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화성에서 온 왕자님

wagi2004.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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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외계인의 사랑은 기쁘고 슬프고 아픈 것


“저 요란한 애는 누구냐?”

 

흰 그물망 나시에 남은 게 거의 없는 찢어진 청바지로

간신히 몸을 가린 찬욱은 확실히 보는 사람을 적잖이 질리게 하는 데가 있었다.

윤은 남몰래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내 이래서 집으로 데려오기 싫었다고.’

 

기어이 윤의 옷장을 봐야겠다고 우긴 찬욱에게 진 것이 실수라면 실수였다.

 

‘왜 이러고 다니는 걸까. 이것만 아니면 정말 괜찮은데.’

 

찬욱과 다니는 건 즐거웠다.

미진이나 지연이보다도 훨씬 이야기가 잘 통했고

남자친구라는 개념을 굳이 덧붙이지 않는다면 마음이 잘 통하는 친구였다.

찬욱 역시도 그런 점에 있어서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고

솔직히 두 사람 다 찬욱이 남자라는 의식조차 없었다.

 

“찬욱이야, 정찬욱. 내...... 남자친구.”

 

“안녕하십니까? 정찬욱이라고 합니다.”

 

“남자친구?”

 

윤은 어색한 단어를 우물거리며

아직도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오빠들을 힐끔 살폈다.

윤의 대답에 놀란 온은 급한 성질답게 자기 가슴을 탕탕 두드렸다.

 

“윤이 잠깐 오빠랑 이야기 좀 하자.”

 

한이 드물게 굳은 얼굴로 윤을 불렀다.

윤은 반발심을 느끼며 고개를 들었다.

누구를 원망해도 소용없다는 건 잘 알고 있지만 지금 윤에게는 모든 사람이 다 적으로만 느껴졌다.

 

“왜?”

 

“여기서 이야기할 거냐?”

 

“뭐 어때서? 찬욱이가 들으면 안 되는 거야?”

 

“유진이랑은 어떻게 된 거냐?”

 

“오빠가 무슨 상관이야? 아무리 오빠라도 터치할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거 아니야?”

 

“한마디만 물으마. 내 동생은 솔직하니까 있는 그대로 대답해 줄 거라고 믿는다.”

 

한점의 웃음기도 없는 한의 얼굴이 낯설었다.

무표정한 하얀 얼굴이 갑자기 너무 두려워서 윤은 입술을 꼭 깨물었다.

 

“넌 이... 화려한 친구를 좋아해서 사귀는 거냐?”

 

숨이 턱 막혔다. 윤은 눈물을 참으며 오빠를 노려보았다.

 

‘왜 꼭 그렇게 아픈 데를 찌르는 거야? 오빠가 그러지 않아도 나 충분히 힘들어.

그냥 모른 척 해줘도 되잖아! 왜 그래... 왜...’

 

“왜 대답 못 하는 거냐?”

 

“......싫어... 오빠같은 거 정말 싫어!”

 

윤은 자기도 모르게 주저앉아서 울음을 터트렸다.

당황한 찬욱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윤을 달랬지만

한은 냉정한 표정 그대로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왜 그래? 왜 나를 이렇게 못 살게 굴어! 왜 그러는 거야?”

 

“남을 이용해서 자기 상처를 달래라고 가르친 적 없다.

적어도 내 동생은 그 정도는 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너 하는 짓이 이게 뭐냐? 당당하게 따질 용기도 없으면서 이러는 건

나 좀 봐달라는 시위로밖에 안 보여. 차라리 울고 괴롭다고 소리쳐.

힘들면 힘들다고 하소연이라도 해. 네 행동은 그야말로 저질이야.”

 

“형, 말이 좀 심하잖아!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온이 넌 시끄러워. 이윤, 그렇게 서러우면 나한테 말해 봐.

그런 거 아니라고, 오빠가 잘 못 안 거라고 말해보란 말이야!”

 

누군가 머리를 한 대 내리친 것 같았다. 갑자기 얼음물을 뒤집어 쓴 것처럼 정신이 들었다.

 

‘왜... 말이 안 나오지? 나, 찬욱이를... 좋아...’

 

“입이 얼어붙었어? 왜 말을 못 해?”

 

차갑기 이를데 없는 한의 말이 비수가 되어 윤의 가슴에 꽂혔다.

가슴 한 구석에서는 자신이 잘못했다는 자각도 있었지만

서운함과 분노가 윤의 머리를 마비시켰다.

윤은 북받쳐오는 슬픔과 고통으로 목을 놓아 울었다.

 

한번도 윤에게 큰소리 한번 내지 않은 한이었다.

쌍동이면서도 온은 무진장 맞고 자랐지만

그렇게 엄격한 한도 윤만은 언제나 애지중지 귀하게 여기고 쓰다듬어 주었다.

생전 처음 한에게서 준열하게 야단을 맞은 윤은

놀람과 설움, 미안함, 분노 등이 뒤범벅되어 거의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무슨 일입니까!”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어디선가 달려들어온 유진이 한의 멱살을 잡고 있었다.

얼굴은 상기되어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다.

놀람에 입을 떡 벌린 온과 연이어 터지는 사건에

어리둥절한 찬욱의 시선을 받으면서도 유진은 눈으로 쓰러져 우는 윤을 살폈다.

 

“이거 놔라.”

 

한이 유진을 밀어내려 했지만 눈물을 매달고 올려다보는

윤의 처량한 모습에 더욱 화가 치민 유진은 한의 눈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납득할만한 설명을 듣기 전엔 못 놓습니다.”

 

“유진아, 이러는 거 아니야.”

 

말리는 온까지도 뿌리친 채 유진은 한과 눈을 똑바로 맞췄다.

 

“네가 뭔데 윤이 일에 나서는 거냐?”

 

비웃는 듯한 한의 한 마디에 유진의 손에서 스르르 힘이 풀렸다.

맥이 빠져버린 유진이 고개를 떨궜다.

 

“그렇게 말할 건 없잖아!”

 

윤은 벌떡 일어났다. 이미 유진에 대한 미움같은 건 멀리 사라진지 오래였다.

다만 고개를 수그린 유진이 너무 안 돼 보였다.

 

“지금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인지 설명해 줄 사람?”

 

찬욱이 한데 뒤엉켜 있는 네 사람을 향해 물었다.

아차 싶은 윤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유진이 나섰다.

한마디 말도 없이 찬욱의 팔을 붙잡고 밖으로 끌어내려는 유진을 보고 한과 온, 윤은 모두 할말을 잃었다.

 

“지금 뭐하자는 플레인데?”

 

찬욱은 힘을 주어 버티며 유진에게 잡힌 팔을 떨쳤다.

그러나 유진은 막무가내였다. 이번엔 아예 몸을 던져 찬욱을 밀어내려고 했다.

막 말리려는 온을 가만히 붙잡은 것은 한이었다.

한은 조용히 하라는 뜻으로 손가락을 입술에 대 보이고는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윤아,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말해봐.”

 

찬욱에게 윤이 할말이 있을 리 없다.

윤은 가만히 유진과 찬욱의 가운데 서서 유진에게 고개를 저어보였다.

 

“찬욱아, 미안.”

 

어깨를 나란히 하고 집밖으로 나가는 윤과 찬욱의 뒤에서 유진이 망연한 얼굴로 서 있었다.

온이 그런 유진을 보고 한숨을 푹 내쉬더니 툭툭 머리를 두드렸다.

 

“가슴아프냐?”

 

한의 물음에도 유진은 그저 윤이 나간 현관문을 바라볼 뿐이었다.

 

 


*************************

 

 


“미안.”

 

윤은 도저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 소동을 겪고나서도 찬욱은 별반 변화가 없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는다고 해서 윤이 그 황당함을 모를 수가 있을까.

 

“쟤야?”

 

“응?”

 

“네가 좋아하는 사람.”

 

“사람은 아니지만... 응, 좋아해.”

 

“그렇게 말하면 좋잖아.”

 

찬욱은 웃고 있었다.

 

“좋아하면 절대 놓으면 안 되는 거야. 죽어도 꼭 붙들고 좋아한다고 악을 써.”

 

“미안해...”

 

푹 숙인 뒤통수를 찬욱이 딱 소리가 나도록 때렸다.

아픔과 놀라움으로 찬욱을 노려보는 윤에게 찬욱이 소리를 내서 웃었다.

 

“넌 씩씩한 게 어울려. 지금 그 기세로 확 잡으라고.”

 

“......”

 

“나 간다.”

 

화려한 외견보다 더욱 돋보이는 찬욱의 배려.

윤은 마음 속 깊이 다시 한번 찬욱에게 사과했다.

노을 속을 걸어가는 찬욱의 뒷모습은 한없이 커보이기만 했다.

 

그러나 정작 찬욱은 스스로에게 마구 욕을 퍼붓는 중이었다.

 

‘그나마 멋있게 퇴장해서 다행인가. 좋아하면 잡는 거라면서... 바보 정찬욱.’

 

*


“이게 뭡니까?”

 

유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눈가를 부볐다.

 

“눈물이잖아.”

 

“눈물? 제가 지금 울고 있습니까?”

 

“그래.”

 

그토록 궁금하던 슬픔의 감정을 알았지만 유진은 기쁘지 않았다.

 

‘슬픔이란 건... 그다지 좋은 게 아니다. 왜 이렇게 가슴이 아플까.

숨을 쉴 때마다 찢긴 살덩이 사이로 시린 바람이 들어오는 것 같다.’

 

“슬픈데 왜 아픈 것입니까?”

 

“슬픔과 아픔은 원래 안 세트거든. 슬퍼서 아프고 아파서 더 슬퍼지지.”

 

“별로 유익한 관계는 아닌 것 같습니다만.”

 

“그래, 세상엔 유익한 관계보다 그렇지 못한 관계들이 더 많은 법이야.”

 

“윤이는... 역시 그 누더기를 입은 사람이 좋은 것입니까?”

 

“글쎄. 그건 윤이한테 물어봐야 알지.”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같이 나갔다는 건 그 사람을 좋아해서가 아닙니까?”

 

“너 말이야.”

 

한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것들은 대체 왜 둘이 다 똑같은 거냐.

말로 하면 간단할 것을 왜 빙빙 돌리고 감추는 건지 원.

하긴 훤히 눈에 보이는 서로의 마음조차 읽지를 못하니 무슨 연애가 되겠어.’

 

“너 독심술하냐?”

 

“못 합니다.”

 

“입은 있냐?”

 

“있으니까 밥을 먹는 게 아닙니까?”

 

“넌 입 갖고 밥만 먹을지 몰라도 남들은 입 가지면 말도 해.

독심술도 못 하고 남들 눈치도 못 읽으면서 터진 입으로 밥만 먹지 말고 말을 해.

물어보면 간단할 걸 왜 그렇게 멍청하게 구는 거냐?”

 

‘하지만 윤이는 이미 그 녀석을 따라갔지 않습니까?’

 

유진은 목까지 넘어온 말을 꿀꺽 말을 삼켰다.

유진에게도 한은 역시나 공포스런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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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돌아온 윤은 식탁에 앉아 있는 유진의 눈을 자기도 모르게 피해버렸다.

그와 동시에 유진의 얼굴이 흐려졌지만 윤은 몰랐다.

 

‘그래, 이미 들킬 거 다 들켰는데 더 버팅겨 봐야 더 추해지기만 하지.

차라리 깨끗하게 말해버리자. 그러면 내 마음도 정리가 될 거야.

안 되더라도... 할 수 없잖아. 지금보다는 낫겠지. 뭐,

정 안 되겠으면 오빠들 동원해서 협박이라도 하는 수 밖에.’

 

“유진아!”

 

“묻고 싶은 것이 있다.”

 

“시끄러워! 내말부터 들어. 나 안 그래도 가슴이 터질 거 같으니까 말 끊지 마.”

 

‘화가 많이 났나보군. 역시 그 녀석한테 함부로 굴어서 화가 난 것일까?’

 

‘아아, 미치겠네. 떡 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하지만 이건 대단한 결심이 필요한 일이란 일이야.’

 

서로 다른 생각으로 복잡한 머리를 굴리던 윤과 유진은 서로의 눈치를 보다가 비장한 얼굴을 했다.

 

‘그래, 결심했어! 말하고 보는 거야.’

 

“유진아!”

 

털썩 무릎을 꿇은 윤을 본 유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과 온도 마시던 커피를 푹 뿜어냈다. 윤은 눈을 꼭 감고 소리쳤다.

 

“좋아해!”

 

“윤아?”

 

“안 되겠어. 난 네가 좋아. 외계인이고 이상하지만 그래도 난 네가 없으면 안 돼.”

 

“윤아...”

 

“싫다고 해도... 그래도 상관없어. 내가 널 좋아해.”

 

머리속이 핑핑 돌았다. 윤은 자기가 무슨 말을 지껄이는지도 몰랐다.

 

“아니라고 수백번도 넘게 말해봤어. 네가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알아.

자존심 상해서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더라.

나도 모르는 새 널 좋아해 버렸으니까. 그래도 나한테는 네가 필요하니까...”

 

유진은 손을 내밀어 윤을 끌어당겼다.

갑자기 유진의 품에 안긴 윤은 놀라움에 말을 잃었다.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눈도 맞추지 못한 채 유진이 중얼거렸다.

 

“나도... 너를 생각하면 기쁘고 슬프고 아프다. 이게... 사랑인 거냐?”

 

한없이 이어질 것 같은 윤과 유진의 포옹을 지켜보던 한이 슬그머니 일어났다.

아직도 얼이 빠진 얼굴로 윤과 유진을 바라보는 온의 귀를 잡아당긴 한은

아픔에 소리치려는 온의 입을 틀어막고 밖으로 끌어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꼭 닫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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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흑, 죄송합니다.

주말에 끝낼 거라고 큰소리 탕탕 쳐놓고

결국은 이렇게 되네요. -_-;;

 

지금 감기때문에 머리가 어질어질합니다. ㅠ.ㅠ

사실 제가 뭘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군요.

 

그런 고로 리플달아주신 분들께 인사도 불가능일듯...-_- 

다음편에 인사 같이 할게요. 정말 죄송합니다.

 

약먹고 자면 좀 나으려나.

제가 뚜껑머리 외계이이 된 것 같아요.

머리 속에서 뇌가 출렁출렁. -_-