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사람은 친엄마가 18살때 아빠를 꼬셔서 결혼을 했는데 알고봤더니 다른남자의 애를 뱄다더라, 그게 지금 니언니다, 살아오면서 내언니가 아니라고 생각한적은 없지만
이제 막 자라나는 애들을 보면서, 나랑 언니가 무슨죄라고. 조금만 맘에 안들면
니친엄마 닮아가냐, 이 술집년아 라면서. 벌세우고 때리고 냉장고 문열지말라고
테이프까지 붙여놓던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머리찢어져서 피흘리는 건 일과였구요.
그러다 3학년쯤인가 IMF 생기고 아빠께서 퇴직하시는바람에 매일 집안에서 온갖 일이 끊이질않았었네요, 입학당일에 부엌가위로 머리잘리고 경찰차오고, 가출이란걸 시도했는데 사실 초딩이 가출은 무슨 가출이겠습니까,그냥 친구집이나 아파트 엘리베이터안에서 한숨자고 학교가는 그런거였는데..다음날 학교에서 수업도중에 붙들려가서 집에서 또 얻어맞고 거의 감금되다 시피했었죠.. 이웃집에 도와달라고, 경비실로 달려가서 도와달라고 해도 피묻은옷을입은아이를, 초3~4학년여자애둘이서 전라로 달려가서 살려달라고 울먹이던 아이들을 다시 그 새엄마집으로 돌려놓더군요.
애들이 집나왔네요~ 라면서.. 그게 제가 기억하는 대한민국의 이웃의 정이었습니다.
맞은얼굴로 멍든 얼굴로 학교가서 선생님께 살려주세요, 집가고싶지않아요 했더니
손수 데려다주시고 방안에서 내가 무슨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고 부엌에서 새엄마와 커피먹으며 웃으시며 엄마말씀잘들어야지 맞을짓했으니까맞았을거라 생각한다 네가 더 잘해드려~하던 초4때의여담임선생님, 정말 교육자이십니다..
새엄마와 결국 헤어지고 아빠와 언니, 저 셋만 살았을땐 그나마 나았는데
문제는 두번째 새엄마가 생겼네요, 두달이에요, 정말 두달살고 나갔는데 채팅으로
만난 사람과 바람폈다고 아빠가 말씀하시더군요, 아빠가 너무 불쌍했어요.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스피커로 지원받는 애들 명단불러서 내려오라고 할때
무척 창피했는데 그건 그거고 일단 아빠한테 도움이되겠지 하면서 그거 무릅쓰고
검은봉지에 신라면 5봉지 들고 교실로오기를 몇번이었죠.
그런데 이제와서 생각하니 초등학교때 물론 나라에서 이렇게라도주는걸 감사하게 생각하지만 초딩이라고 감정이 없진않았는데 배급을 받아가는 아이들의 기분같은건 전혀 고려하지않는 참, 올바른 지원방법이네요..그래도 그걸로 저 하루라도 버티는 식량이 됐으니.. 웃지도 울수도 없는..아이러니한 상황이네요..
초6때 정말 천사라고 생각하는 세번째 새엄마를 만났습니다.
중2때까지 너무 좋았어요, 새엄마의 친딸과 친아들을 만나기전에요..
이거저거 말할필요없이 그냥 딱잘라서 차별..그게 문제였네요.
차라리 넌됐고 이거 쟤줘, 이러면 한번이라도 정말 한번이라도 싫어요 했을텐데..
이거 저 언니주고 넌 나중에사줄게 이러면서 웃으면. 차마 싫다고 할수없었어요.
그동안 잘 길러주셨고 정말 잘해주셨고 그나마 그몇년동안만은 정말 엄마였으니까
이 엄마 놓치면 안된다고 뭐든지 꾹 참았어요. 싫어도 네. 좋아도 아니요..
아빠께서 퇴직하시고 부동산 공부하시겠다고 하는바람에 부모님 사이는 안좋으신데
거기다 새엄마의 아들딸문제가 겹쳐서 이도저도 아니게됐죠.
언니는 집안사정어려운거 아니까 고등학교 안가겠다고 저 보내라고 해서 검정고시보고
여태 일만 하고 살았네요, 우리언니, 대놓고 니 친엄마닮아서 술집년같이 생겼다는 말들으면서도 우리살림 책임졌는데도 용돈 한번 못받아보고 구박은 있는대로 받고 결국은 우울증걸렸는데도 니가 뭐가 모자라서 그러냐며 도리어 욕만먹었던 언니, 회식자리에 술먹지말라고 참석도 안시켜서 외톨이되버리고 지금 이름대면 알만한 대기업에 최연소 정직원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남의 사정도 모르고 뒤에서 욕하던 직원여자들,
대한민국은 여자들..내가 여자지만, 진짜.. 에휴..
저는 장학금못받으면 너도 일하라는 말에 죽어라 공부해서 장학금 타고 시청소년위원도 해보고 백일장이란 백일장 다 나가면서 미친듯이 학교에 빠졌어요, 물론 야자가 있었으니 주말엔 알바를 해서 급식비를 벌었죠. 제가 머리가 좋은게 아니에요 공부도 한다고했지만 , 비평준화로 일부러 두단계 낮은 곳으로 가서 , 그나마 보기에는 좋아보인거였어요, 그게. 그렇게 부담이될줄은 몰랐네요.. 같은반 애들이 급식비 빼서 쇼핑한다
영화본다 나 용돈받았어 이런얘기들 할때마다.. 만감이 교차했어요, 같은나인데 쟤랑 나랑 다른게 뭐라서. 난 이면지 모아서 연습장만들어쓰고 선생님들 문제집 빌려서 복사해서 보고, 명품에 연예인 얘기모르면 껴들수도 없고, .. 그래도 내가 지금은이렇게 보여도 너네보단 생각있게 산다고 위로하면서 야자끝나고 막차타고 집에 돌아오곤했죠.
어느순간, 너무 힘들었어요 , 매일 언니랑 저랑 같은 얘기하면서 울고울다 집을 나와야
겠다고 생각했고 결국은 나왔어요. 예 알아요. 어찌됐던 가출을 한건 부인할수없는 사실이에요.. 그래도 계획을 다세우고 10년안에 꼭 돈 모아서 집와야지, 우리아빠, 그리고 밉지만, 그래도 길러준 고마운 새엄마 꼭 돌아와서 죄송했다고 말해야지, 생각을 다해놨는데 일주일후에 동사무소 갔더니 주민등록말소가 되어있더군요,
제가 그때당시 18살이어서 민증이 없었거든요. 생일지나서 할려했더니 그렇게되었더군요, 애초에 휴대폰이란걸 가져본적이없던 언니와 저는 더 막막했죠,
언니 퇴직금 통장 확인했더니 분실신고 나왔더군요, 웃음밖에 안나오더라구요..
서울에 미리봐뒀던 고시원으로 와서 언니친구에게 빌린돈으로 고시원 방값계산을 하고나니 3천원이 남더군요, 그사이언니는 신분증이 있어서 호프집알바를 다행히 잡게되서알바를 하게됬고 한달 월급을 받기전까지 한달동안 3천원으로 살았습니다,
고시원이 좋은곳은 아니어서 정수기와 밥이 있어서 물말아먹으면서 그대로 살았죠
그러다 언니일했던 호프집 한달 월급을 받고 지방으로 내려왔습니다,
아예 아무도 모르는 지방으로 가서 다시 살자, 이생각으로요.
연락처도 없어, 신분증도 없어, 저는 일을 쉽게 잡지못했지만,, 집앞 피시방에 나이를 속이고 알바를 하게됐고 언니는 좋은분의 도움으로 알바를 또 하게됐네요,
나도사람답게 살고싶어요..
..뭐부터 말해야할지, 어떤것부터 써내려가야할지 모르겠네요,
글이 길어질것같고 쓰다보면 저도 모르게 조금씩 반말도 할것같아서,어떤분들은
백스페이스 누르셔야겠어요^^,
그냥 지금 비도 왔겠다, 기분도 울적하겠다 담배만 계속 피우고있는데.
뭐라도 위로받고 싶기도 하고, 그냥..내 말 들어줄 사람도 없고. 사람내음이 그리워서
글을 쓰게되네요..
제 나이 이제 21살, 제또래 친구들중.. 아, 물론 아닌사람도 있겠지만,
거의 대부분은 제 사고방식과 삶을 이해못하더라구요.
5살이상 차이나는 언니.오빠 분들도 못하기는 마찬가지더군요..
나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마음쓰는거 슬퍼하는거 보기싫어서 참고 참으니
결국은 병만 되고 점점 거리만 늘어가는것같아요, 원래는 그게 아니었는데..
제가 기억하는 제일 오래된 기억은,
4살이던가? 할머니집에 언니와 저를 두고 전화하러 나간다며 그대로 사라져버린
친엄마의 뒷모습이네요. 그뒤로 할머니집에서 살면서 조금은 나았었는데
새엄마가 생기면서 뭔가 조금씩 틀어지게됬었어요,.
그사람은 친엄마가 18살때 아빠를 꼬셔서 결혼을 했는데 알고봤더니 다른남자의 애를 뱄다더라, 그게 지금 니언니다, 살아오면서 내언니가 아니라고 생각한적은 없지만
이제 막 자라나는 애들을 보면서, 나랑 언니가 무슨죄라고. 조금만 맘에 안들면
니친엄마 닮아가냐, 이 술집년아 라면서. 벌세우고 때리고 냉장고 문열지말라고
테이프까지 붙여놓던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머리찢어져서 피흘리는 건 일과였구요.
그러다 3학년쯤인가 IMF 생기고 아빠께서 퇴직하시는바람에 매일 집안에서 온갖 일이 끊이질않았었네요, 입학당일에 부엌가위로 머리잘리고 경찰차오고, 가출이란걸 시도했는데 사실 초딩이 가출은 무슨 가출이겠습니까,그냥 친구집이나 아파트 엘리베이터안에서 한숨자고 학교가는 그런거였는데..다음날 학교에서 수업도중에 붙들려가서 집에서 또 얻어맞고 거의 감금되다 시피했었죠.. 이웃집에 도와달라고, 경비실로 달려가서 도와달라고 해도 피묻은옷을입은아이를, 초3~4학년여자애둘이서 전라로 달려가서 살려달라고 울먹이던 아이들을 다시 그 새엄마집으로 돌려놓더군요.
애들이 집나왔네요~ 라면서.. 그게 제가 기억하는 대한민국의 이웃의 정이었습니다.
맞은얼굴로 멍든 얼굴로 학교가서 선생님께 살려주세요, 집가고싶지않아요 했더니
손수 데려다주시고 방안에서 내가 무슨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고 부엌에서 새엄마와 커피먹으며 웃으시며 엄마말씀잘들어야지 맞을짓했으니까맞았을거라 생각한다 네가 더 잘해드려~하던 초4때의여담임선생님, 정말 교육자이십니다..
새엄마와 결국 헤어지고 아빠와 언니, 저 셋만 살았을땐 그나마 나았는데
문제는 두번째 새엄마가 생겼네요, 두달이에요, 정말 두달살고 나갔는데 채팅으로
만난 사람과 바람폈다고 아빠가 말씀하시더군요, 아빠가 너무 불쌍했어요.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스피커로 지원받는 애들 명단불러서 내려오라고 할때
무척 창피했는데 그건 그거고 일단 아빠한테 도움이되겠지 하면서 그거 무릅쓰고
검은봉지에 신라면 5봉지 들고 교실로오기를 몇번이었죠.
그런데 이제와서 생각하니 초등학교때 물론 나라에서 이렇게라도주는걸 감사하게 생각하지만 초딩이라고 감정이 없진않았는데 배급을 받아가는 아이들의 기분같은건 전혀 고려하지않는 참, 올바른 지원방법이네요..그래도 그걸로 저 하루라도 버티는 식량이 됐으니.. 웃지도 울수도 없는..아이러니한 상황이네요..
초6때 정말 천사라고 생각하는 세번째 새엄마를 만났습니다.
중2때까지 너무 좋았어요, 새엄마의 친딸과 친아들을 만나기전에요..
이거저거 말할필요없이 그냥 딱잘라서 차별..그게 문제였네요.
차라리 넌됐고 이거 쟤줘, 이러면 한번이라도 정말 한번이라도 싫어요 했을텐데..
이거 저 언니주고 넌 나중에사줄게 이러면서 웃으면. 차마 싫다고 할수없었어요.
그동안 잘 길러주셨고 정말 잘해주셨고 그나마 그몇년동안만은 정말 엄마였으니까
이 엄마 놓치면 안된다고 뭐든지 꾹 참았어요. 싫어도 네. 좋아도 아니요..
아빠께서 퇴직하시고 부동산 공부하시겠다고 하는바람에 부모님 사이는 안좋으신데
거기다 새엄마의 아들딸문제가 겹쳐서 이도저도 아니게됐죠.
언니는 집안사정어려운거 아니까 고등학교 안가겠다고 저 보내라고 해서 검정고시보고
여태 일만 하고 살았네요, 우리언니, 대놓고 니 친엄마닮아서 술집년같이 생겼다는 말들으면서도 우리살림 책임졌는데도 용돈 한번 못받아보고 구박은 있는대로 받고 결국은 우울증걸렸는데도 니가 뭐가 모자라서 그러냐며 도리어 욕만먹었던 언니, 회식자리에 술먹지말라고 참석도 안시켜서 외톨이되버리고 지금 이름대면 알만한 대기업에 최연소 정직원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남의 사정도 모르고 뒤에서 욕하던 직원여자들,
대한민국은 여자들..내가 여자지만, 진짜.. 에휴..
저는 장학금못받으면 너도 일하라는 말에 죽어라 공부해서 장학금 타고 시청소년위원도 해보고 백일장이란 백일장 다 나가면서 미친듯이 학교에 빠졌어요, 물론 야자가 있었으니 주말엔 알바를 해서 급식비를 벌었죠. 제가 머리가 좋은게 아니에요 공부도 한다고했지만 , 비평준화로 일부러 두단계 낮은 곳으로 가서 , 그나마 보기에는 좋아보인거였어요, 그게. 그렇게 부담이될줄은 몰랐네요.. 같은반 애들이 급식비 빼서 쇼핑한다
영화본다 나 용돈받았어 이런얘기들 할때마다.. 만감이 교차했어요, 같은나인데 쟤랑 나랑 다른게 뭐라서. 난 이면지 모아서 연습장만들어쓰고 선생님들 문제집 빌려서 복사해서 보고, 명품에 연예인 얘기모르면 껴들수도 없고, .. 그래도 내가 지금은이렇게 보여도 너네보단 생각있게 산다고 위로하면서 야자끝나고 막차타고 집에 돌아오곤했죠.
어느순간, 너무 힘들었어요 , 매일 언니랑 저랑 같은 얘기하면서 울고울다 집을 나와야
겠다고 생각했고 결국은 나왔어요. 예 알아요. 어찌됐던 가출을 한건 부인할수없는 사실이에요.. 그래도 계획을 다세우고 10년안에 꼭 돈 모아서 집와야지, 우리아빠, 그리고 밉지만, 그래도 길러준 고마운 새엄마 꼭 돌아와서 죄송했다고 말해야지, 생각을 다해놨는데 일주일후에 동사무소 갔더니 주민등록말소가 되어있더군요,
제가 그때당시 18살이어서 민증이 없었거든요. 생일지나서 할려했더니 그렇게되었더군요, 애초에 휴대폰이란걸 가져본적이없던 언니와 저는 더 막막했죠,
언니 퇴직금 통장 확인했더니 분실신고 나왔더군요, 웃음밖에 안나오더라구요..
서울에 미리봐뒀던 고시원으로 와서 언니친구에게 빌린돈으로 고시원 방값계산을 하고나니 3천원이 남더군요, 그사이언니는 신분증이 있어서 호프집알바를 다행히 잡게되서알바를 하게됬고 한달 월급을 받기전까지 한달동안 3천원으로 살았습니다,
고시원이 좋은곳은 아니어서 정수기와 밥이 있어서 물말아먹으면서 그대로 살았죠
그러다 언니일했던 호프집 한달 월급을 받고 지방으로 내려왔습니다,
아예 아무도 모르는 지방으로 가서 다시 살자, 이생각으로요.
연락처도 없어, 신분증도 없어, 저는 일을 쉽게 잡지못했지만,, 집앞 피시방에 나이를 속이고 알바를 하게됐고 언니는 좋은분의 도움으로 알바를 또 하게됐네요,
그런데 어떻게 알게됐는지 제가 일하는 피방으로 집에서 전화가 왔어요 ,
그래서 도망쳐서 다른 지방으로 갔고 거기서 처음 월셋방잡는걸로 사기아닌 사기를
당했고... 전재산 60만원중에 40만원을 잃었습니다.
집주인이 할머니분이었는데 어리다고 배째라하신거죠..
경찰, 아무 도움안되더군요, 오히려 왜 나이어린데 니네둘이 살려고하냐고 집에대해
캐묻길래 됐다고 나와서 피방에서 월셋방 찾았습니다.
지방이고 시골이라 그나마 서울과 비교도 안되게 싼곳이 있더라구요,
물론 시설은 값과 비례했지만, 그래도 좋았구요 ,
그곳에서 좋은 분들 많이 만나서 일도 잘하게됐고 돈을 벌었습니다,
시급2천원, 한달에 두번쉬면서 꼬박 일해도 월급은 60만원안팍이에요.
방세내고 생활비쓰고 하니 저축은말도 안되고 당연히 밥은 일하는곳에서 컵라면같은걸로 때우면서 일년을 버텼습니다,
그 일년동안 정말 많은일이 있었는데,.다말하자니 그럼 책을쓸것같아서,ㅎㅎ..
이미 긴글이라 읽기도 벅차시겠네요..
각설하고..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이제 조금은 당당해졌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물론 어딜가나, 따라붙는 가출, 중졸의 학력, 그건, 어쩔수없었어요.
도와주신분들도 많았고, 다 좋았는데..
서울로 올라오고 일이 또 터졌네요.
처음으로 정말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나중에 알고봤더니 제가섹파였대요,
그 사실을 앎과 동시에 제가 정말 믿었던 친구가 저를 배신한 일이 있었구요.
정말 많이 울었어요.. 그리고 정신차리고 일을 했고 이번에 저보다 10살많은 사람을
만났는데 그래도 나이가 있어서 였는지. 생각은 깊더군요,
거의 일년을 만났는데.. 그사람과 헤어지자고 했어요 ,
술버릇이 많이 안좋았거든요, 근데 그사람 이제까지 해준걸 돈으로 달라고하더라구요
제가 어딜가서 삼백만원을 만들수있겠어요..
대출도 알아봤는데 나이에 직업에 다 해당되는게 없었고.. 소개로 눈딱감고 하자,
해서 도우미를 했습니다,
그런데 진상이라고 하죠, 그런사람들이 .. 유난히 있던 날, 너무 서러워서 울면서
집에 왔더니 그사람이 제 침대에 누워있더군요 너무 놀라서 뭐라고 깨웠더니
앞으로 삼일남았다 이러더라구요, 욱하는 마음에 야, 내가 안주고 싶어서 그러냐
그래도 떼먹을 생각안하고 어떻게든 해주려고 대출이건 뭐건 다알아봤는데 안된다는걸
어떻하냐 몸이라도 팔까? 엉? 이랬더니.. 그사람, 니몸이야 팔건 말건 내알바아니고 삼일이다 이러고 가더군요..
그말듣는데 머리 하얘지고 무서웠어요,
이사람 삼일 넘으면 무슨 짓을 할까.. 그래서 예전에 살던 그지방에 잠깐 내려갔어요
여기서 일해서 돈가지고 올라가자 했는데. 저랑 연락이 안되고 이틀후에
집에와서 문을 부시고 갔다고 언니에게 전화가 오더라구요,
그날 바로 다시 서울로 왔는데.. 문자가..
기생충아,, 나이도 어린년이 꽃뱀짓한다부터해서...입에 담을 수 없는 욕들이..
언제는 이해한다고 했던 내 속얘기를.. 되집어서 그런년이라고 하더군요,
신고하면된다고 하길래 무서워서 일단 경찰서를 갔더니.
그 경찰아저씨말이... 내가 지금 맡은일이 몇갠데 그딴거 가지고와서 울고짜냐,
문자나 전화로 널 죽이겠다 라고 한거 아니면 스토커처벌도 안되고 협박도 안되고
문부서진거 집주인한테 연락해서 처리해라 , 영수증하나면 됬지뭘, 그러냐.
......라고 하시더군요... 참 친절한 경찰아저씨, 예 , 당신은 일많으셔서 그거 다해결하시고 진급하시면 되겠네요, 진급하고 또 진급해서 정치쪽으로도 빠져보시면 되겠군요,,
미칠것같았어요, 그래서 몸팔았어요. 아. 나 정말 막장이구나. 매일 울면서
일주일을 몸을 썻어요. 욕하셔도 할말없네요..
돈을 빌릴 주위에 그 누구도 없었고, 어떻게든 하기싫어 알아봤지만 경찰조차 외면하는데 어떻게 구할수있었겠어요.. 네, 변명맞아요..
그러다 임신했고, 낙태하려고 또 임신 상태에서 몇번 몸을 썻네요.
수술날짜 정하고 집에 와서 울다 지쳐 잠들다를 계속 반복했는데..
날짜를 보니 수술날이 제 음력생일이네요, 그거에 또 울다..
당일날 잠설치고 멍하니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오더군요.
왠걸요... 친엄마였습니다.
참, 인생 더럽게 슬프구나, 느꼈어요.
어떻게 일이 이렇게 될수도 있지... 그말밖에 안나와요
이제와서 왜 찾는거지. 이제와서, 왜.,.
그래도 엄마라고 어떤사람인지 보고싶어서 찾아갔는데..
또한번의 충격이있었네요,
이제까지 자라면서 들었던 친엄마에 관한 얘기들. 아니래요, 아빠였대요.
아빠가 아빠친구부인이랑 바람났던거래요.
친엄마가 우리 돌사진까지 하나도 안버리고 보여주면서 얘기하데요..
출생신고서 하나도 안버리고 여태 가지고왔다고,
계속 찾았는데 어느순간 니아빠가 연락을 끊었다고, 초등학교가서 찾아봐도
같은 나이또래 애들하고 연락을 했었는데도 기억하는 동창이 없더래요,
그러다 이번에 찾았대요.
근데..친엄마가 다리를 절더라구요. 왜그러냐 물어봤더니
니아빠랑 끝내고 다른사람을 만났는데 경찰이었대요,. 남들앞에선 멀쩡한데
맘에 조금만 안들면 엄마를 때렸대요, 안보이는곳 멍안드는곳만 계속 때려서
다리가 불편하대요,
내가 본 대학민국이요,
지금 이래요,
누가 내게 너 웃는게 이쁘니까 웃어, 라고 말해주는게
넌 웃어야만해, 하는걸로 들려요
내가 많이 비뚤어진거 아는데. 아는데도 좋게 보이는게 없네요,
너무 돈돈 하는것같다고 하는분들도 계시는데...
지금 난 그러지않으면 당장 내일 하루 견딜 수 없는 상황이에요.
도우미 일 다시는 하고싶지않아요, 지우고싶어요,
길가다가도 마주칠까겁나요. 나 잘한거 하나없고 못난거 알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말하고 아무말없이 들어주다 울때 내손한번 잡아주었으면 바라는거없는데..그게 참 많이 힘드네요,
물론 다들 많이 힘드시란거 알아요,,
그래도 꿋꿋히 살아가신다는 것도 알아요..
그래서 그렇게 살아가는 당신들 기분도알고, 그래서 당신들 울고싶을때도
내 주위에 누군가가 내게 소설책같은 얘기들 털어놔도 그냥 들어주다
손한번 잡아주고 다독여주고 싶어요...
지금의 난, 이렇게 또 담배를 피우게 되지만,
그래도 나도 정말 열심히 산다고 마음다잡고 있으니.
이렇게 가끔씩 무너지긴 해도,, 속으로는 내가 이러면 안되지 라고 하고있으니
나보다 더 힘든 당신도, 힘내길바래요.
길게 말해서 미안해요, 오늘같은 날은. 유난히 더 마음이 우네요...
내얘기들어줘서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