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격 다중성

법칙2009.07.17
조회137

개개의 사람들에겐 울타리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 울타리들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데 있어
직간접의 영향을 미친다.

 

보이는 울타리, 보이지 않는 울타리,
보여주고 싶은 울타리, 보여주기 싫은 울타리,
자기 보호로 생긴 울타리, 자기 방어로 생긴 울타리...

 

오늘 <노파, 그> 두번째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
난 먼저 내가 생각하는
사람들의 '보이는 울타리'와 '보이지 않는 울타리'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야 할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보이는 울타리'는
'포도파이가 맛있어 가끔씩 사먹는다.'와 같은
일상생활을 영위하는데 나타나는 습관같은 것들에서부터
간간히 발생하는 비일상적인 상황에 처했을 때의
개개인의 적극적인 선택들 뿐만이 아니라,
어떤 사람, 혹은 생각들을 좋아한다는 지적인 기호와도 관련이 있다.
그 선택과 기호들의 집합체가 일정한 행동양식으로 

드러나는 경우
다른 사람들에게 남들과 구분이 되는 울타리로 인식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보이지 않는 울타리, 이건 좀 어렵다.
자신조차도 남과 구분하는 울타리를 가지고 있는지,
혹은 자신의 보이지 않는 울타리가 어떤 형태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기도 하고,
어쩌면 내가 그 걸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보이지 않는 울타리는 타인과 부딪히는 경우보다는
자기자신과 충돌하는 경우가 많다고 보기때문이다.

 

난 보이지않는 울타리는 개개인의 부족한 부분이나 결핍,
혹은 스스로 장애라고 느끼는 것들이 이유가 되어 

자신도 모르게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이 것은 자신이 알고 있는지의 여부와 상관없이
보이는 울타리에 영향을 미치고,
일정한 유사 교집합을 형성한다.
굳이 유사 교집합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보이지 않는 울타리의 형질이 보이는 울타리로 표현된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같은 것이라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내가 노파와의 만남에서 볼 수 있었던 '일관성'이라는 것은 이 울타리와 관계가 있다 .
그의 습관과 기호라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일정하게 학습되어지는 것과는
동떨어져 있는 것들이 많다.
그 것때문에 그의 밖으로 보이는 울타리는 아주 명확하고 남들과 달라보인다.

하지만 내가 그가 남달르다고 보는 것은
밖으로 보이는 울타리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울타리에 관한 것이다.
그에게는 다른 사람과 달리
보이지 않는 울타리가 아예 없는 것 같다는 점이다.

 

보이지 않는 울타리가 없다고 해서 

그가 느끼는 결핍이 없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얘기가 좀 다르다.
그가 가지고 있는 결핍을 해소하는 방법이 다른 사람과 틀리다는 점에 가깝겠다.
굳이 다르게 표현해보자면
보이지 않는 울타리가 완벽하게
보이는 울타리 속에 존재하는 경우라고나 할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보이는 울타리와 보이지 않는 그 것은
그 형질이 달리 반영된다는 점때문에
가끔은 그 두가지가 충돌하여 생활 속에서는
이중적인 것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의 이중성은 반드시 모순되는 것만은 아니기때문에
이중적이라고 하더라도 얼마든지 같이 공존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여지껏 보아온 노파는
그런 이유로 흔하게 사람들에게 존재하는 이중성이라는 것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남들에게 이해가 되는 지의 여부와 상관없이
자신에게 정직하며,
이중성이 생길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자신을 수정한다. 

그렇게 자신의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태도는
모든 경우에도 아주 정확하게 적용시킨다.

 

그래서 밖에서 보이는 울타리는 높아 보일 수는 있지만
그 울타리를 이해하기만 한다면
그것으로 노파의 높은 울타리는
더이상 높은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렇게 남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보이지않는 울타리가 없기때문에
어느 누구와도 소통을 할 수 있는,
혹은 적어도 소통하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또 그런 점때문에 그의 개인주의가
자연인으로서의 노파 개인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난 노파를 만난 후 한참이 된 후까지도
핵심을 피해가지 않는 그의 어법때문에
가끔씩 그의 글로 상처를 입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통신 활동을 뜸하게 하기도 하지만
설령 그와 비슷한 경우가 생기더라도
그것을 상처라고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그간 노파를 많이 만났다거나
그의 글을 계속적으로 모니터링을 해서
그의 생각을 더 많이 알았다거나 해서는 아니다.

 

아마도, 이건 신뢰같은 거 일거다.
그가 그간의 뜸한 만남과 전화 속에서도 볼 수 있었던
그 일관성에 대한 신뢰,
그리고 그의 언어들이 자신을 포함한 타인,
혹은 타인을 포함한 자신에게 행해지는 것이라는 것을
확인했을 다름이다.

 

-민^^* 

ㅇ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