆에는 특수반이 있었습니다. 반별로 성적이 떨어지는 아이들을 모아 따로 교육하는 10명 내외의 특수반이었습니다. 그 특수반에 포함된 여자아이 하나가 우리반에 있었습니다.
지혜라는 아이였는데, 외모와 지능으로 봐서 지금 생각하면 유전자 질환이 분명한 지능이 많이 낮은 장애우였습니다. 지저분하고, 생긴 것도 다른데다 지능이 모자라고 침을 흘리던 아이였기에 많은 아이들이 때리고 짖궂게 굴었습니다. 아이들이란 참 잔인하죠. 그러나 아이들의 세계에서 그런 일은 아주 일상적이고 당연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애가 남자애들에게 아주 심하게 맞아서 울었던 것도 지금 떠오르네요. 그러나 특별히 그애들이 혼나거나 지혜가 선생님에게 보호받았던 기억은 전혀 없습니다.
제가 그 아이와 특별히 친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애와 놀았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복도에서 빙글 빙글 돌면서 놀았는데 정말 해맑게 저를 향해 웃었습니다. 아주 어린 동생과 노는 기분이 그러했을 겁니다. 어린 아이들이 아무 의미 없는 놀이에 즐거워 하듯 그렇게 웃었습니다.
지금도 일기 쓰기가 숙제인지는 모르겠는데, 당시 거의 모든 학생들이 그랬듯이 매일 일기 쓰기는 의무였습니다. 우리반 담임은 30-40대의 여자 선생님이었습니다.
담임은 일기를 안 써 오면 팬티까지 벗기겠다고 했고, 정말로 그렇게 했습니다. 남자애들 여럿이 책상 위에 올라가 아랫도리를 발가벗고 서 있었습니다. 9살이 수치심을 모른다고요? 저는 그때 생각했습니다.
아, 내가 저 상황이 되느니 차라리 죽어 버리겠다.
그런데 선생님은 지혜 역시 책상 위에 올라가게 한 후 옷을 벗겼습니다. 당시 그 아이는 일기를 써왔다면 오히려 기적이었을, 그 정도의 지능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애를, 속옷까지 벗긴 후 맨 뒤의 아이들까지 볼 수 있게 책상 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특별한 표정이나 말투의 변화도 없이, 나는 아주 공정하게 너희를 대하고 있다는 듯이 태연하게요.
또렷이 기억납니다. 그애는 책상 위에 서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습니다. 아홉살이라기에도 많이 많이 모자라는 지능, 돌출된 눈동자에서 눈물을 흘리며 부끄러워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저는 제가 부끄럽습니다. 저는 지혜를 옹호해야 했습니다. 어렸기 때문인지 몰라도 저는 당시, 어떻게 저런 아이가 숙제를 안했다고 옷을 벗길까 생각하며 경악했지만 선생님께 대들거나 지혜는 숙제를 해 올 수 없는 아이인데 그만하라는 공분을 자아내지 못했습니다.
그애의 어머니가 아셨다면, 아버지가 아셨다면 얼마나 슬퍼하고 분노했을까요. 일반 아이에게 했다고 하여도 엄청난 짓인데, 하물며 장애우 여자애에게요.
지금 만약 그런 일이 외부에 알려진다면 아마 그 학교와 교사는 삽시간에 비난에 휩싸이고, 엄청난 징계를 당했겠지요.
당시는 달랐습니다. 인터넷도 무엇도 없고 반은 하나의 왕국이었죠. 선생님이 왕인.
시대가 달라졌습니다. 부당한 교사의 대우에 맞설 수 있는 때입니다. 그러나 그 여교사는.. 아마 아직도 교사이겠지요.
부끄럽지 않으십니까? 정말로 자신이 교사의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교사이거나, 교사가 되려는 모든 분들은 알아 주세요. 굳이 당신이 양심적이거나 착한 사람이 아니어도 됩니다. 그러나 행동이라도, 양심적이고 착한 행동을 하여 주세요. 착한 사람이 착하게 행동하는 것처럼, 착하게 행동하려 애쓰는 보통 사람 역시 훌륭한 겁니다.
아이들은 기억합니다. 당신이 아직 어리다고 생각하지만 그 아이들은 기억을 가지고 자라나 어른이 됩니다. 아이들은 아무 죄책감 없이 지혜를 때리고 괴롭혔지만, 그때 어른이 그건 잘못된 거다, 그건 부끄러운 짓이다 라고 그애들에게 가르쳐 주었어야 했습니다.
세상의 많은 지혜가, 선생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사랑과 보살핌을 받게 되는 그런 사회가 되도록 제발 좋은 선생님이 되어 주세요.
일기를 안 쓴 장애우 여자아이의 속옷을 벗긴 선생..
저는 83년생 여자입니다.
어릴 때 김해 활X초등학교를 잠깐 다녔었는데, 당시엔 국민학교란 호칭을 쓰고 있었죠. 제가 2학년, 즉 아홉살때의 일입니다.
당시 학생들이 그 학교에 몰리게 되어 반 인원은 오십명을 초과했었고 우리반 옆에는 특수반이 있었습니다. 반별로 성적이 떨어지는 아이들을 모아 따로 교육하는 10명 내외의 특수반이었습니다. 그 특수반에 포함된 여자아이 하나가 우리반에 있었습니다.
지혜라는 아이였는데, 외모와 지능으로 봐서 지금 생각하면 유전자 질환이 분명한 지능이 많이 낮은 장애우였습니다. 지저분하고, 생긴 것도 다른데다 지능이 모자라고 침을 흘리던 아이였기에 많은 아이들이 때리고 짖궂게 굴었습니다. 아이들이란 참 잔인하죠. 그러나 아이들의 세계에서 그런 일은 아주 일상적이고 당연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애가 남자애들에게 아주 심하게 맞아서 울었던 것도 지금 떠오르네요. 그러나 특별히 그애들이 혼나거나 지혜가 선생님에게 보호받았던 기억은 전혀 없습니다.
제가 그 아이와 특별히 친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애와 놀았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복도에서 빙글 빙글 돌면서 놀았는데 정말 해맑게 저를 향해 웃었습니다. 아주 어린 동생과 노는 기분이 그러했을 겁니다. 어린 아이들이 아무 의미 없는 놀이에 즐거워 하듯 그렇게 웃었습니다.
지금도 일기 쓰기가 숙제인지는 모르겠는데, 당시 거의 모든 학생들이 그랬듯이 매일 일기 쓰기는 의무였습니다. 우리반 담임은 30-40대의 여자 선생님이었습니다.
담임은 일기를 안 써 오면 팬티까지 벗기겠다고 했고, 정말로 그렇게 했습니다. 남자애들 여럿이 책상 위에 올라가 아랫도리를 발가벗고 서 있었습니다. 9살이 수치심을 모른다고요? 저는 그때 생각했습니다.
아, 내가 저 상황이 되느니 차라리 죽어 버리겠다.
그런데 선생님은 지혜 역시 책상 위에 올라가게 한 후 옷을 벗겼습니다. 당시 그 아이는 일기를 써왔다면 오히려 기적이었을, 그 정도의 지능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애를, 속옷까지 벗긴 후 맨 뒤의 아이들까지 볼 수 있게 책상 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특별한 표정이나 말투의 변화도 없이, 나는 아주 공정하게 너희를 대하고 있다는 듯이 태연하게요.
또렷이 기억납니다. 그애는 책상 위에 서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습니다. 아홉살이라기에도 많이 많이 모자라는 지능, 돌출된 눈동자에서 눈물을 흘리며 부끄러워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저는 제가 부끄럽습니다. 저는 지혜를 옹호해야 했습니다. 어렸기 때문인지 몰라도 저는 당시, 어떻게 저런 아이가 숙제를 안했다고 옷을 벗길까 생각하며 경악했지만 선생님께 대들거나 지혜는 숙제를 해 올 수 없는 아이인데 그만하라는 공분을 자아내지 못했습니다.
그애의 어머니가 아셨다면, 아버지가 아셨다면 얼마나 슬퍼하고 분노했을까요. 일반 아이에게 했다고 하여도 엄청난 짓인데, 하물며 장애우 여자애에게요.
지금 만약 그런 일이 외부에 알려진다면 아마 그 학교와 교사는 삽시간에 비난에 휩싸이고, 엄청난 징계를 당했겠지요.
당시는 달랐습니다. 인터넷도 무엇도 없고 반은 하나의 왕국이었죠. 선생님이 왕인.
시대가 달라졌습니다. 부당한 교사의 대우에 맞설 수 있는 때입니다. 그러나 그 여교사는.. 아마 아직도 교사이겠지요.
부끄럽지 않으십니까? 정말로 자신이 교사의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교사이거나, 교사가 되려는 모든 분들은 알아 주세요. 굳이 당신이 양심적이거나 착한 사람이 아니어도 됩니다. 그러나 행동이라도, 양심적이고 착한 행동을 하여 주세요. 착한 사람이 착하게 행동하는 것처럼, 착하게 행동하려 애쓰는 보통 사람 역시 훌륭한 겁니다.
아이들은 기억합니다. 당신이 아직 어리다고 생각하지만 그 아이들은 기억을 가지고 자라나 어른이 됩니다. 아이들은 아무 죄책감 없이 지혜를 때리고 괴롭혔지만, 그때 어른이 그건 잘못된 거다, 그건 부끄러운 짓이다 라고 그애들에게 가르쳐 주었어야 했습니다.
세상의 많은 지혜가, 선생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사랑과 보살핌을 받게 되는 그런 사회가 되도록 제발 좋은 선생님이 되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