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쁨을 진심으로 기뻐해주는 사람

이미은2004.06.12
조회971

언제부터인가.. 꼭 써보고 싶다고 찜해둔 제목이 있었다.

 

 


"나의 기쁨을 진심으로 기뻐해 주는 사람"

 

 


사실은 나 자신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줄 수 있는지,

 

 

 

그 흔한 친구의 기쁨이 너무 기뻐서

 

 

 

눈물나게 축하해 주었던 적이 있었는지 자신이 없다.

 

 

 

 


이제 대한민국에 있는 면접관들이란 면접관들과는 

 

 

 

대략 얼굴을 트고 지내는 사이,

 

 

 

모두들 작당이나 한 듯이 나를 떨어뜨리는 데에

 

 

 

정말 정말 이골이 났을 때,

 



그래서 드라마, 다큐멘터리, 설명, 논설, 시, 수필 등

 

 

 

각종 장르를 두루 섭렵했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모조리 휴지통에 넣어 깔끔하게 '비우기'한 후

 



가까운 동생네 학교 도서관의 한 귀퉁이에서

 

 

 

목적없이 과거완료 용법의 깊이를 가늠해 보고 있었을 때,

 


 

"♬ 울지마, 아직 우리에겐 지나간 날보다 남은 날이 더 많아~~~"

 

 

 

전화 한 통이 왔었다.

 



여고 1학년 시절, 존재감이 없는 서로에 대한 연민이 인연이 되어

 

 

 

이제는 10년 터울을 속속들이 이야기할 수 있는 단짝친구.. Y.

 



당시 Y는 모 대학원 영어 교육과에 시험을 치고

 

 

 

노심초사 결과만을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

 



"미은아.. "

 



돌아가시기 전날,

 

 

 

"장손녀라고 있는 거 때깔도 못 내준기 무신 할배라꼬..." 하시던

 

 

 

췌장암 말기의 할아버리 목소리도

 

 

 

그렇게 잦아들어가진 않았을 것이다.

 



"나.. 나.. 이제 어떡하지..?"

 



그녀의, 풀기가 나즉이 가신 목소리는

 

 

 

벌써 내 가지런한 속눈썹 사이로 와서

 

 

 

올마다 적시는 짐작들을 어림어림 셈 해놓고 있는데...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당장 옆에 달려가기라도 해야 할지..

 



어떡해 해야할지..

 

 

 

안타까움은 짐작이 불어날수록 큰 번민만을 낳을 뿐이었다.

 

 


"잘 ... 안된.. 거야..?

 

 

 

많이.. 실망 했나 보다.. 울고싶으면.. 울어..

 



내가 갈까..?  그 학교 정말 이상하네..

 

 

 

니가 영어 선생님이 안되면 누가 된단 말이야.. 기운내.. 응...?"

 

 

내가 시험에 떨어졌어도 그렇게 번민이 클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내가 시험에 떨어졌어도

 

 

 

그렇게 안타까워서 불합격 통지서를 채 접기도 전에

 

 

 

눈썹을 적시는 일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Y를 아는 그 누구보다 더

 

 

 

그녀의 합격을 고대했던 사람처럼

 

 

 

그래서 바로 어제까지 새벽마다 정화수를 떠 놓고

 

 

 

긴머리는 풀어헤치고 이슬맞이라도 했 왔던 사람처럼

 

 

 

그렇게 가슴이 미어지는 것을 느꼈을 수는.

 

 


Y가 말을 이었다.

 

 

"그렇지..? 나 어쩌면 일등했을 지도 몰라 그치.. ? ㅋㅋ"

 



 

 

그것이 Y가 나에게 보여준,

 

 

 

대단히 기쁜,

 



예비 영어 선생님의 임용장이었다. 

 


 

그래.. 그녀의 반전은 대단했다.

 

 

 

그 어떤 영화에서 괴괴한 폭발음과 함께 전복되던 열톤 트럭들도

 

 

 

그 어떤 어둠과 폐쇄를 뚫고 살아남은 서바이버의 실전수기도

 

 

 

이렇게 감동적인 반전의 충격을 가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추.. 카.. 해.." 

 

 

발바닥을 소근소근 긁어주면 엄지발가락을 활짝 젖히는

 

 

 

생후 한살 된 아기처럼 내 입술은 반사적으로 발음하고 있었다.  

 

 

 

그래, 그건 반사였다.

 

 

 

그 전화를 끊은 지 몇 달이 넘는 지금도

 



내가 Y의 합격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고 있는지

 



사실은 부끄럽다.

 

 

아니, 보다 사실은 오히려

 


그대로 달려가서 죽지 않을만큼 패주고 싶지는 않았는지.

 


 

그렇게 보다 솔직한 반사를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는지.

 

 

 

지난 10년에 관한 서로의 일기를 대신 써도 좋을만큼

 

 

 

너와 나는 그렇다고 믿었는데

 

 

 

우리가 써 온, 지금도 하루가 멀다하고 쓰고있는 일기는

 

 

 

이렇게 '표면'이고 '포장'이기만 했던 것일까.

 

 

 

그런, 친구인 걸까..?

 

 

 

 



그 때 처음으로 생각했다.

 

흔히 슬픔을 함께 해주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고 하지만

 



슬픔보다 더 진정(眞情)스럽기가 어려운 것은 기쁨이 아닐까.

 


 

하긴 남의 것이라면

 

 

 

슬픔도 기쁨도 내것처럼 어루만져주기는 분명 쉽지 않다.

 



하다못해 가족들의 것 마저도

 

 

 

내 것처럼 여겨지기는 그리 낙낙하지 못하듯이.

 

 

 


 

 

언제부터인가 심장에도 모세혈관을 비집고 

 

 

 

나이테가 늘어가는 것을 느끼면서

 

 

 

주변의 기쁨을 기쁨으로 받아들이지 못해가는

 



나를 자주 발견한다.

 



그러다 보면 나의 기쁨을 기뻐해줄 사람은

 

 

그의 몇 갑절로 줄어들어 있을텐데..


 

초등학교때 두 손 벌벌 떨며 플라나리아를 자르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 죽으..면.. 어떡해..요~~~ . 으~~~ ㅠ.ㅠ"

 

 

하지만 그 해맑은 걱정이 무색하게도

 

 

한마리는 두마리, 두마리는 네마리,

 

 

 

네마리는 다시 여덟마리가 되던 플라나리아..

 

 

욕심은, 버리고 또 버려도

 



스스로도 모를 곳에서부터 제멋대로 자란다.



 

 

 

연습이라도 해야겠다.

 



욕심을 버리는 연습도 '휴지통'에 넣어 비우고

 

 

다시 남의 기쁨을 진심으로 내것처럼 기뻐해주기.

 

 

질투에 넣고 삶지 말고 사심없이 기뻐해주기..


 

 

오늘은 일부러 정교사가 되었다는 친구의 기쁨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해본다.

 

 

아직 100퍼센트 청정한 경의는 아닐지라도



 

진심을 담으려고 노력한 정성만은, 

 

 

 

기쁜 소식을 듣고도 며칠이나 축하를 미뤄두었던 친구의 옹졸함을

 

 

 

1인치 쯤은 눈감아 줄 수 있지 않을까.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나도 모르게

 

 

보조개 대신 심술이 패이던 두 뺨에도

 

 

 

마주보는 햇살이 조금은 떳떳해지지 않을까..


 

'당신을 축하한다' 말할 때 마다

 


 

축하 받을 일을 해 본지가 너무 오래된 것 같은

 


 

내 자신에 대한 화풀이를 

 

 

 

보다 현명하게 풀어가는 방법을 이렇게 터득해 가는 것은 아닐까.

 

 

 

 

 

 

나의 기쁨을 진심으로 기뻐해주는 당신을 만났을 때처럼

 

 

 

남의 기쁨을 진심으로 기뻐해주고 있는,

 

 

 

나 자신을 마주하는 계절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